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즉 노동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일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일을 통해서 살 수있는 양식을 얻게 되므로 일은 곧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은 경제적, 생명적, 사회적, 종교적 차원의 의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의미에서의 일이란 생계유지의 기본수단이다.
직업이란 생계유지를 위한 계속적인 경제적 활동이며 일이란 활동을 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경제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흔히 일을 일컬어 생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사도 바울은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
둘째로 생명적 의미에서의 일은 우리의 몸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일한 다음에 쉬고, 쉬고 난 다음에 다시 일을 한다. 이것은 활동과 휴식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근복적인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활과 존재의 리듬이 생명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 몸도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일은 사회적 역할이요 사회적 기여이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다양한 분업의 체계를 이룬다. 다종다양한 사회적 분업을 서로 분담하지 않으면 사회는 발전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람은 일을 통해서 가족, 이웃, 사회에 봉사한다는 점도 일의 커다란 사회적 의미라 할 수 잇다. 각자가 자기 일에 대하여 강한 사명감과 성실한 태도와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직책의식을 가질 때에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의미에서의 일은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이고 하늘이 부여한 천직이다. 그러므로 일은 우리 인간에게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 건강하고 기쁨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활동할 수 있으므로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존재의 확인이다.
“일하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의 근본이다.”라고 말한 에디슨이나 “행복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먼저 일하라”던 칼힐티,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라던 고리끼 등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모두가 일과 삶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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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즈시다 전기를 창업하고 동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마즈시다 고노스게(1894∼1988)는 “올바른 인생관을 갖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어떻게 일하고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라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과 확고한 신념, 즉 훌륭한 인생관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삶에서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어떠한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목표가 달라지게 된다.
물건에 값이 정해져 있듯이 사람에게도 값어치가 있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예외없이 한 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번 살수도, 지난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남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 줄 수도 없다. 인생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고 땀흘려 인생을 건설할 때 비로소 보람있는 인생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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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는 원동력이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늘 생각을 새롭게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은 그대로 행동과 직결되어 어떤 일을 하든 그 만큼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쁘면 ‘운명이라고 생각하자’라며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운명을 도피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100%는 아니더라도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낙관적인 사고, 협조적인 사고, 주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므로 이러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설사 실패가 따르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신감을 쉽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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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스티븐 코비는 주도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성공의 첫째 조건으로 꼽고 있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남이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한다거나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즐기고 땀흘리는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일을 찾아서 하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 그런 창의적인 자세를 가질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은 저마다 자기의 직분과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창조의 일터고 일은 각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이다. 그러므로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자연히 사회로부터 도태될 수 밖에 없으며 사회로부터 도태된다는 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같다.
물론 성격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이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과는 달리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은 서툴더라도 남이 시키기에 앞서 스스로 일을 찾아 하며 자신의 가치와 보람을 높일 줄 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듯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밝고 희망차 보이는 얼굴이 있고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냐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의 차이이다.
이제 세계는 초국적, 무국경시대가 되었다. 최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가 된 것이다. 너나 없이 모두가 적극적인 생각과 주도적인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이것만이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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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란 네 기둥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네 기둥이 튼튼해야 하듯 마찬가지로 사람도 사주가 좋아야 잘 산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운명의 길흉을 점칠 때 자료로 삼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주란 '타고난 것' '운명적인 것'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얘기하는 사주는 모두가 개개인의 노력으로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실한 기둥이 되게도 할 수가 있다.
나는 건강과 일, 가정, 그리고 가치관을 내 나름의 네 기둥(四柱)으로 본다.
사주의 첫째는 ‘건강’이라는 기둥이다.
건강해야 사람 구실을 하고 남편 노릇을 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 구실이나 노릇이란 바로 역할을 의미한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확실히 해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일’이라는 기둥이다.
누구든 일이 있어야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남에게 신세지지 아니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은 일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경제적 자립은 확실한 삶을 보장하며, 또 좋은 회사만이 많은 일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는 ‘가정’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의 최소단위이고 사회생활의 기본질서와 도덕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가정이 화목(家和)해야 세상일이 다 잘 된다(萬事成)는 말은 다소 진부하게 들리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는 더 이상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나는 경영일선에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을 강조하는데,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자세는 바로 가정에서 길러진다.
넷째는 ‘가치관’이라는 기둥이다.
가치관이란 난해하고 추상적인 어휘가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이 세상을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 행위 속에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관)를 상실한 행위란 곧 본능적(동물적) 몸놀림에 불과하다.
사주가 좋아야 인생살이가 좋아진다. 달리 말해서, 훗날 인생을 결산할 때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주를 끊임없이 긍정적인 것, 신나는 것, 적극적인 것으로 가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주가 좋은 사람끼리 모여서 함께 일하는 일터라면, 그 기업의 사주 역시 최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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