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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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민연금계의 이단아 옥택선(2PM의 옥택연과는 절대 피한방울 섞인 사이가 아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부모님을 가진 관계로 관리비에 벌벌 떨며 장로만 한 원룸을

전전하고 어쩌다 눈이 맞아 연애를 해도 똑같이 앞날이 심난한 애들만 걸리는,

그리하여 먼 훗날 독거노인이 될 확률이 아주 높은, 젊기는 해도 드디어 자신의

재능이 그저 그렇다는 뼈아픈 진실을 깨달은 노처녀 시나리오 작가이다.

 



  

재수 없는 년들은 꼭 파마하는 날 비가 온다고...삼년만에 소개팅에 나갔건만

미키마우스매니아 남수필을 만나면서 회오리같은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한창 G-10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이긴 했지만 알수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수필이 그녀와 만난후 급사하고 그녀 역시 남수필이 먹다남긴 토란국을 먹는

바람에 감염되어 방역당국으로부터 쫒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바이러스의 증세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눈이며 코같은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에볼라바이러스도 아니건만 오실오실 오한이 들면서

어지럽고 미친듯이 누군가를 사랑하게되는 희한한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언뜻보면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결국은

죽어가는 심각한 바이러스..후에 옥택선의 이름을 따서 OTS바이러스라고 명명되는

영광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또한 지나간 시간들이 환각으로 나타난다. 지겹게 싸우기만 했던 첫사랑이나

자식을 버려두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환영까지..

 

'서울 시내가 시끄럽고 어지러운 이유는 수많은 연인들이 버린 옛 추억들이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129p

 

그녀는 열에 들뜨고 환각에 시달리면서 잊으려고 버린 기억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불행들은 결코 그녀가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이었다는 것을..

그건 그녀와 좀더 친해지고 싶어 찾아온 손님이었다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대충 돌려 보냈어야

했다는 것을..미련하게 가족인 양 옆에 끼고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바보들은 가끔 그렇게 자신이 불행과 불운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152p

 

남수필이 죽으면서 남겼던 메세지속의 인물 이균과 함께 그녀는 현실인지 진짜인지 구별도

안되는 사랑병을 앓으면서 비로소 늘 자신에게 패배감만 안겨주었던 삶에 대해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희망이 간절한 사람은 때론 희망이 두렵기도 해. 희망밖에는 가질 게 없으니까..그러면 오히려

희망에게 배신당할까 봐 피하게 되지. 짝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숨는 것처럼." -58p

 



 

젊다는 것은 희망을 품을 수 있기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그것은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할 수 용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청춘의 길목에서 맞닥뜨리는 사랑의 바이러스..사실 그건 갑자기 나타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옛날부터 끈질기게 우리 인간사이를 희롱해왔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물론 나타날 것이다.

다만 끈임없이 변종을 하는 바람에 깜빡 속았을 뿐이었다.

그놈에게 잡아먹히느냐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청춘들의 면역력에 달렸을 뿐이다.

택선과 함께 숨가쁘게 달려온 마지막장에서 나는 '바이러스 가이드'로서의 그녀와 손을..아니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 이미 식어버린 삶에 열정의 불을 피어올릴 바이러스에 기꺼이 감염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라도 붙잡고 에펠탑으로 가서 사랑을 속삭이자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OTS바이러스에 감염되도 좋을 청춘은 저 파란 하늘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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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마을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 1
최화성 지음 / 청동거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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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사람이건 시골에서 떠나온 사람이건 고향이라는 것은 원초의 그리움이다.

이제는 늙은이들만이 지키고 있을 그곳이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언젠가 그분들도 떠나시고 나면 영영 그곳은 어둠에 묻힐것인가.

생명을 심고 거두는 숭고한 일들로 늙어버린 시간들과 가난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제는 비어져 버린 마을을 장승처럼 지키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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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를 맞아주는 어머니처럼 언제나 두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려줄 것만 같은

그곳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전해진다.

물로 잠겨진 고향땅을 지키며 가로막힌 산자락의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짊어져 나르며

길도 내고 혹시라도 도시에서 상처받았을 자식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동구밖 먼길을 바라보실 것만

같은 고향땅에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땀과 수고로 지은 콩장으로 보글보글 국끓이고 맑은 샘길어 가마솥에 갓지은 밥을 정성껏 차려주는

그곳으로 말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겨 이제는 적막할 그땅에 우리들의 시름을 내려놓고 넉넉한 사랑을 한껏

실어오고 싶다. 우리땅 곳곳에 숨겨진 보물같은 마을들을 소개한 이 책은 고집스럽게 옛것을 지키고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있다. 잠시 바쁜일상을 접고 앙증맞게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

길을 떠나보는것도 좋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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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신명나게 농악도 놀아보고 절절히 가슴을 에이는 한깊은 소리도 한자락 담아보자.

시간이 더 흐르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우리문화의 깊은 맛을 하나라도 더 느낄 수 있다면

올곧게 지켜온 그분들의 정성이 큰 의미있는 일들이 될 것이다.

닫았던 맘을 편하게 열어젖히고 대문없이 산다는 마을로 선뜻 들어서보자.

그동안 맺히고 헝클어졌던 인생사가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갈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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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햇살아래 생명이 영글듯이 빨강마을에 가면 삶의 정열과 활기를 듬뿍받아 올것만 같다.

당장 올여름 가족들과 오붓히 자연과 인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소개된 마을중 한곳의 홈페이지를

얼른 클릭해 봐야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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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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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我不流 時不流)-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낮은 곳으로만 낮은 곳으로만 흘러서 큰 바다가 되는 물처럼 인생을 살으라는 법문같다.

강원도 화천군 산속에서 오랫동안 거(居)하시더니 산신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셨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산삼이요 흘려버릴 말이 없으니 주옥과도 같은 법문집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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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밥값 못할까 걱정이더니 늙어서는 이름값 못할까봐 걱정이라며 엄살이시더니

괜한 걱정을 하신셈이다. 산에 가면 산과 닮고 물에 가면 물과 닮는다더니..긴머리만 풀어헤치고

지팡이만 하나들면 영락없이 산신령의 행색인 저자는 편견을 깨부수는 신세대 산신령인 셈이다.

지팡이대신 노트북을 들고 트위터를 날리시는 산신령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느 날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들고 한 끼의 밥상이 내 앞에 차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뭉클했다는 글에는 내 삶이 이곳에 이르러 이글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기대가 있었는지가 떠올라서...또한 낮은 곳으로 흘러 물과 같이

살라는 말에는 너무 오랫동안 낮은 곳에 있어 주눅들었던 삶이 어우러 더우러 잘 섞여 살라는

위안처럼 들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나님. 제 마음속에도 DEL키를 달아주세요. 터치 한 번으로 말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싶으니까요' -71p

 

나는 곁에서 이렇게 묻어가고 싶다. '저도요'

아마 지금 나의 DEL키는 이책이 아닌가 싶다. 읽고있는 내내 무심의 경지처럼 모든걸 잊고 일희일비

했으니말이다.

미친년 방언 터지듯 시를 줄줄 써젖히고 양아치 술주정하듯 욕지거리만 질질 뱉는 문하생넘들이라도

어쩌냐. 그래도 내 새낀걸..하듯이 우리 불쌍한 중생들도 좀 봐주세요.

미친세상 정신차리고 살자면 아니..멀쩡한 세상 미친듯이 살자면 방언도 욕지거리도 다 나름의 몸무림

아니겠습니까..이렇듯 선계의 사람처럼 도통한 저자도 무박삼일을 독약 같은 술을 마시고 무박삼일을

각혈같은 욕설로 세상을 증오했지만 결국 속만 우라지게 쓰렸노라고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더라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던 시간들이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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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궁민으로 만드는 정치' -157p

 

단지 몇개의 단어만으로 지금 불쌍한 우리국민들의 현실을 골라내는 그의 탁월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렇지. 지금 우리는 가난한 궁민이다. 물질은 넘치는데 맘은 온통 허허롭기만하다.

때로는 밥 한끼가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때로는 이렇듯 글 한줄이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도 한다. 지금 감성마을의 긴머리 아저씨가 바로 처방전을 내려보내주셨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사람도 보고 힘내서 잘살아 보라고..그리고 품위는 잃지 말자고..

 

'이것 봐. 방금 니가 씨팔이라고 말하는 순간, 별 하나가 깨져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니까.'-143p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을 땅으로 곤두박질시키는 일같은건 하지 말고 삽시다.

가뜩이나 찌든 지구에 살면서 자꾸 흐려지는 별빛때문에 마음도 흐려지는 세상에 살면서 어쩌다 한번쯤

고개들어 올려다본 깜깜한 밤하늘에 별마저 없다면 살맛이 나겠습니까.

그래도 흐린 인생속에 별빛을 반짝 반짝 밝혀주는 이런 책 한권쯤 가슴속에 걸어두고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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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랜덤 워크 - 영화와 음악으로 쓴 이 남자의 솔직 유쾌한 다이어리
김태훈 지음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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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재개봉 영화관 골목을 드나들던 까까머리 학생이 있었다. 이장호감독의 '무릎과 무릎사이'를

최고의 걸작이라고 믿었고 그후로도 온갖 부인시리즈의 에로물을 탐닉했던 그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되었을까.

 



 

애시당초 싹수가 없어보이던 그는 '팝 칼럼니스트'란 속박없는 자유인이 되어 정신업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직업을 검색해도 딱 이거다 말해주지 않는 요상한 직업을 가진 남자는 사방팔방 못하는 게 없는 마당발을

하고 이효리보다 100배는 바쁘고 돈은 100분의 1밖에 못벌면서도 헤벌죽 좋아라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이 마흔을 훌쩍넘었거만 아직도 미혼의 딱지를 떼지못한 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코디네이터하고 있는

'엄마'로 부터 독립을 꿈꾸면서 술을 끊느니 삶을 끊겠노라는 협박을 일삼으면서 주인잘못만난 '위'의 하소연도

무시한 채 오늘도 여전히 위스키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는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것도 많다는데..이 친구 먹고싶은게 하필이면 술과 담배란다.

그래도 책의 첫머리에 '나의 가장 좋으신 친구이신 하나님과 사랑하는 어머니께'라며 한껏 어리광을

부려놓았다. 암벽등반에 스킨스쿠버에 스키에..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우리집 늙은 공수부대'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다중 취미생활에 푹빠져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는 그렇게 할일이 많으니 여자 만날 시간이 있었겠는가. 늙은 어머니께 사랑한다고만 말하지

말고 손주라도 안겨드리려면 다중 취미생활을 다이어트해야 하지 않을까. 나하나만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사랑도 지치고 심심해서 이혼한다는데...그는 앞으로 어떤 길에서 늦게 온 사랑을 만날것인지

궁금하다.

매주 토요일 '영화가 좋다'에서 키득거리며 맛깔나게 나를 웃겨주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참으로

여문사람이다. 언뜻보면 천하태평인 얼굴과는 다르게 그가 만나는 영화나 음악은 사랑이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하며 자신의 차에도 없는 네비게이션이 되기도 하고..그리고

그의 삶이 예사롭지 않았던 자양분이 되었다.

단순하면 어땠을까. 그저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다면 그도 꼬물거리는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

상사와 불화하지 않고 사표를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부지런히 새벽차를 타고 밥을 벌러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삶이 성공인지..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무지하고 단순하여 놓치고 살았던 일들을 붙잡아 놓고 흥정하는 그가 있어 잃어버린 삶의 조각들을

맞출 수 있어 행복하다. 고뇌는 당신이 하시라. 나는 즐기겠노라.

 

"평론가들은 왜 그렇게 장르에 집착합니까?"

"밥먹고 살아야 하니 그렇게라도 구획 정리를 하고 시비를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41p

 

경쾌한 명답이다. 혹시 이남자..얽히고 섥힌 우리 삶도 깔끔하게 구획정리해주지 않을까?

 



'어영부영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

'괜히 왔다 간다' -중광스님의 묘비명

 

과연 김태훈의 묘비명이 무엇이 될런지..

'너무 아는게 많아서 술이 고팠던 남자 정신없이 살다가 미처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다'

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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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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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고치고 이듬해 수도 에도를 도쿄로 개명한 일본은 봉건시대의 막을 내리고

근대의 시작을 열게된다. 외국의 새로운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수많은 외국인들도 일본에 들어오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뒤섞이는 시기에 프랑스인 화가 조르주 페르디낭 비고(1860~1927)는

일본에 건너와 18년동안 생활하면서 수많은 잡지와 화집을 출간하였다.

비고가 일본옷을 입고 상투를 튼 모습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외국인의 눈으로 들여다 본 일본의 생생한 모습들을 날카롭고 재치있는 스케치로 풀어낸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인 자신들이 미처 보지못했던 일상들에 슬며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자본주의의 도래로 빈부의 격차가 생기고 군국주의의 산물인 군인들이 등장하면서 비고의 그림속에

메이지의 정치가, 고위관료나 상인들...군인들과 그들을 상대로 먹고 사는 게이샤들의 모습들을 많이 그리게 된다.

비고의 그림들은 사진에서 느낄수 없는 위트와 익살까지 녹아있어 긴설명이 필요없이도 그시대의 일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창부문화의 발달과 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게이샤의 하루'와 같은 화집은 남녀혼욕이나

관음문화같은 일본의 개방적인 성(性)문화가 별 거부감없이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비고의 유머감각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남자들의 훈도시가 우습기도 하고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습하고 더운 일본의 환경에서는

알맞은 옷차림새였을 것이고 그시절 선진국의 자부심이 있었던 프랑스인 비고의 눈에도 그렇게 비쳐진듯 하다.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하나를 두고 18년이나 일본에서 생활했던 비고가 이혼을 하고 고국인 프랑스로

되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국이 하는 말만 좇아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을 입고 아파서 우는 일본'이나

'영국의 총알받이가 되어 조심조심 러시아에 대항하려는 일본'과 같은  만화를 출간하고서 비고를 압박했던

일본 관헌 당국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와 집필활동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의 비고의 고뇌가 느껴져온다.

 



 

귀국후에도 대나무를 심고 자그마한 일본식 정원을 만들고 이따금 일본 기모노를 입었다던 그의 일상에서 그가 얼마나

일본을 그리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시대의 일본을 그려낸 화집이

엄청났다는 것도 역시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작 일본인들은 감추고 싶었을 과거의 모습조차 해학으로 풀어낸 그의 기지 덕분에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만을

기록하는 사진과는 다른 진솔한 일본의 모습을 들여다 볼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제목 그대로 일본의 알몸을 훔쳐본것만 같아 이웃인 우리는 즐거웠지만 비고가 우리나라를 그렸다면 어떤모습으로

스케치를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도 지금처럼 웃기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불쑥 튀어나올것만 같은 생생함과 위트가 녹아있는 그림을 그린 그의 재능이 놀랍기만 하다.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일본의 알몸을 들여다 보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선택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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