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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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에 이끌려 책을 선택할 때가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종신검시관]도 그랬다.CSI나 본즈에 탐닉되어 있던 내게 종신검시관이라는 제목은 전문적인 검시영역을 뜻하는 것 같았다. 보기좋게 예상을 비켜갔지만 책은 재미있었다. 

동일 작가의 책인줄 모르고 [살인방관자의 심리]라는 제목만으로 또 책이 골라졌다. 고르고보니, 동일 작가의 책이었다. 그래서 한결 안심이 되었다. 전 시합에서 홈런을 친 선수라면 다음 시합에서도 그는 믿어볼만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의 심리였다. 

여러편의 단편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흥미로운 단편은 따로 있었다.  뒷편쯤에 실려 있던 [살인방관자의 심리]보다는 [진상]이라는 제일 먼저 실린 단편이 꽤 괜찮았다. 

가장인 시노다 요시에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경찰이었다. 
그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순간 긴장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광분하고 전율한다. 드디어 잡힌 것이다. 10년전에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드디어 잡혔다. 그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아무도. 10년이라는 세월은 아들을 가슴에 묻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 속으로 사람을 밀어넣는 무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5세에 죽은 요시히코는 장남이었다. 참고서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복부를 두군데나 찔린 채 과다출혈로 죽었다. 그때는 요시히코보다 어렸던 여동생 미카는 얼마전에 결혼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렸다. 미카의 남편은 요시히코의 절친이었다. 

범인은 30세의 전기공 스즈키 노부유키라고 했다. 현재 30살이면 그때 당시 그는 20살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는 요시히코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고 덜미를 잡아 돈과 시계를 빼앗고 칼로 찔러 죽였다고 했다. 게다가 요시히코는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는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그 친구....미카의 남편이다. 

요시오는 범인에게로 향하던 울분을 사위와 딸에게로 퍼붓는다. 몰랐던 아들의 이중적인 일면에 대한 울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들을 두고 홀로 도망쳐 입닫고 살았던 사위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르겠다. 그들 가정은 그렇게 단란함이 무너져갔다. 

10대의 어린 소년과 20대의 껄렁껄렁한 한량같은 나쁜놈이 자식을 죽였다고 생각하니 요시오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딸은 남자에 미쳐 자신의 남편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요시오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이었다. 

진상은 생각보다 단순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역시 히데오라고 무릎을 칠만한 작품이기도 했다. 단편 중에서 이것 하나만 건지더라도 결코 후회할리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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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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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표지만 보면 영락없는 추리소설,공포소설, 탐정소설 중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하고 짐작하게 된다. 거무튀튀한 옆의 붉은 색에 가까운 어두운 핑크빛 제목.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회색빛 햇살. 이 모든 것이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찬란한 착각이었음은 곧 밝혀진다. 전혀 그런 장르와는 동떨어져있다. 

아키히로는 출근 길에 작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 실수는 큰 구멍이 되어 그의 인생에 검은 점을 남겨 버렸다. 그는 도망가 버렸다. 살해현장에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전국민에게 수배범으로 알려져 버렸다. 사실 그는 마츠가나를 죽이지 않았다. 목격자일 뿐이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일까.

아키히로는 사회부적응자였다. 학창시절부터 그는 왕따소년이었고, 직장에서는 선배뿐만 아니라 후배에게까지 치이는 그런 인물이었다. 특히 선배 마츠나가는 남을 상처입히면서 즐거워하는 인간의 전형이었고 후배 와카기와 더불어 그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화를 낼 수 없는 인간이 아니다보니 아키히로는 와카기에게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오해의 도화선이 되어 마츠나기를 죽인 범인으로 오인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늘 같은 전철을 타고 다니던 마츠나가가 선로에 떨어져 죽는 아침 아키히로가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꽤 가까운 거리에. 사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긴 했다.

당황한 나머지 현장에서 도망친 아키히로는 곧 혼마 미치루의 집으로 숨어든다. 혼마 미치루. 그녀는 3년전 시력이변으로 완전히 앞을 볼 수 없으며 어린 시절 이혼한 어머니와는 연락두절에다가 작년 6월에 뇌졸중으로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집에서의 칩거 생활. 남과 어울려 살아가기 부적합한 인간 둘이서 매일매일 함께 한 공간에 거주하는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끼는 여자와 들키지 않아야 하기에 숨죽인 남자. 어느 한 순간 서로의 존재를 서툴게 확인하면서 그들은 당황하기 보다는 함께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건이 해결되고 아키히로가 범인이 아님이 증명되었지만 그 둘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사회 속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변하려는 희망이 엿보인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노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키히로는 미치루의 눈이 되어주고자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미치루는 혼자서도 밖을 나다닐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오츠이치가 전달하는 감동은 의외성에 있다. 잔인하거나 슬프지 않으면서도 애잔하게 만드는 주인공들과 급해피엔딩으로 치닫지 않는 현실감 있는 결말.  살아가면서 어느 것이 더 나쁜가를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어느 것이 더 나은가로 바꿀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내재된 소설과의 만남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고 전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했던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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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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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은 당신의 서비스데이입니다."

라고 생전 본적도 없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 말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씬이다. 하지만 그 사람 말대로 그 하루가 운수 좋은 날처럼 무조건 뭐든지 잘 되는 날이라면...어제 꼬였던 일들조차 오늘은 매끄럽게 풀어져 있다면...좋아해야할까? 두려워해야할까?

운수좋은 날이라는 소설 같다면 두려워해야 할 것이고,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느낌이 든다면 좋아해야할테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처럼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나타난다면 말이다. 

악마 사타나는 기밀인 "서비스데이"에 관한 정보를 함부로 흘리고 다닌다.  야마구치에게도 그랬다. 5월 16일 서비스 데이를 맞은 사람은 1231명, 야마구치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어제 명퇴권고를 받았던 그에게 오늘은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는 날이었다. 회사를 구할 수 있었고, 미인의 시선도 받아보고....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서비스 데이를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다. 서비스데이를 되돌려달라고. 자신도 모르게 빌어버린 소원으로 죽은 570명을 되살려달라고. 하느님이 무슨 슈퍼맨인 것처럼. 그는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해는 366일이 되었고, 570명은 죽었다 살아났으며 원래대로 명퇴한 야마구치는 비디오 대여점을 열게 되었다. 

착한 일엔 반드시 그 끝이 있다고 했던가. 비디오 대여점은 대박이 나고, 그 앞에 다시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이유를 알려준다. 그가 서비스데이와 바꾼 것이 무엇이었는지...

작은 감동. 이 단편은 눈 앞의 오늘을 위해 내일의 좋은 것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오는 것만 같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올테니 성실한 오늘을 살아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도쿄 행복 클럽] , [창공 괴담], [기합 입문],[푸르른 강가에서]등등이 실려 있지만 역시 가장 눈길이 가는 이야기는 [오늘은 서비스데이]일 것이다.  너무 교훈적인 것은 재미가 떨어지는데 묘하게도 서비스데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도록 만든 작가의 힘이 실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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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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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카나에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백]의 다음 편.
[고백]이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면 다음 작품들은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필력이 살아있다면 다음 작품들 역시 매력적일 것이다. 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기다린 것은 새로 몰두할 작가였다. 그리고 [속죄]가 번역되었다. 

그녀의 속죄는 이언 매큐언의 작품과는 다르다. 어린 소녀의 잘못으로 어긋난 운명을 맞이했던 비운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작 [고백]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들려주는 15년 전 범죄는 소녀들이 얽힌 범죄였다. 다만 고백에서는 "재수가 없었을 뿐.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겐 그럴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던 등장인물들이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였다면 속죄에서는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두 나의 잘못이야"라고 자책하며 살아온 4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운명이 잔인하게 엇갈렸을 뿐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 명은 살해되었고, 4명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엮어졌다.

에미리는 도쿄에서 왔다. 집앞에 나가면 5분 이내 모든 것이 펼쳐졌던 편리함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향해야 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그것이 그녀의 두번째 불행의 시작이었다. 첫번째 불행의 시작은 출생의 비밀에 있었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던 중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채 죽었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에. 집에 있던 프랑스 인형처럼 가녀리고 숫기없던 사에는 에미리의 시체와 남겨졌고 풀어헤쳐진 에미리가 불쌍하게 느껴져 그애의 옷을 간추려 주었지만  이 날의 정신적 상처로 인해 결혼할때까지도 여성이 되지 못했다. 겉만 자란 소녀인채 에미리의 사촌에게 시집갔지만 그는 변태성애자였고 결국 남편을 죽였다.

마키.수영장에서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고 학생들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를 저지했지만 결국 언론은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 일이 그녀가 학부모 임시총회를 열게 된 계기이며, 그자리에서 15년전부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건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후회와 함께 왜 남자를 저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유카.  형부의 아이를 뱉 유카는 출산직전이다. 어릴적부터 병약하면서도 영악스러웠던 언니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치 못한 채 자란 유카. 그녀에게 잘해준 어른은 딱 한 사람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따뜻하게 손잡아주었던 경찰관 아저씨였는데, 그 때문인지 경찰관에게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품게 된 유카. 형부가 경찰이라는 사실과 언니에 대한 반항심이 불러일으킨 그 하룻밤이 출산이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하지만 유카도 결국 속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형부를 죽여버렸으니까.

아키코. 남자같던 아키코에게 에미리는 함께 공유할 것이 많은 친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죽어버렸다. 비참하게. 그리고 아키코의 인생도 변했다. 히키코모리처럼 은둔생활을 하던 아키코는 오빠의 재혼과함께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새언니의 딸이 그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날 와카바를 만나러갔다가 그녀는 봐버렸다. 의붓딸 와카바를 성폭행하고 있는 오빠를. 그리고 그는 에미리의 살인범과 겹쳐지면서 아키코는 오빠를 죽이게 된다. 어린날의 트라우마는 이토록 강하게 4명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미리 어머니가 밝히는 출생의 비밀과 범인. 존속살인이라는 것 외에도 범행방법이 성폭행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4명이 걸어온 속죄의 세월이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내뱉은 분노의 저주가 그들의 삶의 행복을 앗아가버렸다. 그리고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렸다. 지독하게 꼬여진 만남과 운명들. 누가 잘못한 것일까.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가난한 남자도, 연인을 잃고 딸을 그 아버지에게 잃은 어머니도, 친구의 죽음 앞에서 비겁했던 4명의 소녀들도 다들 희생자일 뿐이었다. 

[속죄]가 아닌 [고백]이라고 이름붙어도 좋을 미나토 카나에의 후작.
이젠 그녀의 다른 책인 [소녀]와 [N을 위해서]가 서둘러 번역되길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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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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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눈알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이 또 있을까. 
오츠이치라는 작가는 출판사 북홀릭에 관심을 두면서 발견한 작가였다. 북홀릭이라는 출판사의 책들에 관심을 두면서 지난 주부터 그 출판사의 책들을 한 권씩 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리플릿 한 장 속에는 중독되는 독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광고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출판되지 않은 신간들도 있는 것 같았다. 리플릿에는 실렸으나 검색에는 뜨지 않는 책들이 절반이나 되는 걸 보면 특히 [고백]의 저자 미나토 카나에의 후속편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랬는데, [속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불행히도 아직 출판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오츠이치는 "실종홀리데이"를 읽으면서 들어봤던 이름이긴 했지만 GOTH가 읽고 싶어 검색해 본 작가였다. 그의 또 다른 책 [암흑동화]를 읽으면서 솔직한 심정은 그 동안 눈알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 정도였을 것이다. 눈. 언제나 달려있고, 언제나 끔뻑임 속에서 세상을 보여주는 신체기관. 하지만 이 신체가 이질감이 들고 언제부턴가 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정말 멀쩡할 수 있을까.

본다는 것과 보여진 다는 것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인데,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 날이었다. 

눈이 열리고 보여지는 영상이 아닌 기억된 영상이 보여지는 나날들이 계속된다면 그걸 견뎌낼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느껴지진 않는지. 분명 나의 눈이지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신체기관이라니...
오츠이치는 이런 상상들을 하면서 공포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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