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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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에나 비슷한 모양이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고 도시가 다를 뿐, 살아가는 일상들의 색감은 많이 닮아있다.

도쿄, 오사카, 상하이, 서울에서 빚어지는 삶의 파편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탐욕하는 일상들이

잔잔히 펼쳐져있다.

작가가 10년의 세월에 걸쳐 발표한 10편의 단편을 묶어낸 이작품은 작가 자신의 길찾기,

즉 문학의 길 찾기와 소설가로서의 길 찾기를 의미한다.

10의 단편의 특징은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도시 어디선가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이별하고 고독해하며 살아가고 있을것만 같다.

'나날의 봄'에서의 다테노와 이마이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척하면서도 서로를 들여다 보고 있다.

아마 지금쯤은 둘이 열렬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엇쯤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현재진행형이므로 결말은 없다. 다만 상상할뿐.

 

'새벽두시의 남자'에서 중학생이 된 딸과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를 가보는 장면에서는 어느새

자라 엄마의 흔적이 스쳐간 곳을 찾아볼 생각을 한 딸의 생각에 대견함이 느껴진다.

요즘 아이들 그런 공부에도 지치고 저들끼리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터에 어찌 그런생각을 했을까.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소감" 흐음, 글쎄...평범해'할때는 웃음이 픽하고 터져나온다.

왜 우리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 나이에는 별거 아닌거에도 심각한척 해보는 겉멋말이다.

한밤중에 몰래 숨어든 다카무라군처럼 불쑥 찾아들어왔던 사랑의 흔적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치한을 만나는 일은 어디에도 비슷한 모양인지..

'녀석들'에서 그녀석은 하필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란 말이지..더구나 변태성욕자?

흔히 여자들의 엉덩이를 집쩍거리는 남자만 생각하다가 엉뚱한 게이의 발칙함이 놀랍다.

그러니 당하는 무네히사는 소리를 지를수도 없고..잘못하면 정신병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니...억울한 마음에 쯧쯧소리가 절로나온다. 그냥 손을 확 낚아채서 무조건 전철밖으로

끌고나오라구. 하지만 되려 치한으로 몰려 난폭하게 입을 틀어막히고, 등을 무릎으로 찍히고,

두 손 두 발을 꺽이는 장면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허무맹랑한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고 살고 있는것이 떠올라서..어디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 인가.

 

'캔슬된 거리의 안내'의 나쓰세는 유부남을 사랑하여 떠나간 연인의 어머니와 묘한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떠나간 여인의 기억을 붙들고 싶었던걸까. 딸의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묘한 감정을 얹고 있던

연인의 어머니는 결국 극적인 방법으로 그의 의식을 깨운다. 그래도 그렇지 도벽이라니..

하긴 그런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나쓰세가 쓸말이 많아지긴 할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회사갔다가 일찍 퇴근하여 잤다'라고 밖에 쓸말이 없다면 어디 소설이 되겠는가.

재능있는 작가가 되려면 이웃도 아주 드라마틱하게 만나야 할것 같다.

 

언듯보면 전혀 다른곳에서 일어난 일인것 같은 조각들이 하나씩 맞물려 '도시'가 되고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가는 떠나야할 여행자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잠시 머물다갈 정거장일뿐. 영원할것 같은 삶도 사실은 소풍나온 여행자일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사물들을 바라다보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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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기 아시아 문학선 8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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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키나와는 한때 독립된 류큐왕국이었다. 메이지 시대에 본토의 침략으로 인해 복속되기 전까지는..

마치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동화정책을 펴듯 오키나와역시 식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섬이다.

뿐만아니라 2차세계대전후에 전범국으로서 속죄양이 되었던곳도 바로 오키나와이다.

주민12만명이 사망하고 전후에는 미군기지로서 속살을 내어주어야 했던 오키나와는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섬이 되었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든 같은 일본이라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죽어간 안타까운 점에서 본다면 아쿠타가와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상을 수상했던 저자 메도루마 슌의

고향이며 이글에 소개된 오키나와의 상처들이 저자에게 어떤의미일지를 짐작케한다.

 

#혼 불어넣기

마흔이 넘어 귀한 아들을 얻은 어려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이웃에 있는 부모님의 친구 우타를 친어머니처럼

여기고 지낸다. 가끔 혼이 나가곤 해서 우타는 제사를 지내고 초혼의식을 통해 다시 혼을 불러들이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다시 혼이 빠져나가고...우타의 정성에도 다시는 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가 죽어갔던 그바닷가에서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나버렸다.

갑작스럽게 닥친 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끌려가 죽고 굶어죽어간 선량한 주민들의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

물론 우리는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죽어간 피해자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그안에서도 나름대로의

또다른 전쟁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런점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알게된것은

뜻밖의 일이 되었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근대에 접어든 일본의 시골은 아직 너무 가난하여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입하나 덜어주려고 이민자들의 대열에 올라선 한 남자는 떠나는날 아침 아버지와 동굴에 숨어들어

아주 특별한 술을 마신다. 기름종이로 봉해놓은 아와모리 술!

"잊어버리지 마라' 눈물을 감추며 아버지는 말한다. 앞으로 몇십년이 될지 모르지만 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 술을 묵혀두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겠다.

남자는 브라질에서 역경을 겪을때마다 그술을 기억했다. 언젠가 아버지와 그술을 마실 것이다라는 기대로.

하지만 남자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오키나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는 철조망 너머 미군기지가 되어버린 고향땅에 가족은 없었다. 전쟁통에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철조망너머 동굴이었던곳을 기어들어가 그술을 찾아낸다.

브라질에서 살다왔다고 브라질 할아버지로 불려진 할아버지는 가끔 그술을 꺼내어 아픔을 달랜다.

그에게 그술은 가족이고 추억이고 상처를 달래주는 약과 같은 존재였다.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책은 오키나와가 근대에 들어서 겪었던 전쟁과 그후 미군기지로 더렵해지던

시절의 상처와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소용돌이에서 어떤이는 적응하고 어떤이는 낙오하는 과정을

아프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한때는 평화롭고 아름다왔던 오키나와가 서서히 죽어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언뜻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듯한 작품도 보인다. 우리가 아팠던것 처럼 작가도 상처의 그늘이 떠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순간 전쟁을 일으킨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 인간은 엄연히 구별되어져야 할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들은 나라와 상관없이 비참하게 남겨진다는 것을

아프게 돌아보게 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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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장혜민 지음 / 산호와진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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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헌옷을 벗어야만 새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살아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205p

헌옷 벗고 다 비우고 가신 그곳에서는 연꽃도 피우지 못하는 진흙같은 이세상 걱정은 다내려

놓으셨는지요. 해인사로 송광사로 불일암에서 오두막으로 향하신 이유가 번잡한 속세와 사람으로

부터 놓여나고 싶은 마음때문이시지요. 한때 왜 절은 산속에 있어야만 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나 성당처럼 한동네에도 여러곳이 있어 닿기 편한 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사찰마다 다니면서 계를 받는다고 정토에 이르겠습니까.

절이 산에 있어 부처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닐것이요.

옆집에 있다해서 성불을 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 욕심많은 인간의 한계가 되겠지요.

 

때로는 산으로 숨어들다가도 울분하여 다시 속세로 내려오시기를 반복하신 이유가 오히려 조용할날

없었던 그시절에 스님의 번민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님이 나시고 자란 시간은 우리의 영토가 살육과 상처로 얼룩진 시절이었지요.

아직은 산다는 일에 그리 허무를 느낄 나이에 출가를 결심하신 일은 이미 전생으로부터 정해진

일들이 아니겠는지요. 스님의 선택이라기 보다 부름에 가까운 삶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덕이 높고 법문이 밝고 혜안이 트이면 큰스님이라고 하지요. 얼마전 읽었던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봐도

중이 산에서 수행할 일이지..창들고 칼들고 인명을 살하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의연히 산을 내려와 창을 들었던 사명대사처럼 그렇게 또다른 전쟁을 치루신듯 합니다.

피비린내 진동하고 억울한 주검이 한둘이 아니었던 시절에 어찌 산속에 수행자로만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총부리 앞에서도 할말하고 상처받은 대중을 용기있게 껴안을줄 알았던 스님은 종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분이시지요. 어느 종교와도 불화하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해주셨던 모습은

저들의 종교를 지키겠다고 서로를 죽이고 싸우는 지구상의 모든 종교인들에게 귀감을 보여주셨습니다.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 종교의 잣대로 재려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165p

 

종교의 본질을 이렇게 속시원히 풀어주시니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말빚이 많아 다 거두고 싶다던 말씀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시던 스님의 소망이시라 거들어 드리고

싶어도 그말로 하여 평화를 얻은 수많은 이들과 남겨진 글로 앞으로 밝은 깨달음을 얻게 될 사람들에게

희망을 뺏는 격이라 차마 스님편을 들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펴, 잘 알고 익혀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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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현세에서 만나 이렇게 미욱한 저희에게 밝음을 주시었으니..

내세에서는 어느곳에서 만나 그리움을 달래려는지요.

스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린왕자'와 그 별에서 누워 푸른별인 지구를

굽어보고 계시는건 아니신지요. 어쩌면 이미 이세상의 어느 연꽃으로..

돌아와 계신건 아닌지...스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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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노트에 나를 쓰다
이희정 지음, 히로시 모토아키 옮김 / 이젠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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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아십니까?'

마치 길에서 듣던 '도를 아십니까?'처럼 불쑥 이렇게 물어온다면..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나만큼 나를 잘아는 사람이 어디있어. 당연히 나는 나를 잘압니다. 과연 그럴까요?

바로 이책에 해답이 있습니다. 일단 첫장을 열기 전에 펜을 준비해야 합니다.

약간의 그림솜씨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화가가 될 재능을 보는것이 아니니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가? 참고 마는가? 하는 섹션에 첫질문은

1. '친구의 오해나 잘못된 행동을 알게 되면 충고하고 싶어진다.'입니다.

대답란에 하나하나 O,X로 표기를 하고 다음장에 데스트 결과보기를 보기만 하면 됩니다.

정답고 없고 물론 커닝도 필요없습니다. 자 이렇게 시작된 테스트는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서'가는

첫 여정입니다.

 


 

 

X가 많다고 부정적인 인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솔직하게 대답란을 뒷장에 결과를 찾아보면..

세상에 그동안 나를 가장 잘 알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순간이 됩니다.

신중한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충동적인 편이라는군요. 저런...

어디서나 남을 즐겁게 하고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내가 내성적이라니..정말 의외입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야심가에..리더쉽이 있으며 창조적 소질도 있답니다. 이건 맞습니다.

강박관념이 있고 상대방을 고를 때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감정의 표출정도가 너무 심하다네요.

이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품절남이 된 배우 장동건을 좋아하냐구요? 물론 좋아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이 글은 장동건을 그리워해서 쓴 편지가 아니고 글씨체에서 발견하는 독특한 나의 개성을

찾아보는 테스트입니다. 남에게 지적 당하는걸 싫어하고 신중하고 작은일에도 신경쓰는 면이 있다.

하긴 대범한 척 해도 소심한 구석이 있긴합니다. 물론 꼼꼼하고 다른사람을 잘 챙기는 것도 맞습니다.

도대체 이 저자는 어디에서 이런 자료를 모아 이런 책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저 상대를 잘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 이런 쪽집게 책을 낼수 있는건지..너무 궁금해집니다.

아 심리학자 시군요. 그의 또다른 저서중 <왜 전철 좌석은 끝자리가 인기 있을까>는 꼭 보고 싶은 책입니다.

저도 전철의 끝자리를 좋아하거든요.

 

이렇듯 심리학 박사가 만든 진정한 '나'를 진단해 볼수 있는 이책으로 진단한 나는 내성적이고 충동적이고

조울형인간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빼면 정확하게 나를 스캔해냈습니다.

그래서 이책은 몰래 내방에서 문을 잠그고 메모를 한후 결과를 없애버려야 할 책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혹시 압니까. 누군가 나를 염탐하여 허를 찌를지..

혹시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평생의 라이벌이 있다면 웃으면서...꼭 웃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긴장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고 참여할 수 있도록...이책을 건네 주는 겁니다.

도와주는 척 하면서 그의 내면을 모조리 머리속에 담으면 됩니다. 이제 그를 이기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상상력도 필요합니다. 저위의 그림 어디엔가 나를 세운다면...그리고 저 산자락 어디에 다리를 세운다면..

리더쉽과 과거, 현재, 미래중 어느시기를 중시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부러 쪽집게 도사를 찿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동안 알아왔던 '나'에 대한 생각이 맞았는지..확인하고

잘못된 성격이나 사고가 있다면 수정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너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모르고 어찌 남을 이길수 있겠습니까.

물론 꼭 남을 이기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잘못된 '나'로

인해 상처받는 누군가가 있었다면..잘 다듬어진 곧은 길을 두고 자갈투성이의 산길로만 걸어온 인생이라면

이 책으로 제대로 된 길을 안내받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작지만 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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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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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 슬쩍 옷깃만을 스치는 인연이라도 몇백겁 전생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미리 작정한 일도 아니었건만 부처님 오신날 빼어든 책이 바로 이책이다.

혹 전생에 혜민스님과 나의 맘남은 테벳의 린포체스님과 혜민의 인연처럼 예정된 일들은 아니었을까.

우연히 미국의 버클리대학 교정에서 마주친 인연으로만 불가에 귀의했으랴 싶지만 린포체 스님은

일부러 그곳에서 혜민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생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연이 깊다 했으니 혜안이 밝으신 큰스님이 그의 인생 길목에서

당연한듯 그를 맞으셨을거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 하버드가 붙는 것 만으로도 학력 지상주의의 위선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는 서문처럼

부처를 모시는 승가의 사람이 떡허니 뉴욕의 성베드로 성당안에서 찍은 사진을 표지로 삼은 것만으로

이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진다.

위선적이고 공격적이고 포장되어진 종교가 아닌 날 그대로 순수의 말씀을 전하고픈 간절함.

아마 그것이었을게다. 귀여운 담쟁이 아이비가 한국에서는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는 미국대학의 상징이

되었고 쉬운듯 말하지만 한때는 그곳에 적을 두었던 스님이 절로 들어간 까닭은?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는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기준점과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40p

 

그가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하버드와 버클리를 떨치고 승복을 입은 이유이다.

 

우리는 미욱하여 평생 죽지않고 살것처럼 오만하고 흔하게 말하는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뛰고 때로는

약자를 짓밟고 올라서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이세상에 태어난 이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것들을 누리고 간다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살고 있는데...스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어쩌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느끼신게 아닐까.

그렇다고 속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모두 속물은 아니잖는가.

별반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나는 고민없었던 삶이 문득 부끄러워 이렇게 항변해본다.

 

스님은 그길로 가기까지 지었던 죄업에 대해...말로..또는 마음으로 지은 업보를 끄집어 내신다.

어느 날 문득 스님의 방에 찾아든 낯선 벌레처럼 우리곁에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수많은 존재들과

그들에게 무관심으로..혹은 오만으로 지었던 죄를 더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뉴욕 한복판에서 회색의 승복을 입고 주눅들기는 커녕 환한

웃음으로 거리를 밝히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평화가 느껴진다.

어디에든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고 지천이 친구이고 적(適)인 세상에서 극락으로 가는 열쇠는 모두

내안에 있다는 것을 스님은 조용히 일깨워 주신다.

마음을 열어 상대를 보면 그역시 나를 그렇게 봐줄것임을 믿고 때로는 한 발자욱 떨어져 자신을 보라고

타일러 주신다. 스님의 미소속에는 산위에 절이 있고 풍경소리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때로는 인간의 마음으로 속가의 동생을 떠올리고 말도 없이 떠나간 보살님의 무책임에 화가 난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내곁에 있는 보통의 이웃같아서 친근하기만 할 뿐 스님의 솔직함이 티끌도

되지 못한다. 어려서 담임선생님이 해주셨다는 그말씀에 내맘도 따뜻한 물결이 밀려든다.

 

'얘들아,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정해진 규칙만 보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마라. 그리고

사람이 실수를 했어도 때에 따라서는 큰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너는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며,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믿는다' -139p, 143p

 


 
내삶에도 누군가 인생을 바꿔줄 한마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욱한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수도..

선생님의 말한마디를 양분삼아 이렇듯 크게 성장하신 스님의 일대기가 바로 내인생의 싸인(sign)일지도

모르겠다. 진흙탕 같았던 삶에서도 고귀한 연꽃이 피어날 수 있음을 바로 오늘 부처가 오신날 내게

전하려고 오신지도 모를 일이다. 전생에 내게 지신 전생의 빚을 갚으시려고. 오늘 스님이 내마음에 등을 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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