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할머니 사계절 아동문고 89
오채 지음, 김고은 그림 / 사계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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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책은 대개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책의 화자는 봉지라는 개이며 주인공은 할머니다. 어린이인 은지는 할머니의 손녀로 등장할 뿐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봉지와 할머니의 공통점은 늙었다는 점이다. 즉, 노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 더 나아가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쯤되면 어린이가 과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될 법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봉지가 꽤 재치있는 개이기 때문이다.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 도시의 자녀들 집에 돌아가며 머무는데 은지네 집이 마지막이다. 오메 할머니라는 별명은 할머니가 말할 때마다 접두사로 '오메'를 연발하기 때문에 봉지가 붙여줬다. 오메 할머니는 봉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이의 노인들이 그렇듯 개는 개답게 밖에서 키워야 하고 사람의 필요에 의해 기르는 동물일 뿐인데 봉지는 집안에서 곱게 자라는데다 은지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오메 할머니는 봉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굴러 들어온 돌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나마 봉지가 있어서 오메 할머니는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을 만나러 갈 때도 언제나 봉지를 데려가고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말벗이 되어주는 건 봉지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서로를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봉지가 아픈 것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일 게다.

 

오메 할머니는 은지네 집에 있는 동안 동네 할머니들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정작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아들 내외가 힘겹게 사는 모습을 보고도 도움은 커녕 짐이 되는 것만 같아 괴롭다. 결국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데 이것이 정말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만다. 봉지도 늙어서 이가 빠지고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은지를 통해,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 봉지를 통해 우리 시대 노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주제가 너무 무겁다고, 열 살만 넘어도 엄청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를 화자로 설정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공감하기 힘든 노년의 문제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를 화자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간 작가의 혜안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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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교에서 왕기철이 동화는 내 친구 84
백하나 지음, 한지선 그림 / 논장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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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린이 책을 너무 등한시 했나 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작가 이름이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소개에서 함께 썼다는 책을 검색해 보니 품절이거나 절판이다. 게다가 그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다. 심지어 백하나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절판된 책의 서지정보는 없고 그나마 품절도서인 <엄마 없어서 슬펐니> 의 저자 소개로 미루어 '농사 짓는 예비 동화작가 백경원'이 바로 이 책의 저자와 동일인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작가의 첫 어린이 책이라는 말이므로 기억해둬야겠다. 

 

도깨비가 인간과 어울려 살기 시작한 지 백 년이 되는 어느 날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어린이 책 소재로 도깨비가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조력자의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한다. 도깨비 왕기철은 누가 봐도 딱 도깨비처럼 생겼다. 게다가 어찌나 말썽을 부리는지 선생님도 '네가 그 유명한 도깨비 왕기철'이냐고 물어볼 정도다. 물론 누가 뭐래도 기 죽을 왕기철이 아니다. 또한 대개의 말썽쟁이 아이들이 그렇듯이 왕기철도 학교 가는 걸 무지 싫어한다. 꼬마 도깨비들이 진짜 자기를 찾기 위해 꼭 가야만 하는 곳이 학교이므로 왕기철도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다닌다. 그런 왕기철이 학교를 가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모르겠으나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횡당보도 줄이 평소엔 9개지만 10개가 되는 날은 신기한 일이 벌어진단다. 비록 말썽쟁이이긴 해도 순진한 왕기철은 매일 횡단보도 줄을 센다. 물론 그러면서 학교도 꼬박꼬박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줄이 10개로 변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학교로 간 날, 새로 오신 선생님과의 첫 대면부터 범상치 않다. 칠판에 선생님에 대한 소문대로 그리다 보니 괴물이 되었고 그 괴물이 살아나 왕기철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횡당보도 줄이 10개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일어날 법한 사건인 듯 싶다. 아이들이 그림이 살아난 것에 놀라는 게 아니라 왕기철이 잡아먹힐까봐 놀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칠판 괴물 사건을 대충 수습한 선생님이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인 토괭이를 데리고 온다. 절대로 물을 주면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물론 아이들에게 '절대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묘하게도 '꼭 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법이다. 거기서 또 나서는 것은 당연히 왕기철이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이 왕기철을 말리지만 나중에는 대개의 아이들이 왕기철과 한 배를 탈 것이라는 점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 토괭이가 물을 먹고 괴물로 변해서 책까지 모두 먹어치워 버리자 나타난 선생님의 대처가 더 재미있다. 아니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선생님의 질문법에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야? 토괭이한테 물 준 사람."

왕기철이 손을 번쩍 들었어요.

"전데요. 전 딱 한 잔밖에 안 줬는데요."

"주지 말라면 주지 말아야지. 토괭이는 물을 마시면 잠들어 버려. 너무 많이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토괭이가 죽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뭐, 그런데 정말 한 잔만 줬어?"

"네."

왕기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빙글거리며 대답했어요.

"그럴 리가. 그럼, 음, 물 한 잔만 준 사람 손들어 봐!"

(중략)

아이들은 서로를 곁눈질로 흘끔흘끔 바라보다 슬금슬금 손을 올렸어요. 여기에서 쑥, 저기에서 쑥, 마치 새싹이 올라오듯 쑥쑥 손이 올라왔어요.

(54~55쪽)

 

왕기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한 잔만 줬으니까. 그렇게 한 잔만 준 아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만약 선생님이 "또 누가 물 줬어? 물 준 사람 손들어 봐."라고 했다면 너무 평범한 선생님의 모습이라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질문함으로써 아이들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아이들을 진정 이해하는 선생님일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해졌고, 그래서 뒷부분에서 선생님의 모습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다. 

 

그렇다면 왕기철은 어떨까. 괴물로 변한 토괭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먹었던 책을 똥으로 싸 놓자 선생님이 왕기철에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뒷정리를 시킨다. 똥을 치우는 건데 왕기철은 "예!"라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대개의 아이들 같으면 똥을 치우는 일에 이처럼 시원하게 대답할 리가 없다. 이것만 봐도 왕기철은 적어도 자기가 벌인 일을 남에게 전가하는 치사한 도깨비는 아닌 듯하다. 이쯤에서 독자는 두 가지를 생각할 것이다. 왕기철이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저렇게 쉽게 대답하는 걸까와 책임감이 강한 아이구나라고. 결론은 둘 다이다.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책임감이 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으니까. 만약 똥 속에서 건진 책을 제대로 씻어서 가져왔다면 현실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작가가 동심천사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셈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인 부분이 많이 엿보인다. 내면의 모습과 외면의 모습이라던가, 소문에 대한 자세라던가, 사람이 되기 위해 인내할 줄 알아야 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하며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저학년 동화를 읽으며 밑줄 긋고 싶어진 적은 처음이다. 또한 판타지적 요소가 잔뜩 들어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곰으로 변한 왕기철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 버렸던 책을 씻는 장면에서도 만약 이성적으로 따진다면 책을 물에 씻으면 다 망가지므로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왕기철이 사는 시대의 책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모처럼 재미있고 의미있는 저학년 동화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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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황금성 초승달문고 37
이정아 글, 김재희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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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들은 예쁘다. 단,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을 때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꼬리를 잡거나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방해하고, 수업도 안 끝났는데 점심 시간에 몰래 집으로 가서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고, 친구들이 싫어하는 별명을 불러서 울게 만드는 아이가 있더라도 이야기로 읽을 때는 그저 재미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아이들 둔 부모라거나 그런 아이를 가르치게 될 선생님이라면 과연 마냥 재미있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처럼 말썽꾸러기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친구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황금성이 그렇다. 위에 이야기한 것 모두에 더해 입학 첫 날부터 할머니 선생님은 싫다고 대놓고 말하고 수업 공개 때 아이들이 모두 선생님 옷 예쁘다고 칭찬할 때 스님 같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왕놀이를 하다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발로 화장실 문을 차고 손으로 두드리고 흔들면서 난리를 치'는 아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황금성은 인간적이다. 1학년답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다른 친구들 이름을 가지고 놀려서 특단의 조치로 황금성 별명을 황금똥이라고 지어 부르자 울면서 친구들을 놀리지 않기로 하는 것만 봐도 가끔 말썽을 부리지만 귀여운 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또 황금성이야'를 달고 살지만 결국 사탕을 주며 귀여워하는 것이다.

 

또, 황금성은 정이 많다. 건호의 왕관을 말도 안하고 가져가서 망가트리지만 다음 날 똑같은 걸 두 개 구해와서 같이 놀기도 하고 선생님 퇴임식 때 꽃다발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용하고 싶을 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 뿐이다. 화자인 건호는 자신의 성격과 반대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는 모습이 부러워서 황금성을 그처럼 좋아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건호가 황금성이 하자는 대로 행동하느냐면 그것은 또 아니다. 왕관을 가져갔다고 싸우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제 갓 입학한 1학년들의 천방지축 학교생활을 다룬 이야기이자 아직 배울 게 많고, 변화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들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건호 할아버지의 능청스런 대처와 정년 퇴임을 앞둔 선생님의 정감 넘치는 모습, 솔직한 학부모의 마음 등이 양념처럼 들어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마지막에 건호가 말대꾸 하는 모습은 황금성에게 물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긴 하지만 건호도 조금씩 당당하게 변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 너무 지나치지만 말거라, 건호야. 새로 온 젊은 선생님의 등장으로 또 다시 시끌벅적한 교실이 펼쳐질 것 같은, 이어지지 않을 뒷이야기가 괜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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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말 더듬이 입니다 - 2014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마음이 자라는 나무 6
빈스 바터 지음, 김선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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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동화다. 뭐, 말더듬는 아이가 처음에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았다가 노력해서 극복한다는 이야기겠거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자전적인 이야기란다. 그러면 이때부터 관심이 조금 더 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훈계조 내지는 교훈조로 흐를 가능성이 큰데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 줄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약간의 프리미엄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4년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작품이라니 일단 작품성은 인정받은 셈이니 즐길 일만 남은 셈이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려다 보니,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찾아보니 '나'로만 나왔을 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기로 치고 있다니 자기 이름을 직접 거론할 일은 없을 테고 보모는 작은 신사라고 불렀으니 이름이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이름에는 발음하기 어려운 'ㅂ'이 두 번이나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하튼 바터는 그냥 보았을 때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입을 여는 순간 다르게 본다. 왜냐하면 심하게 말을 더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을 시켰는데 이처럼 심하게 더듬으면 계속 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난감하긴 하겠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바터는 더욱 신경을 쓰고, 그럴수록 말을 더욱 더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도 바터에게는 래트라는 친구가 있다. 말더듬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름을 바꿔 불러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친구다. 래트가 방학에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는 사이에 바터가 대신 신문배달을 해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터가 던진 강속구에 입술이 터진 래트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대신 신문배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바터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말더듬는 증상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던 바터가 신문을 배달하며 만나는 사람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특히 스피로 아저씨와의 만남은 바터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집안 거실을 가득 메운 책을 보고 지적 갈증을 느끼게 해주었고 보다 깊이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멘토가 된다. 워싱턴 부인은 이제 막 어린 티를 벗고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뭔지 모를 감정을 느끼게 해주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을 넘어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신문 대금을 받으러 갈 때마다 TV만 쳐다보고 있어 TV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폴이 사실은 청각장애인이라 독순술을 배우느라 그랬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문배달 하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라티 아저씨 때문에 가정부 맘과 바터가 죽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 또한 바터에게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된다. 가정부는 백인 아이와 같이 있을 때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던가 동물원에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이 아직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지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그런 제도에 대해 살짝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책의 주제를 벗어나니까.

 

주인공은 말더듬는 것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극복해서 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지역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아마 신문 배달을 하며 겪었던 일이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싶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며 그때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이 바터의 내면을 튼튼히 받쳐주었다는 것을, 신문 배달을 했던 4주가 지난 후 바터가 부쩍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어도 제목과 맞지 않는 듯해서 원제를 보니 'Paperboy'다. 나중에 보니 표지에도 적혀 있다. 그제서야 내용과 제목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읽으면서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바터의 현재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대처하는 방식이다. 우리네 드라마나 동화에서 흔히 보이는 반응을 생각했는데 전혀 의외다. 아마 우리 동화 같았으면 그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되어 방황하다 결국 화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방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고마워한다. 사건의 축에도 못 끼는 것을 보며 또 한번 문화차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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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낌 좋은 글이네요. 읽어봐야겠어요

봄햇살 2015-08-17 10:55   좋아요 1 | URL
표지는 좀 촌스럽지만 내용은 좋더라구요.
 
정답을 알려 줄게 라임 청소년 문학 13
케이트 메스너 지음, 이보미 옮김 / 라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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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당황해하는 꿈, 누구나 한 번쯤 꿔봤을 것이다. 또한 정답을 알려주는 연필이 있으면 하는 희망을 누구나 가져봤을 것이다. 시험이란 우리에게 그토록 중압감을 주는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어린이책 중에서도 그런 소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간혹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외국 동화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책을 읽어갈수록 소재는 비슷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어디 풀어가는 방식 뿐인가. 그들이 중점을 두는 방향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것이 바로 문화차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에이바는 시험만 보려고 하면 앞이 캄캄해져서 공부한 것의 반도 풀어내지 못하는 아이다. 어찌보면 매사에 걱정이 너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연히 보잘 것 없고 너무 평범한 연필이 사실은 마법 연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동화에서 그런 연필은 전적으로 시험을 볼 때만 사용되고 알아서 정답을 결정하기에 결국 그것으로 시험을 잘 봐서 처음엔 기분이 좋지만 차츰 불안해하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연필은 문제를 써야만 답을 알려주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문제를 쓴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알려 준다. 일종의 영혼이 알려준다고 할까. 나중에 보면 왜 그런 식으로 답을 알려주는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우리 동화와 다른 점은 여기부터다. 에이바는 그것을 시험 볼 때는 쓰지 않고 다른 질문에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 에이바의 친구 소피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언제 할인하는지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애는 누구인지 등을 묻는 것이다. 여기 아이들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우리처럼 크지 않기 때문에 굳이 마법 연필을 그처럼 양심을 속이는데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주제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법 연필은 요양원에 계신 외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그곳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비밀을 알아내어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쯤되면 우리와 접근 방식이 달라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법 연필을 통해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이바는 엄마를 건강 검진을 받게 하기 위해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모험 캠프에서 모든 과정을 완료한다. 아주 작은 것까지 사서 걱정을 하는 에이바가 모험 코스를 전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처음에는 엄마를 위해서였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힘든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마법 연필의 정체를 알고 아쉽지만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로, 아니 원래 함께 있어야 할 사람에게로 보내는 용기 또한 아름답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모든 것이 걱정투성이인 에이바가 외할아버지를 의연하게 떠나보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의젓하던지. 앞으로도 걱정을 사서하는 성격은 변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소중한지, 어떻게 헤쳐나가는 것이 현명한지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성장하는 것일 테고.

 

처음에는 마법 연필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했다. 으레, 우리 동화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론 또한 그랬다. 어린 독자들은 에이바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배려하는 것을 보았으며 때로는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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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소재지만 사회분위기와 생각의 차이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것같네요. 이런걸 문화차이라 하는거겠죠?
오늘 덕분에 책을 두권이나 장바구니에 넣어요

봄햇살 2015-08-17 10:57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문화차이가 이런 거구나를 느꼈지요. 우리나라는 드라마에도 출생의 비밀이 꼭 들어가잖아요. 그게 있어야 이야기가 전개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