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환상문학전집 13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이매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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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Baron Munchausen

  작가 -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삽화 - 귀스타브 도레

 

  어릴 때, 세계 명작 동화 전집이 있었다. 30권짜리였는데, 웬만한 세계 명작은 다 들어 있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라, 어린이용이었다. 거기서 지금도 생각나는 아주 웃긴 귀족 아저씨의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뻥을 잘 치는지, 읽으면서 이정도 거짓말이라면, 국보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는 그냥 웃긴 얘기라고 넘겼다. 다른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으니까.

 

  그러다가 황금가지에서 완역본이라고 나온 것을 보고는 냉큼 사긴 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읽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 때는 아마 추리 소설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다 읽은 소감은 ‘이 정도 거짓말과 말빨과 뻔뻔스러움이라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겨야지’였다. 어쩌면 이렇게 유창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상상력을 가졌는지 부러울 뿐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거짓말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다. 다만 능숙한 이야기 전개와 무한한 창의력이 부러울 뿐.

 

  생각해보니 이 남작은 아는 것도 많고, 돌아다닌 곳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아는 범위가 다르면, 상상력의 크기도 다르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콩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달에 있는 은도끼도 찾아오고, 화산 속으로 내려가 불카누스와 그의 부인인 비너스를 만나거나, 곰 수천마리를 죽이기도 하고, 돈키호테를 만나며 달에 가서 이상하게 생긴 원주민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얘기는,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얘기이다.

 

  역시 아는 게 많아야 사기도 그럴 듯하게 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사기꾼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을 이 남작의 이름을 따서 ‘뮌히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아저씨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을 돌아보지 못한 이들과 융통성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풍물과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어차피 소설은 판타지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삽화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귀스타브 도레는 19세기 미술사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환상적이며 풍자적인 세계를 그린 화가라고 한다. 어딘지 모르게 ‘풍속의 역사’에서 본 듯한 그림체이다. 글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은근히 이 글의 내용은 다 거짓말이고 풍자적이라고 그림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글의 화자는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 숨겨진 묘미가 있는, 재미있는 글이었다. 아, 나도 상상력이 무궁무진 독창적으로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나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 제발 퐁퐁 솟아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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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을 쿠다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작가K 지음 / 청어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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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작가K



  황금펜 영상문학상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KBS와 같이 한 공모전이니, 아마 영상화시키는 것을 감안해서 수상작을 뽑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책을 읽어보니, 그 생각이 맞았다. 자잘하게 나뉜 장면 변화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3장 ‘자라지 않는 아이’ 부분에서 잘 드러나 있다. 죽은 아이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짧게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컷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스릴러 소설에서도 이런 기법을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뭐더라……. 아! 앨런 폴섬의 ‘추방’이다. 단문으로 이루어진데다가 자잘한 컷으로 나뉘어, 긴장감과 속도감을 주었다.


  이 책의 제목은 독특하다. 꿈이 아니고, ‘쿰’이다.


  몇몇 장르 소설은 용어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단어가 다른 뜻으로 쓰일 때도 있고,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도 있다. ‘프레디’나 ‘크루거’ 그리고 ‘아바타’같은 단어를 그냥 익히 알고 있는 뜻으로 이해하고 읽으면 혼란이 올 수 있다. ‘쿰’이라든가 ‘아이데카’같은 것은 작가가 만들어 낸 단어이고 말이다. (아이데카를 검색하니까 무슨 회사 이름이 나온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나이트메어’와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책의 뒷장을 보니, 심사위원들은 ‘인셉션’을 언급한 모양이다. 하긴 이 책에 나오는 ‘쿰의 보늬’와 그 영화의 ‘림보’가 비슷한 개념이긴 하다. 그 대목을 보는 순간, 나도 영화를 떠올렸으니까.


  하지만 꿈과 현실을 오가는 영화의 원류는 ‘나이트메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글로 된 것은 장자의 ‘나비 이야기’가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인셉션’의 영향을 받았느니 말았느니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쿰을 쿠다‘나 ’인셉션‘이나 둘 다 영화 ‘나이트메어’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책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마음껏 넘나든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기가 꿈의 세계인지 현실인지 그것도 아니면 과거인지 현재인지 헷갈린다.


  특히 18장인 ‘이상한 도시’는 갑자기 ‘나’라고 지칭하는 시점으로 진행되어, 의아함마저 주고 있다. 물론 그 ‘나’가 누구인지 곧 알 수 있지만,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왜 중간에 인칭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딱 18장만. 물론 이것이 19장과 연관이 되고, 그 인물이 진짜 인간인지 아니면 아이데카로 만들어낸 허상인지 구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왜 갑자기 이 장만 ‘나’의 입장에서 서술을 해야 했을까?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글은 어떤 의미로는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작가야 다 알고 쓰는 것이지만, 독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보를 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둘씩 야금야금 작가가 주는 힌트를 토대로 독자는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부분에서는 점수를 깎고 싶었다. 위에서 언급한 인칭 변화는 둘째 치고, 과거 현재 꿈 현실을 너무 왔다 갔다 해서 혼란스러웠다. 과거와 현재를 너무 세분화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분량을 늘여서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한 번에 읽지 않고, 여러 번 나누어 읽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열심히 글 전반에 깔아둔 복선과 암시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또 다른 안타까운 점은 문장이다. 조금만 더 간결체로 적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간혹 불필요한 단어가 반복되는 걸 볼 수 있다. 문장을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작가는 대명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250쪽의 ‘새매는 칼잠을 통과한 총알이 칼잠의 등 뒤에 서 있는 유리를 맞혔다는 것을 깨달았다.’처럼 한 문장에서 같은 사람을 반복할 때는 ‘그’로 쓴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이 작품은 뛰어난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 점수를 만회한다. 그리고 자잘한 컷의 나눔이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적절한 비밀 유지와 살짝 맛만 보여주는 숨겨진 정황 등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장르 소설과는 차별화된 설정이나 구성도 좋았다. 대개 장르 소설은 판타지라고 드래건이 나오고 검기를 뿌리거나 초능력자가 나오는, 주인공이 대책 없는 먼치킨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그래서 한국 장르 소설, 특히 판타지 무협 쪽은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전에는 곧잘 읽었는데.


  그래서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비록 문장은 조금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나이트메어’의 향기가 풍겨 나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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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영혼이 뒤바뀐 여자
엘사 왓슨 지음, 황금진 옮김 / 레드박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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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Dog Days

  작가 - 엘사 왓슨


  표지를 보면 머리에 꽃을 꽂은 하얀 개가 커피 잔을 들고 있다. 그 위쪽으로는 구두 한 짝이 벗겨진 여자의 치맛자락과 다리가 보이고, 옆에서는 번개가 번쩍!제목과 그림을 보면,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번개에 맞은 여자와 개가 영혼이 휘리릭 바뀌었구나.


  영혼이 바뀌는 설정은 영화건 드라마건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재미나게 보았던 건, ‘아빠와 딸의 7일간’이라는 드라마였다. 중년 남자 배우의 여고생 연기가 진짜 손발이 오글거리지만, 감탄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류의 작품은 대개 서로 대립하거나 오해가 쌓인 두 사람이 우연히 영혼이 바뀌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저 위의 드라마도 어색하기만 했던 사춘기 딸과 일에 찌들었던 아빠가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되면서, 직장과 학교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도 대충 그럴 것이라 추측했다. 물론 그러했다.


  개를 너무나 좋아하는 애견 마을에 사는 제시카. 불행히도 그녀는 개를 너무도 싫어한다. 덕분에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거의 망할 지경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는 마을의 수의사 맥스. 하지만 아직까지 말도 제대로 못 건네 보았다. 그녀는 소심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조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개이다. 어쩌다보니 제시카가 그녀를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데리고 있어야할 지경에 이른다. 싫다고 하자니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소문이 나서 카페 영업에 지장을 줄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인 제시카.


  그런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정신을 차리니 둘의 영혼은 뒤바뀌어버렸다. 조에는 빨리 자기 집을 찾아야 하고, 제시카는 이번 축제 기간 동안 카페 영업 및 광고를 제대로 해야 한다. 결국 둘은 힘을 합쳐 축제 때 열리는 거의 모든 애견 행사에 참가하는데…….


  인간이 익숙하지 않은 조에의 제멋대로 행동과 그걸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해하는 제시카의 대사와 심경이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다. 거기에 둘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맥스까지! 개의 몸을 한 제시카에게 ‘네 주인에게 관심이 있어.’라고 고백을 하다니, 나중에 그녀와 조에가 몸이 뒤바뀐 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 맥스는 진짜 괜찮은 남자였다. 친절하고 배려심이 철철 넘치고 직업의식도 투철하고 자상하고.


  다시 두 주인공에게로 초점을 맞춰보자. 다른 남자 칭찬을 하고 있는 걸 애인님이 알면, 장난으로라도 삐질지 모르니까.


  이 글은 한번은 제시카의 시점으로, 그 다음은 조에의 시점으로 각각 서술한다. 똑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개로 살아가면서, 제시카는 그동안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이면, 예를 들면 언제나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시선, 거짓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너무도 움츠리고 살았다는 것 등등.


  그래서 그녀는 결심한다.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말을 걸고, 미리 지레짐작으로 겁먹지 않겠다고. 물론 가장 큰 수확은 조에라는 믿음직한 반려견을 찾은 것과 맥스라는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제시카는 개의 몸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개의 본능에 집착하게 된다. 긴장해서 아무데나 쉬를 싼다거나, 목덜미를 긁거나, 파리를 잡으러 따라다니는 등. 의식은 인간이지만, 행동은 개의 본능에 따랐다. 물론 너무 똑똑한 행동을 보여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조에는 달랐다. 그녀는 인간의 몸을 하고도, 개의 본능 그대로 행동했다. 손님의 접시에 있는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고 집어먹기도 하고, 개였을 때의 취향대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카페 동업자인 케리가 그녀에게 대놓고 술을 마셨거나 약을 했냐고 물을 정도였을까.


  왜 제시카는 개의 본능에 따르고, 조에는 인간의 본능에 따르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건 내 착각일지도. 어쩌면 조에가 보인 그 모든 행동이 인간의 자연스런 원초적 행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은 이성이 있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에, 그런 것들을 꾹꾹 눌러서 던져버렸을 지도.


  마지막에 조에가 연설하는 대목은, 그녀가 처한 상황과 연결되어 조금 가슴이 뭉클했다. 어떻게 보면 조에나 제시카나 둘 다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동지였으니까. 물론 해피엔딩답게 그런 둘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전과는 다른 성장한 모습을 보이긴 한다.


  아,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또 다시 번개가 쳤다. 그 커플의 이야기가 갑자기 무지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타 발견 - p.387 10번째 줄, 조에의 대사에서 ‘집적’이 아니라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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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모중석 스릴러 클럽 6
딘 쿤츠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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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THE HUSBAND

  작가 - 딘 R. 쿤츠



  애인님에게 선물로 드렸던 책. 애인님이나 나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원하는 책이 있으면 ‘그걸 선물로 주세요.’ 하는 편이라서, 선물 고르기에 고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언제 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간 그걸 이번에 빌려보았다.


  쿤츠의 소설은 예전부터 속도감 100%에 긴장과 두근거림이 마구 느껴지는 그런 류이다. 딱 잡으면 끝까지 한 번에 봐야할 정도로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비록 책 두께가 다른 서적들과 비교하면 두툼한 편이지만, 역시 쿤츠 소설은 한 번에 끝까지 봐야하는 그런 성질이 있다.


  설마 책장에 마약이라도 발라 놓은 걸까? 하여간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중간에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이 책도 그러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면서, 읽어 버렸다.


  한 가정의 가장인 주인공에게 어느 날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부인을 잡고 있으니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작은 꽃집을 하는 주인공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그들이 요구하는 돈은 너무도 터무니없기만 하다. 게다가 그들은 주인공의 집과 전화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도청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부인의 목숨은 없다! 그들은 그 증거로 지나가는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의 도움은 생각할 수 없고, 오직 혼자 힘으로 부인을 구해야 한다. 그의 가족사와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점점 더 사건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반전은 없었다. 중간에 딱 한 번, ‘제길, 이 사람이 이럴 수가!’ 라고 분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게 반전은 아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들었으니까. 하지만 화가 나긴 했다.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 ‘완전 미친놈이야! 나쁜 새끼!’ 막 읽으면서 그렇게 욕을 했었다.


  책은 오로지 주인공이 부인을 구하기 위해, 혼자서 몸을 던져 뛰어다니는 내용이 다였다.


  잠도 못 자고, 죽을 위협에 시달리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 무시무시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절대로 부인을 놓지 않았다. 부인 역시 남편을 만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상황을 파악하면서 살아남을 방도를 궁리한다.


  사랑은 위대한 거구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게 하는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걸까? 흔히 과학자들이 말하는 3년만 지나면 효력이 사라지는, 단순한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예전에 읽은 쿤츠의 소설에 비하면, 감이 떨어졌구나 싶기도 했다. 아주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책과 달리, 책장을 덮고 생각의 시간을 줬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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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3
토마 나르스작 외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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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삐에르 부알로, 또마 나르스잭



  1952년 발표된 추리 소설이다. 아니 추리라기보다는 뭐랄까, 로맨스 스릴러? 그리 길지 않은 중편 정도의 길이. 그렇지만 그 안에 음모, 배신, 스릴러, 복수, 연애질, 불륜, 약간의 동성애 같은 우정 등등이 잘 드러나 있다.


  후우, 정말 골고루 다 들어 있는 일품요리인 것이다. 그냥 평범한 덮밥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징어에 달걀, 돼지고기 야채 등등이 다 들어 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너무 재료가 섞여서 ‘이건 돼지고기 고추장 덮밥도 아니고 오징어 덮밥도 아니잖아! 맛을 못 느끼겠어!’라는 것은 아니다. 이건 마치 요리왕 비룡처럼 첫 맛은 오징어인데 씹으니까 돼지고기의 육질이 씹히는 듯 하더니, 알갱이가 톡 터지면서 입 안 가득히 야채의 향이 퍼지는 그런 미묘하고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맛인 것이다.


  내용은 세일즈맨 라비넬은 애인인 뤼세느와 공모를 해서 부인인 미레이유를 살해한다. 보험금, 그것도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험금을 노리고 병약한 부인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체 유기까지.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부인이 보낸 편지가, 죽인 후에 보낸 것이 분명한 편지가 배달이 된다. 게다가 부인을 만났다는 사람까지!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라비넬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마도 소설이 발표된 당시에는 꽤 큰 놀라움을 줬을 것이다. 반전이 무척이나 굉장했으니까. 물론 요즘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본 트릭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비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진행되는 소설은 독자가 라비넬이 어떤 심정인지 같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물론 살인자의 마음 따위 알고 싶지 않아!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의 두근거림과 비열함, 분노, 공포까지 같이 겪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리게 될 것이다. 하여간 고전 소설을 읽다보면 요즘 나오는 소설(물론 범죄 소설)들의 트릭이 거칠고 투박하게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는 분이 말씀하시길, 모든 SF적 아이디어는 1950년대에 다 나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추리 소설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트릭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왔고, 다만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것이 좀 더 세련되고 멋지게 포장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차라던가 원격을 이용한 것은 좀 다른 범위가 될까? 흐음. 그건 좀 더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하니 보류.


  그나저나 인간이 죄를 저지르는 요인은 단 두 가지라고 한다. 돈과 사랑.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불륜이나 그런 것이 아닌, 무차별적인 살인이나 연쇄 살인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연쇄 살인범들을 보면 어릴 적에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비뚤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부모의 사랑. 결핍도 문제고 과잉도 문제다. 한마디로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저 두 가지 이유가 적절하게 나와 있다. 사랑과 돈.


  저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면, 돈은 그냥 적당하게 있고 사랑은 안해야 하나? 그렇지만 또 누군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생길 테고. 돈은 적당하다는 것이 인간의 욕심과 맞물리면 또 그것도 나름 문제고.


  범죄 없는 세상은 진짜로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마음에 제목이 안든다. 남자도 같이 공모했는데, 왜 여자만 악마 같다고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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