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할 때의 자세

장사는 무엇이고 사업은 무엇일까? 나 나름대로 그 차이를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장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근거리 원내의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사업은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가 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설렁탕 집을 개업하였다고 치자. 당연히 주된 손님은 인근 주민들과 그 식당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고객의 활동 반경이 당신과 물리적으로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설렁탕 집을 잘 운영한 덕에 소문이 나서 설렁탕 육수를 전국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치자. 이 경우 고객들의 활동 반경은 이미 당신과 지리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고 이게 바로 사업이다.

63빌딩에 있는 수많은 회사들을 생각하여 보자. 63빌딩 지하에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옷 가게들도 장사이고 식당들도 장사이고 고층부에 있는 고급 식당들도 모두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빌딩의 사무실층에 있는 회사들은 어떨까? 그들은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나 변호사, 약사, 법무사, 관세사 등과 같은 전문 직업인들의 업종은 장사일까 사업일까? 그들의 활동 반경을 생각한다면 장사라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외국의 유명 병원들처럼 여러 곳에 분원을 설립하고 경영한다면 그것은 사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가 곧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업 장소가 된다. 때문에 위치가 중요하다. 음식점이나 옷 가게를 할 때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장사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면 어떨까? 고객과 만나는 장소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장사에 속한다.

반면에 사업은 그것이 행하여지는 지리적 장소를 벗어나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내고 상품화 시키는데 있어 그 작업 장소가 허름한 지하 창고이어도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업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 역시 지리적 장소를 벗어나므로 사업에 속한다.

사업이나 장사를 구분할 때 그 법적 구성 형태, 이를테면 주식회사인가 아니면 개인 사업자인가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장사와 사업을 내가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이 정도로 그치고 이제 “장사를 할 때의 자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사업을 할 때의 자세는 별도로 다룰 것이다.)

장사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은 돈만 노리면 돈을 절대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수많은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로 표현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른다. 경험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진리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데도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 아니 세이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제부터 내 말을 똑똑히 새겨 들어라.

당신이 아주 작은 식당 하나를 개업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돈을 벌어야 하므로 4천원짜리 된장찌개에 들어갈 재료들의 원가를 생각할 것이고 한 그릇을 팔았을 때 남게 될 이득을 계산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찌개 몇 그릇을 팔아야 월 수입이 얼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새겨 들어라. “이득 = 판매가 - 원가”라는 공식을 믿는 당신의 그 식당은 장담하건대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당신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맛이다. 고객이 찾는 것은 맛있는 된장찌개이기 때문이다. 그 맛을 창출하려면 당신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된장을 직접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깡통에 담긴 공장제품을 사다 쓰려고 하고 새벽에 시장에 가서 직접 신선한 야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납품업자에게서 받아다 쓸 것이다. 그리고는 원가를 생각할 것이다. 거기서 무슨 차별화가 생긴단 말이며 무슨 맛이 생겨난다는 말인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하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일부러 가 본적이 있었다. 내가 업소를 잘못 찾아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 유명 연예인들이 왔다 가면서 남겨놓은 낙서들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고추장 맛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면서 주방 쪽을 살펴보니 그 고추장은 공장 제품이었다. 나는 그 이후 그 동네를 가지 않는다.

안 되는 식당일수록 밥맛도 형편 없는데 원가 절감 차원에서 싸구려 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고객들이 올 리가 없고 장사가 안되지만 메뉴에 문제가 있는 줄로 알고 메뉴만 늘리면서 더더욱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빚에 쫓기게 되고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한심한 사람들….

당신 입맛에는 맛이 그럴 듯 한데도 안 팔린다고? 부자들이 보기에도 맛이 있을까? 명동칼국수로 유명한 명동교자에 가보라. 칼국수 하나를 만들어도 일단은 배부른 부자들이 먹어도 맛이 있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여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먹었을 때만 맛있는 음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명동교자에서는 독특한 칼국수 맛을 보존하고자 명동에 있는 두 곳을 제외하고는 지점 설치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현재 나이가 50대인 그는 20대 말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연간 매출 수백 억원 대의 건실한 회사를 졸지에 물려 받았다. 몇 년 후 그는 사업 영역을 부동산 개발 같이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분야로 확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룸싸롱에서 젊은 여자들만 찾다가 급기야 30대 중반에 회사는 부도가 났고 결국 쫄딱 망하게 된다. 곧 이어 아내로부터는 이혼을 당하였고 자식들도 여자 관계가 복잡하였던 아버지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에 원룸에서 혼자 사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왕년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넥타이를 메고 여러 친구들의 사무실 한 귀퉁이를 전전하면서 빌붙어 지내기를 근 10년 간이나 하였다.

그러다가 마음을 겨우 고쳐먹고 몇 년 전 아주 작은 삼겹살 음식점을 월세로 개업하였는데 개업 6개월 정도 후 내가 방문하여 보니 인테리어고 뭐고 없었지만 손님이 미어 터졌다. 그 북새통 틈에서 나도 겨우 식사를 했는데 모든 음식의 맛이 아주 좋았다. 손님들이 오면 그가 주문을 직접 받았고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함께 빈그릇을 치우고 행주를 직접 들고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을 치웠다.

손님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떴을 때 겨우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도 없고 자식들도 없으니 음식점에서 자면서 새벽에 봉고차를 끌고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오고 음식도 직접 준비해 놓는 것이 그의 아침 일과였다. 주방장이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해서 그가 아침에 잔뜩 준비한 것들을 조리하는 것이었기에 평범한 아줌마를 고용하고 있었다.

나는, 부도 이후에도 계속 허황된 꿈만 꾸던 그가, 왕년의 생활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해 본 적도 없는 먹는 장사에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였다.

그의 답은 이러했다:

“친구들에게 얹혀 지내기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까 친구들도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넥타이를 풀고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뭘 하여야 할 는지는 몰랐다. 삼겹살집을 하게 된 동기는 별거 없다. 이혼 후 자식들도 없이 혼자 살면서 근 10년 동안은 한끼 한끼를 대강 때웠다. 하지만 부도 전 까지는 서울에서 잘한다는 고급 음식점들을 거의 모두 다녔었으니까 뭐가 맛있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찬밥에 김치로 밥을 먹다가, 왕년에 화려하였던 내 고급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가 만들어 팔면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고기를 사다가 직접 포도주에 숙성 시켜보면서 소스 개발도 시도하여 보았다. 몇 개월 노력한 끝에 내 입이 만족하는 맛이 나오게 되자 친구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3천만원을 갖고서 월세로 식당을 개업했는데 이제는 세무서 걱정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여기서 들려주고자 하는 교훈은 이것이다:“먹는 장사를 하려면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고 팔지도 말아라. 배부른 부자들이 먹었을 때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음식을 미리 미리 준비한 뒤에 개업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돈방석에 앉게 된다. 호떡 하나를 팔아도 맛을 연구하여야 하고 버터는 좋은 것을 써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맛을 추구하다 보면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당연하다. 이익이 별로 남지 않을 것이므로 종업원 인건비를 아껴야 하고 따라서 인건비가 나가지 않는 자기 몸을 코피가 터질 정도로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몸이 좀 피곤하므로 직원을 고용하여 새벽 시장에도 다녀오게 하고 그러면 안 되느냐고? 아니 없는 살림에 시작한 장사일 것이므로 가진 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어느 식당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려면 시간이 상당히 필요한데 무슨 돈이 그리 많다고 월급 까지 줘가면서 사람을 부리겠다는 말이냐.( 주방장을 고용하여 음식점을 하려고 한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멍청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른 바 먹는 장사를 예로 삼아 설명하였지만 다른 장사들에서도 그 원리는 그대로 통용된다. 무슨 장사를 하건 간에 우선은 월급을 많이 안 줘도 되는 당신 자신의 몸을 24시간 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주변의 경쟁자들을 따 돌릴 수 있다. 경쟁자들은 자기 인건비, 종업원 인건비, 투자비용 등등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오버헤드 코스트(overhead cost)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거의 최저 수준이 되고 그 대신 고객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소문은 반드시 나게 되어 있다.

물론 그 소문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무슨 사업이건 장사이건 간에 1,2년 동안은 이를 악물고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개업 이전에 준비가 철저하여야 함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다. 원가고 나발이고 오로지 고객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야 한다. 고객 한명 한명이 너무나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개업 초기에 오는 손님들에게서 외면을 받는다면 조만간 당신은 쪽박을 차게 된다. 단 한명의 고객도 소홀히 대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다 보면 고객들이 신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손님이 줄을 선다. 그때부터가 돈이 들어 오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재료 구입량도 많아지기에 원가도 절약된다.

함흥냉면으로 유명했던 종로5가 시계골목에 나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주인이 바뀌면서 맛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렇고 그런 식당에서 주인들은 저녁에 가게에서 TV연속극을 보고 있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결론을 내려 보자. 어느 장사이건 사업이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하며, 초기에는 당신이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생각을 가져야만 성공한다. 때문에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자 장사나 사업을 하고 싶다고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장사니 사업이니 하는 것들은 까맣게 잊어 버려라. 자유시간? 휴식시간? 그럴 시간이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장사고 사업이니까 말이다.

아울러 고객이 왜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여야 충족시킬 수 있는지 만을 연구하여라.

처음에는 힘들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라.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늦어도 3년째 부터는 돈이 쌓일 것이다. 절대로 “이득=판매가-원가”가 아님을 명심해라. 이득은 “고객의 신뢰도x 고객수”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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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먼저 친해져라

어떤 사람들은 이른 바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을 돈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으로 믿는다. 물론 그러한 지식도 중요한 것이기야 하지만 나는 그런 지식을 전문적으로 갖추고 있는 재테크 상담가들 중에서 부자를 만난 적은 없다. 돈을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은 단순한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쏟아지는 정보를 이용하여 돈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눈이며, 인간 심리를 알고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며, 시장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색하는 힘이다.

그러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으로서 나는 신문을 많이 본다. 수많은 기자들이 사방에서 수집하여 활자화 시키는 정보들은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지면을 통해 알려주는 정보 모두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읽는 여러 종류의 일간지와 경제지들 중에서 매일 어느 하나를 택하여 우선 경제란부터 상세히 본다. 경제 흐름을 알려주는 모든 기사는 정말 놓치지 않는다. (현재 나는 일간지 3개와 경제지 4개를 보고 있는데 내가 왜 그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도배되어 있는 여러 신문들을 읽어 왔는지는 별도로 설명할 것이다. )

차 안에서 신문을 읽다가 원하는 기사를 칼이나 가위 없이 맨손으로 잘라내는 기법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였고, 책상 위에 놓고 칼을 대고 자르면 신문 한 장의 두께 만큼만 칼질이 되는 특수한 칼도 서너 가지 종류를 오래 전 외국에서 구입했을 정도로 나는 경제 기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런 칼들이 교보문고에서 판매되고 있다. 단, 도서관의 책들을 오려 내는데 사용하지는 말 것.)

경제란 다음에 보는 지면은 문화란이다. 문화를 알아야 인간을 이해하고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도 대충은 본다.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연속극이라고 해도 나는 거의 안보기 때문에 대화 중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기초적인 내용 만큼은 알아두기 위해서 이다.

정치,사회,스포츠 등은 대충대충 본다. 어느 한 신문에서 그런 분야에 대한 기사들을 내가 훑어 보는데 바치는 시간은 2분도 안 된다. 어느 연예인이 이혼을 했건 말건, 박찬호의 금년 실적이 얼마가 되건, 정치인들이 무슨 일로 싸우건 간에 나는 그런 기사들은 대강 제목만 보고 만다.

그런 지면들에서 내가 집중을 하며 보는 것은 광고이다. 광고는 사회의 단면이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유심히 본다. 이런 상품이 나왔구나, 이 동네는 부동산이 이정도 가격이구나, 사원모집 광고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등등을 재빨리 눈에 집어 넣는다. 인터넷에서는 이것을 못 얻는다(PDF 형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너무 불편하다).

시내 버스는 타 본지가 20년 이상 되지만 지하철은 1년에 몇 차례는 나도 타게 된다. 막상 지하철을 타보면 체육계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듯 느껴진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샐러리맨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건 대부분 비슷하다.

나는 해외 출장을 갈 때 대부분 일등석을 탔다. 한일 노선에서는 일등석 손님들 중 야쿠사도 있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타기에 스포츠 신문을 찾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장거리 노선에서 일등석 승객들은 거의 모두 경제지를 찾는다.( 일등석 좌석에 있는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은 제외한다. 그들은 대부분 항공사에서 “알아서” 좌석을 업 그레이드 시켜 준 것이지 돈 내고 탄 사람들이 아니므로 진정한 일등석 손님들은 아니다- 권력이 좋기는 하다.)

반면에 이코노미 클래스 즉 삼등석 승객들은 스포츠 신문이나 연예 주간지를 먼저 찾는다. 서로의 관심의 우선 순위가 틀린 것이다. 일등석 승객들은 일차적 관심이 경제이며 그래서 돈을 더 번다. 삼등석 승객들은 일등석의 넓은 좌석을 부러워 하면서도 일차적 관심은 경제가 아니라 재미난 기사거리들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 게임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대부분은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 같은 재미난 이야기 거리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깊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문사 인터넷의 자유토론장에 어쩌다 들어가 보면 정말 가관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침을 튀기며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스포츠,연예 뿐이다. 특히 여자들은 연예인들에 대하여 지독히 관심이 많다. 여성 잡지의 대다수가 , 몰라도 되는 그렇고 그런 연예인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이 TV 앞에서 환호를 올릴 때 부자가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TV 속의 주인공들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도 당신에게 생기는 것은 땡전 한푼 없다.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며 당신 자신이 주인공인 경제 게임에서는 규칙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을 도둑으로 싸잡아 비난한다. 십중팔구 당신은 정치인,운동선수,연예인 이름들은 줄줄 꿰지만 대차대조표는 볼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TV 앞에서는 넋이 나가고 신문을 읽으면 꼭 정독을 하면서, 5분도 안 되 잊어버릴 뉴스 거리들에 온 시간과 정신을 바친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고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자가 되려면 돈과 친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른 것들과 친하다. 돈과 친하여진다는 것은 경제 게임의 법칙을 안다는 것이고 경제의 피가 흐르는 증권,부동산,경영,사업 등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는 뜻이다. 일간지에 나오는 경제란은 꼬박꼬박 챙긴다고? 경제지 하나와경제 주간지(그 경제지를 발간하는 신문사에서 나오는 주간지 말고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좋다.) 하나 정도는 읽어야 무슨 감이 잡힐 것 아니겠는가. 신문값이 부담스럽다면 일간지 대신 경제지만 읽어도 된다.

명심해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경제 지식은 당신을 절대로 부자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좀 읽으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정치,문학,역사,종교 서적들을 본다. 교양이나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책들을 읽는다(아마도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한달 이상을 소비한 적도 있고 "악마의 문화사"라든가 "황금 가지" 같은 종교 서적들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비율로 따져 본다면 그런 책들 보다는 돈 냄새 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왔다. 영혼의 양식 보다 일용할 양식을 먼저 챙겼다는 말이다.

기억해라. 교양인에게 돈 많이 주는 세상이 아니다. 부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당연히 일용할 양식부터 넉넉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교양을 닦아라. 미국 프로야구 선수 박찬호가 연습은 안하고 교양 증대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도 사회에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먼저 해라. 딱 1년만 미친 듯 하면 장담하건대 내년에는 벅찬 가슴을 갖게 된다. 교양이니 영혼의 양식이니 하는 것들은 그 다음에 해결해도 되지 않겠는가.

(사족; 당신이 성인인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 당신은 가야 할 길이 아주아주 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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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오직 기회의 첫 단추만 채워준다




어느 책에서인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다람쥐도 도토리를 모을 때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이상을 모으지 않으며 어떤 참새도 다음 주 식량을 미리 모아놓지 않았다고 해서 슬프게 짹짹대지 않는다. 동물의 왕 호랑이도 부자 호랑이와 가난한 호랑이로 나뉘어지지는 않는다. 그저 배부른 놈과 배고픈 놈으로 분류될 뿐이다.

어째서 인간만이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 세계만이 자본주의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 요건은 돈의 속성을 알고 이 세상에서 돈버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며 그렇게 번 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떠한 속성을 갖고 있는가? 강태기씨의 모노 드라마 '돈'에는 돈의 행방에 따라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마지막 재산 1천원을 털어서 산 복권이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실직자. 그 돈을 탈취한 강도. 그 강도로부터 청혼을 받는 창녀. 강도가 목욕하는 사이에 돈가방을 훔쳐 병에 시달리는 애인에게 달려 간 창녀.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사창가에 내몬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한 애인. 이 연극에서 '돈'은 화폐로서의 '돈'을 비롯해 "윤회한다"는 의미의 "돈다"와 "미친다"는 뜻의 "돈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싸이코로 만드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고 있는 첫번째 기능은 의식주를 해결하여 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성경 마태복음 6장에서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한 말을 내게 들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의 말은 앞날을 생각하는 당연한 걱정을 불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빈곤은 지나친 근심과 걱정을 가져오기에 하나님의 의를 자칫 무시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삶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에 맡기게 되면 하나님이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호하듯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지 그냥 놀고 있어도 의식주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어떨까? 부처는 초기 불전인 '선생경'(善生經)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마땅히 먼저 기예를 익히라 그래야만 재물을 얻으리라.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어 보호하라"고 하기도 하고 "밭 갈고 장사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생업에 부지런히 전념하라"고 당부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장신구를 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어야 하고 아내는 재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시된다. 예수와 부처까지 내가 인용하는 이유는 어설픈 종교적 사고로 돈 자체를 터부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두 번째 기능은 돈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통장에 돈이 넉넉히 있다면 안심이 되고 걱정거리도 웬만큼은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병에 걸렸을 때 불치병이 아니라면 돈을 갖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도 돈이 있으면 그 가족에게 위자료를 주고 합의서를 받아내서 형량을 적게 받을 수도 있다.

돈의 세번째 기능은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오 헨리의 단편 가운데 '황금의 신과 사랑의 사수'라는 것이 있다. 그는 전직 은행원이었으나 공금 횡령으로 인해 감옥에 있는 도중 소설을 쓰기 시작해 결국 유명해졌다. 그런 그였기에 당연히 돈에 대한 생각도 소설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 줄거리를 살펴보자.

돈 많은 아버지를 무척이나 경멸하는 아들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아직 말도 한번 건네보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은 연극을 구경하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하는 그녀를 극장까지 마차로 안내하는 역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고작 칠,팔분.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돈으로 어떻게 사랑을 얻느냐고 푸념한다. 드디어 날짜가 되어 역으로 간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인사하고 마차로 안내한다. 극장을 향해 마차가 달리던 중 아들이 갑자기 당황해 하며 마차를 멈춘다.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떨어뜨린 것. 그는 마차 밖으로 나가 1분도 안되어 반지를 찾아 가지고 돌아왔고 다시 마차는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1분 사이에 다른 차들이 길을 막아버렸고 넓은 광장이 수많은 짐마차,승용차,짐차 등으로 인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탄 마차는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얘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사랑을 고백하며 여자도 그 사랑을 받아들인다.
다음 날 웬 사내가 아버지를 방문하여 돈이 생각보다 더 들어갔다고 보고한다. 그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아들의 마차가 지나갈 시각에 도시의 모든 탈 것들을 동원하여 길을 막아버려 두 사람이 이야기할 시간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자. 오 헨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돈이면 사랑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돈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반지가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찾느라고 1분을 소비하는 바람에 타이밍이 맞았듯이 "신의 어떤 도움"이 있어야 한다. 즉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 남녀가 오래 이야기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사랑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필(feel)도 있어야 비로서 돈은 그 기회를 열매 맺게 한다는 뜻 아니었을까?

돈이 주는 기회를 생활에서 찾아보자. 우리의 여름 밤은 무덥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열대의 밤에는 더워서 섹스고 나발이고 귀찮아 질 것이다. 샤워를 하고 난 뒤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에어컨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방안이 써늘할 지경이라면 추워서라도 서로를 더 껴안게 된다. 그래서 어느 에어콘 회사에서는, "침실까지 시원해"라는 광고 카피로 오래 전 히트를 쳤다(에어컨을 설치할 때는 거실에 하지 말고 침실에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

그러나 에어컨 살 돈과 그것을 틀만한 돈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부부 금실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 기본적으로 있을 때 비로서 에어컨 바람도 제 구실을 하게 된다. 룸싸롱에서는 팁을 몇 십만원씩 뿌리면서도 아내에게는 꽃 한 송이 사다 줄줄 모르는 남자들에게 돈은 오히려 파탄의 기회만 제공하지 않는가. 돈이 제 구실을 하려면 돈이 아닌 다른 가치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결국 돈이 행복의 첫 단추를 채울 기회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단추들은 모두 다른 요소들이 좌우한다는 말이다.

( 내 주변에 준재벌 2세들이 좀 있다. 나이가 4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분포되어 있는 그들 중 절반은 가정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법을 전혀 모른다. 왜 그런지 아는가? 어릴 때부터 여자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오면서 결혼 후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기를 중단하지 않으며 자연히 집안은 완전 콩가루가 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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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뿌리를 없애라

미국 잡지 '직업 등급 편람'에 의하면 미국의 2000년도 인기 직업 순위에서 대통령이 167위로 나타났다. "이는 대통령이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잡지는 매년 노동부와 통상단체들의 자료와 전화조사 등을 토대로 250개 직업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인기 직업순위 1위는 1999년 17위였던 전문 재산관리자가 차지했으며 가장 호감도가 낮은 직업은 어부인 것으로 조사됐다. 99년 1위였던 컴퓨터 웹 마스터는 2위로 떨어졌다. 교사는 119위, 경찰관은 200위로 나타났는데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여건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직업이 있을까? 암 치료 전문 의사들은 암정복을 위한 필수 요소들 중의 하나로서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한다. 그들은 스트레스가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스트레스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욕망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또한 화를 내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지만 반면에 웃음은 우리 몸의 방어능력인 면역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은 크게 웃으라는 것이 그들의 충고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해소 방안을 제시하여 준다는 정신과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들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미 독자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실패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주말에는 교외로 나가 신선한 자연을 벗하라. 일에 쫓기지 말라. 오늘 못한다고 내일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란 없다. 긴장을 풀고 살아라. 경쟁심을 버려라. 그들은 그들이고 당신은 당신이다. 실력과 능력이 다가 아니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건강을 생각하며 운동을 하라. 운동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자주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놀아라. 그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느긋하게 천천히 살아라. 그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다.”

독일 풀다의 한 대학에서 건강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터 악스트 교수 역시 내과의사인 딸과 함께 쓴 ‘게으름의 즐거움에 관해’라는 책에서 “마라톤을 하는 대신 해먹(달아맨 그물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스쿼시를 하는 대신 낮잠을 자는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업상 받게 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장수하는 비결을 목표를 정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너무 일찍 일어나면 온종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런 조언에 충실히 따르며 살아간다면 장담 하건 데 몇 년 후에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될 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하고 있는 일은 망한지 오래 이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이미 해고되어 구직 이력서를 서너 통 언제나 준비하여 갖고 다니는 몸 튼튼한 실업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지키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자.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자. 왜 스트레스가 생기는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인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일이나 인간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왜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일까? 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르는가? 책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스스로 안 하는가? 게으르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최고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보고 공부는 학원이나 학교에 가야만 하는 걸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놀 것은 다 찾아 다니며 논다. 그런 주제에 자기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하는데 주변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그러면서도 수입이 적다고 투덜 투덜 댄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 만을 풀어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휴식을 충분히 갖고 쉬라고? 웃으라고? 한 달을 바닷가 해변에서 뒹굴어 보아라. 백날을 하하 호호 웃어보아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웃기는 소리들 그만 해라.

기억하라. 제초제를 뿌리는 이유는 뿌리를 죽이기 위함이다. 뿌리를 살려두는 한 잡초는 다시 살아난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정확한 방법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뿌리 채 뽑아버리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 모든 원인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당신의 무지 그 자체이다. 즉 외부적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헤쳐나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의 두뇌 속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지함의 뿌리는 바로 게으름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빈 맥주병을 쌓아가지 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절대 회피하지 말아라. 책을 읽고 방법론을 찾아내라. 그게 바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초제이다.

친구들과 상의하는 짓도 그만두어라. 당신이나 친구들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며 그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답답함에 대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 아닌가.

(여기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세이노는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시간을 자기 뜻대로 사용하면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으니까 스트레스도 해결 할 수 있겠지만 자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느냐.”

나의 대답: “아마도 당신은 남이 시킨 일을 하는 이상은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왕년에 누군 남이 시킨 일을 안 해 보았는 줄 아는가. 내가 당신하고 다른 점은 나는 누가 시킨 일이건 아니건 간에 일을 해결할 능력 배양에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능력 배양은 언제나 일과 후에 있었으며 노는 날이라곤 거의 없이 30대를 보냈었다. 아마도 당신은 노는 날들을 악착같이 다 찾아 먹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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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북한이 고향인 의사로서 6.25 때 남하하였다. 아버지의 원적 때문에 나는 공군에 입대한 당일, 신원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향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에는 얼굴도 모르고 생사도 모르는 형들과 누나들이 있지만 남한에서는 내가 나이 어린 장남이었고 친척도 없었다.

살림집이 딸려 있던 병원에는 의사 3,4 명과 간호사 7,8명이 있었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의 놀이터는 골목이나 운동장이 아니라 병원 대합실과 치료실(칸막이가 쳐 있지 않았다)이었다. 1960년대 국민학교 시절 까지는 “비교적”잘 살았던 것 같으나 의사라는 직업을 부자가 되는 도구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절대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국민학교 시절에 이미 아버지가 엄청난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재판에 휘말렸고 빨간색 차압 딱지가 은 수저에 까지 세 번 붙더니 중3때, 말 그대로 길거리로 내쫓겼는데 가재도구가 손수레 하나도 안되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몰락하였고 나는 환갑이 다 된 아버지의 눈물과 한숨을 처음으로 보았다.

왕진 가방마저 압류 당했던 연로한 아버지는 약간의 정치적 연줄을 갖고 있던 덕분에 무의촌 보건소장이 되었으나 결국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월셋방 한 칸과 빚만 남았다. 구멍가게를 하면 가장이 세상을 떠나도 유가족이 생계를 꾸려 갈 수 있으나 전문직인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은 빚까지 있었으니 정말 쩔쩔 맸다. (어릴 때 있었던 그 파산의 영향으로 나는 현금 20억원을 모을 때 까지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비를 피할 수 있는 튼튼한 우산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아버지를 나는 철없던 시절, 원망도 많이 하였지만 세상을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릴 때 받은 가르침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망치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망치만 가져가면 꾸중을 들었다. 뭘 하시려는지 눈으로 보고 못까지 크기별로 챙겨가야 했다. 담배를 사오라고 하여 담배를 사다 드리면 꾸중을 맞았다. 재떨이와 성냥, 물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 그렇게 모든 것을 준비하여 갖다 드렸음에도 아버지는 혀를 쯧쯧 찼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떨어진 말, "사내새끼가 머리가 그것 밖에 안 돌아가면 어디에 쓰겠냐. 담배를 피면 연기가 나오지?”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라는 뜻이었다.

한번은 무릎에 상처가 났는데 머큐로크롬을 직접 발라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강 바르는 것을 보더니 "사내새끼가 약 바르는 것을 수없이 보았을 텐데 눈뜬 장님이었다"고 꾸중하였다. 그리고 간호사를 한명 부르더니 약을 발라주라고 하였다. 치료가 끝나고 나가려는 데 아버지가 "뭘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했기에 야단을 또 맞았고 또다시 약이 발라졌다. 비로서 나는 약솜이 상처 위에 놓인 뒤 원을 그리며 밖으로 나감을 알았다. 그래야 세균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나는 불과 6살인가 7살이었다.

그런 교육이 모두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수없이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내게 심어주려고 한 것이 어떤 일 전체의 뼈대를 보는 능력이었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세부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 방법론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내가 남들보다 일을 더 잘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장난이 매우 심했었다. 국민학교 시절, 한번은 카바이트 불이 신기해서 1리터 짜리 링겔 병에 카바이트를 담아 놓고 불을 붙였다가 “뻥”하는 소리를 내며 고무마개가 튀어나가면서 폭발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링겔병 속의 굵은 유리관을 카바이트 개스 토출관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불길이 병 안으로 역류되어 일어난 폭발이었다. 원래 카바이트 개스 토출구는 바늘 구멍 크기가 되어야 하는데도 나는 토출관이 굵으면 불꽃도 엄청 클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병에 실을 감고 석유를 실 위에 뿌리고 불을 붙인 뒤 뜨거워졌을 때 찬물에 넣으면 병이 쩍 갈라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몇 차례 장난을 하다가 석유 대신 라이터 기름을 뿌린 것이 원인이 되어 집에 불을 냈었다. 흰색 양잿물 덩어리를 박하 사탕인줄로 알고 먹었다가 위를 세척하는 등의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다. 암실문을 열어 놓은 채로 엑스레이 필름통을 여는 바람에 필름을 못쓰게 만든 적도 있었는데 엑스레이 담당자는 기계고장으로 알고 난리를 쳤었다. 중학 1년 당시에는 딱총 화약을 전부 까서 가루로 만들기 위해 두 손으로 비비다가 그만 마찰열 때문에 화약이 폭발하여 열 손가락 모두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저지른 장난은 끝이 없다. ( 나이 50이 된 지금도 나는 종종 가족들에게 장난을 친다).

자상함은 전혀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저지른 장난에 대하여서는 결코 야단을 치지 않았다. 그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같은 장난을 또 하게 되면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자식들에게 매를 드는 분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하나를 말하면 내가 열을 알기를 바랬기에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는 두렵기도 했고 언제나 나를 가르칠 때 마다 빠지지 않은 서두는 “사내새끼가…”였다. 지금도 내 귀에는 아버지의 강한 북한 사투리가 생생하다. "사내새끼가 머리가 그것밖에 안 돌아가면 어디에 쓰겠냐?"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는 나눠보지 못하였다. 워낙 성격이 무뚝뚝하기도 하였지만 대화라는 것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너무 연로하였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땡이”가 등장하는 만화를 대단히 좋아했으며 어른들이 물었을 때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하게 과외에 매달렸지만 일류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한 뒤 중간 정도의 중학교에 들어갔고 동계진학으로 같은 고교까지 가게 된다. 중고교 시절 내내 나는 공부를 등한시하였지만 아버지에게서 야단 한번 맞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질 때 어느 것이 좋겠냐고 여쭙자 답변은 그저 "기술자가 되라"는 것 뿐이었다. 기술자만이 세상이 바뀌어도 살아 남는다는 것이었고 의사도 기술자라는 것이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독일 나치군이 유대인 기술자들은 살려주는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내게 해 준 또 다른 말은 “돈을 벌려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지금의 내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아버지는 자신이 의사이면서도 다른 의사들(그 중에는 내 친구의 아버지도 있었다)을 “의새”라고 부르고 변호사를 “변호새”라고 부르곤 했는데 여기서 “새”는 새끼의 준말이었다. 같은 의사였던 내 친구의 아버지가 병원 건물을 수리하고 간판을 네온사인으로 달고 대기실을 화려하게 만든 것을 보고 내가 아버지에게 우리는 왜 그렇게 안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지 여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병원이 화려하면 결국 환자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쳤다.

의사라는 직업을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아버지는 별도의 돈 버는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수술할 때 조명 역할을 하는 무형등을 제조하여 다른 병원들에 판매하기도 하였고 간척지 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성공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사기만 잔뜩 당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또 내게 해 준 말은 "많이 배워 높은 사람이 되면 세상이 바뀌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일제시대,공산치하, 6.25, 4.19, 5.16 등을 거치며 세상이 여러 번 뒤집히는 것을 체험하면서 고위관리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내리신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공부 열심히 하여 높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한번도 듣지 못했다. 재판에 휘말리며 고생을 하였지만 검사나 변호사가 되라는 말도 없었고 단 한번도 당신의 직업인 의사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병원 대합실에서 노는 것을 허락하고 수많은 수술 장면들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의사가 뭘 하는지 잘 보아라"는 정도 였지 단 한번도 내게 느낌 같은 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출산 장면을 보여 주거나 수술 도중 환자의 창자에서 꿈틀대는 기생충들을 보여준 것,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게 음독자살을 시도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20세 처녀의 음부에 요도파이프를 끼어 넣는 장면이나 물에 퉁퉁 불어 반쯤 썩은 시체의 뱃속을 보여준 것 등등은 좀 심했다 싶지만 아마도 인간 육체의 실상을 빨리 직시하라는 뜻이 강하였으려니 생각한다. 심지어 성병에 걸려 절단한 성기를 포르말린 병에 집어 넣고 내게 구경 시키며 성교육을 시킨 사람도 아버지였고 매독균이 최장 10년 이상 잠복기를 갖는다는 것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병원 놀이터에서 육체의 실상만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60년대 그곳에서 학교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쌩 구라”라는 것도 알게 된다.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늙은 할머니가 길을 안전하게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민중의 지팡이로 묘사된 경찰은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는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왔지만 돈봉투를 받지 못하면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내게 보여 주었다. 교사들은 지극히 고마운 분들로 교과서에는 묘사되어 있었으나 육성회 회장이던 아버지에게 찾아 온 그들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문관의 제왕으로 교과서에 나오던 기자들은 병원에서 환자 한명이 죽으면 벌떼 같이 모여들어 돈봉투를 받아가던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법과 정의를 지킨다는 검사와 변호사와 판사들을 어머니나 아버지가 재판 문제로 만나러 갈 때는 언제나 그 명칭 뒤에 “새끼”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고 보자기에는 현금다발이 가득 담겨 있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온 의사 부부 중 여의사는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의사는 자신의 신분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여자와 외도를 하고 이혼을 하였다. 키스는 아름다운 사랑의 표식 이라지만 키스 하면서 남자에게 혀를 물려 잘려진 혀를 들고 입 주변에 온통 피를 흘리며 온 창녀도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 어린 나에게 이러한 인간의 짓거리들을 직,간접적으로 모조리 보여 주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을 국민학교 시절에 보면서 나는 삶의 더러운 실상과 인간의 사랑과 증오마저도 조금은 엿보았던 것 같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옆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제로 엿보았던 주인공이 바로 그런 내용을 상상하여 소설로 발표한 소설가에게 “당신의 소설은 실상과 틀리다”고 면박을 주는 앙리 바르비스의 소설 ‘지옥’은 그래서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배뱅이굿을 즐겨 들었던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전에 부탁을 하였었는지 제사를 지내기는 하면서도 내게는 그 의미를 축소시켜 “나 죽으면 이런 짓 절대 하지 말아라”고 강요하였다. 급한 환자가 오면 제사를 완전 취소하기도 하고 다른 날 지내기도 했으며 술 대신 사이다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제사상에 음식을 올려 놓는 원칙 조차 “편한 대로 하면 되지 무슨 격식이냐”고 하였던 분이다. 격식을 싫어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는 사업을 하면서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시무식이니 종무식이니 개업식이니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며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쌀밥을 먹으면 비타민이 부족하다”고 아버지가 내게 어릴 때부터 하루에 한 알 강제로 먹였던 비타민 삐콤을 아직도 내가 매일 아침 한 알씩 먹듯이(지금은 ‘삐콤씨’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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