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사자을 만났다. 갑자기 피할 길이 없자 젊은이는 칡넝쿨을 잡고 우물속으로 몸을 피했다.  우물 바닥에는 새파란 독사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위에는 사자요, 아래는 독사떼가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위를 보니 흰쥐,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한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하늘을 보니 우물곁에 있는 나무 위 높은 가지에 벌통이 있는데 벌통에서 꿀이 넘쳐나 똑 똑 떨어지고 있지 않은 가?

그 꿀을 먹으면서 살아나가게 된다...
나에게 독서란 절박한 인생에서 배고픔에 꿀을 먹는 것 같다. 그 꿀을 먹고 취하는 휴식 같은 존재, 이 존재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일 것이다...

하루 하루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살아가는 요즈음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촌에서도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나란 존재는 어쩌면 미미하고 약한 존재이다.  약한 존재이지만, 삶이란 치열한 전장에서 짬을 내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것에는 대한민국 1%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내 처해있는 현실이 불 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난관에 부닥치는 여러 일들이 많았어도 세상에서 나를 평등하게 가장 잘 해주었던 것은 독서라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어느 낯모를 간이역에서 봄 햇살을 맞으며 읽는 즐거움,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놀이터 벤치에서 읽는 독서의 즐거움,약간의 술에 취해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은 나에게 작은 감동과 삶의 여유를 가져다 주고는 한다. 각박하고 많은 일들이 총알처럼 빠르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간의 다툼속에서 올바른 길과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은 독서라는 작은 내안의 울타리에서의 휴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루을 마감하고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들을 보고 아내에게 하루의 안부를 묻고 바라보는 서재의 책들을 보노라면 흐뭇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좋은 책을 읽었고 저렇게 좋은 책을 모았다는 자부심의 일이다. 저 많은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하다.오늘도 안녕하셨냐고... 고생 많으셨노라고  내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나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독서는 자신을 키우는 거름 같은 존재이다. 거름의 시작은 썩고 냄새를 동반하지만 그 것이 뿌리를 강화하고 생각의 나무에 새로운 살을 돋게 하고 잔 가지를 나뉘고 열매를 맺게 한다.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 뿜어 보는 이들과 맡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나에게 이제는 몸의 한부분이다.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책읽기는 하루를 살아가는 소중한 부분이다. 중독되었다.  그렇다.  중독되기를 바랬는 데 이제 정말 중독이 된 듯 하다.

독서를 함으로써 내 자신이 커가는 것을 느낀다.
항상 걷기만 하는 사람이 뛰는 듯한 느낌이, 내 몸 어느 곳에서 날개가 달린 듯 이 가끔은 이유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 서재의 책들을 보면 흐뭇하다.
거실에 있는 서재의 책장을 보노라면 2천권 가까이 되는 듯 한데 한권한권의 사연이 있기에 어린 자식들 보는 착각이 든다.

내가 직접 서점에 들려서 구입한 책들, 알라딘 서점에서 주문한 책들, 어느 병원이나 남의 집에서 한권 빌리거나 위치이동한 책들,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 주워온 책들... 
 

어느 한권 소중하지 않은 책들이 없다.
키케로는 말했다.  <서재가 없는 방이야말로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것인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두운 밤길을 운전 할 때 라이트 불빛을 켜지 않고 어떻게 운전을 할 수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봄이 다가오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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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책을 만드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좋은 시’를 쓰려고 가슴앓이를 많이 한다. 무슨 책을 만들지라도 독자의 마음 한 켠을 강하게 울리는 울림이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한다. 나의 책 만들기 화두는 과학적으로 사유하되 시적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을 만들어 놓고 그 책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그 책을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 좋은 시도 쓰고 나면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어올 뿐만 아니라, 독자의 심장에 말을 건다. 그 정도쯤 되면 책도 자식이나 애인처럼 예뻐 보이고, 계속 만지고 싶어진다. 그런 것을 조용히 즐기다보면 컨셉, 제목, 홍보, 마케팅도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책을 구성하는 분신들이 걸어오는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언젠가 무슨 글을 쓸 때 쓴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가장 사랑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좋은 시를 한 편 쓰는 것과 같다. 나도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찾아 부지런히 읽어왔다. 그러나 그 좋은 시인들도 대중들이 보기에 다 좋은 작품을 남기느냐의 문제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시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 한 켠에 울림이 와야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다. 그 울림이 크고 대중적이어서 크게 사랑 받는 것은 시인의 모든 작품 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도 시인도 드물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등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 한 편 한 편은 모두 소중하다. 시인에게 있어 그 첫 울림은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마음의 울림이 있었기에 그 첫 울림을 가지고 시상을 잡고 시의 첫 구절을 썼으리라. 그리고 구조와 뼈대를 세우고 그 뼈대와 구조에 긴장감이란 살이 붙었으리라. 그리고 다시 헐고 세우기를 몇 번, 또 읽기를 수백 번. 결국 마음에 걸리지 않아야 시인은 자기가 품은 시를 자기 품에서 놓아 줄 것이다.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첫 번째 울림소리가 바로 컨셉트이다. 이 울림소리에 귀를 잘 귀 기울어야만 우리는 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좋은 울림소리는 당연히 세상과 통하게 되어있다. 시인도 인간이고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찾기 위해 먼저 시인(저자)에게 그 울림소리가 잉태한 비밀을 물어야 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알고 싶으면 언제나 첫 번째 질문은 이래야 한다. 왜 그 책을 꼭 써야만 했나요?




 그 비밀을 제대로 포착하느냐 마느냐에 책의 승패는 결정 난다. 그러나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갈수록 형식적인 프로세스에만 집착할 뿐 내가 하나의 시인(저자)으로 돌아와 그 위치에 서 보지 않는다. 제대로 그 첫 울림의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아마 수백 번, 때로는 수천 번 그 문턱을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그 첫 울림의 소리를 귀신같이 잡아낼 수 있다. 




 그 첫 울림을 제대로 느끼게 되면 그게 너무 시기상조인지 그게 가짜(자기만족)인지, 변죽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책을 기획하는 것을 중단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그가 기획하는 것은 기존에 있는 것을 조금 비튼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있어서 책을 만드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 같다.’라는 말 다음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중한 진리를 버리고 마구 기획을 한다. 마구 책을 만든다. 다 미친 짓이다. 나도 미친 짓을 했기 때문에 자꾸 반성이 된다. 그래도 나는 내 마음이 하나라도 느낄 때 그 책을 기획한다. 그리고 첫 울림이 있는 저자라면 프로필 같은 것은 한 줄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책이 많아질수록 독자, 저자와 공명(空鳴)한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함께 울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책이 만들어지랴.




 그러나 그 공명(空鳴)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책 만들기를 잠시 중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많이 만들기보다 내가 만드는 책(어떤 책을 만들 때) 한 권을 통해서라도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정확히 들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책은 각기 그 울음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지식, 감동도 다 인간의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 울음의 한줄기다. 울림이 반복되다보면 울음이 되고 긴장감 있는 울음소리는 천만인의 가슴을 적신다. 




 책을 만들다보니 요즘에는 프로세스만 강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프로세스에 의해서만 책이 만들어 지고 또 프로세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프로세스 탓만 하고... 겉만 번지르한 책만 만드는 기술자들만 늘어나고... 그러나 프로세스라는 것은 이용하면 좋은 것이고, 탓만 하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프로세스라는 현 위를 그 울림의 소리가 타고 흐를 때, 그것을 자유롭게 부리는 사람이 나타날 때 그는 한 편의 시를 쓰듯 책을 만들 것이다. 그런 인재들이 많이 나타나 새로운 세계와 시장을 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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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을 쓰기 전에 도서를 추천한다면 별 고민 없이 10권을 고를 수 있었을 겁니다.

허나 이제는 10권을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10권을 아래와 같이 추려 봤습니다.

'이 세상에 나쁜 책은 거의 없다'는 점을 참작하시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자를 대표해서 15권을 골랐습니다.

 

* 추천도서 (순서 무순)

1. 낯선 곳에서의 아침 / 구본형

2.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 짐콜린스
  - 짐 콜린스의 다른 책인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3. 강의 / 신영복

4.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타 헤이스케

5. 신화의 힘 / 죠셉 캠벨

- 죠셉 캠벨의 다른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와 인생'도 훌륭한 책입니다.

6. 프로페셔널의 조건 / 피터 드러커

- 그의 다른 책 특히 '변화 리더의 조건'은 조직경영에 관한 아주 뛰어난 책이고, 그의 자서전 '피터 드러커 자서전'도 좋습니다.

7. 생각의 탄생 / 루트번스타인 부부

8. 찰스 핸디의 책

- 코끼리와 벼룩 / 포트폴리오 인생 등

9. 말콤 글래드웰의 책

- 티핑 포인트 / 블링크 / 아웃라이어

10.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11. 논어 / 공자

-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노자, 장자 모두 훌륭한 책입니다.

12. 쉽고 강한 브랜드 전략 / 신병철

13. 마커스 버킹엄의 책

-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 강점에 집중하라 / first break all the rule / CEO가 원하는 한 가지 능력

14. 사기열전 / 사마천

15. 다산선생지식경영법 / 정민

- 정민 교수님의 다른 책들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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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목표가 뚜렷하니 한 시간도 허투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거창한 목표도 있고 결코 이루 수 없는 허무맹랑한 목표도 있고 정말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목표도 잇다.

나는 많은 목표가 있다. 부와 삶, 성공, 이루고 싶은 많은 것들이 드림리스트에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단 3가지이다.

 

1.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거창하게 국가와 인류를 위하여 무언가 거대한 것을 이루겠다는 꿈은 나중이다. 내 가장 소중한 가족과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2. 삶이다. 내가 진정 살고 삶이다. 시간의 구애와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장소다.

아내가 항상 말하고는 한다.  참 성격도 특이하고 세상에 별로 없는 사람이다.  생긴 것은 분명히 도시풍으로 생겼다고 하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보면 영락없는 시골사람이라고...    솔직히 나는 농촌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일하여 온탓인지 정말 시골일 잘 한다.
지게도 잘지고 나무나  온갖 굳일일인 시골일 정말 잘하고 잘 할 자신이 있다.
특히 도끼로 장작 패는 일은 지금도 하고 싶고 밤이 되면 장작불을 지피며 고구마,감자 또는 삼겹살도 구워먹고 싶다.그 온돌에서 푹 자면 참으로 개운할 게다.
땀이 적당히 흐른다. 자면서도 더운 느낌이 드는 그 온돌이 아파트생활하는 요즘에 너무도 그립다.

아침이면 내가 지은 전원주택  (목조건물과 흙으로 진 두채의 집을 지을 것이다.) 에서 새소리 나오는 아침을 맞는다. 아침이슬이 떠있는 산나물이나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개울로 가서 씻어낸다.  흙을 씻어내어서 가지런히 소꾸리에 넣어서 가져온다.
군불을 지펴서 오래된 솥에 직접 밥을 지어 먹는다.
누릉지가 나오는 그 밥은 정말 꿀맛이겠다.
내가 직접 만든 탁자에 방금 따온 산나물과 약초, 상추로 아침을 먹는다.  고추장은 순창이나 내가 직접 제조한 것이면 더욱 좋겠지. 녹차를 우려만든 물로 보리차를 대신한다.
점심에는 뒷산에서 칡을 캐어서 즙을 내어 만들어 먹기도 하고 뿌리는 국수를 만드는 것에 쓰기도 한다.

나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제법 쳐놓은 우리에서 오리며 닭도 키워본다.  
사온 돼지는 산속에서 살기에 말 그대로 산돼지가 되는 것이다.  염소도 키워보고 소도, 송아지로 한마리 키워본다.
내가 어릴때 좋아하던 똥개 순종도 한마리 기르고 신풍이와 똑같은 코카스파니엘도 한마리 더 키워본다.

더우면 개울가로 발을 담구어 본다.  발을 담구어도 시원치 않으면 반신욕도 좋겠지.
목침하나 베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자장가는 옆 개울에서 물소리가 자장가인 것이다.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한 재미나는 일이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소음이 조금 커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깨면 옆에 있는 책 하나를 펼쳐읽는다.
언제든 좋은 글귀는 밑줄을 그어야 하니까 색볼펜이 하나 있으면 그만이다.
독서는 저자와의 진지한 대화라고 했던가.   같이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저녁이면 내가 직접 자르고 도끼질한 참나무나 통나무로 군불을 지피우고 불빛을 본다.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이름모를 새가 우는 것은 같이 있음이 좋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불이 약해져 숯불이 남거든 냉동실에 얼려둔 삼겹살 남은 것을 꺼내게 된다.
오래 묵혀둔 더덕술이면 더 좋고 매실주나 칡술도 관계가 없다.   이리 좋은 곳에 와서 독한 소주를 마실 일은 일년에 얼마 없을 것이다.
달빛이 너무도 좋구나.  별 빛 또한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구나.
신선이 따로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구나.
옛일을 명상 하는 것 또한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제의 나와 지나온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를 않은가?   고생하고 힘든 삶은 잘 견디어 준 내 자신을 위하여 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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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을 말하다 무술과쌈박질

2004/08/05 11:57



복사 http://blog.naver.com/nbjs/60004682842









목숨을 걸었던 무술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턱걸이가 아니라 배꼽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로 쳐라. 스피드도 중요하다. 아주 추운 날 정권치기를 할 때 주먹이 지나간 선을 따라 하얀 선이 생겨날 만큼의 속도로 쳐라. 그 주먹으로 치면 소는 죽는다!”

17세의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뒤 도쿄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에서 우승하고, 극진가라테라는 실전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해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전부 꺾는 등 초인적인 일화를 남겼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바람의 파이터’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최배달 무술의 근원을 아들 최광범(30) 씨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최강의 훈련을 거친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30,000회의 연습을 강조할 정도였죠. 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주 꺼려하셨습니다. 혹여 일이 잘못 돼도 빠져나갈 변명의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항상 송두리째 ‘목숨’을 걸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최씨는 얼마 전 동생 광수(28), 광화(22)씨와 함께 최근 아버지 최배달의 삶과 무술 세계를 담은 평전 ‘This is 최배달’(찬우물 刊)을 펴냈다. 8월 12일에는 그가 자문을 맡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감독 양윤호ㆍ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도 개봉한다.

-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
평전이 생전 최배달의 무술 이론과 철학 세계를 충실하게 고찰하고 있다면, 영화는 최배달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강한 외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최씨는 특히 배우 양동근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영화 개봉 후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최배달의 인상을 고스란히 실제 최배달의 느낌으로 연결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배우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 최씨는 후한 점수를 준다. “아버지 무술 세계를 적어도 7,8할은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한다. “촬영도중 배우 양동근에게서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봤어요. 경기 후 허탈해 하던 인간적인 갈등까지… 생전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최배달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벽돌 격파를 하면서 거들먹거리곤 하던 어느 무술가와의 자리에서 벽돌을 두 손에 쥐고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술집에서 시비를 걸던 건달 앞에서는 뚝배기를 귀를 엄지와 검지로만 차례로 뜯어냈다고 하는 ‘무한’의 힘이 화제의 핵이다.
“중 3때 생일날 아버지께서 180cm에 90kg짜리 샌드백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신이 나서 날마다 이마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도록 치고, 또 쳤죠.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텅텅’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도록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다. 멋은 있지만…’하며 질책하시더군요.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죠. 아버지가 짧은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그 육중한 샌드백이 ‘퍽’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혀버린 겁니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일흔에 가까웠어요.” 그때 아들은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버지의 저런 ‘괴력’이 그를 전설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흔히 무廈된??만화에서는 무예 고수들이 죽기 전엔 그의 후계자에게 평생 갈고 닦은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래서 그도 생전 아버지에게 최고의 고수가 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아들을 타일렀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한 건 비법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는데 올곧게 정진했기 때문이다.”

- 마음에 칼을 품고 올곧게 정진하신 분
세인들은 종종 그런 아버지를 시라소니, 김두한 등과 비교한다. “최배달과 시라소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이 같은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두지 않지만, 때로 은근히 부아가 치민 적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모두 당대를 빛낸 뛰어난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무술인으로서 심신을 수련하며 ‘칼끝에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의 무예 고수들과 100여 차례 겨뤄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파이터로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 최배달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라는 무게가 더욱 크다.
“어린 세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길 좋아하셨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얼굴은 천장 쪽을 향하게 해서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스레 머리를 감겨주곤 하셨어요.”
94년, 험난한 무술인의 길을 원치 않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시험을 준비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난 뒤, 3주 만이었다. 말기 폐암이었던 아버지는 90여 kg의 몸무게가 마지막 순간에 60kg이 될 정도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내 자식들에게는 “소를 때려잡던 강인한 아버지로 남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산을 잃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무술과 철학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 출처 : 주간한국

출처블로그 : 한국자기개발원


"최선만으로 안된다, 목숨을 걸어라"

"아버지 무패의 비결은 자기수양과 정진이었어요"… 아들, 최배달 일대기 엮어 책·영화화

“아버님은 의외로 약한 분이었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였긴 했지만 말년엔 몸 이곳 저곳이 안좋아 자주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습니다. 특히 관절이 좋지 않으셨어요. 손목이나 무릎 같은 곳이 심했습니다. 손목을 뒤로 젖히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아버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040세대에겐 ‘고우영, 대야망’으로, 2030세대에겐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씨.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39년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 도쿄 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서 우승한 뒤, 미국·남미·중국 등을 돌며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적 인물. 그가 창시한 ‘극진(極眞) 가라테’는 오늘날 일본 공수도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러시아·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100여개국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배달의 장남 최광범(30)씨는 강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풀어내는 ‘기억’엔 의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이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젊었을 때 워낙 심하게 몸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계속 단련을 하셨으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아버님은 생전에 약 100번에 걸쳐 황소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47마리의 뿔을 꺾고, 4마리는 즉사시켰죠. 그때 쓰러지는 소에 무릎이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00㎏도 넘는 황소가 무릎을 덮쳤으니…. 제 생각으로는 당시 미세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퇴행성 관절염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쏘는 듯한 눈빛에 다부진 체격

부친을 닮아 그럴까? 최광범씨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탱글탱글하니 쏘는 듯한 눈빛에 프로레슬러 같은 체구, 활기 넘치는 다부진 몸집이 사진으로 본 ‘최배달’을 쏙 빼닮았다. ‘한 가락’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하. 저희 3형제가 다 그래요. 저는 174㎝에 92㎏, 둘째는 175㎝에 95㎏, 막내는 181㎝에 95㎏입니다. 모두들 운동을 좋아하죠. 저는 킥복싱과 헬스를 했고요, 둘째(최광수·29)는 체육대를 나와 킥복싱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막내(최광화·23)는 아직 학생인데 검도를 익혀 서울 검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최광범씨는 만화가 방학기씨가 스포츠신문에 ‘바람의 파이터’를 연재(1989~1993년)할 때, 작가 앞에서 실전 자세를 시연해 이해를 도왔던 무술 모델. 그런 그가 왜 ‘극진 가라테’가 아닌 킥복싱을 배웠을까?

“우리나라엔 가라테 도장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권도와의 마찰을 우려, 고국에는 극진 가라테를 들여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물론 가라테를 배우고 싶었었죠. 어렸을 때 아버님께 ‘좋은 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뜻밖의 대답을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도장’이란 겁니다. ‘매일같이 갈 수 있고, 틈 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 거지요.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킥복싱 도장이었습니다.”

 

‘배달’은 자식들에게 “기본부터 착실히 다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항상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겨뤄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비결은 결코 화려한 공중돌기나 발차기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오직 ‘정권치기’ 하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발차기가 화려할수록 위력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미국 프로레슬러 톰 라이슨과 붙었을 때 얘깁니다. 만화에선 공중에 붕 떠서, 링 3면을 돌아가면서 발로 차,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톰 라이슨을 가격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와 다릅니다. 상대도 평생을 갈고 닦은 고수 아닙니까? 그런 상대의 빈틈은 눈 깜빡하는 순간, 0.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벽을 세 번씩이나 차면서 빙빙 돌면,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때도 아버님의 무기는 단 한 방, 상대가 ‘깜빡’하는 그 틈을 파고든 정권치기였다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역설

최광범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버님을 보면 늘 ‘칼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자신을 다듬으며 정진하셨거든요. 집에서도 좌선을 하시고, 천천히 산책하며 차를 마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에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그 말을 몹시 싫어하셨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아니냐’는 거죠. ‘자기 상황에 따라 단지 성실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이뤄지는 것이 적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달’에게 최광범씨는 늦둥이다.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늦둥이도 이만저만한 늦둥이가 아니다. 무예를 위해 결혼마저도 뒤로 미뤘던 것일까?

“어머님이 일본서 유학할 때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24세, 아버님은 45세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을 만나기 전,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이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을 데려오자 집안 어른들이 비로소 인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었으니까요. 1974년에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귀국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에게도 사생활은 있었을 터. 부부싸움이나 자녀 교육문제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배달’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어요. 소리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은 제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트러블이 생길 것 같으면 어머님은 아무말도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요. 그럼 그냥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최광범씨는 ‘최배달’의 아들로서 “고교시절 동급생들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대편 얼굴이 부서지다시피 했거든요. 의사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들이 ‘최배달 아들이 싸운다’며 우루루 몰려 나와 에워싼 채 구경하려 몰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진 겁니다.”

10여년 전 치료비로 400만원이 나왔을 정도라니, 집에서 엄청 혼났을 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술은 너 자신을 닦는 거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러셨다더군요. ‘그래도 맞고 들어온 것 보단 낫다’라고요.”

 

‘최배달=일본인’ 일본 만화는 왜곡

최광범씨는 바쁘다. 8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제작 자문을 맡았고, 부친의 일대기를 엮은 책 ‘This is 최배달’(찬우물)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생활 아시잖아요? 병원 일을 보면서 인터뷰도 하고 하려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휴가를 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최배달을 다룬 한 일본 만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 만화에는 최배달이 ‘가미카제’ 조종사로 묘사됐고 일본이 패망하자 ‘허망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도장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귀화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배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일본인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최씨는 “시정조치가 없을 때엔 극진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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