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짐승을 먹다
http://www.huffingtonpost.kr/chanil-park/story_b_7910222.html?utm_hp_ref=korea
할머니는 항상 불만 상태였다.
도시에 사는 아들이 데려 가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진정으로 기뻐하였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사건은 딱 두번 있었다.
한번은 손자가 학교에 가자마자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때였고, 할머니는 평생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번은 그 손자가 산 초엽에 있는 양계장까지 25K짜리 닭사료 푸대를 메고 가볍게 올라왔을때 였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있다는 걸 확실히 가르쳐 준 건 메멘토.
이해하기는 쉽다. 꺼버리면 없어지는게 단기기억, 파일로 만들어 두면 장기기억.
장기기억은 단백질 구조로 단단히 만들어 진다.
지워질 수가 없다. 연결고리가 끊어 질 수는 있지만.
기특한 손자는 산하나 너머 동네에 시집간 할머니 딸네집으로 종종 심부름을 갔다.
두개의 양동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갔으니 이걸 그냥 심부름이라고 부르기는 머하지만.
무겁기도 했지만 찌그러진 함석 뚜껑밑에 있는 것들이 산길에다 양동이를 내동댕이 치라고 격렬히 몰아대었다.
정리를 잘하는 할머니는 짤라 낸 다리와 모가지를 가지런히 갯수를 맞추어 양동이 맨 위에 올려 놓았지만,
길로틴에서 짤려 나간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 바구니 속으로 떨어져 들어 갔다는 이야기를 어디어디 소년잡지에서 줏어 읽은
손자에겐 고스란히 빙의가 되 버렸다.
깨진 틈으로 줄줄 새나오는 핏물에서 풍기는 역한 비릿내는 단백질 분자 결정체로 화석화 되어 시냅스 사이에 깊숙히 박혀 버렸음이 확실하다.
지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머리가 화석이 되어 수백만년 지난뒤 발굴된다면, 지구인이든지, 외계인이든지,
이 단백질 분자들에서 그 냄새를 충실히 재현해 낼 수 있으리라.
할머니의 일과는 신통찮아 보이는 닭을 추려 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딸네 보낼 생각이라면 괜찮아 보이는 놈들이 추려지지만.
읍내 대장간에서 벼려온 시커먼 둔중한 칼은, 날이 아니라 순전히 그 자중으로서, 닭 모가지를 자르는게 아니라 뜯어 내었다.
어쩌다 몬도가네적 구경거리도 생기는데 손자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고화질 스트리밍으로 기록된 그 장면은 아직도 새벽 꿈결에 등장하곤 하니까.
반쯤 떨어져 나간 머리를 달고 피를 뿜으며 맹렬히 산으로 내 닫는 닭이라니.
쫒아가서 여기서 머리, 저기서 몸뚱아리를 회수 하는 건 온전히 손자 몫.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손자는 나날이 계속되는 공포에 질렸고,
닭이 모두 죽기전에 혹은 열살이 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미치거나 죽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이 이젠 효력이 다 되어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얼마나 없는 살림이었으면 온갖 핑계를 정신력에다가 끌어 댔는지, 측은하기도 하여 이해해 주고 싶다.
현실은,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게 정신적 문제이다.
정말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식도는 가히 생활방수 수준으로 돌입하여 물도 넘길 수 없으며 냄새에 대항하기 위해 코점막은 급팽창, 코를 막아 버린다.
그 방어 레벨은 닭의 생시 유지 수준과 비례한다.
회사에서는 복날 단체 예약을 했다고 공지한 바, 그 날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