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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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일본에 살아본 지인들의 말을 빌면 남에계 폐를 끼치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깊은 속은

주지 않는다는 일본사람들!

하기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난 일본친구들도 화를 내거나 부탁을 해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파티를 할때도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이 맥주며 초밥을 꼭 챙겨들고 오거나 더치페이로 부담을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절만큼은 우리와 달라 꺼리낌없이 다른 민족과 잘만 섞이더구만.

열도에서 한반도를 발견한 김달수의 추적처럼 어찌보면 그들의 피의 상당량은 우리의 피와 같았을것을..

왜 저들은 반도의 나라 조선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단순히 영토의 확장을 위한 침략뿐아니라 절절히 싫어함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기에, 어쩌면 저들의 피에

녹아있는 반도의 흔적을 인정하기 싫어 더욱 악랄해 졌던 것일까.

허무맹랑한 역사의 변질로나마 열등한 문화를 숨기고싶었던 이유로만 설명하자면 그들의 침략과 폭력으로

숨져간 우리 조상들의 한(恨)이 너무 깊다.

 

문자도 가지지 못하고 학문도 비루했던 과거의 일본역사에서 한반도의 문화는 거대일본문화의 토대가

되었음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일이건만 고마워 하기는 커녕 원수로 되갚는 그들의 속성이 저자가 말한

'시마구니 곤조-섬나라근성'이 아닌가 싶다. 하긴 영국사람들도 일면 일본사람들과 비슷한 속성이 있다고

하니..과이 틀린말도 아닐것이다. 문제는 유독 우리에게만 더욱 유별난 이유를 알수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끌려간 도공들의 서러운 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단군을 모시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살았을 그들의 그리움이 얼마나 한이 되었겠는가. 끌려가는 와중에도 조선의 흙과 유약을 챙겼다니

참으로 프로다운 정신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일본에 끌려가는 바람에 조선의 도자기 문화가

세계에 더 각광을 받을 수 있었을것이다. 쇄국의 나라,조선도공들은 우물안개구리처럼 재능이 꺼져갔지만

비루했지만 독특한 문화를 가진 일본때문에 오히려 더 발전할수 있었다는건 대단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스스로 곡기를 마다하고 고향을 그리다가 숨져간 최익현이나 야만에 땅에 인간의 도리를 가르친 이진영의

삶도 가슴아프지만 끝내 조선의 핏줄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김윤규(다치하라 세이슈)나 역도산의 운명을

보면 차별의 상처가 그들을 얼마나 비겁하고 고독한 삶으로 이끌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땅에 꿈틀거리는 반도의 흔적도 그러하거니와 지금의 경제부국의 밑받침에 역시 우리가 있었건만

가혹한 억압과 차별로 인해 이방인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조상들의 서러움이 녹아있어 '슬픈 열도'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만 섬나라 그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어차피 피를 나누었을 그들이 수없이 저질러온 만행속에 피눈물로 숨져간 원혼들의

발자취를 취재한 저자의 글들은 신문기자로서의 냉철함과 확고한 역사의식..그리고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고루 녹아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희생자들의 삶을 알게 해주고 무관심을 일깨워 준 고마운 책이 되었다.

어디에 묻혔든 이제는 그렇게 그리워했을 고향으로 되돌아왔으리라고 믿고 싶은 조선의 원혼들에게

두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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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하루
이나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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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던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우연하게도 저자인 이나미와는 동갑내기여서 반갑기도 하거니와 그녀의 글속에 녹아있는

시간들은 내가 지나온 시간들과 같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가 '엄희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번데기 냄새 고소한 만화방에 앉아 엄희자의 순정만화를 읽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준
그녀의 글들이 옛친구의 방문처럼 반갑다.



아홉개의 퍼즐들은 낯설지 않은 조각들이고 내마음에 쌓아둔 시간들을 닮은 조각들이다.

'집게와 말미잘'에서의 사내는 질곡의 시간들을 겪고 잠시 성공을 꿈꾸었지만 결국 누구든지

건들여 주기만 하면 화끈하게 손좀 봐주고 싶어 근질거리는 막가파 남자가 되었다.

과연 선하기만 한 인간이 있던가. 거친 삶은 결국 숨겨져 있던 '악'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가끔 얽혀있는 삶의 타래들이 버거워질때..슬며시 고개를 드는 본능을 누르는 일들이

힘겹다.  사이버세상에 낭만고양이 제이슨과 세헤라자데처럼 새로운 나를 앞세워두고

비겁한 나는 몰래 숨어서 즐기고 싶어진다. 때로는 나도 그사내처럼 파랗게 날이 선 칼을

갈면서 얽힌 삶의 타래들과 비겁한 인간들을 손봐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사내가 무섭지 않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라이벌같기도 하고 키득거리며 과자를

나누어먹는 친구같기도 한 어머니들의 모습은 결국 내가 거쳐가야할 미래의 모습이거늘..

왜 그리 치열하게 다투며 지나왔을까. 희끗희끗 머리가 희어지고 나서야 '꼭 너 닮은 딸하나..'

낳아보고 나서야 알게되는 것일까.

때로는 우군처럼 손을 맞잡다가도 적군처럼 치열해지는 엄마와 딸의 모습들도 결국 우리집풍경이었다.

 

인간의 가장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숭고하기도 하다. 뼈에게 죄를 물을수 없다는 말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마음에 평안을 준다. 남과 북을 가르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과 이데올로기도

죽음의 저편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것을...산자들은 죽은자를 놓고 여전히 전쟁중이다.

 

물기 머금은 지하셋방과 햇살을 피해 숨을곳도 없는 옥탑방에서의 배고픔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같은

시대를 지나온 동무로서 말공부하고 말공부로 풀어먹는 사람이 된것 같아 대견하기만  한 저자의 아홉개의

퍼즐조각들은 고단한 시대를 같이한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안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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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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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일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더구나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여린 딸을 거두어가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극심한 병마에 시달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그녀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너를 통하여 내가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평화를 얻었다.

 



 

 

이세상에 오는 모든 생명체는 언제가는 소멸되어 갈 존재들이다.

인간의 목숨이라는것이 때로는 저 바깓에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만도 못하고

온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영원할것만 같았던 시간이 멈추어 지고 이제는 추억만이 덩그라니 남은 현실을

맞이하면 우리는 상실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하물며 내살과 뼈를 받아 태어난 자식을 먼저 앞세워야 하는 슬픔이라니..

 

오고 가는 전철속에서 책을 읽는 습관인 나는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이니 글을 얼마나 잘 쓸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오로지 에미로서만 피눈물로 써내려간 투병일기에 어찌 눈물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늘 써내려가던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인지 꿈인지도 모를 상황들에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것인가.

 

세상은 죽어마땅하다고 할만한 사람들도 넘치건만 이토록 아름답고 선한 아이를 데려가셔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이리 혹독한 시련을 주면서 가족들을 떼어놓으셔야만 했을까.

어찌 이글을 쓸수가 있었을까. 그 험난한 고통의 시간을 떠올려야하는 것이 쉽기야 했겠는가.

당당한 작가로서 남아달라는 딸의 마지막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는 수많은 질병앞에 속수무책의 여린 존재인것을.

백혈병 발병후의 3년간의 기록을 피눈물로 써내려갔을 에미 '김효선'에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싶다.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서연이가 더이상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하도록 기도할 것을 안다.

기도로서 그 혹독한 시간들을 견디고 고통속에 깃든 사랑의 기억들을 세상에 내놓아준 그녀가

이제 씩씩하게 다시 세상앞에 서있다는것을..증명한것만 같아서 더 소중해지는 책이다.

선하게 살다건 서연아 너로 인해 또다시 감사한 하루를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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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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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유년기의 몇년을 제외하고 줄곧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저자는 불우한 기억들속에서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잘 성장한 사람이다.

그녀의 삶을 붙들어 주었던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은 사실 그녀의 인간됨과 품성이

만들어준 산물인 셈이다.

지금껏 택배로 바리바리 사랑을 나르고 계신 시골의 엄마도 사실 선배의 엄마임에도

막내딸로 여기시고 챙기시는 모습에 자꾸 눈물이 나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지못하는 저 너머의 깊음까지 짚어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그녀는 내밀한 인간의 심연까지..그리고 도시의 깊음까지도 읽어내고 있다.

그녀가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고 아름답고 심오하다.

그건 바로 그녀의 시선이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얼핏보면 도시는 삭막하고 잠시 머물다가는 정류장 같기도 한 공허함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 그 도시안에서 먹고 잠자고 삶을 영위하지만..그러고 보니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따로있는 사람처럼 고독했을까.

그녀역시 그런 고독감으로 배낭을 꾸리고 세상의 도시들을 여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시를 고향처럼 느끼고 싶어...타국에서 비웠던 마음들을 돌아와 느끼는 안락함으로 다시 보상받고

싶어 그렇게 자주 비행기에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블럭이 무개성한 아파트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고 두부장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수유리의 골목을 더 사랑하는 도시안의 그녀는 반지하의 냉랭함과 옥탑방의 강렬한 햇살을 피해

그나마 고향이라고 불릴만한 따뜻한 공간을 그리워하고 하고 있는듯하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해야 했다.' -37p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라는 질문은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너무나 다른 에너지를 지녔다고 말했듯이 때로는 말한마디가 그 어떤 위로와

격려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 한사람의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책을 추천하신 이해인 수녀님의 시(詩)에서 하신말씀처럼..혹시 내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에게 꽂힌것은 아닌지..

말빚이 너무 많아 거두고 싶다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쉽게 뱉은 말들이 비수가 되었는지..덕이 되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사람이 살지 않은 모하비사막에 설치되어 있다는 공중전화에 나도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도 그곳에 펼쳐놓고 싶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양을 바꿀만큼 거대한 바람이 그 이야기들을 싫어 귀를 귀울여줄 누군가에게 실어다 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담아...적막한 어느 밤....그곳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게 될 것이다.

 

마음 따뜻한 그녀가 건네는 말한마디에 구멍뚫려 허허로웠던 가슴이 메워지는듯했다.

'그래 잘살아왔어. 애썼다. 애썼어...걱정마...잘될거야'

처음 만난 그녀는 분명 전생에 연인이었거나 친구였을것이다. 내생에 외로운 어떤날 차가와진 내손을

붙들어준 인연이라면 분명 전생의 몇겁의 만남이 있었을 것이므로..

이글을 끝내고 나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마 그녀를 닮아 포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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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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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숨결이 닿기전 빙하기에 독일의 북쪽에 떠내려온 얼음이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여 년전만 해도 어느 농부가족의 소유였던 호숫가 땅은 부유한 베를린
사람들에게 나뉘어 팔리고 한건축가에 의해 오두막이 지어졌다.
그땅을 산 주인들 중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 살던 유대인 섬유업자가족도 포함되었는데
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밀려 망명의 길을 떠나거나 아우슈비츠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분명 예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곳이었을 것이고 더 올라가보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삼국시대를 넘어 '집'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짓고 살았던 조상들의
집터였을것이다.. 아마 동굴처럼 천연의 것이 아니었다면 움집정도였겠지만.

일단 특이한 소재를 역사의 아픔과 버무려낸 작가의 안목이 놀랍다.
점점 사라져가는 북촌의 한옥집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려 피고 졌던
양반들이 떠오르고 6.25의 전화속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과거의 숨결을 전해주는 것이 문득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떠나도 집은 남았다.
중국의 고도의 한도시는 지하 몇층아래에 과거의 성들이 묻혀있다고 했던가.
극심한 수해로 묻히고 그위에 다시 성을 쌓고 다시 묻히는 시간들이 지난후 과거의 번성과 멸망을
숨긴채 저자가 제3의 피부라고 말했던 '집'이 발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것이다.

독일과 우리는 분단국이었던것으로 닮은 나라이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 아리아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었던 오만함은 우리와 다르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상처투성이의 역사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과 오두막을 짓고 알콩달콩 살기를 원했건만 삶이란 내가 생각한대로
살아지지 않는법. 사랑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침략자들의 숙소가 되고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는 놓아둔채 떠나버렸다. 자신의 손으로 지은 그집은 가져갈 수
없었으므로...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고향이 될 것임을 믿으면서.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번성하여 더 넓히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집'을
생각하며 벽을 쌓고 지붕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곳에서 평생을 마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가 호숫가 근처의 오두막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시간동안 시간이 할퀴고간
아픔과 태어나고 사라졌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독일이 겪었던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조상들이 걸어왔던 아픔역사와 학살의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그려낸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모가 죽고 마지막 처형의 순간에 끌려가는 유대인소녀의 모습에서
가슴이 저려온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요즘 전쟁의 비참함이 다시는 이나라를 할퀴고 가지 않기를..
저 문밖에 있는 수많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해지고 오늘 하루 고단했던
몸을 뉘여 달콤한 단잠에 빠지는 그런 오두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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