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등주의가 싫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딸들에게 "저건 완전 기만이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제도나 그 어떤 정치도 그런 나라는 만들지 못했다"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권영길 후보가 외칠 때는 "나는 저 양반이 당선되면 이민을 가겠다"고 가족과 친구들, 직원들에게 까지 말하곤 했다. 진심이다. 나는 노동자와 농민이 게으르건 아니건 간에 모두 평등하게 잘사는 나라는 끔찍하게 싫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가 좋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타난 바베우프(Gracchus Babeuf)는 평민선언(Plebian Manifesto)을 내걸고 "모두가 생산한 것을 다같이 평등하게 똑같이 분배하자"고 외치면서 정부 전복을 기도하다 결국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가 내건 구호는 "태양은 모두에게 똑같이 비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신도 그의 사회주의적 구호가 아주 마음에 들 것이다. 하지만 "태양은 모두에게 똑같이 비치지만 그 빛 아래에서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리지 않았으면서도 열매는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면 강도나 거지이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다.

노력은 멀리한 채 즐길 것 다 즐기고 쓸 것 다 쓰며 살아온 사람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간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부자들은 위화감 조성하지 말라는 것과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말들이다. 나는 내 딸들이 그런 남자를 만날까 봐 걱정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는 총리 취임사에서 “이제 사회주의와 인연을 끊자”고 하면서 자신의 적을 사회주의라고 단언하였다. 더불어 “기회의 평등은 보장돼야 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필요 이상 추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고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이 이 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사람들이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그들을 악덕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에 물론 수많은 노조들이 “가진 자들을 편든다”는 이유로 물론 반대하였다. 어느 나라든지 가진 자들을 떫게 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삶의 결과가 평등하여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능력에 따른 연봉제나 구조조정을 끔찍히도 반대한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당연히 일 못하는 사람들이거나 경쟁 없이 편안히 일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일 이외의 다른 것들로 출세하려는 사람들이다. 노조는 노조 자체의 집단적 성격이 약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결사 반대한다(질문: 노조 간부들 중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기 몸값을 높이고자 외국어나 컴퓨터라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있거나 일에 있어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특히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간부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게 소개 좀 하여 다오. )

나도 봉급생활을 해 본 적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하였지만 성이 유씨였던 부장이 한다는 말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월급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고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6개월 만에 그 아부 잘하던 부장과 싸운 뒤 그만두었다. 열심히 하여도 대가가 늘어나지 않고 아부에 능하여야 한다면 도대체 그런 일을 내가 왜 하여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임금 시대에는 근로자의 최저 생활보장을 위해서라도 동일임금 제도가 필요하였지만 고임금시대인 지금은 당연히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게 지불하는 시스템이 될 수 밖에 없다.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 당신이 만일 부자로 잘 살고 싶다면 이제 삶의 결과까지 평등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당신이 부자가 되는 길은 연공서열이나 균등 임금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별 연봉제에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당신이 노력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나는 육신이 멀쩡한 노숙자들을 돕는 어떤 활동도 싫어한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일거리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돈 많이 받고 편안한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수십만 명인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휴머니즘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이 경쟁 사회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정말 골 때린다. 절대 그들을 굶겨 죽여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도대체 돈 많이 받고 편안한 일만 찾는 놈들을 이 사회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태양과 달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을 비추어도 엎어놓은 항아리 속을 밝게 하지는 못한다.”–강태공이 한 말이다.

물론 경쟁에서 탈락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관심과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인하여 약자가 된 처지라면 그에 대한 징벌은 당연히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소득격차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알아라.

(기회의 평등에 대한 말이 나올 때 나오는 반박 중 하나는, 부자집 자녀로 태어나 비싼 과외 받아가며 일류 대학도 들어가고 해외유학도 다녀와 출세한 경우와 가난한 집 자녀로 태어나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여 사회 밑바닥에 있게 된 경우를 어떻게 기회의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모든 부자집 자녀들이 일류대학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과외를 아무리 시킨다고 해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 자녀들만 일류대학에 들어간다. 둘째 가난한 집 자녀들 모두가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과외를 받지 않아도 들어간다. 셋째 좋은 학벌도 없는 가난한 집 자녀가 학벌이 좋은 부자집 자녀와 똑 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찾고자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다. 어느 나라에서건 기득권 사회는 학벌로 그 문이 열리는 사회인데 왜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냐는 말이다. 기회는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그 다른 기회를 찾느냐 못 찾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문제이다.

이런 반박도 있다. 부자집 자녀는 사회에서 출발할 때 이미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보조를 받는다. 가난한 집 자녀는 그런 것이 없다. 이게 무슨 기회의 평등이란 말이냐. 내 대답: 맞다. 그러니까 자신의 분수를 알고 남들 놀 때 놀지 말고 남들 잘 때 자지 말고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처지는 가난한 집 자녀인데 노는 것은 부자집 자녀처럼 놀려고 한다면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과의 평등을 신봉하는 것이다. 부자는 가난한 환경에서 더 많이 배출되어 왔다는 것도 알지 않는가.

한가지 당신이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마. 재벌 가문이 아닌 이상 웬만한 부자집 재산은 그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들에게 재산이 쪼개지게 된다. 상속세나 증여세도 웬만큼은 내게 된다. 결국 자녀 1인당 재산 규모는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궁핍을 모르고 자랐기에 쉽게 돈을 쓴다. 그 결과 그 부자집 자녀들이 40대 초반이 되면 과반수 이상이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다. 당신 노력 여하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직접 목격하여 온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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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종류에 따라 부자 되는 길이 다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재테크 기법이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재테크 기법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이 세상의 일을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만 볼 때 다음과 같이 나눈다.

첫째,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봉급이 인상되는 일이 있다.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 등과 같은 직업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데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하여도 경제적 대가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비슷한 대가를 받기 십상이다. 승진 역시 공정치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계발에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하는 일들은 그 집단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 경제적 가치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너무 오래 있다 나오게 되면 다리의 근육은 이미 마비된 상태에 가까울 수 있으므로 홀로서기를 시도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일에 종사할 경우에는 젊었을 때부터 남에게 돈을 주고 시키는 일들을 직접 배워서 실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도꼭지 하나도 직접 갈 수 있어야 하며 옷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다(나는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데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닌 적도 있으며 내가 여자였다면 아마 내 옷은 모조리 직접 만들어 입었을 것이다). 그래야 지출을 줄일 수 있고 투자의 종자돈을 빨리 만든다. 재테크에 일찍 눈을 떠야 하며 빚을 지면 절대 안 된다. 젊었을 때 악착같이 절약하고 투자는 보수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모험적 투자가 잘못 되었을 경우 그 손해를 만회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재테크를 통해 종자돈이 마련되면 부업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격적인 투자 보다는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투자가 더 좋다고 믿으며 때문에 주식 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권유한다.

둘째,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일에 대한 대가가 사회적으로 거의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일이 있다. 경비, 운전기사, 건설 노동자, 농부, 식당 종업원, 급사, 말단사원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초보자와 경험자가 받는 보수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큰 것은 아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과 연관된 모든 일들을 스스로 배워나가야 몸값이 올라간다. 즉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몫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주어진 것만 하면 절대 안 된다.

이를테면 아파트 경비라면 냉난방기 수리 같은 시설물 관리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하다못해 이삿짐 센터의 일하는 모습도 눈 여겨 보아두어야 한다. 식당 종업원이라면 주방장이 하는 일을 배워야 하고 주인이 경영하는 모습을 머리 속에 담아야 한다. 어느 인테리어 업체의 현장 책임자가 내게 부자되는 길을 물었을 때 역시 나는 이렇게 답하였다. "벽돌공이 일을 할 때는 바로 옆에서 같이 벽돌일을 하고 미장공이 일을 할 때는 미장일을 같이 해라. 타일공, 전기공, 페인트공,도배공, 그 누가 일을 할 때에도 그 일을 옆에서 배워 나가라. 적어도 어느 한 기능공이 갑자기 안 나왔을 때는 당신이 대신 일을 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 수준이 되었을 때 독립하라." 어느 회사에 신입 경리 여사원으로 입사한 독자가 내게 성공하는 법을 물어 왔을 때 역시 나는 이렇게 답하였다. "경리 업무 뿐 아니라 세무,회계,컴퓨터 실무에 대해서도 도사가 되어라. 당신이 없으면 회사가 마비될 정도로 일을 하고 지식을 쌓아라." 주어진 일 이상을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재테크 보다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같은 일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이 늘어 날 수도 있는 일이 있다. 능력별 대우를 실시하는 회사도 이 부류이고 의사, 변호사, 학원강사, 건축사, 영업사원 등 처럼 한가지 지식을 계속 울궈 먹는 경우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수입이 고객의 숫자에 비례하여 늘어나므로 무엇보다도 고객에게서 신뢰감을 받아야 한다. 나는 실력은 없이 면허증이나 자격증만 하나만 믿고 건방을 떠는 전문가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영업사원이라면 자기가 파는 물건에 대해 도사같이 알고 사용법은 물론 경쟁사 제품들도 귀신처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영업사원은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복사기를 파는 영업사원치고 복사기에 대해 귀신인 경우를 보지 못했고 지게차 영업사원 중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 하나같이 모두 그저 회사에서 준 교육 자료만 시키는대로 달달달 암기해서 말할 뿐이다. 그렇게 교육시키는 회사들이 한심하다. 그러니 고객이 감동할 리 없고 직원들에게 일이 재미 있을 리가 있겠는가?

전문직업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도록 만들어야 하므로 때로는 언론 플레이도 필요하고 고객이 갖는 이미지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책을 직접 출간하는 일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수익창출을 직접 이룩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여야 몸값이 비싸진다. 일을 통해 종자돈을 마련한 뒤에는 전통적인 포트 폴리오(현금,부동산,주식에 골고루 투자하는 것)에 따라 재산증식을 꾀하는 것이 좋다.

넷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 곧 경쟁자에 의하여 잡아 먹히게 되는 일이 있다. 열심히 경쟁자를 따돌려야 하므로 일에 미쳐야 한다. 사업가, 장사꾼이 이 부류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경험이 중시되며 돈의 흐름이나 속성에 대하여서는 물론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여야 한다. 이런 부류의 일은 혼자서 시작하여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 나갈 수도 있으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 밑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의 청계천 전자상가나 남대문 시장에서 점원으로 일하였던 사람들 대다수는 봉급 때문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을 배워 나중에 독립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였다. 경쟁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경쟁자들을 따돌릴 줄 안다. 이런 일에 종사하려면 실제 전투에 하루라도 빨리 참가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사람들은 일 자체를 통해서도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 번 돈을 갖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여 부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만든 주식을 공개하여 부자가 되기도 한다. 부자들은 대부분 이 네 번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다. 한참 잘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알거지가 되는 경우 역시 이 부류에서 제일 많다. 사업이 기반을 잡으면 가족이 살고 있는 집 만큼은 사업의 승패와 무관하도록 만들고 아예 없는 재산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사업체의 시재(cash flow)도 직접 챙겨야 한다. 특히 가장 잘 될 때가 가장 망하기 쉬운 때라는 것도 잊지 말라.

다섯째 ,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영역이 조금씩 더 넓혀지거나 하던 일이 다른 일로 바뀌는 일이 있다. 대부분의 봉급 생활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봉급생활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자기 몸값을 계속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 첨단 직종이나 컴퓨터 관련 직종의 경우는 물론 다른 일반 직종에서도 신입 사원 당시에 갖고 있던 지식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만 한다면 퇴출 대상 1호가 된다. 우선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귀신이 되면서 상급자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사장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직장이라고 하여 등한시하면 절대 안 된다.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회에 나와 독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우도 신통치 않으므로 부업을 생각하지만 부업을 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일이다. 회사에서 새는 바가지는 회사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일하는 것에 자신이 없으므로 자연히 손쉽게 돈을 벌 것 같이 보이는 다단계 판매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봉급 이상의 수입을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회사에서건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 운영할 수 있는 부업을 마련하거나 준 기술직인 경우에는 같은 종류의 일을 인터넷을 통해 구하고 야간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테크 방법은 첫번째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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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소유의 삶은 살지 못한다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질 수 있다? 맞는 말 같다. 도가의 태평경(太平經)은 말한다. "재물이란 천, 지, 중화의 소유로서, 그것으로 사람을 함께 기르는 것이다. 부유한 집은 단지 우연히 이를 모아둔 곳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창고 안의 쥐가 늘 혼자 배불리 먹고 있지만, 이 큰 곡간의 곡식이 본래 그 쥐의 소유가 아닌 것과 같다."

성경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고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장려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행무상(諸行無常:一切有爲法無常)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 어느 종교이건 그 가르침대로 살았던 성인들은 모두 돈을 초월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저 성인들을 존경하며 그 마음이나마 조금 배워보고자 하는 속세의 나 같은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바람을 피우지도 않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정당하게 부를 획득한 자라고 하여도 종교 안에서는 안심하지 못한다. 예수는 그런 사람에게 그 부 "모두를 팔아" 이웃에게 나눠주지 않는 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다(누가복음 18:18-30). 참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주문 아닌가. 그래서 나 같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리장 삭개오가 자신의 소유 모두가 아니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을 때는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했다(누가복음 19:9). 왜 세무서 직원에게는 천국이 50% 세일가로 제공되는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재산의 절반 정도를 나누어 주는 조건이라면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성실하게 농사지어 부자가 된 농부가 이제는 좀 놀면서 쉬려고 하는데 예수는 그를 "어리석은 자여"라고 책망한다(누가복음 12:16-21).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요지는 베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 질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일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성경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 준 종은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는" 벌을 받는다(마태복음 25:14-30).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방관하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고" "있는 자는 그것 마저 받아 더 풍족하게 된다". 게으른 자들 덕분에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해석도 할 수 있고 부익부 빈익빈은 피할 수 없다는 말도 될 성 싶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 자연 속에서 무소유의 삶을 산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무소유의 삶은 분명 소유를 위한 전쟁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대안적 삶이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법정 스님이나 디오게네스처럼 혼자 산다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도 된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이다.

그러나 가족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식의 행복 추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아니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법정 스님 조차 돈 자체는 잘 번다. 99년 1월 국민일보 기사에는 법정 스님이 98년도에 인세로 받은 돈만 2~3억원이라고 하였다. 디오게네스는 돈 대신 프리 섹스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무소유의 삶은, 인간과 동식물과 자연이 공생하며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했던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영향을 받아 전세계 50여곳에 세워진 무소유 공동체들에서 엿 볼 수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소유될 수 없으며 다만 쓰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소유욕이 옭아매는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것 같다. www.yamagishism.co.kr 을 찾아보면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유냐 무소유냐의 길은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무소유의 길을 존경하지만 자발적으로 원하였던 적은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기에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속인이라고? 물론이다. 성인인척 한 적도 없지 않은가. 나 같은 속인들을 위하여 이미 60년대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참 부자가 되려면 읽어라)에서,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소유형 인간이 되지 말고 존재형 인간이 되라고 하였다.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과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인들의 삶에서 진정한 휴머니즘적인 존재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말이 우리의 이성을 움직인다 하여도 우리가 순식간에 소유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하여도 무소유의 길을 택하지 않은 삶에서는 소유가 여전히 행복의 한 조건으로 남아 있는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성인이다.

하지만 나는 눈이 오는 날 , 길거리 어딘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은 사랑하는 아내와 향기 그윽한 원두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다. 바람 부는 날 나는 깨끗하게 다림질 된 셔츠를 입고 싶다. 비가 오는 날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 놓고 크게 듣고 싶기도 하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 한잔 정도는 하고 싶다. 어느 뜨거운 여름 날에는 바람이 살랑거리는 창문을 열고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편안히 누워 팬티 바람으로 낮잠을 자고 싶다. 그곳이 바닷가 해변이라면 더욱 좋다. 매일같이 샤워도 하고 싶으며 샤워 후에 시원한 음료 한잔은 마시고 싶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버스가 왔다고 같이 뛰어가기 보다는 택시를 잡아 편히 집까지 바래다 주고 싶었다. 손영란 시인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별것 아닌 것을 그리워 함”이라는 시에서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생활의 격이란 별 것 아니다
때맞춰 뜨거운 물에 목욕할 수 있고
갓 구운 빵을 커피와 함께 먹는 것이며
아침에 가끔씩 모짜르트를 듣고
매일 아침 배달 된 신문을 읽는 것이다
버스를 타도 좋으나 어쩌다 한번씩은 차를 혼자 모는 것이다
구겨진 옷이 아니라 깨끗이 다린 옷을 입고
돈은 반듯하게 펴서 지갑에 가지런히 넣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가끔씩은 집안이 환해지도록 꽃을 사는 것이다
나는 정말 별 것 아닌 것을 그리워한다
로마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몇 개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영화 ‘존 큐(John Q)’에서 주인공 존 큐는 가난한 흑인 노동자이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수술비 25만 달러가 있어야 하지만 자동차 할부금도 내지 못하여 차를 빼앗긴 처지이다. 결국 그는 아들을 살리려고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인다. 아들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권총 자살을 결심한 존 큐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돈도 많이 벌어. 남을 배신하더라도….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진 마. 돈이 있으면 모든 게 다 쉬워… “

나 역시 내 가족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소유하고 싶은 본능을 어쩌란 말이며 황금이 돌로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사랑이 넘쳐 나는 부부 지간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의 빚을 갚고자 아내가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지만 모두 냉냉하게 대할 때 아내는 서러워 질 것이다. 쪼들리는 살림에 쓰레기 봉투 하나를 아끼려고 지나치게 꽉꽉 눌러 담다가 그만 비닐 봉투의 옆구리가 터지고 말았을 때 아내는 서글픈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내와 내 가족에게 그런 서글픔 만큼은 주지 않으려고 했다.영화 ‘존 큐’에서 주인공은 경기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카드 빚은 생각하지도 않고 새 자동차를 구입하는 한심한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남을 배신하여야” 버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택한 삶은 소유의 삶이었으나, 명심하라, 사업과 투자의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억제하였다. 즉 소유를 지향하면서도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행복하게 돈을 모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모은 돈들은 점점 더 불어나더니 나를 부자로 더욱 더 만들어 주었고 그때부터 비로서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소유를 더 하려면 무소유에 가까운 절약부터 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말이다.

우리들 생활이 철학적 사고와 지고의 선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근본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내 가족의 수술비를 줄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이 간디처럼 크게 버린 사람도 아니라면, 내 글에서 아무리 돈냄새가 물씬물씬(物神物神) 나더라도 "크게 버리면 크게 얻는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라. 크게 버릴만한 것을 가져 본 적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무소유 어쩌고 저쩌구 하는 것이 내게는 그들만의 자위행위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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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은행에 가면 여러 가지 안내장이 붙어 있다. 평균 잔고 얼마 이하는 이자를 주지 않겠다,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지 않겠다, 동전을 교환해주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다. 반면에 거액 이용자들을 위해서는 프라이빗 뱅킹(PB) 코너라는 것을 만들고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은행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어떤 기업이든 돈만 쫓는 기업은 고객의 외면을 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은행의 공과금 수납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은행들의 거만한 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정말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고액 예치자들에 대한 은행의 우대를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고급 인테리어에 대형 화분, 1 대 1 데스크 등 일반창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PB코너는 은행의 주고객인 일반 직장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심시간에 직원이 식사 중이라 소수인원만 근무할 때 고객들이 밀려들어 대기하는 동안 PB코너는 한산해 파리 날리며 VIP를 기다린다. 돈 없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고객들이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이러쿵저러쿵.

어느 경제지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VIP고객들은 송금 액수와 상관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부자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도 못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은 100만원 넘는 돈을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부자고객에게 각종 무료 서비스와 선물을 제공하는 데 따른 손실을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보전하는 셈이다.

나는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도 당신처럼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으로 돈 벌고자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은행이 거만하다고? 돈 많이 벌어주는 고객들에게는 친절하다. 당신도 당신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는 그럴 것이다.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한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이겠다는 말이냐. PB 코너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당신은 지금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믿는 것이며 “인간은 돈 앞에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정말 골 때린다. 게다가 부자에게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가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충당된다고? 정말 웃긴다. 그 서비스는 부자들로 인해 벌게 된 돈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당신이 저녁에 술을 파는데 단골손님이 와서 양주 몇 병과 안주 몇 개를 시켰다. 다른 손님은 맥주 몇 병에 팝콘 안주 뿐이다. 당신 같으면 누구에게 신경을 더 쓰겠는가. 물론 장사건 사업이건 친절이 기본이다. 은행이 참으로 미숙한 것은 거절하는데 있어서도 미소를 가득 띄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 선술집에서 저녁에 밥을 시키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우면서 “찬밥밖에 없는데 찬밥을 드릴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속내는 “술집에 왔으면 술하고 안주를 먹어야지 바빠 죽겠는데 왜 돈도 얼마 남지 않는 밥을 시키느냐”는 뜻이다.)

공연장에서 무대가 잘 보이고 음향도 좋은 자리는 당연히 비싸다. 유독 한국에서는 불이 꺼지고 공연이 막 시작되려고 하면 재빨리 자기가 산 좌석보다 더 비싼 빈 좌석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예전에 우리나라 비행기에서 일등석이나 이등석 좌석에 미친 척하고 앉아 있는 3등석 손님들도 보았다. 승무원이 자리를 옮겨 줄 것을 요구하면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비어 있는 좌석인데 좀 앉아 간다고 무슨 일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냥 앉아 갑시다”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디즈니가 직영하는 호텔에 투숙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입장을 1시간 이상 빨리 허용한다.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이다. 내가 만일 용인 애버랜드의 사장이라면 1등석 입장권을 매우 비싼 값에 별도로 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줄서기에서 1등석 입장객과 일반 입장객을 구분할 것이다. 런던 국제공항에는 1등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 까지 준비되어 있다. 파리에서도 뉴욕행 콩고드 비행기 승객들은 출발 이전부터 완전히 분리된 대우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공항에서도 1등석 승객은 검색대에서 우선권을 부여 받는다. 이게 자본주의다. 스키장에서도 회원들이 이용하는 리프트와 비회원 리프트는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비회원이 비회원 전용 리프트를 타려고 길게 늘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니 나 같으면, 줄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원하시는 시간에 조금도 기다림 없이 타실 수 있으며 24시간 전담 요원이 따라 다니는 초특급 회원권”을 가입비 10억원에 연회비 1억원 정도에 팔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은 인간인데 줄까지 차별하다니 너무 한다”, “돈 없다고 괄시하니 서러워 못살겠네” 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로는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였을 때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적이 없는데 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결국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다. 당연히 그 질적인 면은 지불하는 돈의 크기와 비례할 수 밖에 없다.

백화점에서도 구매실적이 저조하면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우수고객들은 바겐세일 기간이 아니더라도 특정품목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대다수 일반 고객들은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평균 5000만원 이상 쓰는 특별고객을 위한 VIP 전용 휴게실은 당연히 일반 고객들은 출입 금지 공간이다.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별로 호텔요금의 계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값만 내면 투숙하는 인원 수는 상관 없는 경우도 많지만 같은 방이면서도 그 인원 수에 따라 방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함께 투숙하는 자녀의 나이와 자녀 수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택시 요금 역시 짐을 얼마를 갖고 타든지 간에 미터 요금만 내면 되는 한국 같은 나라도 있고 홍콩처럼 가방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곳들도 있으며 심지어 승객의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나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당 요금 역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좌석 위치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도 하고(파리에서는 길가에 놓인 좌석이 비싸다) 음식을 싸 갖고 갈 경우에는 앉아서 먹는 요금 보다 할인이 되는 나라들도 꽤 있다. 서울의 몇몇 특급 호텔들에서는 도시락을 주문하여 가져 갈 경우 10%의 봉사료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자본주의에서의 합리성이다.

그래도 호텔에서 도어맨이 고급차를 우대시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고?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 고급차이어서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오니까 우대하는 것이다. 나 부터만 하더라도 몇몇 호텔들에서는 도어맨들이 내 얼굴과 차를 기억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선 호텔이나 신라 호텔 같은 곳에 어쩌다 가게 되었을 때 내 차가 좋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전혀 없다.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소형차를 타고 호텔에 들락날락하면서 발리 (valet) 파킹을 부탁하여 보아라. 한 두 달도 안되서 도어맨들이 알아서 모실 것이다. 특급호텔 앞에 고급차들만 주차하여 있는 이유는 발리 파킹 비용을 내거나 팁을 주기 때문이지 차가 좋아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에게는 특별 대접을 하고 불성실한 고객과는 의도적으로 거래를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자 마케팅의 이면에는 부자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 고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차별적 구조가 감춰져 있다고? 아니 무슨 불이익?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이렇다.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지불할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덜 편하고 덜 좋은 것을 가지면 된다. 그게 불이익이냐? 입석과 좌석의 차이가 없이 먼저 뛰어가 타는 놈이 앉아 간다는 원칙이 통용되는 곳은 절대로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그런 시스템을 "돈 앞에서 평등한 사회"로 믿을지 모른다. 기억해라. 그런 사회는 공산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정말 좋은 사회는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들"과 "이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 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먼저 앉는 사회이다(은행에서도 장애인들 만큼은 특별 대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족;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들 중 탑승구 앞에서 표를 받는 직원들은 돈을 더 낸 승객들에 대한 차별적 서비스 제공에 아주 아주 둔감하고 미련하다. 탑승 순서에 대한 방송을 마이크 없이 하는 직원들도 많고 방송 멘트 역시 탑승 대기 줄은 하나이므로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손님들은 아무때나 줄을 새치기하고 들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심지어 그런 멘트 조차도 안 하는 닭대가리들도 부지기수이다. 도대체 일본 나리타 공항처럼 탑승로를 둘로 칼같이 나누어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의 오우너였다면 아마도 사장부터 재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미국의 어느 항공사 직원 휴게실에서 내가 본 글—"잊지마라, 우리들 월급의 절반은 일등석과 비지니스석 손님들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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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대가는 질로 따져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받는 돈 만큼만 일할 것이며 그 돈은 내가 일한 시간과 비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샐러리맨들을 위한 사이트들 (www.payopen.co.kr , www.sman.co.kr , www.9to6.com , www.kimdaeri.co.kr , www.386party.com , www. coollife.co.kr , www.cybernojo.org 등- 2001년 현재)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일한다고 믿기에 남들이 받는 보수에 대단히 민감하다.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대우도 같아야 한다고 여기며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니 똑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일노동, 동일 임금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사람들 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산업화시대의 노동자들이 가졌던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그렇다. 피자 헛을 들여와 한 때 엄청난 성공을 한 성신제는 "창업자금 칠만 이천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봤다. 이중에는 나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꺼야, 공인 회계사가 될꺼야 하면서 이까짓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니까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자 라고 생각하면서 건성건성 일하는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 중에서 단 한명의 디자이너,단 한명의 공인 회계사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접시 닦는 일을 하더라도 이에 미치는 사람이 본업에 돌아가서도 그 일에 미치고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정식으로 채용을 하고 싶다고 사장이 말할만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돈주머니를 가진 입장에서 볼 때는 언제라도 즉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일만 한다. 받는 대가가 얼마이므로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런 생각이 가난으로 가는 고속도로임을 명심하라.

스테이시 가델라는 대학 시절인 1994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녀는 접시를 하나 닦더라도 물기 없이 깨끗이 닦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등 남다른 열정과 헌신을 보였다. 그 자세가 매장 지배인의 눈에 들어 졸업 후 정식 입사했고 불과 5년 만에 본사의 마켓팅 이사가 되었는데 미국외식업계 4위인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다. 업계에서 신데렐라로 불리는 가델라는 끈기(Persistence),헌신(Commitment),열정(Passion)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였다.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티켓을 파는 등등의 평범한 직원으로 입사한 이은예는 고객 서비스에 투철하였다. 한가지 일화가 있다. 93년 추운 겨울 어느날 저녁 무렵 4명의 가족 중 5살쯤 돼보이는 어린아이가 매우 발이 시려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눈썰매장을 이용하느라 옷은 물론 신발이 모두 젖었기 때문이었다. 이은예는 어린이를 직원휴게실로 안내해 발을 녹이게 하고 자신의 신발을 기꺼이 벗어 주었다.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긴 했죠. 하지만 가족이라면 추운데서 떨고 있는 그 아이를 그냥 두고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입사후 1년만에 `베스트 서비스맨"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1호봉 특진혜택, 미소경진대회의 튜울립상, 역할연기 우수상, 삼성그룹의 품질 서비스 경진대회 회장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입사 4년만에 서비스 아카데미 강사로 전격 발탁되었다( 그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이었을까?)

톰 피터스(경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모든 책을 반드시 읽어라: 내가 나의 글에서 인용만 하고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책들은 안 읽어도 되는 책들이라고 보면 된다)가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 호텔의 한 여자청소부 버지니아 아주엘라(Vrginia Azuela). 하지만 그의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태호 새너제이 주립대 경영학교수가 그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뒤 98년 5월 12일 매일경제에 기고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리핀 출신의 그녀는 74년 당시 27세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선택 가능한 직업은 호텔의 청소부였고 91년 리츠칼튼에 입사하면서 총괄품질경영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대다수 동료들은 청소라는 허드렛일에 무슨 품질경영이냐고 비웃었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작은 메모수첩에 그녀가 서비스한 객실 고객들에 대한 특성과 습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그 고객이 다시 왔을 때 그들이 원하는 객실서비스를 하였다.

심지어 침대보 작업까지 개선시켰다. 본래 호텔측에서는 침대보 교체작업을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하여 2인1조의 작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새 침대보를 침대 사이즈에 맞춰 침대보를 까는 순서의 역순으로 접어두면 작업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음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고객만족과 관련된 문제해결에는 2,000달러를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 받았고 호텔직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파이브 스타(Five Star)상은 물론 말콤 볼드리지 생산성 대상까지 받았다.

6.25 동란 당시 고아가 되어 구두를 닦다가 열입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레 일을 하던 이 철호.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고 주방에서 그릇 하나를 닦아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을 때 그는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이다(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MBC인터넷사이트에서 반드시 찾아서 보라. 책으로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 하자.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 살고자 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며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 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다.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하였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어있는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다. 바셀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큐팁(면봉의 미국 상품명)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큐팁도 팔았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 났다.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원칙 몇 개; 남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 절대 오늘의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은 끼리끼리 산다는 것, 한명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주변의 모든 부자들도 언젠가는 내 고객이 된다는 것. 내가 나중에 누구까지 만나게 되었는지 아는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연예인 몇몇 까지 내 고객이었다. (나는 이 일을 몇 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그 일은 관세법 위반으로 단속 대상이었기에 께름칙하였을 뿐 아니라 압구정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몸값은 그렇게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노동을 하여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라. 당신이 일한 대가에 대한 법칙 두 개가 있다.

첫째 당신이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국물도 없다. 대가를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 세상은, 당신이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는 그 각오를 덥석 먼저 믿어 주는 세상이 전혀 아니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 홍당무가 적다고 징징거리는 말들 치고 제대로 달리는 놈이 없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고? 돈 몇 푼 벌겠다고 스테이시 가델라, 이은예, 버지니아 아주엘라, 이철호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도대체 있느냐고? 무슨 햄 쪼가리 하나 팔면서 요리법까지 알려 주느냐고? 그냥 편하게 일하고 조금 벌겠다고? 뭐 그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 생각대로 그냥 계속 살아라. 아무도 안 말린다. 단 조건이 있다. 절대로 부자들을 부러워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당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통된 유전자가 있다.)

둘째, 보상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처음에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 까지 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우 몇 개월 열심히 하여 보고 대가가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여 곧 "일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얄팍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새워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월급이 그 다음 달로 인상되기를 바라는 이 조루증 환자들아. 세상은 이미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한 두 번 속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당신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의 경륜의 수레바퀴도 천천히 도는 법 아닌가.

다 자란 한우 한마리의 가격은 300만원선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질병 없는 우수한 종자를 뭇 암소들에게 나눠주는 종우(種牛)는 최고 3억원 까지 한다. 사람도 몸값이 비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짐승과 비교하느냐고? 나는 소를 소와 비교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그것을 믿는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일 뿐이며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이 모두 평등한 경우는 생노병사와 신 앞에서 뿐이다. 내 말이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의 결과들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떨까.

모든 중국 음식점의 주방장들이 평등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들이 만드는 짜장면의 맛과 가격이 똑 같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당신도 맛없는 짜장면 보다는 맛있는 짜장면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동일노동,동일임금?’ 좋~아 하시네;비꼬는 말투로 읽어야 함.ㅎㅎ)

자. 이제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는 잊어버려라.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어라.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 맞는 일 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여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 몸값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의 종자돈이 된다. 동료들의 야유와 시기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콩쥐를 시기하는 팥쥐는 언제나 있는 법이므로 철저하게 무시하라.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사항; 1.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대가를 더 받기 힘든 일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2. 일하는 능력 보다는 아부가 더 우선인 집단들도 많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게 보이는 곳들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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