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평점 :

그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좋은 걸까, 나쁜걸까. (p.314)
사실 이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씨, 책에 얼룩졌어.’ 하는 생각 뒤 잠시 멍했다가, 문득 깜짝 놀랐다. 나, 왜 울지 하고. 돌아보니 요즈음의 나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생기지 않길 바라는 조금 지친 상태였나보다. 그러나 이내 “다른 이에게 찾아올 행복이 나에게 찾아온다 한들 이상할 게 없고 다른 이에게 닥친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해도 또 너무 억울해만 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가끔은 내게 묘한 위로가 되어준다. (p.172)”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그저 오늘을 덤덤하게 살아갈 뿐임을 재빨리 떠올려본다. 그래야 오늘 그냥 이 책에 취해 눈물을 한방울 흘린 것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를 읽고 조금 덤덤해진 내 모습에 위로를 얻었다고 적은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5년전이었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내가 다짐한 것처럼, 나는 나이를 먹은 탓인지 조금 더 유하게 누군가에게 위로를 얻고 또 조금 더 유하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읽으며 또 위로를 느낀다. 또 작가님의 문장에서 일상을 추슬러본다. 살짝 불평이 들었던 마음에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따끔한 충고를 해본다.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던 작가가 매일 산책을 하고, 그 산책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 엄청난 스토리가 담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지나는 풍경, 주변을 지나는 사람, 동네의 풍경, 비슷비슷한 일상들을 찬찬히 기록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동네, 다른 일상을 사는 나의 이야기같아서, 내 마음 같아서 자꾸 문장에 발목을 잡힌다. 작가의 걷는 속도처럼 느리게 문장을 읽다가도 마치 달리기라도 한 듯 심장이 쿵쿵 뛰기도 하고, 느린 속도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평소라면 단숨에 읽어냈을 분량의 책을, 오래오래 천천히 읽었다.
길게 이어진 연휴의 끝자락, 늦잠을 실컷 잔 후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사라져버릴 오늘 하루”를 기록한다는 그녀가 마치 내 옆에 있기라도 하듯,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읽었다. 신기한 것은 이토록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전혀 지겹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천천히 걷는 그 걸음걸음,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던 수많은 단어들이 이야기가 되고, 실체가 되어 내 주변에도 맴도는 것 같다. 그리 천천히, 또 꼼꼼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일까. 살며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자각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내 자신이 떠올랐다. 요즘 불평도 자주 꺼내고, 마음에 화도 자주 담아두었는데, 그녀의 문장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약한 존재, 그 중 내가 가장 지켜야할 존재에게 내가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어쩌면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단순히 현관문 자체를 열고 나가는 행위가 아니라 내 마음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내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지 않는다는, 다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잔잔한 이야기다. 봄바람에 가만히 살랑살랑 흔들리는 강아지풀정도의 잔잔함이다. 그러나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읽고 난 내 마음은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았다. 오늘의 귀함을 잊고 살았던 내 스스로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고, 나보가 약한 존재를 온 마음을 다해 보듬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어제보다 나아지지않아도 괜찮다고, 잔잔한 오늘이어도 충분하다고 나를 안아주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강세형 작가님께, 위로를 빚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