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빛나는 순간 푸른도서관 6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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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아이를 기숙사에 들여 보내고 나올 때는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일주일을 조마조마하며 보냈었다. 툭 하면 뭐가 없다는 전화에 여차하면 저녁식사 시간에라도 물건을 건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석주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이해된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석주엄마처럼 아이에 올인하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기숙사에 보내고 오히려 무척 편했다. 아침마다 일찍 밥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부딪칠 일도 그만큼 줄어드니 서로 사이도 좋아졌다. 게다가 학교에서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을 수 있어 마음도 편했다. 다만 처음 데려다 주고 나올 때 무척 걱정이 되었을 뿐이다.

 

  지오가 뜬금없이 석주로부터 추풍령역으로 나오라는 메일을 받고 그곳으로 가는 동안 둘의 회상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처음에는 석주와 지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계도를 파악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석주랑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메일을 받은 지오가 오히려 황당해하는 처음과 달리 읽어나갈수록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구이기 전에 경쟁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고등학교 상황에서 석주와 지오 정도라면 충분히 친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딸아이가 이야기하는 학교 생활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보통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이야기할 때는 친구관계나 부모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주를 이루는데 여기서는 그보다는 내면의 성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물론 모범생인 석주가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저지를 일이니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힘들게 합격한 대학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갈 때 갈등을 겪긴 하지만 그 정도 갈등은 새 발의 피다. 그러니까 여기서 부모와의 갈등은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 석주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지오는 부모와의 갈등이 조금 더 깊긴 하다. 그렇더라도 다른 책들에서는 어떻게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을까 내지는 나는 그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그 보다 인물들의 내면에 좀 더 치중할 수 있다. 이런 게 진짜 청소년소설이 아닐까 싶다. 극적인 대립을 유지해서 긴장을 유도하는 것보다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것들이 나와 연결고리가 있어서 더욱 남의 일 같지 않게 읽었던 책이다. 기숙사에 들여 보낼 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마침 자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지오의 자퇴가 남의 일 같지 않았으며, 일 년에 한 번씩 내려가는 영동이 배경이라 더욱 그랬다. 가끔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내가 가 본 영동역과 그 주변은 책 속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역 주변에 괜찮은 식당이 있었던가. 역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식당만 기억날 뿐이다.

 

  이금이 작가는 그 많은 책을 쓰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매번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지 또 다시 감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책 내용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내공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솔직히 사람 사는 일은 다 비슷비슷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을 모델로 이야기를 쓴다는 얘기는 곧 소재가 중첩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금이 작가는 틈새 소재를 어찌 그토록 잘 잡아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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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 18일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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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길거리에서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는 사람, 지나가는 남자들의 머리를 길다며 자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 누가 믿기나 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 있었던 일이고 불과 30여 년 전이라고 한다면. 물론 나도 직접적인 세대는 아니다. 그때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몰랐고, 시골이라 그런 걸 볼 일이 없었다. 다만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 오빠가 대학생이었는데 한동안 집에 내려와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아마도 계엄령이 내려졌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의 배경이 된 5.18민주화운동 전후였겠지.

 

  이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책이나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다루고 있지만 그림책으로는 못 봤다. 사실 유아나 초등 저학년에게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나. 전국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있었던 한국전쟁조차도 먼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가 아니고서는 광주라는 곳이 어디인지 감조차 없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그 때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해 못할 것이라고 해서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이란 게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림책답게 접근을 하고 있다. 사실이나 아픈 부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메타포를 배치함으로써 뭔지 모르지만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말로 설명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머리속에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어린 남자아이들 대개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총을 무척 갖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은 절대 사주지 않는다. 대신 누나가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들어주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가 갖고 있는 총을 더 부러워한다. 당연한 결과다. 진짜처럼 생긴 총과 나무젓가락 총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군인들이 진짜 총을 들고 다니고, 총을 쏘고,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총이 어떤 것인지, 왜 부모님이 사주지 않았는지. 만약 군인들이 진짜 총을 들고 다니는 것만 보았다면 더 갖고 싶어했겠지만 사용하는 방식을 보고, 더구나 누나도 거기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총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무젓가락 총마저 버리게 된다.

 

  표지를 펼치자마자 다양한 총 그림이 잔뜩 나오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이라면 거기서 한참을 머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아이가 그랬듯이 총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면 적어도 동경할 장난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주인공의 누나가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다. 그런데, 나라면 이 책 속의 부모처럼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부모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이야기했지만 딸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못 나가게 할 작정이었다면 밤새 지키고 있던가 했겠지. 세상에는 용기있고 괜찮은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우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자유도 그 사람들 덕분이다. 곧 있으면 다가오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이하여 희생자들에게 감사와 함께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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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째 나라 높새바람 30
김혜진 글.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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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눈에 보이거나 가능성 있는 것만 믿는 성격 때문인지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는 읽기가 어렵다. 작품배경을 스스로 상상해 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탄력이 붙으면 손을 떼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도 전편을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술술 읽혔고, 심지어 뒷부분이 궁금해서 밤 늦게까지 읽었다. 읽는 동안 각 나라를 상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는데 그런 내 자신이 어찌나 기특하게 느껴지던지. 전 같으면 그거 상상하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서 덩달아 책 읽기도 힘들었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판타지 소설의 배경은 현실에서 접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나라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씩 바꿨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빈땅 왕(솔직히 말하자면 허수아비 왕을 세운 현자가 맞지만)이 불의나라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서 그들은 생각도 감정도 없는 돌덩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부분을 보면 그 옛날(뭐,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면서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오버랩된다. 모르긴해도 당시 사람들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감정도 있고 인격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르는 척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빈땅의 현자처럼.

 

  공중도시의 아이라서 날개가 있지만 꿈의 사막에서 자랐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참이 자신의 본연의 이름인 차미시나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까지의 모험이 길게 이어지는 이 책은 완전한 세계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이 사실은 꿈의 사막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소망상자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상큼한 설정은 잠시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꿈이라는 단어를 소망과 동일하게 쓰는 것만 봐도 일이 있어 보인다. 남의 꿈에 간여할 수 없고 꿈 꾼 이의 의지를 존중해야 하지만 명은 소망상자에 있는 이의 소망을 이루어주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소망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봐야겠다. 참이 공중도시로 가게 된 이유보다 그 이유가 이야기의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또한 공중도시의 페카와 투랏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인간을 빗댄 듯하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종종 잊고 산다. 최초존재에게 자연의 이치를 묻고 도움을 구하는 대신 자신들이 발견한 뜬돌을 이용하여 공중도시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페카는 결국 호된 대가를 치르고 만다. 독자는 참의 모험을 통해 페카의 계획이 무모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 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페카처럼 행동하거나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경우가 꽤 있다. 과학의 힘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만 봐도 알 수 있다.

 

  파라도가 참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우자 참은 단지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처음 꿈이 사막에서 나올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 본문 중간에도 뮬의 시선을 통해 모험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정작 참의 내면의 성숙은 많이 느끼지 못하겠다. 처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읽고 나서도 길게 여운을 느꼈던 <끝없는 이야기>의 감흥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 책도 읽는 동안은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읽고 나자 주인공이 진짜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느껴진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주인공의 모험을 정신없이 따라다니느라 내면의 모습에는 귀를 기울일 여유를 주지 않았던 게 아닐런지. 그래도 이만한 판타지 동화가 있다는 게 어딘가. 4편 모두 상당한 두께에, 많은 나라가 나오지만 구성이 탄탄해서 서로 잘 맞아 돌아가는 이런  판타지 동화를 김혜진 작가의 책 외에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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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로 간 따로별 부족 일공일삼 21
오채 지음, 이덕화 그림 / 비룡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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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는 의논할 일이 있거나 상황을 알릴 일이 있으면 나한테 알린다. 한번은 그 일로 남편이 마음이 많이 상했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자세한 일은 기억이 안 나지만 중요한 일을 남편한데 알리지 않고 우리 둘이 의논했다는 요지였다. 남편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 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남편은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이 요청한 일을 처리하는데 왜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느냐는 불만이었던 셈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조차 지금도 아빠한테 전화하는 것은 용건이 있을 때뿐이고 엄마한테는 그냥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많이 하는 걸 보면 대개의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남편 입장에서는 배신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빠와 사이가 좋은 집보다 엄마와 사이가 좋은 집이 훨씬 많아 보인다. 준이네도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보통('평균적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아빠와 사이가 좋은 가정에서 불편해할까봐 조심스럽다.) 가정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무게감에 쉬는 날도 없이 회사를 나가지만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다지만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나중에 부인과 자식들이 아빠와 서먹해하고 함께 한 시간이 적다고 불평하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겠지. 준이네 아빠가 딱 그런 식이다.

 

  그러나 준이 엄마가 마련한 캠프에 간 후로 많이 변했다. 하긴 변하지 않았다면 이런 동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솔직히 준이 아빠는 보통의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준이 아빠 입장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면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준이가 서술자니까 우리는 준이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인도에 가서 감자 세 개를 식량으로 받은 것조차 아들에게 양보하지 않고 혼자 두 개를 홀딱 먹어버리는 아빠를 보고 누가 아빠에게 면죄부를 주겠냐 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아빠는 당신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남편은 안 그렇다. 말로는 애들 먹으라고 잘 못 먹었다는데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양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준이 아빠는 보통의 아빠 모습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어쨌든 무인도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 둘은 서로 상대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동안 서먹했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책은 아이가 읽는 것보다 아빠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동화를 읽으며 아이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듯이 다른 어른들도 그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직접 이야기 나누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가족끼리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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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그놈 마음이 자라는 나무 34
세실리아 에우다베 지음, 성초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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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키우면서 매 시기마다 고비를 맞는 듯하다. 유아기 때는 그에 걸맞는 고민이 있고 초등학생 때는 또 그 때에 어울리는 고민이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 앞에서 하소연을 하면 반응이 어떨까. 모르긴 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말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 경험으로도 지나고 나서 보니 당시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만, 한 가지만 빼고. 그것은 바로 큰아이가 사춘기를 격하게 보낸 초등 6학년 때다. 지인 중 한 분이 그랬다고 한다. 아이의 사춘기를 지내보지 않고는 아이를 키웠다고 말하지 말라고. 나는 심하게 보내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유독 내 아이는 유별난 사춘기를 보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면 우리 엄마가 절대 동의 못하시려나.

 

  사춘기는 예나 지금이나 이곳이나 다른 곳이나, 한 마디로 말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견디기 힘들지만 어쨌든 통과해야 하는 과정인가 보다. 이렇게 남미에 있는 작가도 사춘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는 그 안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도무지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한다. 여기서는 파블로에게만 보이는 괴물이 나타나서 파블로를 괴롭힌다. 그것은 아마도, 파블로 내면에 있던, 표출하지 못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싶다. 괴물이 나타난 시점만 봐도 그렇다. 파블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괴물이 나타나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거울에서 괴물이 나온 순간도 실은 파블로가 거울을 주먹으로 깬 순간이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매 순간 괴물이 나타날 때는 파블로가 아빠와 갈등을 겪거나 친구, 혹은 선생님과 소통하지 못할 때다. 괴물 때문에 이상한 것들을 먹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도 파블로 자신이 행동한 것이었다.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겪든 안 겪든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블로도 아빠와 마주하면 읽는 우리가 긴장될 정도로 편치 못한 관계다. 서로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준다면 그 정도로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솔직히 파블로가 계속 이야기하는 괴물의 존재에 대해 파블로의 아빠뿐만 아니라 나 또한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도 괴물을 보았고 그 괴물로부터 파블로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쯤에서는 작가에게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었다. 괴물은 그저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파블로와 아빠가 다른 방식으로 화해할 것이라 믿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물론 그것이 진짜 괴물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상징이겠지만, 여하튼 내가 생각한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거쳐야 더 단단해지는 법인가 보다. 파블로와 아빠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그동안 자신만 바라보던 눈길을 상대에게 돌림으로써 상대의 아픈 부분이 보이고 연민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이 싹트고 사랑으로 단단해지는 것이겠지. 사춘기를 겪는 모든 가족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만 눈길을 주지 않고 상대에게도 눈길을 준다면, 그들의 아픔이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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