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공짜가 없는 것 같다.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온 친구들이 역전의 용사처럼 뭉쳤다. 어떤 이해타산이나 목적의 이유를 가지지 않은 선한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그저 추억을 가지고 뭉쳤다.
정말 멋지다.

재필이와 국도로 발안,아산,공주를 거쳐서 익산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로 다니는데 익숙해졌는데 국도로 여러 시골길을 감사하면서 가니 나름데로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먼저 도착한 학교에서는 변하지 않은 학교모습 그대로를 보았다.
세상이 그리 흘렀건만 몇몇 신축 건물 빼고는 그대로더라. 정말 간만에 기숙사를 방문했는데 20년전 거의 그모습 그대로더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지. 세월이 잠시 흘렀고 나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인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변하게 없더라...
1층에서 선생님 2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요즘 학생들, 무섭다하더라. 선생님을 잡아 먹으려한다는구나. 선생님이 왜려 학생들 눈치를 봐야 할정도라니...격세지감을 느껴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말도 있는데 말이다. (쌍놈의 새끼들...)

족구는 찬호팀이 찬호와 운용이의 피를 흘리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찬우팀에게 패해 보렸다. 찬우과 성호가 잘하더라. 나이를 초월해서. 재필이가 사정없이 발길질하니 무너져 버리더라...

어양동에 있는 장작구이[안녕하세요]는 현섭이가 신경써서 잘 예약했더라. 운치있고 맛있고 깔끔한 분위기, 아줌마답지 않는 아가씨(?)의 친절함에 분위기는 더욱 좋아지고 하나둘씩 오는 친구들 덕분에 술자리는 고조를 이루었다.

적당히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2층 테라스에 가서 2차를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자기소개와 멋진 말들을 하는 순간은 예전의 학교 때로 돌아간 듯 했다. (뒤늦게 참석한 영진이와 길용이의 등장은 정말 좋았다) 누가 강요해서 모인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정말 바쁘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빛내준 친구들에게 무한한 우정을 느껴보았다.

당구장에서 술들이 거나하게 취해는데도 나름데로 잘 치는 친구들을 보니 역시 기질은 어디 못가는구나...

노래방에서 하이라이트였다. 도우미가 오기도전에 무르익은 분위기. 웃통벗고 화장지로 둘둘 감은 아찔한 몸매들.. 나는 남자들끼리 그렇게 잘 노는 것을 처음보았다. 왜려 용석이가 초빙한 도우미 아가씨 4명이 왔는데 그 아가씨들의 놀라는 눈빛이라니. 아가씨들이 왜려 들러리가 되었지..아가씨 불렀을 때보다 우리 친구들끼리 놀았을 때가 더욱 재밌고 좋았던 것 같다.

4차가 포장마차겸 조개구이 횟집이었지. 안주도 맛있었고 분위기 또한 좋았다. 하나둘 이제 취기가 돌 시점이었지. 새벽 3시가 넘었을 거야. 마지막으로 콩나물 해장국집으로 갔을 때가...정말 초인적으로 놀고 나니 해장국 맛이 정말 죽였다.
현섭이가 예약해둔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그 긴 하루가 마감이다...  애썼네!  친구들...
 

아침에 깨어보니 8시50분... 오후 2시에 상담약속이 잡혀 있어서 샤워하고 터미널로 와 시간이 남아 또 콩나물 국을 먹었다. 머리가 빙빙돌고 술이 덜 깨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기뻤다. 내가 아직 이렇게 열정적으로 친구들과 멋지게 시간을 보낼수 있다는 그 열정의 마음이 살아있음에....

참석해준 모든 동창생, 소중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고생해준 회장 찬호와 주최한 현섭이에게 너무도 고맙고 우리 동네친구 재필이와 같이 못 올라가서 미안했다.
친구들 !!!  우리 또 삶이란 전쟁터에서 최대한 멋지게 살다가 또 만나세~  항상 건강하고 가정에 만복이 있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때까지 건강하고 항상 친구답게 살기다!!!!    

good luc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평강건설기업에서 70만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사장님이 호탕하고 미남이셨다. 나이를 드셨는데도 젊어보이고 멋졌다. 안양 로타리클럽 회장이란다. 안양에서 방뀌쾌나 뀌는 분이시란다. 

카센타에서 75000원주고 오일,카바를 고쳤다. 아내와 명학역 설치를 하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7시를 넘어서 인천 구월동으로 향했다. 이 인천 물건을 꼭 낙찰받고 싶어서였다. 구월동까지는 30분도 채 안걸렸다. 구월동 외곽에 위치한 빌란데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었다. 가보니 사람이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터였다. 동네 아줌마에게 여쭈어보니 봄에 5000천만원에 거래가 됐단다. 그런데 감정가가 2100만원, 거저라는 얘긴데 이거 입찰가가 문제다. 처음에는 2530만원 들어가려고 했는데 떨어질 것이 분명한 금액이고 두번째 금액이 2800만원도 이거 아니올시다고 ..   3133만원을 지금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데 이거 머리가 아프다. 부동산 업자들 말로는 무진장 사람이 왔다갔다는데... 문제가 있을 법도 하다던데..  

정말 인천 물건은 하나 꼭 낙찰받고 싶은데 입찰가가 떠오르지 않는구나. 2833만원이냐? 3133만원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3133만원이면 꼭 낙찰 받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 밤  좋은 꿈꾸고 내일 결정하자. 내일은 아내 생일인데 정말 기쁘게 사랑해주고 맛난 것 먹으러 가야지...   아! 고민 고민이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토요일 늦은 저녁 10시를 넘어서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전화한적이 없는 누나이기에 무슨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국민일보에 가족 사랑 수기공모가 있는데 네가 편지 보낼 생각없니? 엄마 진찰도 받아보시고 수술 할 수 있다면 수술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네가 누나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저는 속으로 금방 마음의 결정이 났습니다. 다른 일은 해도 이런 글은 쓸 수가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에 대한 나쁜 편견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술후 완쾌 되거나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술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면 전 하늘에 별을 따다가 달라시면 별을 따드릴 수 도 있고 불구덩이 속을 들어오라면 들어 갈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술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누나에게는 차마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은 하지않고 생각하고 내일 답변을 준다고 했습니다.

 30분을 넘게 생각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아들로써 얼마나 아들노릇을 했고 과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했으며 어머니의 무륲진찰과 수술을 하지않는 것만이 진정 어머니를 위하는 자식의 솔직한 마음인가, 어머니를 위한 자식의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느껴지며 어린날 어머니와 저와 같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니 몇가지 생각이 납니다. 무슨 단어로도 표현 못할 내 소중한 어머니와의 몇가지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 형제중에서 제가 가장 어머니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아프면 심하게 아팠고 꾀병을 동반하여 잔병치레도 많이 해서 바쁘고 힘드신 어머니를 마음아프게 했습니다.
감기가 걸리면 심하게 걸렸고, 몸살이 나면 불덩이처럼 열이 나서 면내에 있는 약국까지 어머니등에 업혀서 몇번을 갔는지 모릅니다. 초등학생의 어린 몸이지만 어머니께서 얼마나 무거우셨을가요?
아프면서도 어머니 그 등이 얼마나 따숩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마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나은게 아니고 어머니의 품속의 사랑으로 낳았을 겁니다.

 중2때에는 두번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기브스를 한몸으로 집과 학교를 오가며 5개월 동안 요강에 대소변을 항상 치워주시며 병간호를 해 주셨습니다. 중3때는 친구와 심하게 다투어 2번이나 코뼈와 이가  부러져 전주에 있는 종합병원에 쾌 다녔습니다. 병원에 다니던 중 어머니와 여인숙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어머니는 저를 어루만져 주시며 아무런 야단을 치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아들 아파서 어쩌나... 하시며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바쁘신 농사철에 한번도 거르지 않으시고 치료받는 것을 지켜주셨습니다.

 
고교때는 시골 촌놈 도시로 와 까불다가 사고를 몇번 쳐 어머니께서 학교로  몇번을 오셨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일은 절대 안했는데 누명을 썼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지신 어머니께서 첫차를 타고 익산 학교로 오셨습니다. 검정 비닐 봉투에 빵과 우유를 넣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가 안그랬지. 네가 안그랬지. 하시며 연신 빵과 우유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그리 먹고 싶지 않던 빵을 계속 먹으라 하시면서 저를 눈물 짓게 만들었습니다.

 어린시절과 가정을 가지고 성인이 된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온통 일한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린날에는 외딴집에 살면서 어른들도 힘들다는 온갖 농사일 다했습니다. 논농사,담배농사, 자갈밭을 옥토로 만드는 힘든 농사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 했습니다.어린이날이라도 한번 놀고 싶었는데 항상 일,일 일  그 일, 뿐이었습니다. 몇년전까지 제 형제들의 소원은 휴가나 주말에 시골에 가면 제발 일 한번 안하고 노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놀아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손자가 중학생인데도 지금도 예전 몸처럼 생각하시고 또 들 일,밭 일 입니다.

 68세.지금도 어머니는 시골에서 지금도 일을 많이 하십니다.
몇년전부터 무릎이 너무 아프시다고 걷기도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일을 하십니다. 시장 한번 다녀오시는데 몇번을 쉬시고,병원에도 다리가 아프셔서 많이 다녔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를 뵈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누구를 위하여 일하시고 누구를 위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여쭈어 봤습니다. 그래요. 자식들을 위하여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쌀이며 고추라도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그런거 안 주셔도 되고요. 소 일 삼아 조금 운동삼아 하시는 것은 좋은데 너무 젊으셨을 때처럼 하시니 제발 일을 줄이시라고요.
어머니 그저 일 안하시는게 저희 자식들 도와주시는 것이라구요.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깊이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군요. 그래도 항상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지 않은가? 그나마 도와드렸으니까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았는가? 어머니라고 일 자체가 좋아서 하셨겠는가?
그나마 어머니가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른 어른들보다 더 건강하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가...

 이 글을 마치는 이 시간에 어머니에게 희망의 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래. 어머니께서 그렇게 원하시는대... 그래 정확하세 한 번 진찰을 받아보게 해드리자.  수술 안 해주면 당신이 이번 고추 농사지신 돈으로라도  하시겠다는데... 그래 그렇게 소원하시는데 한번 진찰 받게 해드리자.
어머니에겐 비내리고 폭풍치는 여름과 매섭과 차가운 바람과 서리의 찬겨울만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따스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진정 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된 그 포근하고 따뜻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가 의사를 해야하나 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 걱정부터하는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전문가인 의사선생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되는데 해보지도 않고 걱정만 하는 아들이니까요.
올해 봄에는 화상을 입으셔서 3개월을 고생하시고 여름에는 인삼밭에서 일하시다가 넘어지셔서 어깨와 허리를 아프셔서 한달을 입원하신 안쓰러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무릎 치료 받으시면 이제 예전처럼 일 많이 안하시기로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38살 먹은 철부지 아들입니다.그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8월을 마감하며 이 한여름날을 보낸다. 그래 어느새 가을이 오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이 계절밖에는 없는 것 같다. 언제나 변함없이 언제나 꾸준히 그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하는 순고한 자연이구나. 날씨도 밤에는 선선할 정도로 시원하다.  

 가을이 오면 수확을 하여야 한다. 나는 무엇을 수확하고 무엇을 거둘 것인가?   

9월부터는 이제 진정으로 수확을 하여야겠다. 내가 진심으로 뿌려놓은 소중함에 대하여...  가족의 사랑,일, 나의 목표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성장의 부분들...  어서 집으로 가자. 아내가 삼계탕 맛있게 해놓고 기달리게다. 정말 맛난 삼계탕먹고 9월을 구상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행...

누군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낯선 곳을 향하는 설렘과  그 설렘속에서의 사람과 벌어지는 일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일탈에서 모든 힘겨움, 혼돈을 벗어나서 자유를 즐기는 그 여행. 

여행을 이제 자주 다녀야겠다. 한달에 한번은 가족 여행. 두달에 한번은 나만의 홀로여행. 시간과 정보를 수집하여 꼭 꼭 여행가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여행에 대한 책도 한권 꼭 내고 싶다. 이런 상상을 하는 순간도 참 행복하구나. 일단 가족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다음에 강원도 인제로 한번 넘어갔다 와야 겠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정말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삶을 살아나간 자만이 여행의 기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땀을 흘리지 않으면 내일 눈물 흘릴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