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이시 히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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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겨울 갑작스러운 질병의 등장은 전 세계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근세기에 들어 겪어보지 못한 질병으로 인한 역사책에서나 봤던 유럽의 페스트, 스페인 독감 등을 생각나게 했다.

공포는 마스크 대란으로 극에 달했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삼가라는 정부의 정책은 전염병의 위력을 잘 나타내 주었다.

이름조차 없었던 중국의 시골에서 발병한 이 질병은 후에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그 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스나 메르스처럼 길어야 한 두어 달 마스크를 쓰면 끝날 줄 알았지만 코로나19는 같은 바이러스에서 발병한 질병이지만 앞의 질병들보다 강한 전염력과 빠른 변이로 전 세계인의 발을 묶어두었고 모든 경제, 사회, 문화적 활동으로 인한 접촉이 금지되었다.

지금 이 책이 등장한 이유도 아마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미생물에 대해, 미생물들에 의한 질병의 역사에 대해 알아둘 필요성이 있으며 또 알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부분부분 조금 낯설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세계의 곳곳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질병의 존재와 원인 그리고 그 질병으로 인한 피해 등을 알 수 있었다.

에블라 바이러스라고 하면 치사율 90%의 질병 하나만 알고 있었는데 같은 바이러스에서 4가지 질병이 발생하고 그중의 하나만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우리가 에불라라고 부르는 병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콜레라, 결핵, 말라리아 특히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는 투탕카멘이나 알렉산더대왕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사망원인이었다고 하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흔히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다고 생각하지만 전투에서 죽은 사망자보다 전쟁 중에 질병 특히 전염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위생적 공간에 모여있는 전쟁 중의 군대야말로 전염병이 발발하기에도 타인에게 전염되거나 전염시키기에도 가장 좋은 바이러스나 균들이 번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는 것 또한 인간이 접하지 않은 질병과의 접촉을 늘이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어떤 질병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오지의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원시림을 파손하고 사람들이 살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던 동식물과의 접촉은 미지의 바이러스나 병균과의 접촉을 더욱 쉽게 하고 있다.

자연적인 발병뿐만 아니라 이 바이러스나 병균을 무기로 사용해서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연구라는 이름하에 암암리에 개발 중이니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어두운 일면을 잘 보여주는 거 같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현존 인류는 아마 처음으로 전염병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몸을 지켜주는 아군이 되어주기도 하는 미생물의 힘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여전히 세계의 곳곳에는 알지 못하는 미생물들이 존재하며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그리 오래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처럼 세계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미생물들 특히 전 세계를 공포로 떨게 했던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배꼽에 수많은 세균이 존재하는 것이나 과거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질병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고, 생활 속에 익숙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질병과 병균들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지녔는지 등등 미생물이 지닌 다양한 모습들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된 거 같다.

또한 현재와 미래를 공포로 밀어 넣을 위력을 가진 다양한 미생물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책이었다.

생물 역사에 대한 공부도 되었고, 의학적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정보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거나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놓치고 있는 위생에 관한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다.

세상은 봄이 오고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가라앉은 듯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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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자 - 장악하고 주도하는 궁극의 기술
공원국.박찬철 지음 / 시공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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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책들을 읽다 보면 그 책들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책들 고전 중에 고전들이 존재한다.

그런 고전들 중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처럼 이미 읽은 책들도 괘 있지만 시간 속에 잊혀지고 구하기 힘들어서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던 책들이 있다.

귀곡자도 그중의 한 권이었다.

삼국지를 시작으로 초한지, 수호지 그 외의 중국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그 이름마저 신비한 책사들의 스승 귀곡자의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유세가 장의와 방연의 스승이기도 한 귀곡자는 단순한 책략을 넘어서 그 험난한 시대를 살아남는 그것도 잘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아니 스승님이시다.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역사서뿐만 아니라 당태종에 대한 책에서도, 그 외에 중국의 역사를 이끈 중요한 인물들의 평론이나 전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들의 애독서가 바로 한비자와 귀곡자이다.

둘의 공통점을 따지자면 두 사람 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한계점을 냉철하게 파악했으며 그 한계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한비자가 앞에 나서 화를 당한 인물이라면 귀곡자는 자신이 스스로 나서지 않고 출사를 원하는 제자들을 가르치기만 했다는 것이다.

늘 궁금했다.

스스로 이렇게 뛰어난 귀곡자는 왜 스스로 나서서 위대한 정치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제자들 중 누군가는 한 나라의 제상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중국 제국을 처음으로 통일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으니 그들의 스승이라면 더 뛰어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거 같다.

본인이 뛰어난 것과 누군가를 잘 가르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재주이다.

제자들에게 사람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그 자신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들을 활용하는데 미숙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귀곡자를 읽으면 그의 이론 속의 그는 대단히 냉정한 분석가이다.

사람을 특히 왕이나 제후되는 사람들의 성품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넘어 갈기갈기 찢어서 해부해버리고 취할 부분과 버릴 부분을 확실하게 선을 그으리고 한다.

물른 귀곡자가 생존했을 당시의 상황이 이런 일은 일을 도모함에 있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친지들의 목숨줄까지 흔들 수 있으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귀곡자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고전들이 모두 그렇지만 몇 천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았으며 어리석고 무능하며 타인에게 폐만 끼치는 인간들의 행태는 귀곡자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고전이라고 옛날이야기라고 넘어가기엔 귀곡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들 중 대부분은 몇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통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없진 않지만 귀곡자는 긴 시간을 기다린 나에게 다시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무서움과 해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고,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냉철한 시선으로 알려주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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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교양
지식스쿨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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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꼬마 시절부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티브이 방송도 이런 프로그램을 꼭 챙겨서 보는 편이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이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세상의 각종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른 이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괘 많다.

각각의 테마에 맞는 TOP 10을 하나 둘 읽으면서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어떤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 이루어낸 것인지에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와 재미만 생각하며 읽었지만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사람들이 이만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것도 재밌지만 이런 책의 특성상 책의 목록을 보고 그날그날 흥미가 가는 테마를 읽는 것도 책을 더 재밌게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다 보면 부분부분에 한해서 특이한 과일 TOP 10이나 인기 있는 테마파크 TOP 10 등등 이런 것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점도 이 책의 매력인 거 같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아니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알 게 된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일인 거 같다.

물른 역사나 정치, 사회 등에 대한 각종 TOP 10들을 읽다 보면 단순히 흥미가 아닌 그것들이 의미하는 또 다른 이면 또한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인 거 같다.

특히 마지막 장인 정치와 경제의 특이한 이슈들을 다룬 부분은 식식으로도 교양으로도 괘나 유용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거 같다.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재들로 가득한 책이라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른 책에 비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거 같다.

책을 덮으면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살짝 웃음도 나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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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읽어주는 여자 - 공간 디자이너의 달콤쌉싸름한 세계 도시 탐험기
이다교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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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부러움과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꿈을 이룬 사람을 향한 시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부러움과 질투는 이렇게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말대로 고생을 했지만 꿈을 이룬 성공한 여성이다.

직장 생활 중에 답답함을 느끼다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가 만난 런던에서 템즈 강가의 버려진 화력 발전소를 재활용한 미술관이며 다양한 시민 편의 시설 등은 공간 업사이클링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건축물이나 공간을 그저 철거해야 할 폐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활용하는 방법은 건축적인 면에서나 환경적인 면에서도 좋은 방법인 거 같다.

언젠가 읽었던 기사에서 세계에서 최초로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한 나라가 네덜란드라고 하더니 저자를 당황하게 했다는 암스테르담 시내의 버젓이 자리 잡은 홍등가의 모습에서 다시 생각나게 했다.

고흐와 렘브란트, 베르메르의 나라, 그리고 튤립 투기로 인해 버블의 역사를 시작된 나라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 책을 보고 난 뒤에 '실로담'이 추가될 거 같았다.

현재는 많은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활동 무대가 되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도 있지만 베를린은 어떤 근사한 건축물도 패전의 책임을 제대로 지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보다 더 아름답지는 않을 거 같았다.

여전히 전쟁의 책임을 회피한 채 자신들로 인해 삶을 망가진 많은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나 사과는커녕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조차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파렴치한 그것과 비교가 되는 것은 한민족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거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인도의 찬디가르~ 가장 기본적인 교통 신호마저 무시당하는 무질서의 나라로 알려진 인도에서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도시를 만든 사람이 앞서 프랑스 편에서 자식이 이런 세상에서 고생할 것이 싫어서 자식조차 낳지 않았다는 건축가 뤼코르뷔지에라는 사실에 더욱 의아했다.

롱샹 성당과 사보아 주택의 건축가라는 사실은 이 책을 보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무질서의 인도에 자리 잡은 질서의 도시는 그가 건축으로 꿈꿀 수 있었던 최고의 작품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그전에는 인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바라나시였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찬디가르로 바뀌었다.

찬디가르의 또 다른 명소가 된 폐기물로 만든 도시공원 또한 인상적이었다.

찬디가르의 한낱 공무원이었던 넥찬드 사이니라는 조사원이 도시 계획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활용해 그저 취미로 만들었다는 이 공원은 감탄만이 나온다.

정크 아트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그는 그저 자신의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각종 폐기물로 이런 근사한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찬다가르는 뤼코르지에와 넥찬드 사이니라는 두 천재가 만들어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넥찬드 사이니가 제대로 건축이나 예술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그는 어떤 작품들을 남겼을까 하는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런 공부를 하지 않은 그이기에 그 당시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이런 근사한 공원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건축을 공부한 저자가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다니면서 쓴 유람기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고대 유적이나 중세 시대의 건물에 주로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도시들을 더욱 반짝이게 만들어주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모습을 지닌 건축과 공간을 만날 수 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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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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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비해 대중적인 음악가는 아니다.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 역시도 말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히 클래식 라디오에서 말러의 아내 알마 말러의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19세기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던 빈 사교계의 화가, 음악가, 건축가 등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일류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녀는 당당히 뮤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말러에게 알마는 모든 것이었지만 알마에게 말러는 그저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였던 거 같다.

나중에 그녀가 말러가 아닌 말러와 결혼 중에 불륜 관계였던 다음이 된 남편인 건축가 그리피우스와의 낳은 딸과 합장을 한 것을 보면 그런 거 같다.

말러는 그녀의 첫사랑도, 마지막 남편도 아니니 자신의 인생에서 말러와의 사랑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거 같다.

처음부터 빈의 이방인이었던 말러가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알마를 아내를 맞이한 것이 어쩌면 기적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교양과 센스까지 뛰어났던 사교계의 여왕이 잠깐 성격까지 어두운 시골 출신으로 막 후광을 받기 시작한 천재에게 잠깐 호기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이도 많은 유대인 지휘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것은 그녀의 인생을 평생 풍요롭게 해주었으니 그녀야말로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의 증거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말러와 결혼 전에도, 말러와 결혼 중에도, 말러의 사후에도 그녀는 자신의 매력과 자신의 아버지와 양아버지를 포함하여 주신의 주변의 남자들을 충분히 활용해 명성을 유지하니 그녀가 예술가적 재능의 유무는 그녀에게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거 같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극성적인 부모 특히 아버지의 철저한 음악 교육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말러에게 가정 환경은 오히려 아버지의 술집이나 근처 광장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민족의 음악을 빼면 최악의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빨리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지만 그의 부모는 천재적인 그의 재능에 관심조차 없었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그는 작곡을 하고 음악을 탐구했다고 하니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의 음악적 문외한이 그에게 음악적 자유로움을 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의 성공을 바랐던 아버지는 말러의 재능을 발견한 피아니스트의 말대로 그를 빈으로 보냈고 학교 성적이야 어쨌든 그는 빈의 상류층에 당당히 입성하였으며 그 증거로 알마라는 아내까지 얻었으니 아버지의 바람보다 더 큰 성공을 한 셈이다.

알마와의 결혼생활은 장녀의 죽음 이후로 불륜과 파경으로 치닫지만 그래도 알마가 말러가 죽을 때까지 아내의 자리를 지켰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녀로써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어린 시절부터 사교계의 꽃으로,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로 활동했던 그녀가 19살 차이가 나이는 가부장적인 말러에 알마는 처음부터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지 않았을까, 그런 알마가 8년이나 그의 요구를 맞춰주며 가정적인 아내 노릇을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러의 사후에 '말러'라는 브랜드를 철저하게 자기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그녀의 행적을 보면 왠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 씨가 생각나는 것은 죽은 남편을 두고 자신이 유리한 대로 모든 것을 만들어버린 능숙함 때문일 것이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라는 조력자가 있었다면 말러에겐 여동생들이 있었다.

오빠의 모든 것을 맞춰주고 케어해준 그들이 있었기에 말러는 자신만의 오두막에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저자는 말러의 오두막 3군데를 다녀왔고 가는 여정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으니 나중에라도 가게 된다면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말러의 전기는 이미 몇 권이나 나와있으니 굳이 이 책까지 말러의 인생에 대해서 쓸 필요는 없다.

말러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조금 다른 거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러에 대해서 단순히 천재 음악가로서가 아닌 말러가 살아간 세상의 모습이 어떤 이데올로기와 어떤 사람들의 이익들이 부딪히고 그 안에서 말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또 그가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 당시의 시대적 사실을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순히 악처로만 생각했던 알마 말러에게 조금은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알마 말러는 아내나 연인으로써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투자자로서의 자질은 뛰어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녀의 연인이나 남편들 대부분이 세계 예술사에 흔적을 남겼으며 그들이 남긴 작품들 속에서 그녀는 영원히 여신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휘자로는 이른 나이에 인정을 받았지만 작곡가로는 인정을 받지 못해서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외국으로 끊임없이 원정을 다녔던 탓에 건강이 약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깐깐한 성격의 완벽주의로 인해 단원들이나 악단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빈에서 지휘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건너간 후 단원들과 관계에서도 조금은 인간다움을 보여준 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에게 3개월간의 유럽의 숲속 오두막에서 보낼 여름휴가가 절실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에게 지휘는 작곡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벌기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거 같다.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고 잘 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말러의 음악들이 인정을 받아 천재 작곡가 말러의 음악들이 세계의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지만 그의 개인사를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가 작곡은 그저 취미 정도로만 하고 지휘 활동만을 했었더라면 말러의 인생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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