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 - 안개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현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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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모르는 시대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의 이야기...

 

 

얼마나 멋진 홀림구절인지. 미미여사는 또 또 이런 멋진 문장으로 전혀 관심없었던 책 한권을 내게 떠 안긴다. 사실 사회성 짙은 문체의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빈틈없는 구성을 좋아하는 내게 [이코, 안개의 성]은 좀 뜬금없는 작품이다.

 

SF적이면서도 게임같은 환타지의 색채가 가득 찬 그런 작품이기에 읽지 않고 PASS해 버렸던 작품인데, 새로 번역된 그녀의 작품을 찾지 못해 헤매던 중 제쳐 두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였다. 재미있을까?

 

 

첫 장을 넘기면서 한 문장에 사로잡혀 버렸다. 작법서에서 말하던 "첫문장으로 사로잡아라"는 바로 이런 문장을 의미했던 것일까. 언제인지 모르는 시대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의 이야기라니...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류의 환타지 소설은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실한 장르다. SF적이면서 동화같기도 하고 또한 환타지 소설 같기도 한 이 소설 역시 다른 세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줄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어디인지 모르는...이라는 뭉뚱그려진 단어로 표현되다니. 실망해야 마땅할 이 문장이 왠지 설레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 이코는 성주가 아니다. 이코, 안개의 성이지만 그는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종이라고 표현되어야 정확한 인물이다. 그는 탄생에서부터 운명이 결정되어진 아이였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중 하나인 "나루토"처럼. 부모 없이 여우의 혼령을 몸 속에 가두고 사는 아이 나루토처럼 이코는 태어날 때부터 제물이 될 아이였다. 표식인 뿔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13살이 되면 뿔이 본성을 드러내 "제물의 때"를 알리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안개의 성에 바쳐지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70세의 토쿠사 마을 촌장은 아내 오네와 함께 이코를 맡아 키운다. 안개의 성이 선택한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부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다. 하지만 13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코는 바쳐질 때를 맞이한다. 헬보이처럼 뿔이 있는 아이지만 모두 이코를 보내는 것이 마뜩찮다. 특히 절친 토토는 이코를 위해 금지된 산행을 감행하는데 그만 돌로 변하고 만다.

 

결국 이코는 안개의 성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갇혀 있는 천사 요르다를 만나고 그들은 여왕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운명의 탈출을 꿈꾼다.

 

 

운명은 거스르라고 있는 것. 이코의 운명은 정해졌지만 그 정해진 운명을 바꾼 것 또한 이코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소설은 달콤했다. 그 어떤 사회성을 대변하는 날카로움이 아니라 동화적이고 곡선적이며 부드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미야베 미유키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 글을 썼던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단 하나의 의문이 들게 만드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코-안개의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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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의 인생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나라 요시토모 그림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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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이 발표되던 해,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그간 읽었던 다른 모든 책들은 지워버리고 내 머릿속엔 온통 키친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계절내내 나는 키친만을 끼고 살았다. 잘때도 머리맡에 두고 잠들고, 가방에 넣어다니고, 거짓말 조금 보내면 손에 본드 붙인듯 떼질 않았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질때까지 그 책은 내 사랑을 담뿍 받았다. 

그렇게 내 그리움을 함께 견뎌내준 동기같은 책이 바로 키친이었고 그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였다. 티티새, 암리타 등등 발표하는 책마다 나는 매니아가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녀의 책들과 멀어져버렸다. 아마 뒤이은 멋진 작가들의 유혹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데이지의 인생]이라...요시토모 나라의 삽화가 인상적이어서 집어들긴 했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밋밋한 그녀의 필체에 또 다시 빠져들었다. 퐁당-.

옴니버스식 단편모음처럼 보이는 이 글들은 사실 하나로 엮여있다.  아빠는 모른채 미혼모의 자식으로 자라다가 엄마마저 죽고 이모 부부에게서 길러진 "나"는 이젠 독립했다. 여유롭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주변 인맥도 있는 소소한 삶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 "나"에겐 열한살때 브라질로 이사가서 헤어지게 된 달리아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기억 속 그녀는 참 별난 소녀였다. 학교도 제멋대로 다니고 마음내키는대로 편하게 살아버리는....타인과의 의사소통보다는 언제나 자신이 우선인 별난 아이 달리아. 자유의지 100%로 싱크되어 살던 그녀가 꿈 속에 보인다. 그리고 그 꿈은 어딘지 불길했다. 

소설 내내 큰 사건은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동안 툭툭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물과 관계가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달리아가 죽엇다는 편지가 도착되었지만 공포스런 반전이 있다거나 신파스럽게 마무리 되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온 물이 흘러내리듯 자연스럽게 "그냥 그랬어"라는 식으로 종결된다. 

음식으로 치자면 간이 덜 되어 싱거운 소설의 맛. 하지만 그래서 우리의 일상과도 닮은 그녀의  수필같은 소설이 오늘 내겐 위로가 되고 있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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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외계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6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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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마음 속엔 얼마만큼의 추악함이 자리잡고 있을까. 
악의적인 주인공이 글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악의적인 인간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넓을 것인가.

[이판사판 인질극]을 보면서 그 특이성에는 감탄했지만 종국으로 치닫을수록 잔인해지며 인간이길 포기하는 두 남자의 잔혹성에 잠시 페이지를 닫아야했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사람도 눈 앞의 잔혹성에 노출되면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법일까. 이 글을 보면 인간에게 사악한 마음과 착한 마음 두 가지가 언제나 공존하고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흉악범 오고로고로는 교도소에서 아내의 재혼 소식을 듣고 아내와 자식을 만나기 위해 탈옥하지만 "나"의 집에서 현재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나"의 아내와 자식을 인실로 삼으며.

경찰도 언론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파악한 "나"는 오고로고로의 집으로 쳐들어가 인질범의 가족들을 반대로 인실로 삼아버렸다. 그리고 두 남자는 서로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대치중이다.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잘라 보내면서도....남의 아내를 겁탈하면서 그들에게서 인간의 향취는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모래가 새듯이...

끔찍한 단편이었다. 인질범의 가족을 인실로 삼는다...는 소재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선한 것이었으나 점점 그들의 미친짓이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을 매개체로 게임하듯 서로에게 상처 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끔찍했다. 

IQ가 178이나 되는 이 천재 작가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재미나게 읽었던 나로서는 이 단편들을 이해하기가 좀 난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악의 외계인]도 그러했고, 그나마 가장 평범하게 느껴졋던 [기울어진 세계] 역시 어딘지 모르게 삐딱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올바른 것을 거부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유리조각들을 찾아내려는 사람 같았다. 눈의 여왕에게서 부서져 카이의 눈에 들어간 그 조각처럼 작가의 눈에도 그 조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겔다로 인해 다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감동을 전하는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엉뚱하지만 유쾌하지만은 않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유머도 섞여 있는 그의 묘한 단편들은 그렇게 전작과 비교했을때 약간 씁쓸한 느낌을 남겨두며 책장을 덮게 만든다. 꿈에 젖기 보다는 꿈을 깨게 만드는 글들이긴 했지만 야스타카의 시선에는 균형보다는 고집이 느껴져서 좋았다. 무조건적인 순응보다는 비틀어보고 반항도 해보는 그의 작가정신이 맘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의 작품과는 별개로 참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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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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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라니. 역시 미나토 카나에는 강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캐릭터로 소설을 집필하다니...
물론 [고백]만큼 좋은 작품은 아직 없다. 첫 작품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재미면이나 완성도 면에서도 아주 좋은 출발이었기에 나는 미나토 카나에의 작품 중 여전히 [고백]을 가장 멋진 작품으로 추천한다. 

하지만 신간 [소녀] 역시 나쁘진 않다. [고백]과 [속죄]가 비슷한 구조로 쓰여진데 비해 [소녀]는 작가의 또다른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검도부 아쓰코는 중 3때 검도를 그만두었다.  강해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나 죽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라는 생각으로 특별 노인 요양 센터인 "실버캐슬"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우연히 유키의 할머니를 살리게 된다.

아쓰코의 친구인 유키는 <요루의 외줄타기>라는 소설을 썼지만 학고 선생에게 작품을 빼앗긴다. 하지만 그런 일 따위엔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 가장 신경쓰고 있는 일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니까. 치매로 인해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는 할머니의 죽음을 간절히 빌다못해 초등학교 5학년때엔 할머니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손을 다친 적이 있다. 의외의 잔혹성이 내재된 소녀로 "실버캐슬"로 간 할머니가 누군가에 의해 살아났다는 연락을 받고 불쾌해 한다. 

사오리는 처음과 끝을 담당하고 있다. 2학년때 명문 레메이칸 고등학교로부터 전학을 왔는데 이유는 친구의 죽음 때문이라고 했다. 일명 치한 누명 씌우기라는 것을 했다가 친구가 죽었는데, 사오리는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가지고 있질 않다. 


소녀들은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눈에 보이게 삐뚤어지진 않았지만 계속 살펴보면 그들이 정상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의 죽음을 바라는 소녀도  누군가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소녀도,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다고 느끼는 소녀도 정상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가볍게 보고 있다. 애도의 마음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 바로 미나토 카나에가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녀답다. 

미나토 카나에는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몰아가지 않고서도 나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인식시키는 작가다. 미야베 미유키와는 다르게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포커스를 사회와 인물이 아닌 그저 인물에게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 어딘가 조금 아쉽다. 약간 덜 조여져 느슨하게 짜여져버린 니트처럼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아쉽다. 

좀 더 촘촘했더라면 만족스러웠을까. 오랫동안 번역되길 기다린 작품이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쉬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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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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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내 별을 닦아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런 토끼가 있다면 대한민국 점술가들은 다 밥그릇을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소원성취율 100%를 자랑하는 토끼가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다. 이 특이한 발상은 동화같은 소설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방아를 휘두르는 대신 수건으로 별을 닦고 있는 것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예뻐서 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소설 처음부터 이런 아기자기함을 기대했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쌩뚱맞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노교수 아다치 선생은 토끼 정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쇼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처음 시작은 토끼가 아니라 정령의 나무에 편지를 넣어둔 어느 아가씨와 그 아가씨가 반해 있던 청년이 그 편지를 발견하면서 서로 편지 왕래를 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되기에 "아, 언제 토끼가 나오는 거야?"라고 투덜댔지만 읽다보니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되는 동화같은 소설이 바로 이 이야기다. 독일의 "사랑나무"전설에서 빌려온 일본식 "사랑나무"이야기라는데, 어느 나라에서 쓰여졌건 이 모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임에 틀림이 없다.

중3쯤 되면 이런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 같았는데, 특히나 남자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 같았던 쇼타의 바램이 얼마나 강했으면 어린아이나 믿을법한 이야기를 믿게 된 것일까. 여학생 케이가 쇼타를 알게 된 것부터가 행운은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며 착하다. 게다가 해피엔딩을 향해가고 있기에 더더욱 맘에 든다. 마음아플까 가슴졸이며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긴 제목만큼이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소설. 아이들에게 토끼 이야기만 살짝 들려주어도 많은 상상들을 하지 않을까. 꼬물거리면서.


이제껏 가장 좋아했던 토끼 캐릭터는 마시마로였지만, 마시마로만큼이나 일억광년 너머에 산다는 그 토끼도 좋아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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