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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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리-매년 청명이면 만나는 연인이 있다. 어리석기 때문에,가난하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도 무섭기

때문에.."가끔이라도 매달려 울 수 있는 태산 같은 남자가 필요해요. 가난이 죄는 아닌거죠?"라고 물어오는 여자를

뿌리치지 못한 남자가 있었다. 한여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의 먼친척뻘이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우연히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마뜩치않게 마주친 여자는 후배가 아닌 다른 남자와 호텔객실 엘리베이터에서 한번 마주친

기억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불쑥 1년에 그저 몇번만 만나주면 된다니..참 당돌한 여자다.

청명에 만난 그녀에게 그남자는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왜 꼭 그남자여야 했는지..굳이 아내있는 남자여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아마 수경은 구속하지 않는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그가 나타났기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진물이 흐르는 젖가슴을 부여잡고 발목을 다친 학이 날아와 몸을 회복하고 돌아간 온천에 내려가 그를 기다린다.

이제 그를 놓아주기 위해,칼로 젖가슴을 도려내는 것 보다 더 큰 아픔을 될 마지막 여행을 하기 위해..

그리고 '보리'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2. 풀밭위의 점심-대학시절 만나 서로 우정과 애정 사이를 오가다 끝내 모든 인연이 흐트러져 버리고 중년의 나이가 된

세사람의 이야기이다. 한여자를 사랑했던 두남자와 두남자를 사랑했던 한여자는 결국 그중 한남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이별한다. 남겨진 한남자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여자의 전남편이기도 한 연우의 전시회를 찾아간다.

오래전 그녀의 고향인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구경하고 풀밭에 앉아 그녀가 싸온 점심을 먹고 알몸이 된 그녀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결혼생활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녀가 그리워했던 것은 남겨진 남자였을까.

아이를 찾기위해 한국에 온 그녀가 "헤어지기 전에 나 좀 안아줄래?"...남자가 그녀를 안아주었을때 이제 그녀가 더이상

그리움의 고통속에서 허우적 거리지 않을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3. 대설주의보-실연이 고통에 빠진 여자와 일본에서의 기괴한 체험때문에 '삶의 연속성'을 잃고 허둥거리던 남자가

만났다. 연인이 된 그들이 평안했던건 1년뿐. 그녀의 친구이기 한 한여자의 이해할수 없는 장난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문득 그녀가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언뜻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것 같은 느낌속에서 그들은 드문드문 만나기도 하고..연인인지..친구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흐른다. 어느날 그녀의 자살소식을 듣고 남자는 그녀에게로 향한다. 이제 자신이 뭘해야하는지 확신을

가진 남자는 대설주의보의 길을 뚫고 백담사로 달려간다. 20분이면 될거리를 12년이나 걸려 휘둘러간 사랑의 길을..

폭설을 뚫고 백담사에 오르던 그에게 부연 불빛이 보인다. 12년의 시간을 뚫고 그녀가 그를 마중나오고 있다.

 

 #4.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유난히 최무룡이 부른 '꿈은 사라지고'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결국은 피를 보고야 마는

폭력성이 있는 삼촌은 자신의 첫사랑 여자와 결혼한다. 이제는 숙모가 되어버린 여자의 남편이기도 한 삼촌은 결국

자신이 조카의 여자와 사는것에 평생 죄책감을 느낀다. 애증의 세월이 흘러 죽음을 맞이한 삼촌의 병실에서 다시만난

여자에게 말한다. "삼촌이 우리를 사랑했던 걸까요?"



 #오대산 하늘구경-아무도 사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와 그여자를 먼저 아는체한 남자가 말한다. "함께 있으면

뭔가 위안이 돼." 그남자는 비합리적이고 비물질적인 관계가 필요했다. 부부관계를 포함해 늘 거래에 지쳐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럼 이런 관계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이런관계가 그녀를 적멸보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얘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그대는 가던 길로 마저 가게."

노비구니의 말처럼 그녀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아마 그남자는 그곳으로 그녀를 데리간것을 뼈아프게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잘나가는 영화 시나리오도 소설도 쓰지 못하는 여자작가가 있다. 우리는 그녀를 '미쓰 강'이라고

부른다. 한남자는 그녀를 모욕하는 영화사에서 그녀를 건져내 선세를 주고 소설을 쓰게한다. 소설을 쓰기위해 도비도에

내려간 그녀를 보기위해 두남자는 섬으로 간다. 결국 그렇게 쓰여진 소설도 빛을 보지 못하지만..

왜 그녀는 도비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밀물이 자신을 휩쓸고 가리라는걸 알았을까.

한 번 배신당하면 두 번 다시 울어주지 않는 여자와 같은 시(詩)를...물질적으로 눈물과 성분이 같은 시를 끝내 쓰지

못한 한남자의 그녀의 죽음에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고 다시 도비도로 향한다. 분노에 찬 또다른 남자와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미쓰 강을 지우기 위해..

 

 #여행, 여름-글을 쓰는 두 남자가 여행을 떠난다. 굳이 같이 가야 할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 여행길에서 한남자는

떠나간 여자가 대학로에서 화장품가게를 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런이유로 대학로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처음만난 이들이 자갈치시장으로 해운대로 달맞이 고개로...어느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떼로 와서 죽은 고래가 있는 강구항으로...안동에서 간고등어 정식을 먹고 한남자는 끝내 안동에 있다는 지인을 만나지

않은 채 서울로 돌아왔다. 강구에서 만난 화장품 가게 주인인 서울여자의 추억은 덤이라고 할까.

고래가 떠밀려 왔다고 전화를 걸어온 여자를 두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남자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한남자는 혼자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토속음식을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깊이 사색하고 흠뻑 취할 수 있는

문학의 정수를 그대로 마신 느낌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기억속에 묻혀있던 고향을 맛을 떠올리게한  이 단편의 글들은

길었던 지난 겨울만큼이나 춥고 시리다. 어긋난 사랑들과 이기적인 사랑때문에 외로웠다.

늘 엇갈리고 피해가는 사랑때문에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는내내 대설주의보속에 갇혀 옴짝달짝 못하고 있는 조난자처럼

고독했다. 그런데 묘하게 가슴은 조용한 평정이 찾아왔다. 눈이 오는밤은 유난히 조용한것처럼..

모든 소음과 번잡을 잡아먹고 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마음으로 조용히 책을 덮었다.

아무 누군가 다시 이책을 집어든다면 '대설주의보'속 폭설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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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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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멀쩡한 나를 부끄럽게 한 책입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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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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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은 기쁨이고 축복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것처럼 우리는 자식을 통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인내...결국 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같은 존재가 바로 

자식인것이다. 하지만 나의 분신인 자식을 키운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제대로 한사람의 몫을 하고 살아 갈수 있도록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남을 도울 수 있을정도로 살아갈수 있도록 키워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을 배우며 비로서 어른이 되는 것 같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면? 나의 열성유전인자가 몇만분의 일의 확률로 아이게게 

전해져 평생 장애인이란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 잘못은 과연 누구 때문인것인가. 

나? 아니면 신(神)? 물론 태어난 아기에게 잘못은 없다. 하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고통과 편견의 불이익을 아무 잘못도 없는 아기가 고스란히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라는 표현을 한다. 

전생과 내세를 믿는 동양적인 사고로 보면 내몸을 빌어 태어난 자식이 비정상적인 몸과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것도 다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죄의식을 갖고 온가족이 죄인인양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평생 짐이 될 아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버리기도 한다.  

 


1988년 3월 한아이가 이런 많은 의문부호를 가지고 미국의 한가정에서 태어났다. 

존휴스와 퍼트리샤의 첫아이인 헨리는 '양안 무안구증'과 '다발성 이형'이라는 중복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여러번의 수술을 거쳐 척추에 쇠심을 박고 의안을 이식하는 과정을 보면 

어린아이지만 의젓하고 인내심 강한 헨리와 오로지 자식이 이세상에 제대로 살아갈수 있도록 

정성을 쏟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은 한쪽문을 닫으시면 다른 창문을 열어놓으신다는 말이있다. 

비록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헨리는 뛰어난 음악감각과 섬세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였다. 120cm이상만 탈수 있는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트를 타기위해 척추에 쇠심을  

박아 10cm의 키를 키우기 위해 무시무시한 수술까지 견뎌내는 용기있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루 네시간의 수면과 야간작업의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헨리를 돌보는 존휴스의 희생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동생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헨리는 없었을것이다. 더구나 헨리는 정상인들보다 욕심도 많은 재능꾼이 아니던가. 

도대체 마칭밴드가 가당키나 한일인가 말이다.  

휠체어를 타고 가만히 앉아서 트럼팻을 부는것이 아니라 쉴새없이 대열을 만들어가며 

움직여야 하는 마칭밴드라니...도대체 존휴스와 헨리는 어디까지 도전할 작정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날더러 마음의 눈으로 보면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 깜깜하다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밝음을 경험해봐야  

한다.' -123p 

우리는 두눈으로 많은 것을 본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면서도 정작 보지 못하는것들 너무 많다. 

헨리는 우리보다 많은것들을 본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귀기울인다.  

기적은 하나님이 미리 예정해놓으신 길일수도 있지만 헨리와 그 가족들의 노력...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던 모든사람들의 작품이다. 

그들 가족이 원했던 집이 완성되던날...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수천명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고 헨리가 이세상에 온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헨리를 통해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무게를 지고 산다. 그런데 그 무게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277p 

처음에 그들은 커다란 짐덩어리를 진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지고 있는 짐들을 덜어주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두고 살아간다. '가능성'이라는 빈 바구니에 무한의 '가능'을 담으면서 살아가는 헨리와 

그가족들을 보면서 나도 불필요한 짐들을 덜어내고 무한한 '가능'을 차곡차곡 쌓아둘 

바구니를 간절하게 갖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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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몽텐
니콜라 바니어 지음, 유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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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때때로 야생을 꿈꾼다. 어쩔수 없이 무인도에서 살게된 로빈슨 크루소의

삶도 멀리서 보면 꽤 낭만스러워 보인다. 전기도 수도도 전화도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남는 야생의 세상!

하지만 혹독한 추위와 거대한 흑곰이 살고 있는 로키산맥을 여행한다면? 하루 이틀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18개월된 아가를 데리고 툭하면 도망치는 말을 끌고 나선 여행이라면...사절이다.

프랑스의 탐험가 니콜라 바니어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길을 나선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은 더 커져가고, 그럴수록 생명 자체에 대한 경외심,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감옥 저편에 숨겨진 것들에 대한 경외심은 더 커져간다. -410p

 

불과 5%의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문명이라는 감옥에서 니콜라는 저편에 숨겨져 있는 세상에 대하여

남다른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누구든 가보지 못한 세상, 인간의 탐욕과 더러움이 물들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랫동안 준비한 여행이지만 날씨도 고집센 말들도 예측하지 못했다. 떠난날부터 시작된 비는 창밖을 통해 보았을때와

같은 낭만은 커녕 춥고 눅눅하고 더딘 발걸음의 원흉이되고 걸핏하면 도망치는 말들은 느리게 살고 싶은 니콜라에게

인내심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다행스러운것은 출발할때 차고 있던 기저귀를 떼낸 몽텐과 니콜라가 존경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수 밖에 없는 무던한 아내 디안이 있다는 것뿐이다. 물론 기가막힌 절경도 위안이 되긴 한다.

 

얼마전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에서 처럼 야생은 결코 인간에게 녹록치 않다. 길들여 지지 않은 흑곰이나 늑대와

끊임없이 피를 요구하는 모기들...아 나는 이 부분에서 벌써 꽁무니를 뺐다. 한달내내 빗속을 걸어야 했음에도 정작

목욕은 못하는 찝찝한 여정에 때묻지 않는 자연과 넋을 빼앗길 만큼 장관이라는 경치가 보답이 되긴 할까?

 





아마 니콜라 혼자 로키산맥을 넘어 알래스카로 향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가와 아내는

길이 막히고 위기가 올때마다 가장인 니콜라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알지못한 무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했던 사랑스런 가족들....파리에 있었더라면 저녁늦게나 주말에만 마주했을 딸 몽텐은 아빠로서의 책임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스런 천사이다. 야생에서 이렇게 잘 적응하는 아기가 있다니...엄마,아빠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은것이

틀림없다. 세살짜리 꼬마가 열한마리가 모는 썰매를 몰고 싶어하다니...훌륭한 꼬마 이누이트인의 자질이 엿보인다.

 

아 나는 니콜라가 커다란 소나무를 잘라 통나무집을 짓는 장면에서는 부러움을 숨길수 없었다.

번잡한 삶에서 벗어나 내가 짓고 싶었던 집...더구나 멋진 호숫가라니...나도 그곳으로 날아가 도끼를 잡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멋진 싱크대도 욕조도 없는 야생의 통나무집이라니...덕지덕지 묻은 탐욕과 문명의 때를 벗어놓고 한가롭게

머물고 싶은 곳이 바로 이런 통나무집이었다.  비행기로 공수해온 유리까지 덧댄 창문도 있는 진짜 집이다.

 




가끔 흑곰이 내려와 식량을 거덜내고 사랑스런 충견 오춤을 위협하지만...그래도 나는 이 통나무집에 열광했다.

무사히 알래스카의 도슨에 도착한 용감한 세사람의 여정에 유일하게 아쉬운것은 이통나무집을 호숫가에 놓아두고

올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곳을 가볼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도 그집에 방문할수는 있을까.

길이 없는 곳을 걸어 그곳에 도착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못을 친 현관문을 열고 잘마른 장작을 넣고 나무냄새

솔솔나는 통나무집에서 잠드는 꿈으로...아쉬움을 달래야 할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몽텐이 동네 놀이방에서 나온 점심으로 생선이 나오자, "이거 누가 잡았어요?'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발그래한 얼굴과 맑은 두눈에서 야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랑스런 몽텐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미소가 떠올랐다. 몽텐의 아빠, 니콜라의 바램처럼 대자연 속에서 야생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기억이 거친 세상속에서 오아시스처럼 솟아나 몽텐의 삶이 메마르지 않고 풍요롭기를 빌면서 마치 나도

이들과 같은 일행이었던것 같은 이 여행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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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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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심장을 준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지만 그 심장을 뛰게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

 

심장을 준 사람과 심장을 뛰게 만든 사람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당신을 누구를 택하시겠어요?

심장을 준 사람은 내가 선택 할 수 없었지만 내 심장을 뜨럽게 뛰게했던 사랑만큼은 내가 선택하고 싶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대답을 들려주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적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법이지." -109p

 

하지만 그 적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이라면? 남다른 감성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순수함이 지나쳐

세상살이에는 애송이같은 녀석이라면 그래도 내 가치가 제대로 값이 매겨지기는 할까.

평생 사랑하는 딸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아키볼드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같이 했던 시간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너무 오랫동안 같이 하지 못했던 두남자와 두여자가

있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정말 소설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랑일까요.

잘나가는 락스타의 아내로 매를 맞으며 살고 있던 한여자와 이미 식어버린 사랑이지만 위태롭게 결혼생활을 연명하던

한남자가 위대한 사랑을 시작합니다. 적어도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그남자의 아이를 목숨걸고 낳기전까지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때로 운명은 숭고한 사랑마저 훼방을 놓치만 견고한 마음만큼은 깨지 못하기도 합니다.

 

두달이란 시간으로 운명적인 사람을 결정한다는건 너무 짧을까요? 또 열흘이란 시간이 13년의 시간을 속박할만큼,

두사람의 삶을 고통으로 이끌수 있는 시간이라는걸 예전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은 만큼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 경찰이된 마르탱과 자신의 사랑에 자그마한 사인이라도 보내달라며 그가

어렵게 보낸 뉴욕행 비행기표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가브리엘이 있습니다.

사실 그녀의 이름대로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마르탱에게 엄청난 시련이

될거란걸 그녀가 모르지 않았을텐데....13년후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교차되는 어느 탑승대기구역에서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하지만 한남자를 암흑으로 끌어내린 이유로는...너무 불공평합니다. 뉴욕에서 그에게 말했다면 같이 손을

잡고 그녀의 갑작스런 시련앞에 맞설수도 있었을텐데...사랑이란 이름으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건..모순 아닌가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love-in이 있을거에요' -스코드 맥켄지의 노래

 

노랫말처럼 평화와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 살것만 같은 샌프란시스코는 마르탱과 가브리엘이 짧지만 긴 사랑을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1937년 다리가 개설된 이래 1,219명이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는데 겨우 27명만이 목숨을 구했다는 금문교가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합니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곳을 눈에 담고 싶은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락거리는 70미터, 수면에 닿는 4초동안 스스로 뛰어내린 사람들조차도 뒤늦은 후회를 하는 저곳에서

짧았지만 긴시간 사랑의 고통에 힘들었던 두남자가 저곳에서 몸을 날립니다.

 

어차피 두달도 남지 않은 생을 생각하면 억울한 것도 없는 죽음이지만 세기의 도둑 아키볼드는 아직 할일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평생을 지켜줄 남자도 되돌려 보내야 하고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도 가봐야 합니다.

문득 삶과 죽음의 경계에 분명 뭔가가 존재할거라고 믿고 싶었던 내게 이렇게 잠시라도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삶을

되돌아 볼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위안이 되었습니다.

레스토랑의 음식도 면세점의 물가도 비싸긴 하지만 뭐 대수겠습니까. 어차피 가지고 갈수도 없는 돈일 뿐인데.

 

아키볼드가 말한것 처럼 사람은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마치 벌 받는것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댓가가 될지라도 상처뿐인 사랑일지라도 평생 사랑을 쫓을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떤 어려움이든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게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모든 걸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헌신의 과정이 아닐까? 늘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되돌려

주겠다는 양보와 희생의 각오가 필요한게 아닐까? -242P

 

먼길을 돌아 한남자와 한여자가..한남자와 한여자의 이런 헌신으로, 희생으로 다시 만납니다.

30년동안 서로를 그리워 했던 두사람도 너무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이제서야 손을 잡았습니다.

일정한 나이가 지나게 되면 삶이라는 게임의 목적은 쟁취에서 수호로 바뀌게 된다는..그 일정한 나이에

이른 나도 아키볼드와 발랑틴처럼, 마르탱과 가브리엘처럼 열렬한 사랑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신 없는 이세상은...물없는 사막이요..하는 신파조의 대사가 아직 남아있기는 한건지..자신은 없지만. 

아직 사랑이 있을거라고 믿는 모두에게 이제 사랑은 없을거라고 믿는 모두에게 이책을 권합니다.

 

기욤 뮈소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록 마지막 부분에서 어이없게 마르탱에게 재갈이 물리고 결박당하긴 하지만 오문진이라는 멋진

한국여성이 나온다는건 저자에게 한국이 제법 의미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특히 본문에서 'Jopok'이라는 낯뜨거운 단어가 나오긴 한답니다만 그것 또한 저자가 우리 한국을 너무나

많이 들여다 보고 싶어했던 열정이라고 해석한다면 변명이 될까요.

 

아무리 마르탱과 가브리엘처럼 살고 싶다고 해도 나는 '천국의 열쇠'를 바다에 버릴수 없을것만 같습니다.

금문교에서 그 다이아몬드를 버리느니...팔아서 샌프란시스코 소살피토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하긴 평생 훔쳐들인 값비싼 명화들을 박물관 입구에 놓아두고 오는 두사람에게 뭐를 더 기대하겠습니까.

가브리엘이 간절히 원하던 마르탱의 아이들을 많이 만들기를 바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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