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즉 노동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일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일을 통해서 살 수있는 양식을 얻게 되므로 일은 곧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은 경제적, 생명적, 사회적, 종교적 차원의 의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의미에서의 일이란 생계유지의 기본수단이다.
직업이란 생계유지를 위한 계속적인 경제적 활동이며 일이란 활동을 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경제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흔히 일을 일컬어 생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사도 바울은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
둘째로 생명적 의미에서의 일은 우리의 몸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일한 다음에 쉬고, 쉬고 난 다음에 다시 일을 한다. 이것은 활동과 휴식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근복적인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활과 존재의 리듬이 생명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 몸도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일은 사회적 역할이요 사회적 기여이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다양한 분업의 체계를 이룬다. 다종다양한 사회적 분업을 서로 분담하지 않으면 사회는 발전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람은 일을 통해서 가족, 이웃, 사회에 봉사한다는 점도 일의 커다란 사회적 의미라 할 수 잇다. 각자가 자기 일에 대하여 강한 사명감과 성실한 태도와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직책의식을 가질 때에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의미에서의 일은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이고 하늘이 부여한 천직이다. 그러므로 일은 우리 인간에게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 건강하고 기쁨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활동할 수 있으므로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존재의 확인이다.
“일하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의 근본이다.”라고 말한 에디슨이나 “행복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먼저 일하라”던 칼힐티,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라던 고리끼 등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모두가 일과 삶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마즈시다 전기를 창업하고 동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마즈시다 고노스게(1894∼1988)는 “올바른 인생관을 갖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어떻게 일하고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라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과 확고한 신념, 즉 훌륭한 인생관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삶에서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어떠한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목표가 달라지게 된다.
물건에 값이 정해져 있듯이 사람에게도 값어치가 있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예외없이 한 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번 살수도, 지난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남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 줄 수도 없다. 인생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고 땀흘려 인생을 건설할 때 비로소 보람있는 인생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는 원동력이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늘 생각을 새롭게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은 그대로 행동과 직결되어 어떤 일을 하든 그 만큼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쁘면 ‘운명이라고 생각하자’라며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운명을 도피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100%는 아니더라도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낙관적인 사고, 협조적인 사고, 주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므로 이러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설사 실패가 따르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신감을 쉽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스티븐 코비는 주도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성공의 첫째 조건으로 꼽고 있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남이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한다거나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즐기고 땀흘리는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일을 찾아서 하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 그런 창의적인 자세를 가질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은 저마다 자기의 직분과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창조의 일터고 일은 각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이다. 그러므로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자연히 사회로부터 도태될 수 밖에 없으며 사회로부터 도태된다는 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같다.
물론 성격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이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과는 달리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은 서툴더라도 남이 시키기에 앞서 스스로 일을 찾아 하며 자신의 가치와 보람을 높일 줄 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듯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밝고 희망차 보이는 얼굴이 있고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냐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의 차이이다.

이제 세계는 초국적, 무국경시대가 되었다. 최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가 된 것이다. 너나 없이 모두가 적극적인 생각과 주도적인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이것만이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사주란 네 기둥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네 기둥이 튼튼해야 하듯 마찬가지로 사람도 사주가 좋아야 잘 산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운명의 길흉을 점칠 때 자료로 삼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주란 '타고난 것' '운명적인 것'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얘기하는 사주는 모두가 개개인의 노력으로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실한 기둥이 되게도 할 수가 있다.
나는 건강과 일, 가정, 그리고 가치관을 내 나름의 네 기둥(四柱)으로 본다.
사주의 첫째는 ‘건강’이라는 기둥이다.
건강해야 사람 구실을 하고 남편 노릇을 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 구실이나 노릇이란 바로 역할을 의미한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확실히 해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일’이라는 기둥이다.
누구든 일이 있어야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남에게 신세지지 아니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은 일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경제적 자립은 확실한 삶을 보장하며, 또 좋은 회사만이 많은 일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는 ‘가정’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의 최소단위이고 사회생활의 기본질서와 도덕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가정이 화목(家和)해야 세상일이 다 잘 된다(萬事成)는 말은 다소 진부하게 들리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는 더 이상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나는 경영일선에서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을 강조하는데,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자세는 바로 가정에서 길러진다.

넷째는 ‘가치관’이라는 기둥이다.
가치관이란 난해하고 추상적인 어휘가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이 세상을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 행위 속에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관)를 상실한 행위란 곧 본능적(동물적) 몸놀림에 불과하다.

사주가 좋아야 인생살이가 좋아진다. 달리 말해서, 훗날 인생을 결산할 때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주를 끊임없이 긍정적인 것, 신나는 것, 적극적인 것으로 가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주가 좋은 사람끼리 모여서 함께 일하는 일터라면, 그 기업의 사주 역시 최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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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칠 사장은 1968년에 결혼한 부인 최인숙 여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아들 태흔(69년생)씨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99년 11월에 서두칠 사장에게 손자를 안겨주었다.
딸 영모(71년생)씨는 국회의원 회관에 근무하고 있고, 막내 태영(76년생)씨는 ON-LINE 교육전문가(교수설계자)로 활동하고 있다.
97년 말 서울 대치동의 아파트로부터 가방하나 들고 구미로 내려가서 그 길로 수도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서두칠 사장에 대해 부인 최인숙 여사는 늘 걱정스런 마음이다.
회의에 참석한다고 서울까지 왔다가 그냥 바로 구미로 내려가 버리는 서 사장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번이라도 집에 들를 때면 그동안 마련 해 둔 주먹 된장을 비닐에 싸서 챙겨드리는 것이 가장 큰 낙이다.
서두칠 사장의 요리솜씨도 사실 부인의 주먹 된장 맛인 셈이다.
남편의 바쁜 사회생활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정을 이끌어 가는 부인의 내조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어머니상의 표본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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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사관리의 유형을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공기업이나 관료적 성격이 짙은 조직에서 이미 관행으로 굳어버린 전제적인 관리형태이다.

둘째는 전제적 관리의 상대개념으로서, 지나친 온정주의가 판을 치는 관리형태다.
나는 이것을 가부장적인 관리라고 지칭한다.

셋째는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노와 사가 함께 하는 민주적인 관리이다.

한국전기초자의 경우는 가부장적인 관리체제였다. 노사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기본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사전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만한 처리방법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없는 관리는 결국 장기파업사태를 야기 시켰고 회사의 경영주가 바뀌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노사관계라는 것이 소속인원과 그 책임자 사이의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관리자 스스로가 그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노사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노사문제는 관리자와 종업원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노사문제에 대해 방관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는 상태다. 노동관계 3법이 무엇인지, 부당노동행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일선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상황을 방치한 채 일선을 장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관리감독이라는 위계질서가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다.
많은 관리자들이 인사 및 노무 문제는 전적으로 인사,노무 부서의 관할이지 근무일선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렇듯 인사 노무관리 업무와 고유업무가 밀착되지 못하는 데에 현장 노무관리의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노사문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경영자가 용단을 내려 결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이르는 과정은 노사간의 이해가 함께 하는 협력적인 관계인데 반해, 성과를 임금으로 배분하는 과정은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대립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협력관계와 대립관계는 순환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즉, 협력과 대립 그리고 타협의 과정이 순환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순환의 바퀴를 잘 돌리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노사관계는 "이해가 상반된 사람들이 색안경을 골라 쓰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때문에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안경색깔을 같게 하거나 적어도 비슷하게 해 나가는 노력인 것이다.
이 일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공사를 하고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야 하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대화하는 훈련'이 바로 그 작업이다.
대화란 "서로 마주 대하여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서로 마주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똑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는 대화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말한 것이고,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는 일을 잘 일러 주어야 한다는 대화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란 결코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면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가 생각한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는 전적으로 윗사람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야기'는 남이 모르는 말을 들려주는 것일 때 재미가 있다. 즉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은 상대를 짜증스럽게 하고 귀를 저절로 닫히게 한다. 그러므로 좋은 대화를 하려면 많은 정보와 새로운 자료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상대방의 사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긍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들은 다 변하고 있는데 나만 자기중심사고로 편향되면 날이 갈수록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서로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다. 노사간의 대화는 서로 주고 받는 말의 양과 질이 엇비슷해야 잘 이어진다. 그 내용과 어휘도 서로 쉽게 이해되는 공통된 것으로 해야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격언을 두고 영국인과 미국인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돌이 이리저리 굴러서야 어떻게 귀중한 이끼가 낄 수 있겠는가 하는 해석이고, 미국 사람들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찾아서 굴러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귀중한 옥돌도 한 곳에 박혀 있으면 이끼밖에 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사간에도 평소 사물을 대하는 입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시각을 근접시켜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대화할 때 먼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 옳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소비 논리와 함께 부위 올바른 분배를 일깨우는 일, 근로의 귀함을 알게 하고 일을 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 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노사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직급의 관리자가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 직원의 업무배정이나 작업관리 같은 노무관리업무는 기본적으로 소속장의 책임이며 노사문제는 모든 개별 부문장의 공동소관 사항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때 바람직한 관리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서 요구되는 것이 있다.
첫째, 가치인식에 있어 정의로운 판단기준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생각과 언행에 체계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는 지도력의 유지를 위한 자기 노력과 직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실제로 관리자가 종업원들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 대화의 소재는 반드시 깊이와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에 대한 공동의 답을 구해 나가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이지만 동시에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일이 내 삶이고 삶이 곧 내 일이라고 하는 설득을 통해, 일에 미치고 그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 종사하는 모든 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성취욕을 충족하려 함은 당연한 것이므로 모두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이에 대한 성과의 평가도 공평하도록 해야 한다.
또 관리자가 직원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1대1의 대화를 통해 먼저 솔선하여 모범을 보이면서 직원들을 순화시키고 훌륭한 직장인으로 만들어 개인의 성장을 지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직원들에게 관리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리자가 되기까지 쌓은 경험과 경륜을 체계화하여 대화를 이끌어내고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발전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사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근무일선에서의 주도력과 관리자로서의 프로정신을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부서장은 개별 노사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인사노무부서장은 인사관리와 업무가 잘 되도록 제도를 보완하여 의사결정기관에서 그 집행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건의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강성 노조집행부의 명분만을 위한 무리한 요구조건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종업원을 상대로 한 기반조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전 종업원이 노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논리도 연구해야 한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노조가 요구하기 이전에 종업원이 고통스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아서 챙겨주어서 종업원들의 마음속에 '사장이 노조위원장이 됐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단결, 투쟁, 쟁취라는 구호 대신 노조가 이해, 타협, 화합, 공정분배라고 하는 목표를 내세우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해서 운영해야 한다.
당연히 노조도 혁신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시대와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탄력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 남보다 앞서는 노력이 요구된다. 사(使)가 요구하기 이전에 오히려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이미 떨어졌는데 상황타개를 위한 단기적인 노동 강도 강화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노동조합의 반응은 사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과거에 누리던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현실에 대응하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혁신에는 아픔이 따르고 그 아픔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존립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확한 진단을 하고 위기극복에 함께 나서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고 제품의 질을 향상시켜 더 많은 이윤창출을 한 뒤 그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제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관리자가 변화하는 세계 흐름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국전기초자의 경우 연4년째 단 한 차례의 교섭으로 임금과 단체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국내 최장기 파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기업이지만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분명하게 인식시켜 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변했다. 앞으로의 세계는 정보와 창조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여기에 대응할 수 잇는 전략은 우리의 지식과 두뇌뿐이다. 모두가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고 개혁과 변화의 선두에 서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업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투쟁으로 얻어내는 눈앞의 꿀 한 숟가락이 아닌, 오직 고객만족의 경영과 생산성의 향상에서 얻어지는 경쟁력만이 항구적으로 일터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일터를 가지고 있음이 곧 축복이라는 자각, 따라서 그 일터를 소중하게 가꿔가야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일터를 잃지 않는다는 평범하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를 모두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속의 모범 우량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힘없이 도산되는 운명을 맞이하느냐 하는 문제는 현재 기업에 몸담고 있는 최고경영진, 일선 관리자, 종업원 개개인 모두의 역량과 의지 그리고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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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취임이후 단 하루도 사사로이 휴일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심지어 서울로 출장을 갔을 경우, 출장업무가 일찍 끝났을 때라도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의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구미의 회사로 돌아오곤 했다.
나의 출근시간은 06:00이다. 나는 1년 365일, 시간상으로 본다면 8,760시간을 회사를 위해 살아가기로 작정했고, 그 일을 한 번도 귀찮아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나도 더러는 피곤하고, 내 가족과 오순도순 잔정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회사의 사원들에게 "혁신을 위해 우리 모두 살갗을 벗기우는 고통을 감내하자"고 해놓고 최고 경영자가 골프채나 울러메고 나돌아다닌다면, 그 모든 혁신의 구호들은 허위가 되고 만다. 따라서 '365일 전일근무' 원칙을 지켜온 것은 내가 체질적으로 유달리 부지런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회사의 상황(모든 에너지를 혁신운동으로 결집해 나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이 최고경영자인 내게 요구한 의무였고, 나는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애써왔다고 얘기할 수 있다.
나는 부임직후 상시주재(常時駐在)의 원칙을 세웠다. 단순히 다른 임직원들에게 시범을 보이자는 원시적인 차원이 아니다. 내 스스로가 최고경영자로서 항상 일의 한가운데에 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평소의 철학 때문이다. 특히 휴무시간대나 공휴일, 일요일, 새벽 등 해이해지기 쉬운 취약시간대에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지도 점검을 함으로써 간부들에게 제 자리를 지키게 하고 사원들에게도 항상 "사장이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최고경영자의 '상시주재'는 단지 사장이 매일 회사에 출근해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현대의 기업경영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스피드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한국전기초자에서는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과 지시가 12시간 안에 전 간부들에게 전파되어야 하고 24시간내에 전 사원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이러한 스피드는 경영상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 회사가 리얼타임으로 반응하는 생명력 있는 기업이 되게 하는 바탕이 된다.
우리 회사와 규모가 엇비슷한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실무팀에서 어떤 일을 추진하려면 그 절차가 복잡다단하고 시간 낭비도 심하다. 실무자가 기안을 해서 팀장 결재를 받고, 다시 전무를 거쳐서 사장에게 올라가고, 사장이 기안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 실무자에게 다시 반려되고, 또 다시 작성해서 올리고…. 이런 식이다. 더구나 사장이 회사의 사장실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 언제 '실행'에 옮겨질 것인지 기약이 없다. 이런 체제로야 어떻게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21세기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우리 회사에는 항상 사장이 있다. 그것도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임직원들의 이런 인식이 '전체가' '동시다발로'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혁신운동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일조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기업경영에 얼마나 플러스가 됐느냐 하는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 이전에, 최고경영자의 솔선수범은 경영책임자로서의 아주 기초적인 덕목이라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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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경영' 관련 코너에 가면 무수한 경영이론서들이 꽂혀 있다. 저자들 대부분이 서구(특히 미국)의 경영학자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책들에 실린 내용들은 다 좋은 얘기고 다 옳은 얘기들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술을 통해 한결같이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늘 하던대로 하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무수한 경영혁신이론들과 방법론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있어 최대의 자원은 인간이다>라는 P. F. 드러커의 격언이 유효하다면, 결국 혁신의 성패는 '사람 관리'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서구인들과 문화적 배경이나 기질이 다르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인과도 다르다. 이것이 바로 외국의 경영이론을 통째로 들여와서 적용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나는 한국인들 특유의 내면 인자와 결부된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이 제시되고 산업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음과 기(氣)와 정(情)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나는 여기에 안정감과 온기와 활력을 잘 조화시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해낼 수 있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心)은 '안정'이라는 인자와 반응해야 하며, 우리가 흔히 '끼'라고 얘기하는 기(氣)는 활력과 어우러져야 하고, 정(情)은 온기(따스함)과 합쳐져야 한다. 이렇게 心, 氣, 情이 '안정'과 '활력'과 '온기'와 만나면 상호간에 반응이 일어난다. 이 반응은 다시 응답의 형태로 이어진다.
이런 상호작용들이 모여서 세(勢)를 형성하게 되고, 이 세(勢)를 상승세(上昇勢)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거대한 강줄기의 흐름과도 같은 '밀어붙이기'의 힘(POWER)을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책상머리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과정에 얻은 귀한 교훈이다.
77일간의 격렬한 파업 끝에 회사 주인까지 바뀌는 뒤숭숭한 상황에서 나는 한국전기초자에 경영책임자로 부임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일자리를 만들려고 왔지 사람을 내쫓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고용을 보장하겠다." 때마침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거리에 넘실대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고용보장' 약속은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에 적잖은 작용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안정감은 사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서 각 가정으로 전파되었다.

이어서 바닥에 처져 있는 사원들의 기(氣)를 살려내기 위해서 꺼져 있던 용해로를 재가동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재고품을 싼값으로 처분하거나 폐기했으며, 어지러운 생산현장을 인라인(In-Line)화 하여 기계 설비가 활기차게 돌게 만듦으로써 사원들이 활력감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또한 최고경영자와의 '정분의 교류'를 위해 새벽3시에도 현장으로 달려갔고, 사장실문을 열어젖히고 사원들과의 눈높이 대화를 시도했다.
전 사원들의 마음이 안정과 결합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이것은 잠자고 있던 끼를 발동시켜, 내가 제시한 혁신목표를 향해 '한 번 해보자'는 활력으로 나타났다. 이 활력을 한층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이 다름 아닌 '온기와 결합된 情'이었다. 최고경영자가 주문한 노동강도가 대단히 고통스러운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회사에는 '혁신장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거대한 세(勢)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생산현장으로부터 "수율이 저조하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원들 사이에 일의 재미와 성취의 보람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세(勢)는 빠른 시간 내에 생산수율 향상, 근무태도 변화, 부서간의 건전한 경쟁심, 3890을 위한 전사적인 노력 등 쉽게 꺾이지 않을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렇게 물결을 타게 된 상승세가 꾸준한 밀어붙이기의 힘이 되어 오늘까지 깊고 힘차게 흘러왔고, 혁신2기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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