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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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는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5년 초판 발행. 1978년 개정판 발행)

  snatcher [snǽt] n. 1 날치기 ((도둑)) 2 유괴 범인; 묘 도굴꾼, 시체 도둑 3 《미속어》 순경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머니가, 아버지가, 형제 자매가, 친구들이, 학교 선생님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면? 얼굴, 목소리, 습관, 상처 자국 그리고 예전에 있던 일들까지 다 알고 있는,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다른 점이 없고 나에게만 그것이 느껴진다면? 나는 미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변해버린 것일까?

  미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마을 밀 벨리. 마일즈는 이혼의 아픔을 딛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병원을 개업한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가던 어느 날 첫사랑인 베키가 상담을 하고자 찾아온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촌인 윌마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윌마는 자신을 키워 준 숙부 부부가 바꿔치기 당했다고 주장한다.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가짜''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상담을 해오는 마을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마일즈는 동료 의사들과 이 증상을 파헤친다.

  결국 집단 히스테리라는 결론을 내리며 한숨을 돌리는 그의 앞에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하는데...

  1956년, 1978년 그리고 1993년에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인데, 운 좋게도 1978년작과 1993년작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1978년작은 너무 어릴 적에 봐서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고 딱 한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1993년작을 보고서야 ''아 그 때 본 것이 바로 저거였구나'' 하고 알았을 정도니까. 그리고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기묘하게도 같은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가 다 느낌이 달랐다. (그런 느낌을 갖게 해 준 각색가와 감독의 연출력에 잠시 경의를...)

  영화에서는 끝없는 절망과 결국 상대에 굴복하고 마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면, 소설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은 있지만 결국은 마지막 승리 -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 를 거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이나 그렇게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호러 SF 또는 사회 비판 SF라고 한다. 음, 난 사회 비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그것'' -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겠다.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될테니 말이다 - 에 의해 바뀐 인간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슬프고 기쁘고 좋고 싫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느껴서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욕망도 없고, 질투도 없다. 결국은 싸움도 없고 전쟁도 없는 사회가 되버리는 것이다.

  LOVE & PEACE are all around the world!

  존 레논의 노래 가사 같은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사자와 어린 양이 같이 뛰어놀고, 뱀과 아기들이 같이 뒹구는 그런 낙원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그런 장면을 상상하며 멋지다~ 하고 감탄하지 않았는가?

  소설의 주인공인 마일즈도 자신을 설득하러 온 죽마고우의 모습을 한 '그것'의 설득에 잠시 망설였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끝없는 인간의 빗나간 욕망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의 그런 주장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일체의 개성을 말살하고 똑같은 생각에 똑같은 꿈을 꾸는 댓가로 보장받은 평화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설은 인간의 몸을 빼앗아 살아가는 존재와 주인공의 대립을 통해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죽마고우가, 친지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동네 사람들이 낯선 타인이 되어 자신을 죄어온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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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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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적에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만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에 주인공이었다면 이렇게 했을텐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다르게 했을텐데,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재미있겠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보면 어느 틈엔가 처음 이야기와는 동떨어지진 스토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패러디를 쓰는 것이 바로 이런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당연히 책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과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다.'



  물론 그 생각은 외국 책의 주인공은 외국어를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하여간 이 책을 쓴 작가도 그런 공상을 많이 한 사람같다. 물론 이 작가는 글 재능이 철철 넘치다 못해 홍수를 이룰 정도이지만 말이다. 



  서즈데이 넥스트 (Thursday Next) 이 글의 주인공인 여자이다. 목요일에 태어났다고 딸네미에게 서즈데이라는 이름을 붙인 무시무시한 작명 센스를 가진 부모님을 가진 그녀는 영국 런던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특수작전망 문학 조사반] 이라는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물론 현대의 영국에는 이런 기관이 없다. 그녀가 사는 곳은 아직까지도 크림 전쟁이 130년이 넘게 계속되는 곳으로 [시간 경비대]가 할동하고 초능력을 지닌 범죄자들이 날뛰고 흡혈귀나 늑대 인간 같은 종족들이 활동하는 그런 곳이다. 


  가장 잔인무도한 범죄자 3위인 놈이 있다. 아케론 하데스가 그의 이름인데, 이자의 능력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해서 그 누구도 그자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서즈데이만 빼고 말이다. 


  그리고 서즈데이의 삼촌이자 괴짜 발명가인 천재 마이크로프트가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낸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안 아케론은 그를 납치해간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제인 에어'' 원본을 훔쳐간다. 그가 기계를 이용해서 제인 에어를 소설 속에서 빼내오자, 1인칭 시점인 소설 제인 에어는 엉망이 되버린다. 1인칭 시점의 글에서 주인공이 사라지면 누가 글을 이끌어 간단 말인가!! 게다가 원본에 손을 댔기 때문에 모든 번역본이나 복사본들 역시 그 영향을 받고 만다.


  이제 서즈데이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된다. 아케론을 잡고, 제인 에어를 구출해서 소설 속으로 돌려보내야 하고, 그 망할 놈의 기계를 이용해 먹으려는 군부보다 먼저 삼촌을 구해야 한다. 거기다가 늦게 깨달은 사랑도 지켜야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작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그렇다고 티나지 않게 교묘한 방법으로 글 속에 녹여버렸다는 점이다. 영국의 역사나 문학 작품에 관한 것들을 너무 긴 서술 없이 그렇다고 등장 인물의 긴 설명 없이,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사실 우리가 영국 문학이나 역사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공자가 아니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그런 사람도 배려해주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마틴 처즐릿]이 무엇인지, [제인 에어]가 무엇인지 안 읽어본 사람들도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마틴 처즐릿]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읽고 싶어졌다. 조만간 도서관과 서점을 뒤질 생각이다.)


  그리고 또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너무 철학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개념도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시간 이동물 가운데 몇몇 작품은 너무 철학적인 면이 강한 부분이 많았다. 그냥 유쾌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다. 너무 경박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그렇지만 뭐니 뭐니해도 제일 압권이면서 강추하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일 것이다. 제인 에어의 그 반전은 정말이지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될 것이다. 그걸 쓰면 글을 읽는 재미가 반감이 아니라 70%가 팍 줄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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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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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는 남성만의 전유물이다. SF는 오로지 우주선 - 또는 우주 전함 - 이 시커먼 우주를 배경으로 포를 쏘아대고 외계인들과 싸워야 한다. SF는 Space Fantasy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살포시 다른 곳을 클릭하길 바람. 왜냐면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은 여자가 썼고 또한 SF는 Science Fiction 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


  언제 들어도 설레는 단어이다. 과거로 갈 수 있다, 또는 미래로 갈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과거에 가게 된다면 깽판을 칠 수도 있고 얌전히 구경만 하다 올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있는 소재란 말인가.

  내가 기억하는 시간 여행물에서 깽판물은 당연히 영화 ''백 투 더 퓨처''였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난리치는 마이클 J 폭스의 고군분투기. 그리고 얌전히 구경만 하는 것은...기억이 나지 않고 깽판치는 시간 여행자들을 잡으로 다니는 시간 경찰물들이 있었다. 그 누구더라 장 클로드 반담이 나왔던 영화가 있었고 TV 시리즈물도 꽤 있었다. 물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소개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는 어떤 류일까?

  코믹 역사 추리 시간여행 우왕좌왕 모험물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이다.

  때는 21세기 중반, 2057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간 여행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물건을 가져올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대 기업들은 그 연구를 외면한다. 다행히 후원자라고 구한 돈 많은 노부인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여왕보다 더 지독한 여자였다. 그녀는 연구팀을 자기 사설 조사단으로 마구 부리면서 예전에 불타버린 성당 복원 사업에 필요하다고 과거로 돌아가서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을 조사해오도록 시킨다.

  주인공 네드 역시 역사 연구가로 그녀의 명령으로 1940년 영국 런던에서 주교의 새 그루터기라는 것을 찾고 있었다. 런던 대공습으로 폐허만 남은 성당을 열심히 뒤지던 그는 결국 ''시차 증후군''이라는 시간 여행자들에게 나타나는 병에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무서운 노부인의 눈을 피해서 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결국 연구팀은 그를 1888년 영국으로 그를 보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그 곳에 가서 뭔가 일을 해주고 쉬라는 것이었는데, 그가 아픈 관계로 그리고 그를 찾으러 쳐들어 오는 노부인을 피하느라 임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드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가 말 하나를 잘못한다던가 행동을 잘못하면 그것을 계기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그렇지만 아뿔싸! 결혼을 해야하는 커플을 그만 실수로 만나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덤으로 그 남자는 다른 여자 - 노부인의 증증증조 할머니인데 역시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 - 와 사랑에 빠지고 말이다. 거기다가 그 부부의 손자가 2차 대전에 연합국의 승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연구팀은 뒤집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시간 여행기계는 자꾸 오류를 내고 말이다. 뭔가 역사에 잘못된 부분이 생겻다던가 하는 이유로...

  네드와 베리티 - 역시 시간 연구팀의 일원 - 는 잘못된 만남을 가진 커플을 깨지게 만들면서 역시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아야하는 이중 임무를 띄고, 19세기에서 20세기, 21세기를 넘나드는 모험을 벌인다. 그들은 그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수다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수많은 인용구들은 각주를 읽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글의 진행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여기에 나와 있는 인용구들이 나오는 책들을 다 읽고 싶다는 의욕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19세기 영국과 21세기 영국의 대비라던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 유머가 700쪽을 넘는 분량의 글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가장 압권은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생각을 가장한 망상일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 잠깐 이 단어가 이 시대에 쓰였던가, 내가 말한 이 작가가 이 시대에 그 책을 냈던가... 가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끝임없이 중얼거리는 그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 그렇지만 적응력도 빠르고 머리 회전도 좋다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의 활약상을 그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더운 여름날을 유쾌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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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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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종말, 흔히 말하는 아마게돈을 다룬 이야기들은 다들 음울하고 분위기 칙칙한 공포스러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오멘]. 그 암울하고 호러스러우며 세상의 종말이 닥칠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주었던 책은 이후 등장한 종말 이야기의 대명사였다. 666이라든지 악마의 자식이라든지...하여간 엄청난 인기를 얻어 영화로도 만들어져 수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해서 교회나 성당으로 이끌거나, 즐거움에 만세를 외치며 파티를 열게 하였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달랐다. 책 뒤의 소개글을 보고 매료되버리긴 처음이었다.



  ''이제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볼 수 없다. 모차르트도 없다. 초밥도 없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영원히 저 위에 계시라 하고 우리는 그냥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노라, 아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 멋진 징조들이라니... 세상에 종말이 왔을때 일어난다는 징조들이 멋지면 어떡하자는건가! - 너무도 유쾌하고 풍자와 패러디 그리고 사회 비판이 적절히 섞인 멋진 글이었다. 무조건 섞어 찌개가 아닌, 재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훌륭한 일품 요리라고나 할까?


  이 글의 첫 부분은 아담과 이브가 추방당한 직후, 그들을 꼬신 뱀 - 그 이름도 유명한 크롤리 - 와 천사 아지라파엘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 나무에다 화살표를 그어놓고 커다란 글씨로 건드리지 말 것이라고 해놓다니, 그다지 치밀하다고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왜 그 나무를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놓든가 멀찍이 떨어뜨리지 않았느냔 말야. 정말이지. 그 분이 뭘 계획하고 계신 건지 궁금해지잖아." 



  어쨌던 세상으로 떨어진 크롤리와 역시 같이 온 천사 아지라파엘은 오랜 세월동안 끈끈한 정을 가지고 땅따먹기 시합을 벌인다. 11년 전, 드디어 세상을 멸할 운명을 타고난 ''마왕, 왕을 몰락시킬 자, 용이라 불리는 거대한 짐승 (너무 길어서 이하 생략)''이 태어난다. 크롤리와 지옥의 마왕들의 치밀한 계획하에 그 아이는 오멘에서처럼 유복한 집안의 아이로 바꿔치기될 ''뻔'' 한다.


  왜 ''뻔''하냐고? 


  실행을 맡은 행동 대장인 수녀의 실수로 아이가 다시 바꿔치기 당하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A와 B만 바꾸는 것인데 A와 B와 C가 서로 바뀌는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물론 그것도 모르고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는 협정을 맺어 운명의 아이로 착각한 다른 아이 - 이름도 무시무시한 워락 - 을 열심히 교육시킨다.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운명의 날이 되어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네 명의 천사와 지옥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가 있다면 ''마왕, 왕을 몰락시킬 자, 용이라 불리는 거대한 짐승...(생략)''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모른다는 것! 덕분에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는 각자의 상관들에게 협박을 받으며 그 아이를 찾아 나선다. 물론 그 아이는 아주 평범한 동네에서 조금은 특별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에 기록된 인류 최후의 날... 



  유쾌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통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읽은 책이다. 두 명의 작가 중에 누가 무신론자이고 누가 유신론자인지 모르겠지만, 그 둘의 조화가 적절히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가볍다거나 심각한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부분도 있었지만, 그 단점조차 충분히 무마할 장점이 너무도 많은 글이다.


  한없이 키득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의 존재 이유같은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무리가 전혀 없는 전개라던지. 서구 현대 문명사회를 빗댄 풍자라든지 서바이벌 게임하는 곳을 지나다가 크롤리가 비비탄을 모조리 실탄으로 바꿔버리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어. "라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 그리고 네 명의 종말을 예고하는 천사들이 미사일 기지 앞에서 "난 이런 걸 상상하지 않았어. 철사줄이나 가지고 장난치려고 몇 천년이나 기다린 게 아니라고. 이런 건 도저히 극적이라 할 수가 없잖아."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오토바이 폭주족인 천사라던지, 다이어트 식품을 만들어 기아를 일으키는 천사, 무기 밀매를 하는 천사 그리고 신의 뜻을 배달하는 공처가 우편 배달부 - 그가 못가는 곳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수다장이 수녀회의 막아버리고 싶은 입을 가진 수녀님들 같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등장 인물.


  뛰어난 네이밍 센스. 이건 원작으로 봤으면 더 감동을 느낄 것 같다. 주석으로 해석된 것을 봐야 이해가 갔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제일 압권인 것은 역시 인물들의 대사일것이다. 재치와 위트가 철철 흘러 넘치다 못해 강이 되어 흐르는 대사 처리는 엄지 손가락을 위로 쳐들게 만든다.


  예를 들면



  "그래 댁들이 지옥의 천사들이란 말이지?"

  "어느 지부에서 왔는데?"


  그가 말했다.


  계시록 6장.


  흰옷의 젊은이가 덧붙였다.


  "2절에서 8절까지"


  (네 명의 천사가 고속도로 폭주족과 나누는 대화)



  물론 더 많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몽땅 베낄 수는 없어서 여기까지...


  마음껏 웃고 골똘히 생각하게 만들었던, 정말로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오늘은 크롤리처럼 퀸의 노래를 들으며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신의 섭리가 무엇인지, 과연 아지라파엘이나 크롤리의 말처럼 그런 것인지...그리고 어린 아담 - 원래 예정된 운명의 아이 - 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종말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저 책에서 종말의 징조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모두가 지금 현재 우리의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하긴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말세야, 말세"를 입에 붙이기 시작했으니, 지금이 말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조금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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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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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펜윅 공국은 북부 알프스에 있는 나라로 계곡 셋, 강 하나 그리고 산 (이라고 해봤자 높이 60M)이 하나 있는 길이 8km 폭 5km의 아주 작은 나라이다. 여의도보다는 크고 서울시의 한 개 구 정도의 크기라는데, 정말 작다...
그 나라의 유일한 수출품은 바로 와인! 총 인구 4500명의 공국은 그 수입으로 자급자족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국민이 농부이고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너무 작고 지리적으로나 자원면으로나 보잘 것 없어서 다른 나라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가는 -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 그랜드 펜윅 공국에 엄청난 일이 닥쳤다. 바로 인구가 6000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자급자족하던 생활에 적신호가 켜진 것!! 희석당 - 와인에 조금만 물을 타서 팔자는 사람들 - 과 반희석당의 대립은 심해지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국을 다스리는 22살난 대공녀 글로리아나는 어디서 돈을 빌려 공국민을 먹여 살리나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책략가이자 삼림 경비 대장인 털리의 조언을 받아 모두가 놀랄 만한 대응책을 발표한다. 바로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거예요. 미국은 평화 협정에 서명만 하면 곧바로 어제의 적을 구하기 위해 식량이며 기계, 피복에 돈, 건축자재에 기술 원조까지 줄줄이 이어진다는 거에요. 돈도 신용도 없는 나라로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다음에 완전히 패배하는 것 이야말로 수지맞고 확실한 방법이 아니겠어요? 전쟁을 벌이고는 곧바로 항복을 하자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 글로리아나 대공녀


  그렇다면 명분은? 다행히도 그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확실한 명분도 있었다. 바로 그들의 유일한 수출품인 그랜드 펜윅 와인의 짝퉁을 미국의 한 기업에서 만들어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헐값에 말이다! 결국 만장 일치로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그렇지만 만사가 그렇게 순조롭게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선전 포고는 관리의 실수로 장난으로 여겨져 무시당하고, 기다리다 지친 그랜드 펜윅은 결국 결사대를 보내서 미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로 한다. 완벽하게 지기 위한 전투말이다. 털리를 대장으로 한 결사대는 배를 타고 - 공국에는 비행장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배도 빌린 것이었다. - 14세기 이후로 전쟁의 ㅈ 자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은 사슬 갑옷과 활을 들고 미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한편 미국에서는 코킨츠 박사가 원자 폭탄을 능가하는 Q 폭탄을 만들어 낸다. 폭발과 가스로 대륙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 가공 할 위력을 지닌 폭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니 엄청나게 배꼽잡는 상황의 연속 속에서 그랜드 펜윅의 결사대는 코킨츠 박사와 Q 폭탄을 고국으로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손에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세계는 숨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어로 된 제목은 [The Mouse That Roared]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던가?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은 쥐의 으르렁에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었다.

  1955년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사라진 소련과 아직도 건재한 미국의 냉전을 풍자하고 있다. 그 당시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군비를 확장하고 더 좋은 - 여기서 좋다는 의미는 사람을 많이 죽인다는 의미이다 - 무기를 서로 먼저 만들어 내려고 애쓰던 때였다. 그런데 미 육군 원수의 말을 빌면 공수부대 40명만 있으면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탄을 가졌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엄청난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그 작은 나라에 좌우지되는 강대국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였다. 서로를 의식하는 소련과 미국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튀어볼려는 영국 그리고 프랑스... 각국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이 마치 잘 그린 캐리커쳐를 보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편은 정말... 대박이었다.

  그랜드 펜윅의 존경받는 철학자이자 원로이자 삼림경비원 보조인 피어스의 입을 빌어서는 약자와 강자, 약소국과 강대국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폭탄을 만든 코킨츠 박사의 입을 빌어서는 멍청한 정치가들을 비판하며, 각국 원수들의 모습에서는 견제하는 세력간의 다툼을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젊은이, 과학자들을 욕하지 마시오. 차라리 과학자들을 조종하는 모든 나라의 통치자들을 욕하시오. 자기들끼리는 평화에 합의하지 못하고, 그 결과 우리 과학자들을 파괴자의 역할에 가담시키는 통치자들을 말이오. 전쟁이 과학을 그 도구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었으며, 인간의 지식을 힘들고도 어렵사리 결합시켜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이오." - 코킨츠 박사


  계속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다가, 마지막 장의 반전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평화란 무엇일까? 


  과연 평화는 상대를 압도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지켜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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