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책을 만드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좋은 시’를 쓰려고 가슴앓이를 많이 한다. 무슨 책을 만들지라도 독자의 마음 한 켠을 강하게 울리는 울림이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한다. 나의 책 만들기 화두는 과학적으로 사유하되 시적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을 만들어 놓고 그 책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그 책을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 좋은 시도 쓰고 나면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어올 뿐만 아니라, 독자의 심장에 말을 건다. 그 정도쯤 되면 책도 자식이나 애인처럼 예뻐 보이고, 계속 만지고 싶어진다. 그런 것을 조용히 즐기다보면 컨셉, 제목, 홍보, 마케팅도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책을 구성하는 분신들이 걸어오는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언젠가 무슨 글을 쓸 때 쓴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가장 사랑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좋은 시를 한 편 쓰는 것과 같다. 나도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찾아 부지런히 읽어왔다. 그러나 그 좋은 시인들도 대중들이 보기에 다 좋은 작품을 남기느냐의 문제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시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 한 켠에 울림이 와야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다. 그 울림이 크고 대중적이어서 크게 사랑 받는 것은 시인의 모든 작품 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도 시인도 드물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등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 한 편 한 편은 모두 소중하다. 시인에게 있어 그 첫 울림은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마음의 울림이 있었기에 그 첫 울림을 가지고 시상을 잡고 시의 첫 구절을 썼으리라. 그리고 구조와 뼈대를 세우고 그 뼈대와 구조에 긴장감이란 살이 붙었으리라. 그리고 다시 헐고 세우기를 몇 번, 또 읽기를 수백 번. 결국 마음에 걸리지 않아야 시인은 자기가 품은 시를 자기 품에서 놓아 줄 것이다.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첫 번째 울림소리가 바로 컨셉트이다. 이 울림소리에 귀를 잘 귀 기울어야만 우리는 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좋은 울림소리는 당연히 세상과 통하게 되어있다. 시인도 인간이고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찾기 위해 먼저 시인(저자)에게 그 울림소리가 잉태한 비밀을 물어야 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알고 싶으면 언제나 첫 번째 질문은 이래야 한다. 왜 그 책을 꼭 써야만 했나요?
그 비밀을 제대로 포착하느냐 마느냐에 책의 승패는 결정 난다. 그러나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갈수록 형식적인 프로세스에만 집착할 뿐 내가 하나의 시인(저자)으로 돌아와 그 위치에 서 보지 않는다. 제대로 그 첫 울림의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아마 수백 번, 때로는 수천 번 그 문턱을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그 첫 울림의 소리를 귀신같이 잡아낼 수 있다.
그 첫 울림을 제대로 느끼게 되면 그게 너무 시기상조인지 그게 가짜(자기만족)인지, 변죽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책을 기획하는 것을 중단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그가 기획하는 것은 기존에 있는 것을 조금 비튼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있어서 책을 만드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 같다.’라는 말 다음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중한 진리를 버리고 마구 기획을 한다. 마구 책을 만든다. 다 미친 짓이다. 나도 미친 짓을 했기 때문에 자꾸 반성이 된다. 그래도 나는 내 마음이 하나라도 느낄 때 그 책을 기획한다. 그리고 첫 울림이 있는 저자라면 프로필 같은 것은 한 줄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책이 많아질수록 독자, 저자와 공명(空鳴)한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함께 울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책이 만들어지랴.
그러나 그 공명(空鳴)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책 만들기를 잠시 중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많이 만들기보다 내가 만드는 책(어떤 책을 만들 때) 한 권을 통해서라도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정확히 들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책은 각기 그 울음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지식, 감동도 다 인간의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 울음의 한줄기다. 울림이 반복되다보면 울음이 되고 긴장감 있는 울음소리는 천만인의 가슴을 적신다.
책을 만들다보니 요즘에는 프로세스만 강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프로세스에 의해서만 책이 만들어 지고 또 프로세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프로세스 탓만 하고... 겉만 번지르한 책만 만드는 기술자들만 늘어나고... 그러나 프로세스라는 것은 이용하면 좋은 것이고, 탓만 하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프로세스라는 현 위를 그 울림의 소리가 타고 흐를 때, 그것을 자유롭게 부리는 사람이 나타날 때 그는 한 편의 시를 쓰듯 책을 만들 것이다. 그런 인재들이 많이 나타나 새로운 세계와 시장을 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