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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소리의 손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일단 나는 발성 자체가 밖으로 퍼지기보다는 말을 하면 내 쪽으로 다시 오는 유형의 사람인 듯하다. 가령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랑 고등어구이 주세요"라고 하면, 내 말을 듣는 식당 주인은 "네? 뭐라구요?" 혹은 "김치찌개랑 뭐요?" 혹은 "잘 안들려요"라는 말을 처음에 던진다. 이런 적이 무척 많았다. 내가 단어를 빨리 말하나 싶어 요즘엔 일부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보지만 효과가 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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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맥락에서 소리를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가령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유형이다. "야, 대박대박, 어제 글쎄 담비가 샥샥이랑 손잡고 가던데? 걔네 사귀나봐"라는 말을 A가 B에게 했다손 치면, 며칠 후 혹은 몇 시간 후 A와 B의 친구인 C가 이 둘을 만났을 때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는 순간에 A는 B에게 했던 이야기를 C에게 또 할 것이고, B는 인상을 찌푸리는. 그리고 자신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회사에서도 "이거 제가 지난번에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상관과 이를 어이없어 하는 후임의 입장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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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의 경우로 돌아왔을 때, 2와 어떤 맥락에서 비교해볼 수 있는 건 난 분명 한 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소리로 전달했는데(그리고 더 잘 들으라고 배려도 나름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못 들었을 때 밀려오는 짜증이다. 반면에 내가 그 소리를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이를 한 번 더 자신의 귀에 전달했을 때 밀려오는 짜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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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경우, 나는 마치 머리를 감고 나서 물이 귀에 들어갔을 때 그 귓속을 휘감아버리는 맹한 느낌을 맞이한다. 귀를 탁탁 때리며 입으로 어버버버 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내 소리가 상대방에 지금 전달되지 않고, 마치 나만 내 소리를 듣는다는 그 느낌의 순간이 싫어서 효력이 있던 없던 막 해봤던. 


주말 사무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말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외려 청개구리처럼 난 머리를 감고 싶어진다. 내 소리가 나에게라도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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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님의 문화연구에서 이론에 대한 심화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보면서 오랜만에 학교 다닐 적 생각이.

 

 

1. 현실적으로 봤을 때 문화연구는 학계의 '아싸(아웃사이더)'로 계속 남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연구자는 내가 보기에 부르디외의 '성찰 세포'를 잘 살리면, 문화연구자가 속한 학계 내부의 건실한 비판자, 속된 말론 영양가 있는 '뒷담화쟁이'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2. 지금 문화연구가 학계라는 구조 속에서 '아싸'를 유지하는 건 학계라는 구조 자체가 문화연구가 갖고 있는 '성찰성' 혹은 '메타적'인 측면을 '전시 도구'로 삼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고민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연구는 지금의 아싸를 유지해야 '문화연구'처럼 보이는 위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조금 열려 있는 학자들이 이른바 우석훈의 88만원세대 구도처럼 젊은 연구자들 짱돌 들어!를 좀 도와주면서, 학계의 성격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이 학계의 생존성을 감안할 때 문화연구를 배척하는 상황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3.문화연구는 어떻게 이론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을까. 문화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위치를 현실적으로 보면 1) 학계 내부의 이론 소비 속도와 수용 형태의 부작용 비판이 있을 것이다. 이건 사실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문화연구자들이기에 자신들이 속한 주류 학회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 2) 1)을 심화시켜 건설적인 대안을 내어놓는 것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게 사실 이게 아니었어"식의 이론 연구를 통한 발견. 사실 문화연구에서 이론의 깊이 있는 연구를 원하는 분들은 2)에 중점을 둔다는 생각이. 1)은 내가 일찍이 '문화연구의 실패한 성찰게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의 고민은 그렇다면? '문화연구적' 이론이란 존재하는가? 대답하기 어렵다.

 

4. 문화연구자들이 귀가 얇다는 건 일장일단이 있다. 문화연구를 공부하면서 그런 건지, 그런 사람들이 문화연구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문화연구자들은 뭐 하나를 하면 잘 꽂힌다. 그리고 잘 식기도 한다. 그래서 이른바 '문화연구의 실패한 성찰게임'에서 잘 나오는 논리가, "야 이제 마르크스로 돌아가야 해" "야 랑시에르가 문화연구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는 거야"라는 식. 좀 시기가 지나면 마르크스는 다른 누구로 바뀌어 있고, 랑시에르도 다른 누구로 바뀌어 있다.

 

5. 그런 면에서 무슨 이론이 문화연구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선에서 이론 연구가 이뤄지는 것보단 차라리 그런 거 아예 구애받지 말고 그냥 뭔가 필이 팍 오는 그 이론만 꾸준히 버티고 오래 보면서 자기 길 가면,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문화연구자였네? 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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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몰락 -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
박성민 지음, 강양구 인터뷰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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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치 상황에 대한 깔끔한 `정리`, 다만 어디선가 다 본 듯한 시선의 종합 이상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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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 엑스쿨투라 2
페테르 센디 지음, 고혜선.윤철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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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벌레`라는 개념에서 비롯되는 히트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 진부함은 영원히 진부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고유성이 생산된다는 페테르 샌디의 흥미로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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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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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한 집착과 거기서 오는 세세한 사물의 언급, 페렉이 제안하는 색다른 기억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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