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 관계의 건강한 경계선을 찾아가는 바운더리 수업
멀리사 어번 지음,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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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보낼 수 있게 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해를 끼치는 것 사이에 있는 명확한 선을 알려주므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 경계선을 분명히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실제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것이다. (p.47)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는 편이다. 물론 자기계발서가 아무래도 워낙 많이 출간되는 종류다 보니 많이 접하게 되기도 하지만,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혹은 퇴행하지 않으려 읽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많은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역시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라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마음이 다소 있었으나, 바운더리에 관련한 책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기더라. 나는 나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타인의 바운더리도 쉽게 넘지 않는 성향. 하지만 그런 성향이 종종 방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그조차 선 넘는 판단'이라는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게 많았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는 나처럼 바운더리를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도, '적당함'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도움 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는 바운더리의 원칙에서부터 바운더리를 지킬 수 있는 언어, 그것을 구축하는 방법과 힘을 상세히 다룬다. “바운더리는 언제나 옳다(p.46)”는 글이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는데, 작가님의 몇몇 문장들을 읽으며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이라는 감정으로 모호하게 선을 넘길 좋아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까닭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불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었는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를 통해 내가 왜 불쾌감을 느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올바른 언어로 나의 바운더리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앞으로는 어떻게 나를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의 모든 내용에 공감을 한 것은 아니다. 민족성이 다른 나라의 작가님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러기 어려워요.' 싶은 부분도 종종 있었으나, 가족, 친구, 연인, 공동 양육자 등과의 바운더리를 “다정하고 우아하게” 설정하는 법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꽤 많았다. 또 음식이나 특정 주제로부터 바운더리를 설정한다는 이야기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는데, 후에는 이 부분에 대해 무척이나 만족이 높았다. 특히 나와의 바운더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작가는 셀프바인더리를 통해 자신의 한계선을 설정하고, 내면을 재구성하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문득 나의 감정과도 바운더리를 설정할 수 있다면, 불쾌감을 가지고 가지 않고 나를 객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깨닫게 된 것.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를 통해 나를 내 감정과 분리해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새로운 사람들과 새 관계를 형성하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정신적 피로감도 긴장감도 컸는데,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나의 바운더리에 대해, 나라는 사람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상대방이 나의 바운더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고 해서 그것에 상처를 받거나 불편해하며 죄책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말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내가 설정한 나의 경계선이 타인에게는 얼마든 낯설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간 내가 느껴온 불쾌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나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최소한 팽팽하던 긴장은 낮출 수 있겠지. 내가 거부하고 싶던 상황들을 조금은 덜 만날 수 있겠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는 나처럼 바운더리를 지키고 싶거나 바운더리를 지키는 일이 힘들었던 이들에게 특히나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고, '타인에 대한 적당함'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게 한다. 무척 건강한 책이기에, 많은 분께 추천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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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멍멍 개를 보라, 냥?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99
데이비드 라로셀 지음, 마이크 우누트카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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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양이를 보라, 멍?』만 소문내고 자려고 했으나, 궁금증에 큰일 날(?)분들이 계실까 봐 졸음을 무릅쓰고, 『저 멍멍개를 보라, 냥?』도 소문내고 자기로 했다. 앞서 소개한 『저 고양이를 보라, 멍?』도 무척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 멍멍개를 보라, 냥?』이 조금 더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니, 부디 두 권 다 읽어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우리 꼬마는 『저 고양이를 보라, 멍?』가 더 재미있다고 한다.)

 

『저 멍멍개를 보라, 냥?』은 앞서 『저 고양이를 보라, 멍?』에 등장했던 파란 고양이가 주인공! 그런데 우리의 책이 이번에는 멍멍이를 찾는다. 하지만 당찬 고양이는 멍멍이와는 달리 인사를 건네고, 왜 자신이 나왔는지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능청스러운 말투로 연기해주었더니 우리 딸이 말하길 “어머, 너무 얄밉다”라고 하더라(깔깔). 딸이 읽을 차례에서는 나보다 더 능청스럽게 연기하는데, 보기만 해도 웃겨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고양이는 책이 시키는 대로 하긴 하는데, 자기 스타일대로 바꾸어서 한다. 

 

앞에서 소개했던 『저 고양이를 보라, 멍?』에서 멍멍이가 다소 수동적이었다면, 『저 멍멍개를 보라, 냥?』은 꽤 능동적인 부분이 무척 재미있다. 또 고양이와 강아지가 가진 특성들이 대조되어 더욱 웃음 넘친다. 우리 아이는 고양이가 수영하기 싫어 난리 치는 장면에서 깔깔 웃으며 “아이고 물 좀 봐~”라며 이야기에 풍덩 빠져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양을 나무 위에 올리는 장면이 제일 웃겼다. 오랫동안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이야기”로 사용되었던 두루미 이야기가 이제는 바톤터치를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더라. 『저 멍멍개를 보라, 냥?』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뜻하지 않게 나무 위에 올려진 양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짝꿍 책이다 보니 『저 멍멍개를 보라, 냥?』과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이 비슷한 느낌이라 지겹지는 않나 생각하신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두 이야기는 같은 구조를 가졌지만, 너무나 다른 성향의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고, 완전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각각의 매력이 넘쳐난다. 

 

일러스트 역시 『저 멍멍개를 보라, 냥?』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저 고양이를 보라, 멍?』보다 조금 다양하게 등장하는 소품(?)과 고양이, 강아지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일러스트들이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우리 아이는 두 권의 책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두 책 모두 이야기 끝에 상대방이 등장하고, 매일 그렇게 일상을 반복하며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며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그림책은 이렇게 평생, 아이에게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며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주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마흔이 다 되도록 그림책과 절친인 것처럼 말이다. 『저 멍멍개를 보라, 냥?』과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은 딱 그런 그림책이다. 엄청나게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고 기발하고, 피식 웃음이 나는 일상 같은 이야기. 

 

아이가 그림책과 오래 친구가 되길 바란다면, 꼭 『저 멍멍개를 보라, 냥?』과 『저 고양이를 보라, 멍?』 같은 그림책을 들려주길 추천해 드린다. 분명히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아이는 웃고, 상상하며 책과 친구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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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저 멍멍 개를 보라, 냥? + 저 고양이를 보라, 멍? - 전2권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데이비드 라로셀 지음, 마이크 우누트카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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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비결을 묻는다. 물론 타고 난 성향도 있고, 우리 집 어디를 둘러봐도 책뿐이니 아이에겐 장난감보다 익숙한 게 책일지도 모른다. 또 엄마가 매일 책을 읽으니 아이도 당연한 일과로 받아들였을 테고.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책을 순간순간 “잘 들이민” 것도 한몫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래도 너무 재미있으니 계속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번 주만 해도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책을 잔뜩 골라왔다고 칭찬(!)을 받았다. 글밥이 꽤 많은 책도, 만화책도, 그림책도 가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는 우리 꼬마의 이번 주 원 픽!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소개한다. (우리 아이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북극곰 로고를 확인하고는 “그럼 그렇지, 어쩐지 너무 재미있더라”라고 말했다.) 

 

『저 고양이를 보라, 멍?』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음을 반증하듯, 이미 닥터수스 상을 받았다. 닥터수스 상은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위해 잘 만들어진 책에 주는 상이니만큼, 더욱 신중하게 수여되는 상. 그래서일까,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읽으면 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글밥은 적지만, 일러스트도 익살 넘치고 웃음 포인트가 가득한 책이니 아이들과 읽어볼 것을 추천해 드린다. 아! 역할을 분담해 소리 내서 읽어볼 것. 우리집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역할을 바꾸어가며 책을 읽어보았는데, 둘 다 서로가 “멍멍 개 대박이” 역할을 했을 때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찹쌀이네 극장을 열어드리고 싶지만, 모두의 재미를 위해 참아본다.)

 

이제 막 책을 즐기기 시작하는 또래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할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은, 한 페이지에 두세 줄로 구성된 짤막한 이야기가 세 가지나 들어있다. 무슨 그림책에 세 가지 이야기냐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짤막하지만 충격 강한 스토리가 들어있으니 기습을 준비하고 읽을 것. 실제 우리 아이는 책을 읽다 침을 흘릴 만큼(!) 크게 웃었다. 아이는 책과 개가 협상을 하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웃었는데, 엄마 생각에도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부분이었다. 마치 책과 개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구성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책에 대해 더욱 친밀감을 느끼고, 자신도 책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입체적 감상이 가능한 것. 단 몇 줄의 글밥으로 이렇게 독자를 웃게 하다니, 정말 대단한 작가님이란 생각이 든다. 

 

익살이 넘치는 일러스트도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빛내는 요소 중 하나. 배경 하나 없이 멍멍이의 눈썹 변화만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같은 장면의 변화 덕분에 아이들은 그림책에 더욱 풍덩 빠져들게 된다. 아이와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읽게 되신다면, 느린 속도로 책을 읽으며 다음 장면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상상해보길 추천해 드린다. 파란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지, 뱀은 어디에 있을지, 누워있는 강아지가 왜 갑자기 뛰어야 하는지 상상해보며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읽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그림책의 매력을 우리 아이도 온전히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풍덩 빠져들어 읽게 되는 '중독성' 말이다. 사실 엄마는 아이에게 살짝 유치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슬쩍 펼쳐준 책이었는데, 엄마는 상상하지 못한 부분까지 이야기로 만들며 책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 것. 역시 잘 만든 그림책은, 나이도 나라도 초월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참! 『저 고양이를 보라, 멍?』은 짝꿍 책인 『저 멍멍개를 보라, 냥?』과 같이 읽으면 더 재미있으니, 부디 두 권 나란히 쟁여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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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매력을 팔다 - 자온길, 시골 마을 재생 프로젝트
박경아 지음 / 포르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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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창업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원하면 오히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에 다녀야 한다. 창업을 하면 일이 그대로 내 삶이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아이템으로 창업하면 잘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유망한 아이템이 아니라 내 삶에 일과 삶의 균형이 자라져도 될 정도로 종사하면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려면 최소한 좋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면서도 빈집을 고치는 꿈을 꿨다. 어느 정도 일과 휴식을 분리하는 것도 옳다는 건 알지만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p.115)

 

 

나의 꿈은 소도시에서 북카페 겸 책방을 경영하는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쉽게 다양한 책을 접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책으로 노는 공간을 만드는 것. 저소득층 아이들이 무료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책마다 감상 포인트를 기록해 “타인의 감상평”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효율적인 책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가게 이름도 진작 지어놨고, 한쪽 벽을 가득 채워주실 분도 섭외해놨다. (내가 소장한 책들을 합친다면 벽 두 개 정도는 채울 수 있으리라) 물론 아직 자본금이 없어 실행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룰 거다. (이 글을 읽으시는 출판 관계자분들, 협조 환영합니다ㅋ) 다소 막연한 꿈이지만 이 꿈에 불을 붙인 책을 만났다. 바로 자온길을 만든 박경아 작가님의 『오래된 매력을 팔다.』.

 

『오래된 매력을 팔다』는 부여 자온길(스스로 따뜻해지는 길이라는 뜻으로, 규암마을에 형성되어 있는 '부여 스타일 쌈지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술집이 가득했던 거리에는 이제 책방, 카페, 아트갤러리, 공연장 등과 함께 활기가 넘쳐난다.) 을 형성한 박경아 대표의 책으로, 자온길을 형성한 계기부터 과정, 공간형성과 도시재생의 노력을 모두 담고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의 업적을 기록한 수기라고 말하기엔 그 안에 담긴 열정과 꿈이 너무 크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매력을 팔다』를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고, 행복했다. 그래서 더욱, 나도 내 꿈을 향해 걸어야지 하고 다짐하게 되더라. 

 

누구나 그렇듯 박경아 작가가 처음 규암마을에 발을 들일 때, '구세력'에게 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를 손해 보게 하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상생하고자 하는 의미인 만큼 설령 날 싫어한다고 해도 그 뜻만은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p.98)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규암마을 사람들에게 다가섰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는 것을 『오래된 매력을 팔다』을 읽으며 또 생각한다. 사실 한옥을 활용해 카페를 만들거나 밥집을 만드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미 그럴듯한 집들을 일부 개조하는 경우. 규암마을처럼 다 쓰러져가는 폐허를 개조하는 일은 드물고, 골목 전체를 구성하는 일은 더 드물다. 그래서일까. 낡아빠진 건물들을 고친 그녀의 기록들은 처절하고 힘들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과정에서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생쥐의 사체를 보며, 누구의 똥인지도 모를 똥을 치우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느끼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하지만 그녀의 글은, 힘들었던 과정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찌든 느낌은커녕 밝고 화사할 정도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잘 다져진 너른 땅에 척척 집을 짓는다고 해도 이렇게 환할 수는 없다. 나는 그 빛은 “꿈”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꿈꾸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나도 가슴이 뛰었다. 

 

“평탄한 삶에만 안주할 수는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공에 작가들은 점점 자리를 잃고 밀려나고, 전통 공예는 더더욱 대중들의 관심사 밖으로 말려날 것이다. (p.181)”는 그녀의 문장을 읽으며, 그녀가 '판다'고 표현한 '오래된 매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느낀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는 꼭 자온길에 가야겠다. 오래된 매력을 사 와야지. 이왕이면 낙엽이 미처 다 지기 전에.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점점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봄을 맞는 날이 올 거라고. 박경아 작가 같은 사람이 남아있는 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 봄이 올 수 있도록, 나도 늘 관심을 품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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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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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여, 그대는 과연 악행에 빠져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어리석은 젊은 시절에 한순간의 불운으로 인해 저지르게 된 일이며, 또한 그 후로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잘못을 잊지 않고 평생에 걸쳐 속죄하였으니, 이제 그 죗값은 다 갚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저잣거리에 나가 매를 구걸하는 일은 그만두고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도록 하라. (p.122~123) 

 

 

와,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정보라 작가님의 단편소설로 욕망과 공포의 심연을 마주하게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보라 월드' 직행 티켓이다. 그야말로 보라색 공포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핏발 서린 공포가 아닌, 사람의 저 끝, 저 아래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랄까? 

 

사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의 제목이 된 첫 번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온갖 상상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두 번째 남자'인 이유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첫 문장부터 매료되어 문장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이런저런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렇게 나는 속절없이 보라 월드에 빠지는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의 두 번째 이야기 『감염』이었다. 안타깝게도 가제본으로 먼저 이야기를 만나본 터라 모든 이야기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아픔, 그것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과정 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더욱이 요즘 뉴스를 장악하고 있는 마약중독을 계속 접한 까닭인지, 인간이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이 어떤 최후를 가지고 오는지도 생각할 수 있어 소설을 읽었음에도 깊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릇된 방향으로 빠지고 마는 모습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자 고개를 휘젓는 주인공이 과연 그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을 읽으며, 그녀가 왜 이렇게 세계문단의 주목을 받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 서늘한 공포,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나를 휘감아 읽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기 때문. 물론 우리의 생과 사는 언제나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사람의 생과 사가 그저 '심장이 뛰고 뛰지 않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사람, 생물학적으로는 죽어있지만 살아있듯 선명한 감정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명 묵직하다. 읽고 나면 뒷맛이 씁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읽은 후에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만나고 싶다면,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을 꼭 한번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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