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잠깐 티비를 켰더니, 영화 <노팅 힐>을 하고 있었다. (비록 OCN을 비롯한 영화 케이블 채널, 그 절단의 폭력은 메스껍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로맨틱 코메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저 오늘 소개팅있는데, 어떤 식당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누가 커뮤니티에 던지면, '김밥천국이요'같은 자학의 시나 쓰지 말고) 홍상수나 에릭 로메르의 연애담이 최상급이긴 하지만,  그런 영화들의 애호가들만 '고급 미식가'로만 인정하는 건 사실 난 별로다. 뭔가 진부하고,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장면들만 있어도, 끊임없이 소비되고 기억되는 '클래식'들에 대해 이상한 혐오감 같은 걸로 조롱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이다. (물론 <이터널 선샤인>같은 영리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클래식' 러브 무비 같은 작품은 아닐지라도) 로저 미첼 감독의 <노팅 힐>은 아무리 목이 따가와도 섭취하고 싶은 콜라 같은 '스테디 셀러'로서의 자격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의 인생을 늘 간접적으로 다루어 온 영화들로 큰 히트를 쳤다. <귀여운 여인>에서 (그녀는 영화 내용처럼 비록 성노동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씁쓸한 과거'를 지워내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여성으로,  배우로서의 성공적인 새 인생을 맞이했다.그리고 1999년 <노팅 힐>은 성공한 영화배우로서, 헐리웃 스타로서 그녀의 삶을 중간 점검하는  계기를 보여주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다음달 우리나라에도 개봉하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기대하는 이유는, <노팅 힐>에서 그녀가 브라우니를 먹기 위해 참담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자리에서, "이제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쳐다보지 않을 거라는 그 두려움.."에 대한 고백 이후, 그것을 초월한 혹은 의식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바로 '영화 안에' 나타날 예감 때문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저널리스트 역을 맡았다. 자신의 삶을 글로 다루던 사람들의 삶에 자신이 직접 들어가보게 된 것이다. 예전에 닉 놀티와 함께 찍었던 그 때 기자 캐릭터와는 정말 다른 느낌을 줄 것 같다.)

우연이든, 혹은 나의 해석때문이든 그녀는 영화로 정말 자신을 이야기해보려는 배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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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6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번'비디오를 보는 남자' http://blog.aladin.co.kr/717962125/3798296란 포스트를 통해, 곧 나올 내 졸업논문 주제를 밝힌 적이 있다. <VCR 시대의 영화 소비 경험에 대한 연구 :1979~1999)>. 한국의 1980년대,90년대 영화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매체였던 비디오에 관한 사회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포스트가 '비디오대여점'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비디오를 볼 수 있던,1980년대의 대표적 공간인 만화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사실 이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는 시기에 태어나진 않았기 때문에, 사료로서만 그 시대의 느낌을 '호기심'으로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쉽다)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장소가 된 만화방. 그래도 종로 어디어디에는 문득 보이던데. 지금은 만화책도 하드커버가 나오는 시대이지만, 그 시대의 어른들은, 아이들은, 또 어렴풋이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조금 허락된 문화의 기억은, 누렇게 변질된 만화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이 끈적하도록 침을 뱉고서, "얘야, 니 그 만화책 보고 꼭 손 씻어야 된데이..."라는 어머니의 걱정. 하지만, '엄지 만화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목적이 꼭 만화책을 읽기 위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엄지만화방에 설치된 딱 한 대의 작은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은 나라를 살폈고, 세계를 걱정했다.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딴 짓'을 하러 온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자. 이제 심야요금 걷겠습니다" 

우리는 심야요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욕정의 시간'으로 빠져 들었다. 지금에 와선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지만, 불법비디오를 대여해주거나, 상영해주는 사람은 사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비디오가 등장하자, 호기와 불황을 동시에 맞은 대표적인 장소가 만화방이었다. 여관은 물론이거니와, 분식집에서도 비디오 기기를 설치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데, 만화방이라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연이어 나오는 문화를 향해 가하는 지식인들의 도덕적 질타. 사람들은 '화이트 비디오'와 '블랙 비디오'라는 명칭으로, 자신이 보는 것은 정품, 밀실에서 즐겨야 할 것은 '삐짜'라는 구분을 지었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 심산 선생의 고백처럼, 낮에는 데모라는 열정의 시간으로, 밤에는 애마부인을 보기 위한 욕정의 시간으로라는 건 비난만 할 수 없는 그 시대의 문화였다. 밤의 열기 속으로.  

"야, 어린 짜식이 까져가지고는... 못 참겠냐? 화장실을 가던가 새끼야. 휴지줄까?"라는 대사를 던지는 명계남 아저씨의 

모습이 귀엽다  

 

엄지방의 총무는, 오늘의 상영회를 갖기 앞서, 사람들에게 볼 작품을 소개한다. 

"여러분 오늘 볼 작품은요. 먼저, 성룡의 사형도수입니다. 성룡의 코믹연기와 취권계열의 액션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흡족할 작품이구요. 두번째 작품은 척 노리스가 나오는 델타포스입니다. 척 노리스에 대한 이야기 BLAH..BLAH. 주변 사람들이 총무의 소개를 지겨워한다. "아. 거 빨리 영화 봅시다" 총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세번째 작품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는....욕망의.... 갑자기 어느 남자가 "그거 좋지"라는 말을 던진다.  

 

꺼진 텔레비전, 시대에 지친, 사랑에 지친, 일에 지친, 무언가에 지친 사람들. 분노할 힘도, 좋아할 힘도 사라졌을 때, 누군가의 보살핌, 그리고 내가 정작 갖고 싶어하던 행복은 무엇이었나를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엄지만화방에 모인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감는 것으로, 고뇌를 대신한다.  

 

일터에 나가기 위해 새벽짐을 싸는 사람들. 그리고 어디선가 내일을 또 열고 있을 사람들 

  

가리봉의 하루는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장미빛 인생>. 이 영화를 만든 김홍준 감독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시네필이었으며, 우리에겐 필명 구회영으로 더 친숙한 사람이다. 나도 영화를 볼 줄 안다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절의 필독서였던,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이란 책을 본다면, 그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 시대의 영화광은 무엇이었나를 돌아보는 데 소중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미빛 인생>은 시대의 기억이기도 했지만,  누군가  마음 속에 소장하고 있을 나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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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8-2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제가 다니던 만화방의 경우 시간이 으슥해져 학생 손님이 빠지면 만화가게의 반을 가르는 아코디온커튼이 쳐졌지요. 그때부터 불법비디오 상영이 이루어지곤 했는데, 야자 끝나고 만화책 빌리러 들를 때면 커튼 너머로 들리는 야릇한 소리에 섬찟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얼그레이효과 2010-08-19 22:17   좋아요 0 | URL
아..조선인님, 이런 증언. 제 논문에 너무 소중한 사료가 됩니다.^^ 제가 아직 그 시대 경험이 없어서,글로만 봐서 실감이 안났는데,경험자의 덧글을 보니 확 다가오는군요.^^

pjy 2010-08-2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말까지만 해도 만화방에 다니는 학생은 탈선의 일종에 발을 막 들인 아이로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방과후 대본소용 일본?순정만화책을 보다가 집에 갈 시간을 잊어서, 엄마,아빠가 찾으러 왔었던 기억이 납니다ㅋ
남자애들이 집에 안오면 부모님들이 동네당구장을 순회하시는 것과 약간 비슷할려나요^^?

얼그레이효과 2010-08-21 03:42   좋아요 0 | URL
아 연달아 나오는 증언. 좋습니다. pjy님의 서재도 블로그 통해 잘 봤습니다.^^

바라 2010-08-2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만화대여점 시대 아닌가요? 저도 예전에는 종종 신림동 거리에 있는 만화방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는데 요새 만화방과 이전의 8, 90년대 만화방은 또 문화가 많이 다를 거 같네요. 요새는 그저 만화를 읽기 위해 잠시 들르는 그런 곳인데..예전에는 거기서 비디오도 틀고 했다니 놀랍습니다. 더불어 가리봉과 구회영, 이 두 이름도 새삼 반갑네요~ ㅎㅎ

얼그레이효과 2010-08-21 03:4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요즘 만화대여점 자체를 안 들려봐서 어떤지 궁금하네요. 요즘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ㅎㅎ

2010-08-20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1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0-08-2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게 다가온 영화였는데 너무 쉽게 잊혀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야기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최명길 씨와 최재성 씨의 암울한 표정이 떠오르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8-21 03:43   좋아요 0 | URL
영화 끝이 좀 아쉽긴 했는데, 뭔가 영화가 정감 있어 좋았던 것 같네요..^^

2010-08-2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1 0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0-08-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만화방 사진 보니 엔날 생각 납니다. 24시간 하는 곳이었는데, 1000원만 내면 온종일 만화를 볼 수 있던곳!! 단속을 피해서 포르노도 틀어줬죠~ㅋㅋ 요일이 정해져 있었던지 제가 갈땐 항상 그냥 애마부인 씨리즈만 해줬습니다..ㅎㅎ

아, 마지막의 책은 저도 소장하고 있는 책입니다~ 아, 근데 논문 제목을 막 공개해두 돼나요? 누구는 물어두 않갈쳐 주던뎅~ㅎㅎ
흥미 있는 논문 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21 03:45   좋아요 0 | URL
생생한 증언 고맙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블로그에 종종 내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도움 고맙습니다.ㅎ
 

 

많은 채널 서비스에 가입해도, 결국 집중적으로 보게 되는 채널은 한정되어 있다. 영화 채널 안에서도 그런 법칙은 유효하다. 캐치온 같은 유료 서비스나, 오시엔, 채널 시지뷔 같은 채널이 아니면, 그 이외 채널들은 소외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히려 소외받는 채널들이 주는 사소한 재미들 또한 있다고 본다. 

요즘 만두를 빚느라(내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 분들은 이 '만두'가 진짜 만두는 아님을 알 것이다) '야행성'체질로 바뀌면서, 좀처럼 보지 않던 채널들을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이 채널들은 보고 싶은 최신 영화나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옛 작품들을 틀어주진 않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옛 영화, 혹은 몰랐던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도록 한다. 

시간대도 버리는 시간대, 새벽 1시~ 4시 사이. 이때, 사람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영화들이 마구 쏟아진다. 내가 요즘 '버리는 영화'라고 명칭을 붙인 그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눈보다는, 리모콘 버튼의 사랑을 더 받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자신만의 보물로 만들 수 있다.  

 

사실, 요즘 내 눈에 자주 걸리는 작품은 아주 모르는 영화들은 아니고, 특히 남자들의 뜨거운 성교육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던 잘만 킹 감독의 대표작 <레드 슈 다이어리>다. <와일드 오키드>에서 미키 루크의 그 끈적한 모습을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었던 나에게, <레드 슈 다이어리>를 최근에 이렇게 야심한 밤에 만난다는 건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레드 슈 다이어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에피소드가 소개 되기 전, 개와 함께 등장해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다 껴안은 것 같은 데이빗 듀코브니의 모습이다. 듀코브니는 자신에게 도착한 에로틱한 사연들을 읽고, 개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고, 짧게, 그리고 강렬하게. 하지만 언제나 목소리는 지긋이 깔면서.  이 작품에서 온갖 '똥폼'을 다 잡는 그를 보다가, 미드 <캘리포니케이션>에서 맡은 섹스 좋아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버리는 시간대'에 만나는 또 한 명의 반가운 인물은 섀논 트위드이다.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그 열기가 식었지만, 비디오 문화가 한창이었을 때, 비디오 가게 에로 칸을 자주 채우던 이 여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에로 스릴러 장르의 대표 주자였으며, <데드 섹시>같은 작품은 꽤 재미 있어서 세 번 정도 봤던 기억이 난다. 섀논 트위드는 이제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그녀의 전성기 모습은 여전히 '버려진 시간대'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다. 언제나 에로 영화 특유의 색소폰 소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녀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너무나 유명한 락 그룹 키스의 멤버 진 시몬스이다. 예전에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완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이 '버려진 영화'들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 쿠엔틴 타란티노가 했던 말과 같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영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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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1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 슈 다이어리> 는 저도 참 재미나게 봤었는데요^^

얼그레이효과 2010-08-18 01:4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보니. 듀코브니의 젊은 모습이 어색했다는..^^
 

 

  

 

 

 

 

 

 

 

(그의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가상의 발문을 쓰고 싶었다. 나는 사실 서른이 되기 전, 정성일에 관한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책이 곧 나올 예정이란다. 놀랍게도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평을 써 왔지만, 처음 내는 영화비평집이란다. 그와 그의 글은 우리 시대가 보호해줘야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이 시대에, 더욱 더. 평범한 블로거의 오마쥬) 

1

 오늘, 정성일을 기억하는 자는 누굴까. '씨네클럽'을 경유하며,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의 추억으로 밤을 지새우는 세대들? 서강커뮤니케이션센터를 밥먹듯이 드나들며, 영화학교 서울을 기억하고, 무슨 말일지는 모를지라도, 귀하게 구한 '삐'자 비디오에 담긴 예술 영화에 환호하던 느낌을 간직하던 세대들? 나는 그 세대가 아니라서, 그 세대의 영화 문화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함께 멀뚱멀뚱 굴렁쇠 소년을 보던 7살 소년에게 '영화'는 비디오였던 세대, 강시와 환영도사, 수라왕과 후레쉬맨, 헐크호간과 레슬매니아의 추억이 '곧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음을 고백하는 나에게, 사실 정성일의 진가를 제대로 판단한다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성일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평다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제 영화저널리즘 바닥에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영화학'의 그물 속에서, 우연히 걸린 학문적 열정의 논리로 여기저기 찔러보는 자들의 언어만이 횡행한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  지식꾼밖에 안 된다) 매년 신춘문예의 심사소감엔 논문이 아닌 영화비평을 보고 싶다는 지적이 올라온다. '영화'는 '학'이 됨으로써, 영화와 인간의 관계를 가깝게 했는가? 우리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까칠하게'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의 존재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괜한 대중과의 싸움 같고, 영화에 대한 패배주의적 시각은 이상한 '취향 존중'속에서 갈등 회피를 조장한다. 그러나, 외롭게 싸우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정성일이다.   

 

 

야구계의 '괴물'이 류현진이라면, 영화계의 괴물은 정성일일 것이다. 그는 세상에 나온 모든 영화를 다 볼 기세로 영화로 하루를 시작하고 영화로 하루를 끝낼 것 같은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기뻐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분노한다. <로드쇼>가 서서히 망해 갈 무렵에, 나는 이 세상에 가장 저급한 영화 잡지가 <로드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로드쇼>의 초창기를 헌 책으로 구입했을 때, 어색한 '격문'들이 붙어 있었다. 이 사람 뭐지? 왜 이렇게 영화에 죽니 사니 하는거야?  그는 정말 영화 때문에 살고 영화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영화에 격분하고, 영화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늘 자신이 봤던 영화에 대한 황홀감으로 지금 평하는 영화를 사유했다. 그는 지식이 영화를 죽이는 걸 싫어했고, 영화가 영화를 살리는 '소생술'에 늘 고심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제발 이 소생술을 알아달라고 간구하는 듯했다.(최근 씨네21에서의 행보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그가 영화만 보는 인간은 아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볼 기세로 책을 '판다'. 그는 극장 밖에 일어나는 현실을 사유했고, 그것을 지독하게 영화 '안'에서 고민하려 했다.  사회에 만연한 인터넷 냉소주의를 우려하기도 했고(그는 우석훈의 칼럼집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추천사에서 이 부분을 밝혔다) 지성의 흐름을 헤엄치면서, 지식의 상영관에 나오는 언어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언어들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이미지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를 모른다면, '키노'는 알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백치들'이 커버였던 <키노> 몇 호를 끼고 다니며, 영화 동아리방을 들락나락거렸다. 나는 소심하게 친구들 잡지를 얻어 보다가, 알란 탐과 왕조현 사진을 선전하지 않아도, 이렇게 두터운 내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놀랐다.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새 하나, 둘 보이는 그 잡지. <키노>는 악명이 높았지만, 정성일은 그 악명을 애초부터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영화에 관한 '순혈주의자', '순수주의자'인가? 그는 아마 이 명칭을 싫어하지 않을 듯하다. 영화는 영화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은 채, 그는 영화가 넘쳐나고, 영화 이야기가 넘실대던 시대에 오히려 우려를 표한다. 이것은 지극히 영화광 다운 태도이다.    

"우리는 주변에 이미 수없이 많은 영화에 관한 담론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랑과 증오가, 풍자와 자살이, 패배와 절망이 서로 뒤섞여 알 수 없는 농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드문 사람! 그리고 세상을 점령해버린 것 같은 황당무게한 테크놀로지의 천년왕국론과,근거없는 비난을 일삼는 자해극들, 게다가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모르는 속임수는 심지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키노>1995.05.영화의 '지나간'100년' 키노의 '새로운'101년 中 -

 6 

'존재'를 둘러싼 갈등은 늘 논쟁의 중심에 선다. 영화 또한 그랬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생 매체와 영화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왔다. 많은 이들은 이른 '수용'에 바빴지만, 정성일은 달랐다. 그는 '영화의 죽음'담론 뒤에 과연 남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사뭇 폭력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그는 영화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의연하게 '영화의 죽음'담론에 대처한다. 그가 책에 '필사적'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그의 영화 인생을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정말 '필사적'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써 온 사람이다. 그렇기때문에 때론 과격하고, 때론 눈물겹다.  너희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하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는 영화의 종말, 영화의 죽음을 종용하는 담론들과 투쟁하면서, 영화를 외롭고 작게 만드는 매체들과의 사투를 잊지 않았다. 가령 비디오는 '시네마'의 황홀함을 점점 앗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비디오에 스며든 그 자본의 폭력성, '작품'에 대한 그 어떤 존중도 없는 무자비한 절단에 분노했다. 그리고 싸웠다.  

그리고 90년대 한국 영화 문화에 들어온 '컬트' 현상'의 기이함도 비판했다.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영화광의 덕목이 되어버린 시대를 슬퍼하며, 그는 아벨 페라라를 들먹거리는 좋아하는 '백과사전'식 영화매니아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가? '진퉁'영화광과 '짝퉁'영화광의 대립? 정성일이기에 가능했던 진정성있는 문제제기였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격분하겠지만.) 정성일은 오늘날 시네필을 사유하며, '노트북 세대'의 시네필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영화의 '서사'가 주는 흥분엔 관심이 없는 시네필, 오직 영화의 '정보'만을 흡수하고, 그 정보를 제대로 언급했는가, 아니었는가의 판별에만 관심있는 시네필, 그렇기때문에 그는 그것이 가짜 갈등이라고 말한다. 오직 남은 건 빈 덧글 끼리의 대립일 뿐. 인터넷 세대, 게임방 세대의 시네필,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VCR 세대의 시네필. 그는 지금 이 시대를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도, 끊임없이 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매달렸다.   

8

그는 더 나아가 당신은 영화관에 가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는 이 질문을 아주 오래전부터 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름에 영화를 보러간다고 말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에서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더운 여름에 도시에서 외곽지역으로 이동해서 여가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냉방장치를 갖추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찾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일 이분법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관에 가는 것은 서로 다른 행위이다. " 

"사람들은 자동차를 끌고 영화관에 와서 팝콘을 사고 콜라를 마시면서 영화를 소비한다.실제로 영화는 그렇게 부주의하게 볼 만큼 친절한 담론의 양식을 갖고 있는 매체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주의한 상태로 만든다. 이렇게 부주의한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영화는 스스로의 장점을 포기하고 구구절절히 설명을 늘어놓아야 하며,시선의 한계-체험을 버리고 이야기를 통해 기승전결을 일러주어야 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쉽사리 집중력을 상실하는 지속을 계속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넣어야 한다" 

                                                                           - TTL CINEMA CLUB 영화교실 2001.5.14, 영화관의 아우라?中

그는 약 십오년 전, 어떤 글에서 영화평론가는 '실패한 영화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런 고백이 자기도 모르게 스노비즘으로 빠지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그래서 이 고백은 혹시나 같은 시행착오에 빠질지도 모르는 '미지'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격려이며 서둘러 고백하며 만일 피할 수만 있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기대하는 작은 희망에서이다. (중략) 

말하자면 영화평론가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서, 순진한 영화광과 진정한 영화광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이다. 또는 '실패한'영화광이다. (중략) 이미 고다르는 말한 적이 있다. 영화에 관한 이론은 불가능하다. 영화에 관한 이론은 언제나 영화 그 자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물론 이런 것과 싸운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 구조주의에 관해서 이야기하거,페미니즘을 말하고, 정신분석학을 언급하고,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장하고, 실증주의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그저 책 몇 권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하지만 번번히 그 노력을 실패로 이끄는 것은 여전히 고다르의 충고였다. 영화에 관한 이론을 영화가 아니 다른 것(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글쓰기에 의존하여)으로 시도할 때마다 거꾸로 글쓰기의 논리가 영화읽기와 노력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다.

                               - <비디오 무비>,1995,05. 어느 낯선 영화광으로부터 보내온 편지, 또는 영화를 다시 생각하며 中 - 

10 

다들 알만한 트뤼포의 시네필에 대한 이야기. 정성일은 시네필의 약속을 지켰다. 영화를 좋아하는 진정한 영화광이라면, 첫째, 영화를 두 번 다시 보고, 둘째, 영화에 대한 비평을 써보는 것이며, 셋째,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 그에게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일상다반사였을 것이며,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쓴다는 건 그가 아마 신체적인 한계가 올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셋째, 그는 드디어 자신이 감독한 첫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나는 문화에 대한 충성과 열정이 퇴색된 시대에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한 한 대목을 같이 나누고 싶다.  

오늘날 '문화'를 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문화'란 기본적인 생활세계의 범주로서 등장한다.예를 들어,종교에 대해서 말할 때,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정말로 믿음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존중하여 종교적 의식이나 관행(의 일부)을 지키는 것뿐이다(유대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이 '전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율법을 지키는 경우 등)."내가 그것을 정말로 믿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내가 속한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라는 말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부인된/치환된(disavowed/displaced)믿음을 표현하는 지배적인 양식인 듯하다. 문화적 생활양식이란, 산타클로스를 믿지는 않지만 해마다 12월만 되면 집집마다 또 공공장소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아닐까? - 13쪽

즉 '문화'란 우리가 정말로 믿지는 않으면서도 실천하는 모든 것, '진지하게 생각하지'않으면서 실천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이름이다.(얼그레이효과 생각 - '지칭하는 이름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시대, 문화의 위상이 아닐까)과학이 이러한 문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 역시 과학이 너무 진짜라는 사실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근본주의적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야만인',반문화세력,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치부하는 이유 역시 그들이 겁도 없이 자기들의 믿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마침내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문화 속에 매개 없이 속해 있는 사람들,자신의 문화에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들을 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 14쪽  <죽은 신을 위하여> 中 - 

이제 영화를 '믿는 '세대는 사라지고, 영화를 '관리'하는 세대만이 남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정성일은 이러한 시대에 고집스럽게 '시네필의 존재론'을 주창한다. 그는 최근 씨네21에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며, 동료들과 함께 고민했다. 쌓여가는 담배, 시간을 잊은 시계, 자신들에게 황홀함을 안겨다 준 감독들의 세계관을 쉴새없이 주고받기.. 이제는 보기 힘든 영화문화 속에서, 정성일은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적대와 환대의 정치학을 계속하여 시도할 것이다.  

"마무리 얘기를 하자면, 시네필이 영화에서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적 체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성립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만이 영화에서 매혹이란 게 뭔지 설명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영화적 순간이란 시네필의 동의어입니다."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학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영화학이 감히 그 매혹을 설명하려고 달려드는 순간 유명한 수술대의 교훈이 성립합니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 죽었어,라고 그렇게 시네필들이야말로 미라가 될 뻔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시네필의 핵심 경험은 마법적 황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체를 알고 싶어서 20대 때 기호학,구조주의,마르크시즘,정신분석학 책들을 열심히 봤습니다. 얻은 교훈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아무리 열심히 봐도 거기에 답이 없다는 것, 두 번째가 사실 중요한 데 이 연구들의 공통된 목표는 이 마법적 황홀함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공부를 덮으면서 하게 된 결심은 이 마법적 황홀함을 방어야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영화학에 대한 시네필들의 저항, 앞서 얘기한 '시네마틱'한 것에 대한 방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로 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략)우리는 시네마틱이라는 단어로 방어하고 공격에 저항하는 심정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씨네21>.2010.6.22.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中 - 

영화에 대한 믿음이 아닌, 영화 정보에 대한 믿음만이 하나의 '신앙'이자, 합리적 라이프스타일로 당연하게 자리잡은 시대에 정성일의 주장은 외롭고 또 외로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없어도 잘 살 것이다. 왜냐면,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책이 아직 도착하기 전 글이라, 책 속 내용이 없는 '발문'의 취지를 제대로 못 살린 글임을 밝힌다. 책을 다 읽고, 세세한 평가를 다른 페이퍼를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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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8-10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정성일의 책이 드디어 나왔군요!! 예전에 인터뷰에서 책 낸다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던 거 같은데. 내일 다시 들어오겠습니다ㅋ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7   좋아요 0 | URL
바라님, 반갑습니다. 저도 최근에 알았네요. 구입해서 읽고 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네요.

미지 2010-08-1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씨 글은 거의 음악의 경지죠... 책 얼른 사야겠습니다.^^ 영화가 개봉이 아직 안 되어 안타깝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8   좋아요 0 | URL
영화가 아직 참..일반 극장 개봉이 안 되었죠? dvd라도 나왔으면 하는데..음.

stella.K 2010-08-1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는 잡지라고 해도 거의 눈문집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노무 잡지가 글이 깨알 같이 박혔던지...
그런데 그게 없어졌다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ㅜ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터넷에 pdf파일이라도 종종 떠다니던데..이젠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집에 몇 권 있다는 것을 위안삼습니다.

dorati 2010-08-1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의 PDF들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user.chol.com/~dorati/kino 물론 99호 전부는 아니지만, PDF파일로 떠다니는 파일들은 여기가 시작이었으니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1 18:1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2010-09-11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헤는밤 2010-09-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받은 감동이 다시금 살아나네요. dorati 님의 고급정보도 얻어가게 되어 기쁩니다.ㅎ
제 블로그에 원문 링크하였는데 괜찮을지요? ^^ 종종 찾아뵐게요.ㅎ

까만진주씨 blackpearls.tistroy.com

얼그레이효과 2010-09-27 18: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곧 나올 내 졸업논문 주제는 < VCR 시대의 영화 소비 경험에 대한 연구(1979~1999)>이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비디오대여점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임영태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2002년에 만들어진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감독:김학순)엔 정겨운 풍경이 가득하다. 



비디오대여점을 기웃거리는 청소년. 혹시 "오늘은 빨간 딱지 비디오를 빌릴 수 있을까?"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한창 활황이었던 '90년대'. 영화광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벽에는 꼭 줄리엣 비노쉬의 영화 브로마이드가 걸려있던 시절이 있었다. 뤽 베송의 <그랑블루>나 <레옹>, 왕가위의 <해피투게더>,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 블루 37.2>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꼭 걸려 있었던 인기 영화 포스터들이었다. 



지금은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씨네21>에 비디오카페란 인기연재물이 있었다. 그 연재물의 저자였던 당시 영화마을 종로점의 이주현씨는 비디오대여점을 하면서 겪었던 소박한 일상들을 솔직하게 전해주었다. 비디오대여점 주인들은 때때로 연체 테이프가 생길 때, 직접 수거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간혹 비디오테이프 속 필름이 끊기거나 씹힌 채로 반납되거나, 꼭 이렇게 양념장을 묻히거나 아이의 껌딱지가 묻혀진 채로 반납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여점주 입장에서 더욱이 회전율이 높은 새 테이프라면 골치가 아프다.  



비디오대여점엔 새 프로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자의 경우 '비디오용 배우'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점점 희미해져가는 이름이지만, 우리 '스티븐 시발' 스티븐 시갈 형님을 비롯해, 돌프 룬드그렌, 장 클로드 반담, 룻거 하우어, 마이클 듀디코프 등등등.  "아저씨, 저기 스티븐 시갈 나오는 새 액션 영화 없어요?" 



간혹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는 아이가 혼자 놀기에 적당한 비디오테이프가 있으면, 그것만을 반복적으로 빌려가셨다. 그러면 마음씨 착한 주인은 간혹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주곤 했다. '복사를 '뜬다'라는 표현이 정겨웠던 시절. 



마음씨 착한 주인공 '비디오 남자'는 어머니가 나가고 없는 아이의 집에 들러, 아이를 위해 복사를 뜬 테잎을 틀어준다. 

추억의 만화영화,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 



비디오는 단순히 영화만 보는 도구는 아니었다. 이른바 'how to 프로그램'이라고 불렸던 장르가 꽤 인기를 끈다. 주로 대여용이라기보단, '셀스루'라는 직접판매로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들. '요가 프로그램' 등등등. 



아날로그에 익숙한 대여점주는, 직접 두꺼운 검은 노트에 일일이 손님들의 대여정보를 적곤 했지만, 시대가 발달하면서 

비디오대여업용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업주들은 여기에 동네 사람들의 취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정겨운 '리와인더' 장치들. 매너있는 손님으로 도장 찍으려면, 자기 집 비디오로 다 본 테이프를 처음으로 감아주는 센스를 발휘하기. 그러면 나중에 점주가 눈여겨 봐두었다가, 보너스로 한 편 더 빌려주었던 기억들.  



비디오테이프 반납기. 새 테이프를 반납하러 반납기에 넣었는데, 혹시나 퍽 하는 소리가 날까봐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테이프를 넣었던 어린 시절. 알고 보니 속에는 완충기능을 하는 보조 장치들이 달려 있었다.



비디오대여점을 한다는 걸  사회는 아직 편한 직업으로 보지만, 주인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단지 비디오테이프 자체를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동네의 '코뮤니타스'역할도 충실히 했던 비디오대여점. 

다음엔 80년대 VCR문화를 알 수 있던 김홍준 감독(우리에겐 필명 구회영으로도 잘 알려진)의 대표작 <장미빛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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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6-07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논문이겠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ㅎㅎ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바라님. 오랜만이에요~

2010-06-07 0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8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6-0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운 기억이네요. 어렸을 때 우리집은 VCR 때문에 오빠 친구들의 아지트였죠. 덕분에 나도 19금 영화를 초등학교 때 이미 봤다는. The Wall이요. ^^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2   좋아요 0 | URL
오 더 월! 반가운 이름이네요!

L.SHIN 2010-06-0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 가게의 포스터가 아니라 안을 보는 것이, 혹시 저 남학생은 좋아하는 사람이 거기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하는 생각을 잠시...^^;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3   좋아요 0 | URL
로맨틱하십니다.^^!

Alicia 2010-06-0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 때 그거보고 자랐는데 저랑 비슷한 세대신가봐요.으흣:)
중학교때까진 비디오를 많이 봤던거 같아요.학교 끝나면 친구랑 책가방메고 비디오가게 들러서 포스터 얻어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미성년이라고 안빌려주는 영화도 있었어요. 그래서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못봤었죠.^^
조디 포스터가 나오는 콘택트도 좋아했어요.아마 그때 당시에 여학생들한테는 첨밀밀,친니친니 이런 영화도 꽤 인기있었을 거에요.
그때 비디오로 봤던 블루나 화양연화같은 영화는 십대때 이해 못해 갸웃거렸는데 스물여섯 되어서 와닿았던 것 같아요. 두번 볼때까지 칠년이란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매체는 비디오테잎에서 DVD로 넘어왔어요.
아! 정말 그리운 추억이네요. 앞으로 쓰실 글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3   좋아요 0 | URL
요즘은 디비디도 완전히 헐값으로 팔더군요..영화 자체에 대해 90년대만큼의 애정은 없는 느낌이 들더라구요..제 논문도 그런 생각을 담았는데..시간 되면 또 올려보겠습니다.^^

Arch 2010-06-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생각나요.
논문 잘 써지길 바랄게요.

얼그레이효과 2010-06-08 11:5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arch님. 고맙습니다.

2010-06-1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5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