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2005). 1990년대 한국 영화장르의 문화적 정당화 과정 연구. 언론과 사회 봄 13권 2호. 63~116. 

74쪽 

저널리즘 담론에서는 사설, 칼럼, 인터뷰, 비평 등이 장르에 속한다. 이러한 장르는 여러 이질적 미디어 형식(종합 일간지, 전문 주간지, 월간지 등)을 가로지르며 존재한다. 모든 담론은 유형과 장르가 부과하는 제약들과 주체에게 주어진 일정한 조작의 여지 사이에서 생산된다. 이때, 담론생산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호경쟁과 의존관계는 주체의 전략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하며, 동일한 유형(74)의 담론이나 미디어 형식 안에서 가능한 변이들을 만들어 낸다. 

언술전략 / 객관주의적 보도관행을 완화시키는 추세와 관련 / 발화자의 감정 보이기 / 언술행위의 실제 주체(기자, 외부필자) 

-------> 윤리적 소비 담론의 정당화 과정에 개입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강진숙(2006). "교육위기"담론의 의미와 주체구성 방식 연구,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33호.  

담론 / 의미구성 / 주체구성 --> 한국언론에 나타난 교육위기담론의 의미구성방식과 주체구성방식  

사설/칼럼 논단 / 해설 기사 제목 비교라는 방식   

35쪽

은유적 용법이 특정 사건, 행위자, 행위 등에 대해 익숙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특정한 상황에 보편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42쪽 

보도기사나 기획 연재물 등이 기사작성의 원칙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독자를 배제하거나 수동적 수용자로 대상화한다면, 사설 등은 독자를 적극적인 대화 상대자로서 담론 내로 불러와 화자의 입장과 일치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준웅(2001). 갈등적 이슈에 대한 뉴스 프레임 구성 방식이 의견형성에 미치는 영향,한국언론학보,2001.441~482. 

 452쪽 

케네스 버크의 이론 차용 

버크의 이론을 뉴스 스토리 구성과정에 적용시킨다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상이한 프레임이 구성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의 행위, 배경, 행위자, 행위방식, 목적 등과 같은 요소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455쪽 

특정 사안에 대한 수용자의 지식이 방대하거나 또는 통합되어 있을수록 수용자는 자신의 지식과 다른 뉴스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삽입, 삭제, 수정, 재해석 등을 통해 자신의 지식구조와 조응하는 방식으로 수정해서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김기범, 차영란(2009). '여풍'담론의 심리학. 미디어,젠더,문화 12호. 47~77. 

53쪽 

사회적 담론의 생산자인 언론의 보도 내용은 한 언론인의 개인적 가치관, 태도 및 성격적 특성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조직의 형태나 성향 및 규범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한 언론의 보도 내용은 한 언론인의 개인적 가치관, 태도 및 성격적 특성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조직의 형태나 성향 및 규범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보도 내용에 대한 각 종 사회 집단의 압력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따라서 언론은 어떠한 틀 혹은 시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현실을 언어라는 상징적 담론을 토애 재구성하게 된다.

이완수,심재철,박양수(2007).경제뉴스,경제상황,소비자 기대심리 그리고 소비행위의 상호 속성 의제설정 관계에 대한 시계열 분석. 한국언론학보.280~307. 

300쪽 

언론의 경제뉴스 보도 방향은 소비자의 경제심리에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언론이 경제이슈를 어떤 프레임이나 관점을 다루는가에 따라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심리는 확연히 달라졌다. 또한 언론이 부정적인 속성 프레임의 기사를 자주 다루면, 소비자 기대 심리 역시 부정적으로 영향을 바았다. (중략) 국내 언론은 소비자의 경제인식을 반영하는 추종자(follwer)역할을 하기보다는, 경제여론을 앞장서 이끄는 주도자(leader)나 의제 설정자(agenda-setter) 역할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시 말하면 국내의 경우 언론이 경제이슈를 어떤 속성이나 관점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경제현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유용민,김성해(2007). 노동운동의 담론적 위기: 신자유주의담론과 미디어 노동담론의 역사적 접합을 중심으로.한국언론학보.226~251쪽. 

235쪽 

담론은 프레임만이 아니라 세계관(입장, 태도), 핵심가치, 역사성과 정치성과 같은 다양한 구성요소들 뿐만 아니라 미디어담론,대중담론 및 전문가담론과 같은 다양한 층위로 나눠진다.  

236쪽 

미디어프레임에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미디어프레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에서 기인한다. 즉, 담론의 정치성은 곧 담론에 내포된 상징적 장치들 또는 의미화 기제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 가치관, 욕망이나 선호도가 형성되고 그 결과 특정한 지배질서나 공공정책이 강화 또는 도전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237쪽 

마지막으로 핵심가치를 분석유목으로 설정한 것은, 담론에는 핵심적인 가치, 신념 및 전제/가정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오창우(2002). 언론체계의 인터뷰 내용 변형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249~276. 

272쪽 

언론체계는 스스로의 공존을 위하여 외부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체계의 복잡성을 축소하기 위하여 다른 사회체계에 의존하거나 침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침투와 의존은 결국 다른 사회체계의 프로그램을 자신의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체계에 익숙한 형식과 내용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 

(중략) 

직접인용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의 사실성, 진실성이 중요하다. 첫째는 인용부호 안에 들어가는 말이 그 인터뷰 당사자의 인격이 담긴 내용이라고 독자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인터뷰 당사자가 인용부호 안의 말이 실제로 한 말과 다를 경우 법적인 대응을 할 수가 있어서 기자 자신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272) 목적으로 정확한 인용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서구의 언론들은 인터뷰 당사자가 문법적으로 틀린 단어를 구사하더라도 그대로 인용부호 안에 사용하고 괄호 안에 정확한 단어를 명시하고 있다.  

(중략) 

언론체계가 PR체계를 지나치게 도구적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PR체계가 언론매체에 보다 더 접근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활동을 매체적 가치와 기준에 지나치게 일치시키는 경우 두 체계 모두 체계의 순수성에 의심받게 된다.  

송용회(2007). 언론의 현실해석과 객관화 담론전략. 한국언론학보 51권 1호. 

229쪽 

객관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해설기사담론의 형식적인 구조화, 피동형 서술어의 빈번한 사용, 인용의 편의적 활용, 그리고 전문가의 선택적인 채택과 전문가의 일반화이다. 우선 해설기사담론은 상황규정이나 의미, 전만 등을 요약한 리드명제를 먼저 선언한 뒤 관련 근거를 제시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통상적이다. 

248쪽 

전문가라는 통칭, 대표성 부여. 해석과 주장의 정통성과 설득력 높이기. 즉, 전문가를 통한 대리전 펼치기. 

(중략) 

한국의 주요 일간지들이 해설기사담론을 통해 제시하는 현실해석을 객관화하는 담론방식으로 전문가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이 전문가를 애용하는 것은 현실해석에서 전문가의 우월성에 대한 대중적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이데올로기' 

 

남궁은정, 강태완(2006) 신문 인용 보도의 텍스트 구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40쪽 

언론보도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성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의 하나인 관련 당사자들의 발언을 신문사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편집하고 재단하여 재구성하는 형식적 규범적 관행이 우리 언론계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 같은 우리 언론의 담화 과정은 담론의 권력기관으로서 언론사들이 구사하는 '명명화의 수사적 기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언론의 이러한 담론권력적 기능이 '사실적'이라는 외관을 통해 종국에는 수사학적 환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개선된어야 할 지점으로 판단된다. 

 

이귀옥,박조원(2006). 식품 위해 보도의 뉴스 프레임 분석. 한국방송학보. 

293쪽 

무엇을 먹을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잘 먹을 것인가가 참살이의 핵심 주제로 등장하면서 식품 관련 뉴스들이 매스 미디어에 넘쳐나고 있다. 이 가운데 위해성이 포함된 식품에 대한 뉴스는 일반 소비자들의 식생활은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95쪽 

정부 발표에 의존한 언론의 위해 보도 경향은 우리나라 언론이 위해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언론이 위해의 단순 전달자로서 존재함에 따라 독자들은 근거가 부족한 정보를 근거로 공포에 떨어야 했고, 관련 산업도 또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이 위해전달자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소스 의존도에서 벗어나 정부,기업,전문가,학계,시민 등 다각적인 정보원을 기반으로 균형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등 위해 보도 관행에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 먹거리의 안전/불안전 여부 관련하여 책임 프레임의 중요성. 이것이 윤리적 소비자에게 강조되는 책임의 구축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성해, 김춘식, 김화년(2009) 위기 경고하기 혹은 위기 초대하기.한국언론정보학보. 2010. 여름, 통권 50호. 

166쪽 ~167쪽

담론은 생산자와 소비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생산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담론은 정부기관과 싱크탱크 등에서 생산하는 정책담론, 경제단체와 산하 연구소에서 나오는 기업담론과 학계와 독립연구소에서 생산하는 학술담론 등으로 구분된다.소비자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의사, 법조인과 경제학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담론, 대중매체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지적수준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계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담(166)론 및 누구나 쉽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중담론으로 나누어진다. 담론 및 누구나 쉽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중담론으로 나누어진다. 담론은 또한 학문영역에 따라 경제담론,정치담론,교육담론,예술담론 등으로 구분되거나 관심주제에 따라 교육붕괴담론,몸짱담론,신세대담론,외환위기담론 등으로 분류된다.  

167쪽 

담론 연구에서 미디어 담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미디어담론에 주목하는 첫번째 이유는 담론을 통해 '지적 설득과 동의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기인하며, 미디어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공개적으로 소통되는 중추적인 광장으로 기능한다. (중략) 미디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후원세력이 담론을 통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장악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미디어담론은 두 번째로 객관성과 균형성이라는 전문적인 직업윤리를 토대로, 집단적 협업을 통해, 정교하게 재구성된 공공지식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담론은 다수의 구성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믿을만한 정보로 인식되며, 지적인 설득 및 이를 통한 정치적 효과의 달성에 있어 다른 형태의 담론보다 효과적이다.  

(중략) 언론에 의해 생산되는 담론은 사실에 대한 '취사,선택, 차별 및 배제'를 통해 재구성될 것일 뿐만 아니라 특정한 규범적 가치와 제도적 실천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

송용회(2005) 한국 종합일간지 기사의 사실성 입증 기제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100쪽 

인용과 유사직접관찰은 사람뿐만 아니라 의인화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기관이나 단체와 같은 비생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의인화 서술방식은 기자들이 기사담론을 작성하는데 있어 부닥치는 실천적 딜레마, 즉 정부기관이나 민간단체라는 비생물을 주 보도대상으로 하면서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생생함을 살려야 한다는 필요성과 전달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하는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세경(2010). 먹거리 위험과 여성역할 담론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논문.  

엄마와 주부로 대표되는 여성들이라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즉 위험사회에 구성되는 대처방법에 대한 내용이 젠더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처방법에 대한 담론이 성별에 따라 다른 차이를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의 역할담론은 가족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역할은 여성의 몫이라는 성별분업적 논리와 이러한 역할의 수행을 여성의 본능적 차원으로 규정하는 모성이데올로기에 근거한다.  

여성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 범주에서 권장되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 만들어 먹기와 정보습득, 유기농산물과 프리미엄 식품 등의 소비하기 그리고 여성들의 모임에의 참여이다.  (중략) 직접 만들기와 소비하기의 여성의 역할은 주로 생활여성 면과 경제면 그리고 사회면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었는데, 이 두 지면을 통해 여성들이 식픔을 고르고 소비하는 데 있어 좀 더 현명한 주부, 그리고 엄마가 되어야 하다는 주장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피니언 면에서는 권위를 인정받은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식품안전의 위기에서 발휘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중략) 1990년대 소비하기와 정보습득하기의 중요성 비중 증가.

안지현(2007).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 담론의 배치와 그 성격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전공 석사논문

에 대한 용법 / 의미화 방식 / 한국적 수용의 특이성 / 담론적 실천의 일환 / 핵심 언표군 / 전유 영역 / 담론적 현실 구성 

~라는 담론을 통해 현실을 재현해 왔는가 / 현실 구성의 기제와 의미화 방식 / 객관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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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미 2012-03-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리적 소비와 관련한 문화 사회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레퍼런스 참고할 수 있을까요? ㅎㅎ 관련 자료 찾기가 힘들었는데 우연히 이 블로그에 닿게 되어 기뻐요.ㅎㅎ

얼그레이효과 2012-03-30 05:24   좋아요 0 | URL
넵. 인용된 쪽수가 부정확할 수 있으니 반드시 논문 원문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 1

요즘 flick에 자주 들어가보는 편이다. 내가 관심갖는 문자-언어를 치면, 그것과 연관된 이미지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보는 것. 그 재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관된'에서 오는 사람들의 생각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게 된다. 위 사진은 '똘끼'란 단어를 치니 나온 사진-이미지였다. 이 이미지에 대한 내 해석 이전에 왜 내가 '똘끼'라는 단어를 쳤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몇 년 동안 부족하지만 '선배'노릇을 하면서 몇몇의 고민상담을 해줬다. 많지는 않았지만 만남을 통해 그들이 터놓는 고민은 '똘끼 있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구들은 '똘끼 있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는데, 그들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 '똘끼'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경우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은 순둥이가 많다. 내가 겪은 친구들도 그러했다. 그들의 고민은 정리하면 두 가지였다. 첫째, 똘끼 있는 글쟁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째, 똘끼 있다고 여긴 매력적인 글쟁이를 실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의 삶을 마주하다보니 실망했다, 어찌 해야 할까였다.   

 

# 2

내가 관심을 가진 건 두번째 문제였다. 글을 통해 나타난 어떤 똘끼. 평범한 삶이라고 여겨지진 않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며, 그런 삶을 진술하는 글쟁이에 대한 동경이 실제 필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졌을 때, 적잖은 친구들이 '실망'이란 단어를 꺼냈다.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것이 '상처'란 단어였다. '상처'라는 단어가 이끌고 나오는 사례들은 주로 글쓴이에 대한 도덕성과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파열되어 나오는 의외의 언어들. 그 언어들이 '글'로 만났을 때는 좋았지만 실제 삶에서 가까이 마주 하여 '말'로 듣다 보니, 그것이 주는 실망감이란 게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실망감은 삶에서 상당히 많은 일탈을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신보다 싱거운 사람이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온순함이라든지, 자신의 글이 섹시한 것이지, 자신의 몸이 섹시한 것은 아닌데 글과 몸의 섹시함을 함께 PR하는 어긋난 자신감이라든지, 그리고 알고보니 글에선 상당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험왕'임을 자임한 이가 알고보니 대학로에서 연극 한 편 제대로 본 적 없이 쭈뼛쭈뼛 남의 눈치만 보며 이리저리 부산을 떠는 이었다는 데서 오는 매력없음 같은 것이었다.  

 

# 3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도덕성'과 연관된 문제는 그랬다. <오빠는 필요없다>와 같은 책에서 저자의 견해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흔한 '진보- 오빠'들의 취약한 섹스 문제, 사회에 대해 그렇게 철있는 견해를 제시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융통성이 없고 리더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유부단함도 연결지어 나오는 '고민의 입냄새'말이다. 결국 쉽게 말해서 글과 행동의 괴리에서 오는 매력 포인트의 산산조각. 친구들은 그것이 깨진 것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않겠다는 다짐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래..만나지 마..다음부터.." 이렇게 말하기엔 나도 뭔가 찝찝하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 그런 분위기가 가져오는 복잡함들이 몇 달 동안 내내 지속되었다.  

 

# 4 

다른 하나. '똘끼'의 문제. 우리는 '똘끼있다'라고만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일탈적인 무엇.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무엇. 안이한 설명일 수 있지만 위의 이미지처럼 F#CK 과 중지의 들어올림은 음반 재킷이나 틴에이지가 나오는 영화에서 흔한 반항의 표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이 표식의 대중화와 시시함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색다른 똘끼를 찾아 헤멘다. 특히, 젊은 날. 우리가 더 평범하게 그리고 세상 속 굴레에 갇혀 있다 생각될 때 갈망하게 되는 똘끼라는 모델, 그리고 똘끼의 모델들. 과연 그 모델들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그걸 따라해보는 것이 똘끼일까라는 어느 정도 진부하지만 영원한 과제로서의 고민이 여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요즘 '과잉 순응'도 하나의 똘끼가 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강준만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에너지』에서 <하얀 거탑>의 장준혁을 예로 들며, 그는 '과잉순응의 정치학'을 추구한 캐릭터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인즉슨, 장준혁은 현존하는 체제를 '과잉'상태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으로 인한 체제 자체의 폐해들을 폭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르게. 나는 요즘 이런 모델을 생각해본다. '과하게 착하게 살기'. 과하게 착하게 산다는 것이라는 인간의 캐릭터가 우리 시대의 괜찮은 저항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뭔가 다자이 오사무 냄새가 나지만, '똘끼'의 전형적인 면만을 답습하고 그것을 동경하려는 이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이들이 창출하는 똘끼도 어쩌면 '똘끼의 유형'중에 나온 진부한 퍼포먼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들. 그 사이에서 나는 과잉된 착함이 이 시대를 견딜 수 있는 '매력적인 반대'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착함'이란 것이 왠지 '똘끼'를 추구하고 동경하는 이들에겐 늘 매력없이 "아..오빤 참 좋은 사람이야..그런데..남자로선.."과 같은 반응과 같은 시대에, '과한 -착함'이 갖는 다양한 생활 속 사례들을 접하고 싶다.  가운데 손가락 들어올리기는 '똘끼'에도 쳐주지 않는 세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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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는 얼그레이효과님이 직접 저 사진을 촬영하신 줄 알았어요. '과한 착함'이라 진부한 똘끼에 대적할 만한 무기라 생각되는데 저도 한 번 '과한 착함'에 도전해서 보여 드리고 싶네요. 의욕이 마구 솟는데요. ㅋㅋ

얼그레이효과 2011-05-14 00:09   좋아요 0 | URL
상대방이 눈치 안 차리게 잘하셔야 합니다..그게 관건 -.-

루쉰P 2011-05-15 07:38   좋아요 0 | URL
흐흐흐 전 상대방이 눈치 못 채게 하는데 소질이 있어요. 흐흐흐
 

 

 

 

 

 

 

 

 

한때 '중독적'으로 집착했던 통치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내 믿음을 철회하는 중이다. 나는 '통치성'이 직관과 수사의 기획이 궁핍했던 권력 비판/비평에 유의미한 시선을 제공했다고 그 의의를 수긍한다. 그러나  통치성이 비판하려는 권력의 새로운 형태와 그 형태의 효과를 수용하는 이들의 비극, 그 사이가 여전히 뭔가 유사-논리적으로 보이는 듯한 언어로 채워져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쉽게 말해서, 그 권력의 새로운 형태와 권력의 밑에 있는 일반 시민의 삶-아픔이 바로 직결된다는 그 가설 안에서 볼 때, 통치성의 주창자들은 '새끈하고 매력적인'시선을 두터운 실증적 연구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충분한 연구적 대안을 내어놓고 있진 않다는 생각이다. 즉, 통치성이 주창하는 권력의 효과와 실제 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비극이 서로 상관된다고 하는 그 연결고리가 취약하다는 걸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히려 통치성이 주목하는 그 권력 비판의 섬세한 시각이 권력을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진부한 통치성 비판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 이것..참 푸코 선생 조금만 더 살지 말이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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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11-05-10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앱솔루틀리 어그리입니다. 푸코는 오히려 그의 저술에 일관된 탈형이상학적 권력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이론의 활용외연이 넓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10 11:00   좋아요 0 | URL
게슴츠레님 반갑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그나저나 블로그의 포스가 ㅎ ㄷㄷ 이던데요!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게슴츠레 2011-05-1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같은 게 있나요? ㅋㅋㅋㅋㅋ그냥 찌질터인데요 뭐 ㅎㅎㅎ 오히려 그 포스가 뭔지 제가 궁금하네요. 저야말로 얼그레이효과님보면서 아 그냥 이리 썼으면 될걸 그러고 있습니다. 종종 뵙도록하지요.

얼그레이효과 2011-05-11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시는 분야 그리고 생각하시는 지점이 다양하시던데요^^ 저는 워낙 얕아서 큰일입니다. 종종 뵈어요!!

lowbudget 2011-05-2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댓글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 역시 얼그레이효과님의 비판에 극구극구 동의합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건 저들이 제대로 했나 안 했나를 비판하는 것보다 우리들이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냐인 것 같아요. 사실 솔직히 통치성 공부하면서 효과님이 말씀하시는 "두터운 실증적 연구"를 저들한테 기대하지 말고 "우리들"이 하면 되는 것 같아요.우리들이 직접 하지도 않고 저들의 연구가 한계를 갖는다고 말 할 때 여전히 우리들은 먹던 음식 질렸다고 불만하는 것에 그치는 것 같거든요.

얼그레이효과 2011-05-24 14:4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저 짧은 글에 제 모든 논리가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는 보지 않아서요. low님의 그 이후 연구를 통한 실천에 대한 부분은 동의합니다. 저는 아마 이 글에서 통치성 연구를 통해 사회비판의 언어를 만드시는 분들에게 느끼는 너무 시니컬한 뉘앙스? 그런 것에 대한 반감을 더 표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지금 해봅니다. 저는 이제 공부길을 접었지만, 가끔 이 블로그 들려주셔서 low님께서 좋은 대안 공유해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합니다. 좋은 덧글 고맙습니다.
 

 

 

 

 

 

 

 

 

제발. 이제 이런 책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은 문화연구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냐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문화연구를 통해 읽고 싶은 것이 과연 '교재스러운' 흔적일까? 이것은 '비판'이란 태도와 '언론학계의 실적'이란 현실을 묘하게 매개하고 있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이 시대를 향한 처방전이다. (난 비판의 무용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비판의 센스가 없음을 탓하는 것이다)특히 언론학에 계신 미디어/문화연구자라고 불리우는 많은 교수님들은 언론학 카테고리에 가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쭉 보라. (제목과 목차만이라도 보라) 비판커뮤니케이션이 세울 칼날은 원래 그 비판커뮤니케이션이 대상으로 했던 언론학이라는 학문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언론학의 위기'를 말해야 하지 않는가? 언론학에는 왜 영웅적 학자들이 등장하지 않는가?란 심도 깊은 반성이 포함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지금 대중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그 욕망을 추리하려는 노력을 함께 가져보려는 태도를 글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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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됩니다 한밭 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 윤제림, <가정식 백반> -

 

# 1. 어쩔 수 없는 선택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밝아지는 이 날씨를 '차도남'컨셉 커튼 닫기로 촤악 막아버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근데 별로 한 것도 없이 배가 꼬르륵. 요즘은 '취업 우울증'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더욱 싫어졌다. 절친인 동무가 나를 불러주는 애칭, '전단지 할배'를 떠올리며, 서랍 속 전단지를 꺼낸다. 족발,보쌈,냉면,치킨,피자,회,찜닭. 할배모드로 혀를 쯧쯧 차며 어떤 메뉴 컨셉의 부재를 탓한다. 이 컨셉의 명칭을 분명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대신 어떤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차려주신 그 잡채, 그 된장찌개, 그 고등어조림, 그 콩나물 무침..' 그러다가 입 밖으로 한 번, "에이씨..우리 동네는 왜 이렇게 가정식 백반 잘 하는 데가 하나도 없는 거야"라며 신경질을 낸다. 어쩔 수 없이 츄리닝 하의를 벗고 청바지를 대충 벨트도 하지 않은 채 입는다. 곱슬머리가 고정시켜 놓은 산만한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모자를 쓰고, 눈꼽을 좀 떼고 운동화를 꼬깃꼬깃. 그리고 슬그머니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 1층에 내려갈 때까지 누가 중간에 타면 안돼. 눈을 감는다. "오늘은 삼각 김밥 유통 기한 안 지난 것 남아 있겠지?"

 

 

# 2. 동네에 정겨운 한식당 많나요?  

경기도 B시로 이사온 지도 어느덧 햇수로 7년째다. 그동안 내가 여기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내가 자주 다녔던 단골 한식집이 대부분 망했다는 것이다. 보통 '자취'를 하는 남자들을 소개팅에서 만나면 그런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럼 요리 잘 하시겠네요"란 진부한 질문에, "뭐 김치볶음밥은 기본이구요. 스테이크도 좀 할 줄 알고, 찌개 종류는 잘 하죠.."이렇게 진부한 대답을 하지만, 사실 그런 자취생이 몇 명이나 되려나. 대부분 부시시한 눈 정리하고 1,500원짜리 '원조김밥' 1 줄과 자제하려 하지만 잘 안되는 탄산음료 1병 드링킹, 아니면 삼각김밥 몇 개에다 한 개만 끓이면 배가 아쉬워하는 라면 두 녀석으로 이렇게 끼니를 채운다. 그것이 질리면 찾는 곳이 동네 가정식 백반집일텐데. 내가 사는 B시의 이 동네는 이제 가정식 백반집이 한 곳 남았다(모두가 '엄마의 맛'이라 칭하며 포스를 자랑하는 한 곳). 사실 한 곳만 남은 것은 아니다. 두 곳 정도가 더 있는데, 이 집은 사실 좀 있으면 망할 것 같다(이유는 정말 맛이 없기 때문에). 사실 좋은 '가정식 백반'을 사 먹기도 시켜 먹기도 '두려운' 요즘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내 식습관 투정보다는 어떤 사회학적인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연구 더듬이'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  

일단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을 잠시만 흉내내어 보자면, 내가 살고 있는 B시 S동은 유독 직장인들과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원룸지역이라고 그 특성을 요약할 수 있다. S동은 특히 인천과 서울 가는 방향을 매개하는 지역이라, 버스와 지하철 교통이 나름 잘 발달되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그런 가운데 주목해 볼 것이 소비의 특성인데, 음식 소비의 경우 주류를 포함할 때 술집과 고깃집이 먹는 장사 가운데 거의 9할을 차지한다. 나머지 1할이 떡볶이와 튀김 파는 노점상, 동네 피자 몇 곳, 횟집 몇 곳, 중국집 몇 곳 정도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다.  

가정식 백반 소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면, 가정식 백반집이 요즘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종종 발견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서구의 패스트푸드에 질린 직장인 등등이 엄마의 솜씨를 그리워한다는 둥으로 요약되어, 그 판매의 변이 실렸는데, 사실 그것은 '현 시기의' 가정식 백반집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치우쳤다. 내가 우려하는 건 바로 올해 서른 살이 된 나. 그리고 나를 포함한 1981년생, 1982년생 00학번, 01학번 세대들이 한 40대 정도나 50대가 되었을 때 과연 어머니의 손맛을 경험할 수 있는 한정식집을 동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을까의 문제다.  

일단 '우리 세대'라고 거칠게 요약하긴 부담스럽지만, 직장 생활 혹은 학교 생활로 인한 나름의 '식습관의 사회학적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삼각김밥이나 편의점 도시락, 그리고 한솥도시락 등의 매출이 점점 증가한다는 기사를 보는 가운데, 사람들의 식습관을 보면 매 끼니가 밥과 국이어야 한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아/점'이라든지, '점/저'문화의 발달로  그 문화를 구성하는 하루의 '맛난 한 끼'라는 컨셉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동네마다 주목해서 보는 건 각종 반찬가게의 성행이다. 물론 그렇게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내가 속한 S동은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가 되면 그야말로 난리다. 아주머니들은 반찬을 담아주느라 정신이 없고, 손님들은 "아니, 이 집 반찬 여러개 맛있게 잘하더니..왜이리 메뉴 개발을 안 해.."라며 타박을 주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싸다는 소비 기대의 효용성이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 3. 한식의 세계화? '한식의 서민화'라는 또 다른 아이러니의 발생 

다만 미래의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한식은 나름의 이중적인 문화적 범주로 소비될 것 같다. 하나는 최근 국가에서도 밀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같은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고안해내는 VIP식 한식 메뉴, 그것이 갖는 미학적 쾌감과 상품성 등. 다른 하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친근하고 이웃같고 집에서 먹는 느낌이 든다는 '한식의 서민화'다. 그런데 사실 '한식의 서민화'라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는 표현이다. 원래 한식은 우리와 같은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최근 문화부장관이 호텔에서 몇 만 원짜리 김치찌게,된장찌게를 누가 먹겠냐로 시작한 한식 폄하를 곱씹어보면서 한식의 세계화라고 하는 담론에 가려진 '한식의 빈곤'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담론이 포함시키고 있는 것, 그리고 배제시키고 있는 것은 무얼까? 이런 맥락에서 '한식의 서민화'라는 이 모순된 용어는 아마 우리 세대가 4,50대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쉽게 말해서 한식이 정말 우리가 예전처럼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그 맛으로 보존가능한 식문화로 남아 있을까? 우리는 이제 그런 식문화를 느끼려면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파는 여러가지 잡다한 유사 메뉴로 그 느낌을 경험하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과연 우리 세대에 우리의 밥을 챙겨줄 몇 천원짜리 가정식 백반집 아저씨, 아줌마가 탄생할까? 나는 '한식의 세계화'라는 담론이 갖는 저 국가 브랜드의 욕망 속에서 정작 우리 동네의 현실은 어떤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난제 하나. "그렇다면 당신이 손수 만들어 먹으면 될 것 아니요?"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요즘 내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거시적인 차원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요즘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이상기후 현상 등 외부 조건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음식 재료값의 들쑥날쑥모드다. 관련기사들을 찾아보면 이상기후로 인해 신선채소값이 올라 그것을 대용할 간편메뉴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은 우리도 일상을 통해 체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직장과 여가의 문제다. 직장 내 노동 강도와 그것으로 인해 과중되는 스트레스, 또 업무 외 행동의 부담으로 인해 미래 세대가 앞으로 직접 요리를 하여 먹을 시간의 보장 여부, 그리고 그것에 신경을 쓸 여부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으로도 고민해 볼 문제다. 여기에는 "아. 넌 여자애가 요리도 못하냐", "야, 요새 요리하는 것에 남자/여자 구분이 어디 있냐"라는 갈등으로 소비되는 심리적 피로도도 함께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지금은 잘 찾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예전부터 "어휴,..저 복잡한 메뉴를 어떻게 다 해 먹어"라고 생각한 음식메뉴들이 인스턴트 형태로 대형마트에 다양한 메뉴로 더 진열되어 소비자를 유혹할 가능성은 커진다.    

 '지금' 가정식 백반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들에서 나는 미래의 불안함을 느낀다. 이런 불안함을 지적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이런 생각하다가 배고픔을 잊을 수도 있고 ㅋ) 『음식인문학』(주영하, 휴머니스트,2011)이란 책이 나온 것도 어떤 측면에서 이런 지적 고민이 더욱 더 증가하리란 걸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아직은 덜 여문 이야기. 해석은 각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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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5-05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텔에서 김치찌개를 팔면 격이 떨어진다네요...
한식세계화?...그저 꿈은 아닐지

얼그레이효과 2011-05-05 23:45   좋아요 0 | URL
어린이날 잘 보내셨는지요?^^ 문화부장관 수준이 참...그렇죠. 어떻게하면 팔아먹을까 마인드..그래서 인디영화도 '관변'인디영화로 만들려던 속셈도 있었고 말이죠...그건 아마 인촌이 형님 시기였죠.에효.

비로그인 2011-05-06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식 백반'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어쩐지 억지로 만들어진 말 같아서요. '가정식'이라고 했으니 외식문화가 발달한 뒤일 테고(집에서 먹는 것처럼 해주겠다!) '백반'이라면 예전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명절에나 구경할 수 있는 나름 '귀한' 상차림이었을 텐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가끔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이란 걸 시켜 먹을 때면 '뭐야, 우리집은 평균 가정도 못 되는거야?' 하고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답니다 ㅋㅋ^^

얼그레이효과 2011-05-06 09:38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용어와 한국적 맥락. 그런 것도 고민해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pjy 2011-05-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 불러주든 간에 그 백반집이 제발 멀쩡하게 유지되면 좋겠습니다만,,이미 다니던 곳들은 대부분은 없어졌습니다요~
뉴스에서 말하는 건 다 딴동네 이야기입니다 ㅡ,.ㅡ;
요새는 백반집 가야되는 상황에 몰리면 기사식당을 좀 알아보고 댕깁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06 13:59   좋아요 0 | URL
기사식당류 김치찌개...기사식당류 부대찌개의 그 맛이란...#_# pjy님도 저랑 유사한 경험을 하셨군요.

pjy 2011-05-06 15:57   좋아요 0 | URL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네 뭐네해도~ 가장 손쉽게 1인분에 고기주는곳은 그곳뿐ㅋㅋ 맛있는! 기사식당 엄청 좋아해요^^

2011-05-06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6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11-05-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기사식당의 계급성'이랄까? 그런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던 중이었는데요. ^^

얼그레이효과 2011-05-09 11:05   좋아요 0 | URL
앗 바람구두님 반갑습니다!^^ 기사식당의 계급성. 흥미로운데요~ 즐찾한 바람구두님의 블로그 들어갔는데, 바람구두님의 '아카이브' 구축 능력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문화망명지를 처음 알고 나서.."와..어쩜 이렇게 정리를 잘 하시나.."감탄했었는데요..혹 노트 필기 잘하는 친구의 노트를 훔쳐보며 감탄한 기분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