< 가슴이 벅찬 좋은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아내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들도 시간이라는 존재로 모든 것을 잃게 하고는 합니다.
그 겨울이 아무리 길고 추었어도,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동반하는 그 추웠던 겨울도 얼음이 녹듯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항상 봄이 기다려지고는 했습니다.

 다른 계절도 아닌 이 봄이라는 계절이 항상 기다려지고는 했습니다.
남의 집 담 넘어로 보이는 목련꽃이 이리도 기다려지는 것은 분명 이 봄에 반가운 일들만이 찾아오는 듯한 분명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삶 또한, 사람 또한 분명히 이 계절처럼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흐름과 흐름이 모여서 옹달샘을 이루고  시냇물을 이루고 폭포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저 힘있고 장엄한 바다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하고는 합니다.

산을 오르다 산사에 들르면 낙숫물에 바위가 뚫어져있는 것을 보고는 했습니다.
저는 낙수가 바위를 뚫는 그 한방울 한 방울의 힘을 믿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마침내 산 정상에 서는 그 한 걸음의 힘을 믿습니다.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가는 길이 가장 느린 것 같지만 그 가는 길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2004년 5월의 어느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무심코  담배를 피우다가 떠오른 상념 하나에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자랑하고픈 마음도 누군가를 가르치고픈 마음도 전혀 없는 철저히 제 자신에게 하고픈 말을 써보자.  다짐하고 시작한 저의 절대하수 이야기의 서두에는 이런 글이 처음으로 실렸습니다.
지금도 그리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맟춤법, 띄어쓰기가 엉망인 저의 처녀작이었습니다.

 <<................. 어제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못하는 불면의밤이었습니다.

하루가 가기전에 꼭 해야할일을 하지못한   화장실을 갔다온후
뒷처리를 하지못한 그찝찝한 마음이 다시 이글을 쓰게하는힘이됩니다.저는 분명히 졸필이고 많은 고수님들처럼 화려한 수식어로 글을 미화시켜 공감가게하는
능력은 없다는걸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저 항상이카페에와서 많은걸배우고있고 또 깨우치려 노력하는 개미군단중의한사람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이글을 ....어제 불면을 일으킬정도로 3번째로 도전하여 꼭 하고픈
제마음의 편린들을 다시한번 기억저편에서 끄집어내어 솔직한마음으로 쓰고저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참아왔던 담배가 피우고싶어졌다.
창가쪽에 나가가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저 달빛속에 무수한 기억들속에서 1997년의 나의
기억들이 다시금 손짓하면서 나를 회상하게한다.

 

1997년 참으로고통스러웠고 힘들었던 내20대의 자화상이다.
나에겐 당시 3살난 큰아들과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이런소중한 가족들이 있는데 당시나는 책을보아도 눈에들어오진않는(하지만 그당시도 책은많이읽었다)  술한잔을 마셔도 낭만과 즐거움이 들지않는 가난한 젊은이 철부지애아버지였다.
아내와나는 20살에 운명적으로 만났다.

착하고 내의견을 항상 존중해주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나를 끔직히도 사랑해주었던
그 착하디착한 나의 아내를 만났던것은 나에게 첫번재 행운이자, 기회이자,인생의
가장큰 첫번제 크나큰 성공이었다.
사랑하고 사랑하다 난 군대를 갔었고 기나긴 2년이 넘는 시간들을 나의 아내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면회와주었고  나의부모님게 잘하였고 고통의 시간이었을
그많은 시간들을 사랑이라는 단하나의 이름으로 희생하였었다.
기회가되면 꼭한번 아내에대한 이야기를 올리고싶다. .....................>>

 이 글이 처음 제가 시작한 선한부자에서의 첫번째 글이었습니다.
너무도 부족하고 여린 마음의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되었으므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강해져라!  "  편은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마음속의 스승 형에 대한 이야기 엿습니다.  형에게서 많이 배우고 강해졌습니다.

 " 백마탄 왕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울 수 있을까?"  편은 자신을 되돌아 보고픈 저의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였습니다.

 " 신풍물산 창업"  편은 제 인생에서 한획을 긋는 용기형님과의 만남과 세상에 도전하는 초심의 마음을 글로 쓴 소중한 이야기였습니다.

 " 2005 정벌 "  편은 칼럼의 성격과 너무도 맞지 않은 글이라 참 망설였지만 개인적으로 꼭 쓰고 싶었던 군대시절의 소중한 경험이자 살아가는 반석의 이야기 였습니다.

 " 독서, 그 거대한 힘에 대하여..."  편은   독서는 생각의 힘을 키우고 저자와의 진지한 대화라는 매체를 소중히 생각하는 저의 세상에 대한 겸허의 자세를 배우는 소중한 이야기 였습니다.

 " 돈을 쫓는 사냥꾼"  편도 참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라 망설인 이야기이자만 꼭 쓰고 싶었던 기억의 초상이어서 후회되지가 않는 글입니다.

 매 모든 글에 온몸의 피와 생각을 최대한 집중하여 쓴 글입니다.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귀중한 약속으로 꼭 지키려 이 글을, 아주 예전에 아내에게 썼던 편지로 대신할가 합니다.이제까지 온몸의 옷을 벗는 심정으로 글을 남겼는데 아내에 대한 마지막 이 편지는 마지막 속옷까지 벗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껏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한 없이 지켜봐 주신 많은 분들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고개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뜻한바 꼭 이루십시오...

 

후회가 하나도 되지가 않습니다.

제 자신이 하고픈 말을 다하진 못했지만 후련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농부이야기를 33편 기획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렇게 3월에 마무리가 되는 점도 저를 기쁘게 합니다.( 웬지 3이라는 숫자는 기분이 좋은 숫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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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아내 **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내 지영이라는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네.
 살갑고 정겨운 이름을 자주 불러주어야 하는데 이제는 이름보다는 "자기야 " 또는 애칭 " 허니 "로 불러야 할 것 같아.

예전이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목숨만큼  사랑하는 자기에게 **아  하기도 그렇고 "야.. 너 .. "  라는  예의에 없는 단어로 소중한 자기를  깍아 내리기에는 정말로 싫어..

어제는 행복했어?
깜짝 놀랬지..
몇일 전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사회생활한다고 가끔은 모임도 나가고 친구들과 술도 한잔하고  늦은 귀가도 하는데 당신은 억새같고 차돌같은 우리아들 둘하고 씨름하잖아..
 
둘째 녀석이 워낙 억새서 당신 많이 힘들고 지치는 것 잘 알아..
항상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림 잘 해주고 아들 둘 잘 키워주고 내 뒷바라지 잘 해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고 사랑해...

일을 마치고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시장을 지나서 운전을 해서 오잖아..
날씨는 젭법 살쌀해지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하고 술도 한잔씩 하는 걸 보면 허기도 지고 부러운 마음에 나도 한잔 하고 싶잖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당신 생각이 나는 거야..
애들키우고 살림하느랴 힘들텐데...  가끔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는데..

그래 ...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애들  다 재우고 나오는 거야..
큰 녀석이 초등학교 2학년, 둘째녀석이 5살이니. 작은 녀석 때문에 항상 걱정이지...  큰 아들에게 만약 깨면 전화하거나 도닥도닥 등좀 두들겨 주렴...   하면 되는데..

어제 얼마만에 단 둘이 하는 데이트였어.
원래는 당신이 좋아하는 가을전어를 먹으로 갈까 했는데 
포장마차로 바꾸었지...  우리가 포장마차도 좋아하고 서민적인 운치가 있는 곳도 좋아하잖아...

얼마만이야..
당신과 단둘이 야심한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데이트하며 대화하는것이...애들하고 가끔은 외식도 했지만  우리끼리 하는 결혼하기전의 그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당신과 내가 만난지 어느덧 14년째야.
우리나이 20살때 만났지..
첫눈에 사랑을 느끼며 아끼고 사랑하고 단 하루라도 못보면 눈이 멀 것 같은 소중한 만남으로 너무 행복했지.
금방 만나고 헤어져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버스에서 내려 당신이 있는 기숙사로 찿아가 다시 만나고 포옹했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 몰라..



추석때 가정형편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당신이 안타까워서 나도 시골집에 전화해서 회사일 때문에 시골에 못내려 간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어머니께 거짓말하고 추석 3일을 같이 보내는 불효도 저질렀지...
너무 아끼고 사랑하니까 당신을 혼자 둘 수가 없었어..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하다가 나는 군대를 갔었지..
훈련소까지 따라오지 말고 혼자 가겠노라고 전주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는데 당신은 어머니와 같이 실감이 안나서 울지도 못했지.

나는 혼자 훈련소에 도착했는데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몇 안되더라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몰라..
그날밤 입영 첫 날 .
눈은 왜 그리도 많이 오던지.
혼자 시골집, 내 방에서 자면서 밤새도록 울었다는 당신의 말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군대에서의 그  수백통에 사랑의 편지들이 나를 살아가고 힘나게하는 신앙이 되었지...
"안양에서 매미영"    우리 애칭이었지.보내는 편지란에 항상 ...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굳건한 고목나무가 되주겠다고 했었지.
언제든지 지켜주고 쉬게해주는 든든한 고목나무로..
그 편지 때문에 고참 들에게 페치카에 매달려서 맴맴 하기도 했지..

기억나 ..
상병 6호봉때 불미스러운 일로 당신이 면회를 왔는데 외출이 안됐지. 
하루내 부대안에 있으니 안타깝고 미안해서 죽겠더라구..
고참들의 성화에 당직사관에게 말을 잘하여 부대앞 에서 식사나 하고오라고1시간 허락을 받아 내었지.
정말 귀하게 얻은 한시간 이었지.
그런데 보신탕집이나 오리탕 집이어서 가는 곳마다 식사는 안된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간절하게  멀리서 애인이 면회를 와서 그러니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아무거라도 좋으니 밥만 달라고 했지..
군인아저씨가 딱하다고 하시면서 허름한 방에 맘좋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

보리밥을 수저로 입에 넣는데 왜 그리도 서럽고 비참하던지  눈물이 계속나는거야... 
닭똥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나는데  내 자신이 그렇게 밉고 싫더라고..
이렇게 까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과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자..
당신이 웃었지!
내 우는 모습보고 도리어 당신이 웃었지..
내가 우는 모습 처음보았다며,  보리밥을 삼키지도 못하는 내모습이 웬지 바보 같다며 웃고 말았지...
알지.. 나 그날 이후 이 날까지 한번도 울어본적이 없다는 걸...
그렇게 눈물의 보리밥을 먹고 당신을 버스에 태워보내는데 내 마음은 찟어 지는것 같았어.


그때 결심했어...
사랑하는 나의 사람.
내가 군대 제대하면 평생을 행복하게 아끼고 사랑해줄거야..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면서 굳게 다짐했지.

그렇게 군대 3년이 안되는 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면회와주고 편지 해주니 어느덧 제대를 하게되었고 우리 사랑의 결정체인 큰아들 설빈이를 낳은거야.
내나이 25살에 어린나이에 아빠가되어 약간은 당신에게 힘들게도 했지.
백만원에 10만원 월세로 시작해서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살고 정말 당신 고생도 많이 했어..
나 하나 믿고 어려운 살림과 그 고생들 ...
항상 변함없는 사랑... 정말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워..

시간이 흘러 이제 우리 나이34살.
둘째아들 찬빈이도 5살이야.
작지만 감사한 우리 아파트도 장만했고, 내 작은음료 도매업하는 신풍물산  사업체도 어느덧 만 2년째로  힘들지만 잘 꾸려가고 있어.
이 모든 이루어놓은 것들이 다 당신 덕분이야.
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성공은 당신을 만난그순간 51%가 성공을 이루었고 나머지  49%는  내가 정말 열심히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난 확신해..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내가 새벽에 아르바이트 한다고 걱정이 많은데 걱정하지마..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지 않아. 
운동도 되고 아주 하루가 활기차고 즐거워.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생긴 것 같아.
나는 열심히 사는 걸로는 만족하고 싶지가 않아.
열심히 산다는 것은 나름데로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잖아.
나는 그 이상을 최선을 다하는 그이상을 더욱 열심히 살고 싶어..

당신과 내사랑하는 가족이 있는한 나는 항상 땀흘리며 행복을 위해 질주하는 야생마가 되고 싶어.

항상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앞으로 십년후에 돈많이 벌어서 잘해준다는 말은 안할께.
그냥 오늘 하루 하루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든든한 아빠..
당신에게 멋지고 당당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웃음을 전하고 싶어...
나의 사랑 아내 ** !
진심으로 내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해...
토요일 삼겹살 알지요....!!!

당신과 야심한 밤에 데이트한 다음날 
당신의 영원한 보디가드   남편 *** 이 사랑을 고백합니다....
2004년 10월 9일 한글날  1시5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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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군대에서, 나는 모공업고등학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썼던 이유는 이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눈물 때문에 처음부터 눈물의 이야기를 쓰려고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1988년...

 나는 전북 이리에 있는 모 국립기계공업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된다.
모기계공고는 당시 우리나라에 국립으로 우리나라에서 3군데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 학교를 오게 되었나?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못하고 항상 딴 생각만하고 장난기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보다는 소설책이 좋았고, 공부보다는 어머니 도와서 일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런던 중 축구를 하다가 발이 부러저 3개월을 기브스하는 사고를 당하게되었다.
학교는 가야 했다.친구들 놀 때나 공부할 때 할 것이 뭐 있나?
그래서 공부를 했고 순전히 할 일 없어서 공부했다.
그러니 성적은 당연히 올라갔었고 다리가 거의 아물 무렵 또 개구장이가 되려나 했는 데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나...
또 부주의로 또 다리를 다쳐서 기브스하게 되어 도합 7개월을 목발로 절름발이로 살아야했다.    정말 폭폭하고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형이 동생아!  

 "우리 형편에 갈학교는 이리(지금은 익산)에있는 모국립공고밖에없다...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해라!  그 학교는 시험도아닌  철저한 내신성적이니까  전체학생등수 30등안에만 들어라"  

형은 절실한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 학교는 국립이라, 수험료도 안내고 기숙사도 있으니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그곳이 딱이다. 넌 몸만 가면 되는거니까  한번 죽었다 하고 해봐라.
난 그말만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아픈몸  할일이 없어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형에게 처음으로 기쁨을 준것같아 참으로 기뻣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시골 촌놈!

눈이 휘둥그래지는것은 어쩔수없었다.

답답한 시골살다가 ,일만하는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올라왔으니 어쩌랴?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리저리 많이도 돌아다녔다.그러니 시골촌놈..
세상이란 곳에서 시골때가 벗겨지고 ,머리가 조금크니 살짝은 겁이 상실해지지 않겠나?
형은 그렇게 고생하고,어렵게 신문배달하고 우유배달하면서 피와땀으로 살았는데 난 그생각은 추어도 못하고  하룻강아지 마냥 그렇게 살았다.
형에 반에 반만 이라도 열심히 살았으면...형의  처한 상황보다도 비하면 행복한 그시간을 난 허비했다...

 내 나름데로 공부한다고 햇었다.
야간에도 했었고 ,새벽에도 해었는데  그 학교 첫번째 중간고사에서 꼴등했다.
55명 중에서 55등했다.  꼴등...  
글쎄 나도 한다고 했는데..이럴수가?
이렇게 공부잘하는 학교였나?아버지께서 통신표를 받아보시더니  "야 이놈아 꼴에서 첫번째는 해야지 꼴등이뭐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해라고해도 못하겠다....

 
그런던 중 시간은 쉼없이 흐러가서  2학년이 되어 2학기에 접어드는와중에 일요일 귀가시간을 20분어기는 일이 발생되었다.
시골집에서 막차를 타고 열심히 왔었는데도  늦은것이다.
그때가 2번제 늦은 귀가어기는 일이었는데  사감선생은 퇴사조치를 한다는것이었다.
남들은 4번도 5번도 봐주더구만...
이유는 너는 위험인물이라는것이었다.
지뢰같은 위험인물이었는데 이기회에  나가주었으면한다는것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소귀에 경읽기가 되엇다.
그때 나는 큰사고는 치지않았지만 얼굴은 아주 불량한,세상의 때에절은 반항기가득한
소년이었던것이다.

 

형이 왔다.

군대 하사관으로 잇던 형이와서 어머니와같이 방을 얻어주었다.
철부지녀석은 딴짓거리하기가 쉬운  방을 고르려했고 형은 주인아주머니가 굉장히좋고
자취방 옆집사람들이 성실하고좋은 아주 선한 자취방으로 삭월세를 구해주셨다.
그당시 24만원! 결코작은 돈이 아니다.  한달에 2만원, 1년치 선불이었으니...

형은 박봉일 그 힘든 군대생활하면서 모은 피같은 돈을 못난동생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꼭 한마디를 하였다.
"동생아  !   형이 좋아서 이러는게 절대 아니다.
내 너를 지금 귓뺨을 때리고싶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지만 난 너를 믿는다.
이제부터  새로이 시작하는 너를 믿는다.
이러고도 정신을 차리지못하면 너는 내동생이 아니다.
부디 잘살고 잘 생활해라 "

정말로 미안했다.
할말도없었다.. 참으로 못난 동생일 뿐이었다.
그때 느낀것이 아무리 어떤일을 해도 졸업하기전까지는 조용히 절대 형이나
가족들에게 피해나 걱정을 끼치지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몇달이 흐른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돌아왔다.
자취를 하자보니 내마음처럼 혼자만 잘살고싶은데 그게 잘안되는날이있다.
그전날 친구생일이라고 친구녀석들이 몰려와서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자취방이 아주난리 이런난리가없다.
나홀로 있을때는 정리정돈잘하고,항상 깔끔한 모습과, 형이 한번도 방 구해준이후
안와봤기에 언제올지모르는 형을 위해 준비를 해주고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전쟁터라는 말인가?
빨리 치우자.. 어서 치우자...팔을 걷어 붇이는순간
멀리서 당동딩동 ~~
누구람 ?
누구 손님인가하고  문을 열어주던 그순간 .
나는 얼어붙은줄 알았다.
세상에 형이다.
형이었다.

 

 

갑작스러운정도는 표현이 안되었다.

" 야 잘있었냐?

여기 근처 동기집이잇어 왔다가 들렸다.

잘살지  ㅎㅎㅎㅎ~~"

 

"형 ~~형 ~

잠깐만 ...

얼어붙은나는 말이 모기만하게나왔다.

 

"야 임마 !

네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가자"하는 형은 내방문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문앞에 나뒹구는 술병들 ,,,문을 여는순간 , 담배피우다 얼른끄고 상황을 파악하는 친구들 ..
뿌연 담배연기속에서 전쟁터가 된 방과 부엌을 보는형은 눈빛은 카리스마적인 그런눈빛도
아니었고 촉촉히 젖은 눈빛은 차라리 슬퍼보였다.

 그어떤말로도 설명할수가없었다.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하는데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고 그저 이순간이 꿈이었으면...
형도 말이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그리곤 다시왓던 대문으로 걸어가는것이었다.

"형!   형!  나는 뒷쫒아 나가 형을 불렀다."
묵묵히 가던형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몇초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만 했다.

"형   간다"

그말하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수없다.
그리고는 말없이 형은 걸어갔다.
조금씩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모른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멀리 군복을 입고 쳐진 어깨를 가르며 걷는 형을 보며 눈물이 멈추질않았다.
우는 와중에도 형이 택시를 타주길바랬다.
기본요금이 600원, 이리역까지 형이 타고 가주길바랬다.

하지만 형은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아마 형도 그당시 나처럼 울지않았을까?
차라리 몇대 맞고 욕이아 싫것먹었다면 그렇게 서럽지는않았을텐대....

 나는 형을 보면 언제나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형이 나에게 하는말인것같다.
내자신에게 절대 지지않는 강한 내자신의 주인으로 나에게 살라고 이야기하는것같다.
힘들고 냉정한 이세상을 살아가매  다른이들에게는 지더라도 철저히 내자신에게만은
더욱더 냉정하고 강한 그 정신으로...

형에게는 항상 빛진느낌이다.
살아가면서 천천히 갚아야지 ...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한다.
하지만 내마음속의 스승, 형에게 한마디 말하고 싶다.

 형만한 아우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이전쟁같은 삶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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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2월23일   인생이라는 배를 항해하는 법.

내 인생의 커다란 배에 소중한 살갑고 수중한 사람들만 태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험한 풍랑과 산처럼 높은 파도를 맞서서 싸울 그런 사람과 같이 가고 싶었다. 바다가 잠잠해져 저 수평선 너머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웃음과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삶은 끈과 끈이 이어져 만들어진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다.

불을 밝히는 전기는 그 끈이 이어진 전선이 없으면 불을 밝힐 수 없다. 소켓만 있는 전구는 그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세상 그 무엇이든지 그 짝이라는 것이 있다. 젓가락은 두 개가 모여 한조를 이루어야 반찬이나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손뼉은 두 손바닥이 모여야 소리를 낼 수가 있다.
자전거의 패달은 양발을 사용해야 힘을 발휘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작은 아들과 놀아주고 싶어도 내 아들이 곁에 있어야 놀아 줄 수가 있는 것처럼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혼자서는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생각해보니 독서라는 읽음과 깨우침도 누군가 진실한 마음으로 집필을 하여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가 있고 또 책을 만들었다고 하여도 누군가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 책은 가치가 없는 책과 같다.

전기불빛을 밝히고 손뼉을 치고 젓가락을 들고 저전거를 타고 아이와 놀아주는 그 모든 참된 행동도,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진 끈과 끈에서 만들어져 이루어낸 삶, 그래 그것이 인생이라는 크나큰 바다다.
그 크나 큰 바다에서 나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선장이다. 대장이라는 말이다. 대장은 배를 책임지고 목표한 험난한 곳으로 가는 총 책임자다. 혼자서 그 커다란 배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그래서 같이 항해를 할 선원을 구해야 한다. 선원은 동반자이다. 동반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부드러우면서 묵묵한 사람. 
 때로는 강하면서 능력있는 사람.
때로는 약하면서 베짱있는 사람.
때로는 적당히 풍류를 즐기면서 서두르지 않는 사람.
때로는 한없이 여린 마음으로 동료를 도우며 따뜻한 눈빛을 주는 사람.
때로는 말 술을 마시며 호탕하게 노래 부르더라도 때가 되면 몇 달도 마시지 않는 사람.

 이런 선원을 구하는 인연의 원칙에 대하여 알아보자.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이 인연이라는 맺음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된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외로우니까, 마음이 찹찹하니까, 소주 한잔 하고 싶으니까, 대인관계를 위하여, 사업상 친목을 위하여, 모임이다. 향우회다. 같은 업종의 친목회다.
가지 가지 여러 가지로 어쩌면 꺼리를 만들어서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우정과 의리를 빙자하여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진지하지 못함인가? 아니면 스쳐가는 인연인가?  내 주위에 사람이 그리 없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몇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많은 만남과 술 자리에서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야 나는 제대로 알 수가 있다. 어쩌면 채로 걸러진 것처럼 진짜 사람냄새나는 사람만 이제 남은 것이다.

  함부로 이제는 인연을 맺지를 않는다.  진실한 마음의 인연인지, 스쳐가는 인연인지를 알불 수 있는 안목을 길렀다. 옷깃을 스쳤다고 모두 내 인연이 된다고 믿었던 어린날의 허세를 이제 내 안에서 버린 후 찾아온 소중한 교훈이다. 사람냄새가 제대로 나는 사람에게만 손을 내밀어 내 배에 승선을 시켜야 한다. 수많은 선원이 다 탄다고 배가 항해를 잘하지는 않는다. 아무나 승선을 시키면 제대로  된 선원을 태우기 힘들고 나중에 자리가 없어 휼륭한 선원을 태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항상 사람의 일이란 그 당장의 벌어진 일 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의 사람 때문에 고통과 힘겨움을 동반한다. 사람, 이 사람 때문에 말이다...

나와 비숫한 사람들. 나와 마인드를 같이 나누려는 사람들. 그런 진실된 사람들만 태워야 한다. 그래야 배가 제대로 된 항해를 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아무리 몇 명이라도 외롭지 않다. 그들에게만 진실한 인연을 손에 잡으면 추호도 항해의 불편함이란 없다.
항해에서 좌초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없는 선원을 승선한 나의 판단의 댓가로 받는 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마전 10년 된 소중한 인연의 끈을 내가 잠시 놓아주었다.10년된 인연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서운하고 마음의 짐을 넘겨받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어쩌면 가장 안다고 자부했는데 서로 겉모습만 알고 있었나 보다. 그에게는 서운한 일일지 모르지만 더 굵고 힘찬 인연의 끈을 위하여 지금은 잠시 시간의 공간에서 잠시 멀어져 생각하는 것이니 서운할 일도 아니다.
이 일로 나는 인연의 맺음에 너무 헤프지 않기로 더 다짐하게 되었다. 진심어린 마음의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하였다고나 할까.

나는 최선을 다하는 인연을 맺는데 게을리 하지도 않겠지만 떠나가는 인연 또한 가슴의 한곁에서 스스로 놓아 줄 것이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의 눈동자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진실하고 진실한 선원만 내 인생의 커다란 배에 태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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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21일   글쓰기에 대하여

글쓴다는 것은 솔직히 힘들다.

 왜 힘든가?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 것이다. 남이 내 글을 어떻게 평가를 할 까?  하는 생각이 글을 쓰게 하는 가장 큰 부담인 게다.

우리는 어릴 때 일기를 써 보았다. 방학이 끝난후 선생님이 검사를 하시기에 방학숙제로 일기를 쓴 것이 주된 이유이다. 나는 이 학교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꼭 써야 하는 이유를 이해를 시키고 자신에게 재산이 된다는 방식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숙제로 써야 한다는 그 부담감, 그리고 선생님이 확인을 꼭 해본다. 그러니 누군들 솔직히 일기를 써보겠는가...

글은 내 자신만 본다고 써야 한다. 자신이 있고 남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싶은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다. 자신을 드러내어 같이 어깨동무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

내 방식은 하루에 일단 10줄만 써보자는 것이다.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지. 얼마만큼 많이 쓰고 멋지게 쓰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생각나는대로 글 써지는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형식에 구속받지 말고 펜가는 대로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  글쓰기도 쓰면 쓸 수록 는다. 몸의 근육이 운동하면 할수록 근육이 발달하고 우람해지는 것처럼 글쓰기도 뇌의 어떤 한부분의 근육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읽고 보고 많이 써보자. 생각을 하고 사색속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의 머리에 항상 변화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쓰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인 셈이다. 자신과의 대화가 많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 비워진 텅빈곳에 곡식을 채우듯이 자신의 공간이 생겨나 쉴 수 있는 곳이 된다.

하루 하루 절대 쉬지 말고 짧게 쓰는 습관을 가지자.  여름내 개미가 땀흘려 일하듯하면 겨울내내 따뜻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표현이다...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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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2월28일   마음을 다스리는 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봄볕처럼 따스하고 꽃잎이 피어오르는 여유를 느기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신이 아니기에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주관과 판단,감정, 열정,태도와 습관이 있다. 자신안의 이 많은 감정의 표현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 되느냐. 어둡고 빛이 없는 터널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세상일이 어디 마음처럼 되는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느냐는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자신이 꿈꾸는 것을 마음속에 제대로 심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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