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The Girl on the Train, 2016
원작 - 폴라 호킨스의 ‘The Girl on the Train, 2015’
감독 - 테이트 테일러
출연 - 에밀리 블런트, 헤일리 베넷, 루크 에반스, 레베카 퍼거슨
폴라 호킨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여자 1호는 아기를 갖고 싶어 했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러던 와중에 남편인 남자 1호의 불륜을 알게 되고 술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이혼한 그녀는 술을 끊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살아간다. 매일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척했던 그녀는 기차역 근처에 사는 여자 3호 부부를 부러운 눈으로 보는 게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1호는 여자 3호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고, 기차에서 내린다. 다음 날, 피투성이가 된 채로 깨어난 그녀에게 경찰이 찾아온다. 그리고 여자 3호가 사라졌고, 그 근처에서 여자 1호가 술에 취해 다니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말한다. 여자 1호는 여자 3호의 불륜 장면 얘기를 하지만, 경찰은 술에 취한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 여자 1호는 직접 나서기로 한다.
여자 2호는 남자 1호의 불륜 상대였다가, 이혼 후 그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하다. 남자 1호의 바람기도 잘 알고 있고, 여자 1호가 자꾸만 주위를 맴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 3호는 여자 2호 아기의 베이비시터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아이를 잃어버리고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우울해한다. 그 때문에 남편인 남자 2호와의 관계도 평탄치 않다. 그녀는 남편 대신 정신과 의사인 남자 3호에게 많이 의지한다.
영화는 여자 셋과 남자 셋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처럼 코믹하고 재기발랄한 내용은 아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침울하고 기분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여자 2호와 여자 3호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세 여자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바람에, 초반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만들었다. 비록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암울하고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지만, 그 결말을 보고 싶었다. 그들이 그 상황에 굴복하는지 아니면 벗어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초반에 보였던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바뀌고, 그들이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영화는 더 우울해진다. 세상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말이 새삼 진리처럼 다가오고, 인간이란 얼마나 사악하면서 나약한지 깨닫게 된다.
그에게 세상은 쉬웠다. 그에게 여자란 지배하고 굴복시키는 존재였다. 또한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스릴을 맛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는 인간의 자존감을 어떻게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말만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자란 그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지, 반항한다거나 자신을 버리고 가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폭력을 사용했고 급기야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타인의 생명까지 자신이 관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보면서 절로 욕이 나왔다. 아랫도리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발정난 XXX 때문에 세 사람의 운명이 꼬여버렸다. 아니, 여섯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관리도 못하고 책임도 지지 못할 거면, 아랫도리는 왜 갖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의 영향으로 무기력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으며, 자신을 가치 없다 여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자기가 저지른 잘못마저도. 그 때문에 예전에는 잘 웃고 자신감이 넘치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던 그녀였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친구도 재능도 의욕도 웃음도 모든 게 다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문득 가정 폭력으로 주눅 들어 살고 있는 여성들이 떠올렸다. 남편에게 맞지 않으려고 자신을 숨기고 꾹 참아야 했던, 모든 문제가 다 자기 때문이라는 비난에 고개를 끄덕여야했던 부인들.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의 폭력을 참아내다 반항했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한 여인들. 그녀는 다행히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 떠났지만, 현실에 있는 그 아내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특히 오랫동안 폭력을 참아내다 결국 남편을 살해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어느 할머니의 기사가 떠올라 더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