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도저히 새벽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엏는 시간이다. 여태 안자고 뭐했느냐, 신고식을 치러라. 내면의 목소리가 조르고 조르니 난 그저 못이기는 척 해야한다. 이토록 기념비적인 불면이 언제 또 오랴. 간략하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 지우개가 갈짓자로 게걸음을 치다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활약상을 보여줄 게 틀림없다.
안자고 뭐햏냐면, 책을 읽었다. 찔끔찔끔과 홀짝홀짝 사이에서 말이다. 녹색평론 정기구독자를 패밀리로 둔 덕분에 나는 녹평을 거의 읽지않게 되는 부작용(이라 쓰고 작용으로 읽겠다)에 처하게 된지 꽤 되었다. 이런 내가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꼴랑 12쪽 분량의 글을 읽었다. 이문재의 `나를 위한 글쓰기 강좌(3)-관계의 발견, 의미의 탄생`이다. 이 글에서 그는 지그문트 바우만(들어보긴 했다)이 명명했다는 `액체근대` 라든가 최근 신경과학 분야 최고의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는 `거울신경세포`와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책에 나오는 `눈동자`의 의미 등등을 잠깐 언급했다. 이는,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써제끼다 보면 잘못된 양상의 글쓰기가 되기 쉬우니 당연히 경계해 마땅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인용한 이론적 예시인 셈이다. 관계지향성(타자와 함께하거나 타자에 대한)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글쓰기를 얘기하면서 막판에 결정적 팁을 던진다. 이른바 글쓰기의 3단계(생각하기-쓰기-고치기)와 3요건(명확한 문장ᆞ문단 구성ᆞ새로운 의미)이다. 이를 실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주제문(핵심만 추린 단문형태)을 정하는 것과 동시에 개요를 짜라는 것이다. 마음 속 주제가 없다면 의미를 상실한 빈껍데기가 되기 쉽고, 개요(흐름이 보이는 밑그림)도 없이 무작정 덤벼들면 길을 잃는 건 시간 문제라서 퇴고는 커녕 이렇다할 초고 조차 손에 넣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아, 이럴려고 한 게 아닌데.. 이런 식이라면 신고식 두 번 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잠 안자고 한 게 한 개 더 있다. 식물도감을 펼쳐놓고 내가 본 풀과 꽃들을 하나하나 대조해서 이름을 맞춰봤다.(요즘 이거 하느라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조지기도 한다)
이때가 아니면 안되는 거라서, 이 봄이 다 가기전에, 여름이 오기 전에, 봄의 풀꽃들이 다 지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라서 나의 하루하루는 꽉차도록 바쁜 와중에도 오장육부가 벅차도록 즐거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