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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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 처음 이 책을 읽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날은 아마도 주말이었고 오늘처럼 비가 내렸을 것만 같다. 주말인데다 비까지 내리다니 나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금보다 젊었다는 것 외엔 지금보다 어땠을지 갑자기 단 한줄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기분을 망치지 않기로 한다. 블루 스크린이 언제 뜰지 모르는 하드 디스크를 하루하루 연명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블루 스크린이 뜨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나는 '작고 어눌하게' 갖다 붙인다.  


좀머씨! 차에 타세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좀머씨! 어서 타시라니까요! 날씨도 이런데! 집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좀머씨 어서 타시라니까요, 글쎄! 몸이 흠뻑 젖으셨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러니 나를 좀 그냥 제발 놔두시오!

그러니 나를 제발 좀 그냥 놔두시오!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좀 놔두시오!

그러니 나를 그냥 좀 제발 놔두시오!

그러니 나를 그냥 제발 좀 놔두시오!


좀머씨는 '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코딱지 류의 몇몇 장면을 낄낄 웃으면서 읽을 권리는 있지만, 그게 전부였던 내 과거를 반성한다. 거기서 그쳤다고 나를 학대할 것까진 없지만, 유년의 따뜻한 성장소설 이란 말만은 제발 좀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자살과 죽음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이 책을 오직 자살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는(그래, 한번쯤 이라고 해두자) '자살'에 대해 이 책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생각이 날리가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 본다. 작가가 함부로 쓴 소설일리가 없다는 생각은 있다. 그 생각에 기대어 이 소설을 함부로 읽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비가 그친 주말의 늦은 밤을 시퍼렇게 채우고 있다. 속상하고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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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6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네 관계의 아웅다웅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순진한 관점으로 퉁쳐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갈등이 당연한 것이라면 나는 왜 그것을 안일하게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것인가.
이제 게으름은 그만할 때도 되었다. 뇌가 게으름에 더 맛들여져서 완전히 맛이 가기 전에 이 뇌를 좀 어떻게라도 해놔야 한다. 갑자기 나를 자극하는 이웃이 있어서 도파민 같은 게 막 솟구치고 그렇다. 감사한 일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고 댓글을 대신해서 몇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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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좋아 저것 싫어 - 눈치 보지 않고 싫다고 말하는 행복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쁘게 말해 철부지이고 좋게 말해(어 어떻게 말해야 좋게 말하지?) 그래, 좋게 말해도 철부지인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빛을 발한다. 가속화되는 것이다. 별로 없던 통찰이 점점 생기면서 나날이 깊어진달 수도 있고 일찌감치 예사롭지 않았던 감성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게 되는 수도 있고 암튼, 점점점점 남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사노 요코가 그런 사람일 것만 같다.


이 책은 알라딘 '지인'이 보낸 선물이다. 받는 입장의 내가 마음의 짐이 전혀 없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부채감을 덜고자 내 이기심을 발동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나로선 이런 방식인 것이다. 짧은 인사를 뒤로 하고 돌아서면서도 내내 두고두고 마음 속에서는 이런 말이 맴을 도는 것이다. 언젠가 저도 당신에게 내 마음을 선물하는 날이 있을 겁니다, 라고.(아 이런 말 넘나 창피하고 오글거리지만)


사노 요코의 문장은 흔히들 즐겨쓰는 방식을 벗어나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산문집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보통은 아무리 가볍고 사소한 소재일지라도 그걸 놓고 줄기차게 지지고 볶는 편 아닌가. 사노 요코의 글쓰기 방식(사유의 방식이겠지?)은 이런 면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세상 어디에 갖다놔도 점핑이 가능한 사람이 여깄구나. 어제는 고등랩퍼(고딩학생)들이 기존랩퍼들과 합작해서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사노 요코가 생각났다. 그녀의 산문 한꼭지를 가져와 조금 손을 보면 하나의 번듯한 랩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 뭐 그런 생각.   


더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쫓기면서 살아온지 꽤 되었지만 나름 좋다. 이건 싫고 저건 좋고 등등의 그런 기준이 생기는 것만 같다. 좋다. 좋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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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6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6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엉망이고 진창이다. 입이 열 개가 아닌 것에 감사한다. 책을 읽지 못하면 일기를 쓰게 될 것이고 일기를 못쓰면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돈을 벌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그게 두려워 술을 마셨다. 너무 마시게 되었다. 어떻게 된 최면이 너무 쉽게 걸리니 세상이 자신있고 내 기분도 자신있게 된 것이다. 오가던 필름이 몇 차례 끊기면서 그사이 뇌가 두부처럼 부서진 것 같다. 일그러진 두부를 회복하기 위해 자위가 필요하지만 이젠 그것도 약발이 없다. 읽기와 쓰기는 나를 망쳐 왔다. 듣기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말하기인가. 세상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니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건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정확히 발음해야 한다. 우중충해선 안된다. 밝고 당당한 발음과 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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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7-03-22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고 나니 문득 이승우 소설 ‘전기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ㅎ

소설의
‘나‘는 실직 상태고, 바깥일을 하는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하다 보니 이제 완연히 이력이 붙은 남성인데

어느 날, 아내의 강력한 요청으로, 고객에게 책을 읽어 주러 가잖아요.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어떤 대저택으로.

그곳으로 향하는, 그 ‘나‘의 심사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려나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파이팅!

(근데 뼈다귀해장국이 먹고 싶어여 어떡하져....)

컨디션 2017-03-22 23:22   좋아요 1 | URL
아 이승우 소설에 그런 게 있었군요. 책 읽어주는 남자.. 대저택에 살면서 자력으로는 책읽을 상황이 안되는 노인이(맞나요) 느낄 불행감조차 낭만적인 거 아닌가 싶고..^^

저는 술 때문에 인생 망쳤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싫은가봐요.ㅎ 너무 당연한 욕심인데 그 당연한 욕심을 이젠 두려워하기까지 하니.ㅠㅠ
예. 파이팅 해야죠. 한수철님이 파이팅 하라면 엉망인 발음으로도 자신감이 붙을 거 같아요.^^

뼈다귀해장국 좋죠. 소주 땡기게 하시네ㅎㅎ 저는 갑자기 보쌈이 먹고싶은데 일말의 책임을 지시든가요. ^^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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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완결판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렸다고 하길래, 나는 이 작가가 13년을 꼬박 설국을 붙들고 있었나 싶었으나 알고 보니 1935년(36세) 첫 단편 '저녁 풍경의 거울' 발표했고 그 후 이 작품의 소재를 살려 발표한 단편들이 모여 연작 형태의 중편이 되었으며 1948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출간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20년 후(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것이긴 하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은 사실 알고 있었다는 말을 굳이 말해야 하는가, 뭐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뜯는다. 


노벨문학상 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내로라 하는 상의 권위에 기대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좀 비참하다. 그러니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자는 입장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상을 받을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테니까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하고 그것이 그렇게 어렵게 찾아헤맬 일이 아니었을 때 독서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쾌감은 조금 있었던 것도 같지만(간질간질한 그런 느낌?) 사실 짜증이 더 많았다.


비약이 워낙 심해서 유치찬란하게까지 느껴지는 대화를 보고 있노라니 내 처지가 왜 이리도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아니 그보다 먼저 무섭다는 생각. 결말은 또 어떻고. 방화인지 아닌지 그것도 모르지 않나. 고마코가 "죽일 거예요' 라고 느닷없이 말하는 통에 이 작가는 그런 결말로 나아갔던가. 설마. 그렇다면 뭘 숨기고 있지? 무위도식 사쿠라 같은 사마무라 따위 관심 없고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 혹시 아시는 분? 다시 처음부터 차분히 읽으면서 사건일지 적듯이 꼼꼼하게 인물의 동선과 대화를 분석해 보라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돈을 좀 주면 할 수 있다. 꽁꽁 숨겨놓은 작가의 저 비약적으로 열받게 만드는 재주를 나는 머리 싸매고 잠시 음미해 보는 것으로 이 리뷰를 마칠 것이다. 내 수준이 여기까지 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고는 결국, 설국 전체를 관통하는 서정의 실체적 아름다움과 맞닿는 그 무지막지하게 쓸어져 내리는 허망함까지 도달해 보란듯이 지금 창밖엔 폭설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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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3-1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양 사람들이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신비로움이 저 정도였구나-생각했어요.
정작 동양 사람도 이해 못하는 정서라니-ㅎㅎ

컨디션 2017-03-18 19:42   좋아요 1 | URL
아, 그런 것도 있겠군요.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주로 서양권이다 보니 그들이 느끼기에 설국이 뿜어내는 그 아슴한분위기가 얼마나 낯설고 또 신비했을까 하는.. 그런 관점을 지적해주신 거군요.^^

눈 덮인 작은 마을의 풍경과 온천장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여관 그리고 게이샤로 이어지는 세계의 묘사가 남성의 낭심(낭만이라고 써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서ㅎ)을 자극하는 훌륭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설국은 적어도 남성독자에겐 가슴 시린 아름다운 소설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렇게 본다면 이해 못할 정서도 아니긴 하구요.ㅎㅎ

책한엄마 2017-03-18 20:08   좋아요 0 | URL
낭심..ㅋㅋㅋㅋ
너무 적절한 단어 선택이에요.
최고 최고!!^^

mysuvin 2017-03-2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리뷰입니다. ㅎㅎ

컨디션 2017-03-26 13:45   좋아요 0 | URL
아, mysuvin님!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