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재색명리(財色名利)이다. 이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죽도록 고생한다. 재색명리는 마치 천라지망(天羅地網: 하늘과 땅에 쳐진 그물)과 같다. 이 그물에 걸리면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재색명리 가운데 제일 촘촘할 뿐만 아니라 고래심줄 같이 질긴 그물이 돈이고, 그 다음에 센 그물이 색(여자 또는 남자)이다.

재색을 벗어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명리(名利)는 그 다음이다. 추명학(推命學)에서는 돈과 여자(남자)를 같이 본다. 남자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다. 돈이 많으면 여자도 많다고 본다. 돈이 없으면 여자도 없다. 그래서 '다재다처(多財多妻)'요, '무재무처(無財無妻)'이다.

그러나 돈이 많은 팔자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본인의 기질이 약한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피곤한 삶을 살게 된다. 이를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고 한다. 많은 돈을 감당하려면 인내력, 판단력, 포용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심약하고 섬세한 사람이 돈이 많으면 반드시 시달린다. '재다신약'에게 있어서 재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된다.

본인도 강하면서 돈이 많은 사람은 '재다신강(財多身强)'이다. 이렇게 되면 돈과 여자가 많아도 너끈하게 감당한다.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 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이런 유형에 속한다. 정 회장은 1980년대 후반 청문회에 나와서 "이제까지 나 원망하는 여자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재다신강'은 여자가 많아도 별로 스캔들이 없다.

'재다신약'은 어쩌다 한번 이성을 사귀어도 스캔들로 비화된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서는 재벌가에서 이성문제로 인한 사단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암묵적으로 '일부다처'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림없다. 시대가 바뀌었다. 다재(多財)라고 해서 다처(多妻)를 취했다가는 당장에 이혼소송을 당하고,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위자료로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혼하면 경영권마저 흔들릴 수 있다. '다재다처(多財多妻)'라는 추명학의 공식은 시대변화에 따라 이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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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있다면, 동양에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있다. 로마제국 이래로 서양의 전략가들이 제국경영의 내공을 쌓기 위한 필독서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꼽았다면, 한·중·일 한자문화권에서는 '삼국지'였다. '전쟁사'가 공통점이다. 전략이란 것이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는 나오지 않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삼국지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적벽대전이다. 적벽대전이 얼마나 인구에 회자되었으면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라는 문학작품까지 남겼겠는가! 이 적벽부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판소리 '적벽가(赤壁歌)'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중국영화 '적벽대전 1·2'가 삼국지의 수많은 전투 가운데 조조와 주유, 제갈공명 연합군이 맞붙은 적벽대전을 소재로 삼은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적벽대전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그리고 인사(人事)라고 하는 삼재(三才)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전투였다. '동남풍'이라고 하는 천시, 강에서 치러진 수전(水戰)이었다는 점에서 지리, 그리고 불세출의 전략가 제갈공명과 명장 주유가 연합하여 드림 팀을 이뤘다는 점에서 인사의 묘용을 보여준 사례였다.

삼국지 독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필자도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제갈공명이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동남풍 대목이다. '적벽대전 2'에서 과연 이 동남풍 대목을 어떻게 처리하였는가가 영화 관람의 포인트였다. 그러나 실망이었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부분이 대폭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공명이 붉은 흙으로 3층의 칠성단을 쌓는다고 나온다. 1층에는 하늘의 28수(宿) 모양에 맞추어 깃발을 꽂는다. 2층에는 주역 64괘에 맞추어 깃발을 꽂는다. 3층에는 4명이 각기 닭 털이 달린 장대·칠성 호대(號帶)·보검·향로를 들고 있도록 하는 배치이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생략되어 있어서 유감이었다. 황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영화감독마저 사실주의에 짓눌려서 동양의 유구한 상상력을 배척해 버린 결과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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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에 미국 애리조나 주의 새도나에 갔던 적이 있었다.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대인 바위산에서 나오는 기(氣)가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경관을 즐기려는 은퇴한 백만장자, 기를 받으려는 명상가,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새도나에는 동서남북 네 군데가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다.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잠을 자기만 해도 특별한 영감이 떠오른다고 해서 당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화가·음악가·명상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서로 이곳에서 텐트를 치려고 경쟁을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미국의 부자가 돈을 주고 이곳을 몽땅 사들였다. 사들인 다음에 땅장사를 하였는가? 그 부자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고 순서를 지키게 했다. 물론 공짜로 번호표를 나눠줬다. 이 부자 때문에 질서가 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서울 서소문동 대양빌딩에서는 '씨알재단'이라는 사무실이 있다. 씨알재단은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1890~1981)와 그 제자인 함석헌(咸錫憲·1901~1989)의 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연구를 좀 해봐야 할 인물들이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없다. 유명 강사를 불러다가 10번 강좌를 듣는 데 10만원을 받는 회비만 가지고는, 공부하고 토론할 사무실도 마련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변리사 한분이 시원하게 돈을 내놓았다고 한다. 재단에 3억원을 내놓고, 다석학회에 10억원을 내놓았다. 재단에 내놓은 3억원은 본인의 10년치 회비를 한꺼번에 내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구두쇠도 많다. 몇년 전에 서울 인사동에는 한문 공부 모임이 하나 있었다. 한달 회비가 20만원이었다. 이 회원 가운데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의 부인도 있었다. 자기 집에 일이 있어서, 이 부인은 강의를 몇번 빠졌던 모양이다. 강의료를 내는 월말에 이 부인은 "많이 빠졌는데 다 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돈 씀씀이는 이렇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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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 나를 매료시켰던 배우는 이소룡이다. 그를 통해서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소룡의 카리스마는 그의 실제 무술실력에서 나왔다. 진짜 무술고수였던 것이다. 재인박명(才人薄命)이라던가! 그는 서른셋 나이로 1973년 일찍 죽어 버리는 바람에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미국에서 태권도 대부로 일컬어지는 '준 리'(이준구·78) 선생을 만나 이소룡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64년 LA에서 가라테 챔피언 대회가 있었다. 여기에서 이준구는 이소룡과 함께 초청받아 시범대련도 함께 하며 서로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소룡은 24세, 이준구는 33세 때였다. 같은 유색인종이라 서로 공감대도 있었다고 한다.

시범대련을 할 때 이소룡은 손놀림이 대단히 빨랐다는 것이 이준구의 회고이다. 둘이 팔씨름도 해보았는데 팔 힘도 아주 강했다. 이소룡은 상대적으로 발보다는 손을 쓰는 수기(手技)에 강했던 것이다. 태권도는 발차기 동작이 많으므로 손보다는 발을 많이 쓴다. 태권도는 족기(足技)에 강점이 있는 운동이다. 대련이 끝난 뒤에 이준구는 이소룡에게 발기술과 함께 송판 깨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이소룡은 이준구에게 손기술을 서로 알려주는 우정을 나눴다.

이번에 이소룡에게 무술을 전수해준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개봉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엽문은 영춘권(詠春拳)의 대가였는데, 영춘권은 발보다는 손을 많이 쓰는 권법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영춘권을 전수받은 이소룡은 당연히 수기가 발달될 수밖에 없었다. 이소룡의 전매특허인 쌍절곤도 손놀림이 특징이다. 이처럼 손을 비롯한 몸동작이 빨라야만 무술고수가 될 수 있다.

몸이 빠른 무술고수들은 대개 키가 170㎝를 넘지 않는다. 덩치가 너무 크면 아무래도 작은 사람보다 스피드가 떨어진다. 무술의 핵심은 스피드에 있는 것이다. 이준구의 키도 165㎝이고, 몇 년 전에 작고하신 범어사 청련암의 고수였던 양익 스님도 이쯤 됐던 것 같다. 기천문의 창시자 박대양도 170㎝가 안 된다. 이소룡도 역시 170㎝가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술의 고수들은 키가 작은 단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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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등산(登山)이요, 하나는 입산(入山)이다. 등산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길이라면, 입산은 삶의 궁지에 몰렸을 때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산길이다. '통즉등산(通則登山)'이요, '궁즉입산(窮則入山)'인 것이다. 잘나갈 때는 등산을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는 입산을 한다는 말이다. 이집트 왕자인 모세가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골산(骨山)인 시나이 산으로 간 것은 입산이요, 주말마다 산악회에서 버스 대절하여 산에 가는 것은 등산이다.

오늘날 한국의 중년남자들이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리면서도 그나마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 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발 1000m 내외의 산들이 등산하기에는 최적이다. 나무와 약초가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산들이다. 3000m를 넘어가는 산은 춥기만 하고 사람을 압도한다. 3000m 넘어가면서부터는 '죽은 산'이다. 미국의 로키산맥은 너무 웅장하여 사람을 압도한다. 사람이 놀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한국은 적당히 놀기에 좋은 '살아 있는 산'이 국토의 70%나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등산 천국의 지리를 갖추었다. 이는 천혜의 축복이다. 한국이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산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보통 바위산을 5~6시간 정도 타고 나면 대략 1주일분의 에너지를 섭취한다. 내가 다녀본 고단백 에너지 코스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평균 6시간 걸린다. 이 코스의 특징은 계속해서 바위 계곡을 타고 간다는 점이다. 설악산의 단단한 화강암에서 나오는 화기와 계곡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기가 이상적으로 버무려져 있는 산길이다. 6시간 정도 올라가다 보면 몸 안의 탁기는 다 나가고, 싱싱한 생기가 충전된다. 그 충전이 한 달은 가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금강산을 찾았던 소태산(少太山·1891~1943)은 '금강현세계(金剛現世界) 조선갱조선(朝鮮更朝鮮)'이라고 예언하였다. 지금은 비록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금강이 세계에 드러나니 머지않아 조선이 거듭나게 된다는 희망적인 예언을 하였던 것이다. 복잡한 상황일수록 산에 자주 가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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