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기 좋은 시간
김재진 지음 / 고흐의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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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돌고 돌아 헤매어도 별이 빛나고 있는 한 나는 돌아올 수 있어!

 

 

 

  비애의 그림자가 밟히는 계절이다. ‘꽃들의 체온이 그리움의 온도로 바뀌’(수상한 계절)낙하하던 잎사귀의 마른자리가 지천에 가득할 즈음이면온 세상이 상실의 내음으로 코끝을 먹먹하게 채운다그러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란’ ‘기쁨과 아픔이 절반씩 몸을 섞는 일’(회상)이라던 김재진 시인의 시처럼 이왕이면 상실이나 소멸이 아닌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라 달리 쓰고 싶다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애끓던 시끄러운 마음들과 작별하고 이제는 차분하게 내려앉은 그림자와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계절이 아니겠느냐고그렇게 말하고 싶다.

 

 

 

떠나는 모든 것이 상처인 듯 아리다 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음대에 진학했다 방송사 피디로 젊은 시절을 보낸 뒤 40대 초홀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다 지금은 아틀리에에서 책 쓰고 그림을 그리며 명상하는 삶을 살고 있다던 시인그래서인지 김재진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눅눅한 사연을 실어 나르는 바람’(바람의 시·1)을 맞으며 유리조각 밟듯 살아왔던 지난날’(여름의 안부)을 떠올리는 어느 고독한 자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생의 뒤편으로 물러나 존재의 비애를 마주하고울음과 고독 속에 놓여본 이라면그런 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의 시가 가득 와 닿을 것이다.

 

 

 

가을이 내게 쓴 몇 줄의 편지

 

 

(중략)

늘 안에서만 아픈 이빨과

이빨 대신 아프지 못해 질근거리는 세월과

언제나 바깥을 떠돌기만 하던 나의

오래되어 힘 잃은 바람기야,

늙어서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문 밖의 저 계절을 보아라.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며

투덜거리며 지나가는 아픈 날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나의 짐들아,

하늘 향해 열어놓은 저 창문 좀 보아라.

바람 불면 덜커덩거릴

여려서 자주 아픈 마음 좀 보아라. / 42p

 

 

 




 

 

 

 

  또 한편으론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날아가는 새와 마찬가지로생의 이별 앞에서 나는 그저 저 별에서 이 별로 여행하러 온’(새의 이유것이라 초연히 마음을 가다듬는 자의 뒷모습을 엿보게 되기도 한다시 문지리 천사의 시에서 진짜라는 말에 속지 말라 너는 언제나 내게 부재의 존재라 단언했던 것처럼내 안에 의미의 세계를 비워냄으로써 단단해지려는 시인의 여문 마음이 시집 곳곳에서 느껴진다.

 

 

 

뻐꾸기

 

 

나는 째깍거리고

너는 두근거리지.

나는 늙었고

너는 젊다는 말이야.

그냥 그것뿐이야.

벽에 걸린 저 시계가 우리를

똑같이 만들 거야. / 16p

 

 

 

  그러나 아무리 초연해지려 해도 기어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온 마음을 다해야만 간신히 가 닿을 수 있는 존재들을 향한 절박한 마음이란 것이 있기에그것을 헤아리는 시들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너를 향해 다가가는 나의 보행은직립이 아니라 반직립이다./ 허리 숙여 바닥에 닿는키 작은 꽃잎처럼낮춰야 흐를 수 있는 시냇물이다./ 네게로 가지 뻗는 나의 나무는뿌리째 무릎 꿇는 투항이다.” 시 투항은 미처 온전한 마음으로도 다 전할 수 없어 뿌리째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애타는 마음들을 들여다보게 한다그렇게 시는 우리에게 물어온다기꺼이너는누군가에게 네 온 마음을 바쳐본 적이 있느냐고.

 

 

 

일생

 

 

한 평생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겨울 아침

들판에 눈보라 휘몰아치는 소리

바람이 매달려 있는 풍경을 때리고 가는 소리

낙엽이 서로 살 비비는 소리

추락하는 고드름이 쨍그랑거리며

햇살과 부딪히는 소리

누가 혹시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아무것도 없으면서 가득한 항아리를

아직 비우지 못했다고. / 150p

 

 

 




 

 

 

 

찌르고 또 찔리며 연명하는

삶이라는 형벌은 누가 쓰는 무기인가

 

 

  발문에서 윤일현 시인은 이렇게 쓴다. “세상을 살아보면 안다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초롱불을 들고 마중 나와 주고두렵고 먼 미지의 곳으로 떠날 때괜찮다고잘될 것이라고 말해주며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다.” 김재진 시인은 상실과 비애생의 파고를 넘어 절망과 죽음을 통과한 언어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약한 것들과 연결된 마음과 우리를 품어 안는 더 큰 우리’(연결)를 감각케 한다는 점에서 삶이란 마냥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나는 다시 돌아올 거야./ 뭔가를 그린다는 것은 어딘가로 돌아간다는 말이지./ 별이 어디에서 빛나건그것이 카페 테라스에서 빛나건고갱의 머리 꼭대기에서 빛나건빛나고 있는 한 돌아올 거야.”(고흐의 별아무리 돌고 돌아 헤매어도 별이 빛나고 있는 한 나는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바로 그래야만 내 안에 드리워진 오랜 비애의 그림자와 작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김재진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에게 깊이 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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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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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그 안에서 발견되는 미스터리의 힘!

적절한 위트와 진지한 물음 모두를 아우르는 확신의 페이지터너!

 

 

 

  통상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은 살인사건’, ‘살인동기와 알리바이’, ‘헛갈리는 용의자들’, ‘뜻밖의 반전’ 등의 지배를 받는 장르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하지만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플롯과 다양한 변주를 향한 시도는 늘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그런 의미에서 송시우의 미스터리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은 익숙한 전래동화를 법정 미스터리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발상을 전환시킨 데에 대한 탁월성을 인정받을 만하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와 날개옷을 빼앗긴 선녀가 현대적 사법 체계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목소리를 획득할 수 있다면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중요한 것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대상화되고 무력했던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미스터리 본연의 힘까지 야심차게 밀고 간다는 점에서 송시우의 작품들은 매우 특별하다.

 

 

 

법정과 일상범죄를 부추기는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인어의 소송과 선녀를 위한 변론은 왕자와 나무꾼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유사 설정을 통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인어공주인 에일은 주변 인물들 중 왕자를 죽일 가장 절박한 동기를 가진 인물이었기에 유력한 살인범으로 체포된다왕자를 구한 것으로 알려진 카스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게 되면마녀의 마법에 의해 에일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에일은 자신에게 쏠린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마녀를 상대로 불공정 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판사는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마녀가 에일의 신체를 훼손한 정도가 너무 가혹하여 사회질서에 반하고맥스 왕자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희생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식의 분별없는 생각에 빠진 어린 인어의 궁박과 경솔무경험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며 이 계약을 무효라 선고하고덕분에 에일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다이렇게 목소리를 되찾은 에일은 왕자와 본인카스 공주 사이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히고이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면 뒤집어지며 살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입장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다과연 에일은 자신의 혐의를 벗을 수 있을까?

 

 

 

  한편고리아 왕국이라 불리는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에서도 사법 체계에 격변이 일어난다이때 사법 시스템과 과학수사의 첫 시험대에 오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나무꾼 살인 사건이다피해자 이쇠돌은 식구들과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경부터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는데오후 4시경 산보하러 방 밖으로 나온 이쇠돌의 친모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경찰은 평소 남편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있던 선녀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발표했고이에 심순애 변호사가 나서 선녀에 대한 유죄 판결을 규탄하고 선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앞서 인어의 소송에서 인어 에일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돌려주었듯 선녀를 위한 변론」 역시인간 세계에 아무런 인맥도 자원도 없었던 선녀가 이쇠돌이 강요하는 삶 이외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이쇠돌의 아내로 살며 홀어머니를 부양하고 자식들을 낳았던 처지를 변론하며그간 동화 속에서 묵인되었던 선녀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다그런 가운데 선녀에게 쏠린 혐의를 하나씩 무너뜨리며 명쾌한 논리로 허술한 사법 체계를 파고드는 심순애 변호사의 활약 또한 흥미를 더한다.

 

 

 




 

 

 

 

가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눈앞에서 없어지길 원했던 거군요.” / 110p

 

 

 

  이 외에도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모서리의 메리알렉산드리아의 겨울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혼자 사는 여성이나 소외된 자들을 노린 범죄비상식적인 범죄를 부추기는 커뮤니티의 양산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감수성 결여가 낳은 사회적 문제 등에 공감하며 현실 감각과 미스터리를 유연하게 아우른다특히특정한 세계관이 설정되고 각자 자기를 대변하는 아바타라 할 수 있는 자기 캐릭터들이 참여하여 하루에도 수천수만 건의 잔혹한 살인과 고문사체 유기학대능욕이 벌어지고 있는 커뮤니티의 실상을 드러낸 작품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우리 사회에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쎄 보이니까요.”

김윤주가 말했다.

쎄 보여그런 게?”

관종이니까.”

김윤주가 뻐기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존나 금지된 게 나에겐 아니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거지개쩔잖아보통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지랄펄쩍 놀라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거지.” /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중에서 215p

 

 

김윤주는 촉법소년 연령을 잘못 알고 있었다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고 보호처분에만 처할 수 있는 촉법소년의 범위는 만 14세까지인데김윤주는 미성년자가 곧 촉법소년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

죽여도 처벌받지 않을 테니까! /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중에서 221p

 

 

그거 알아요형사님아무리 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정말 별짓을 다 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쎄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 돼요.”

음산한 목소리였다.

그럼 내가 좀 행복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중에서 237p

 

 

 



 

 

 

 

  아마도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인물들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쉽게 진범이나 사건의 정황을 포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 점이 얼마간 아쉬울 수 있겠으나하드코어나 잔혹한 설정으로 일관된 미스터리와는 또 다른 담백한 맛의 미스터리를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듯하다송지우 작가의 차기작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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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택시에는 특별한 손님이 탑니다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가토 겐 지음, 양지윤 옮김 / 필름(Feelm)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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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거랍니다!

따뜻한 언어와 신비한 이야기로 마음을 울리는 힐링 판타지!

 

 

 

  여기아주 특별한 택시가 있다택시 기사인 기무라는 유령을 볼 줄 아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유령이 그의 택시를 멈춰 세우기도 한다택시는 이들의 안타깝고슬프고쓸쓸하며때로는 유머러스하다 못해 기상천외한 사연을 싣고 오늘도 달린다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왜 이들은 택시에 오르는 걸까그 사연이 궁금하다면 유령을 태우는 택시에 올라타 보자.

 

 

 

오늘도 저희 로터스 교통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기사 기무라입니다.

목적지까지 짧은 시간이나마 아무쪼록 편히 모시겠습니다. / 9p

 

 

 

미스터리와 감동의 판타지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김재진 시인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란 기쁨과 아픔이 절반씩 몸을 섞는 일이라 했다다만로터스 택시에는 특별한 손님이 탑니다』 속의 특별한 손님들은 생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을 만큼 절반의 아픔이 사무치도록 깊었던 탓에 아직도 돌아갈 곳을가야만 하는 곳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유령을 보는 눈을 가진 기무라는비록 어수룩하고 소심한 구석은 있지만 특유의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특별한 손님들의 내밀한 사연에 마음을 기울인다.

 

 

 



 

 

 

 

  자신의 주인을 죽인 음주운전 뺑소니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분해야 했던 고양이 손님자식을 잃은 고통으로 괴로워했던 부모의 마음을 달래주고픈 어린이 손님원망과 미움만이 가득하다 못해 유령이 되어서도 서로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부부 손님 등에 이르기까지이들은 로터스 택시를 타고기무라에게 자신의 애끓는 회한과 미련비통함죄책감에 얽힌 사연들을 토로하면서 어느 새 응어리진 마음들을 위로받는다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으로부터 마음을 회복하고사무치는 원한의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는 건 역시 내 곁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들과 나누었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언제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릴지 몰라요해야 할 일은 당장 시작해야 해요.” / 38p

 

 

그걸로 충분해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은 머지않아 희미해지기 마련이니까하루하루 기억을 쌓으면서 과거를 덮어나가는 거야산다는 건 그런 거니까.”

하지만 잊진 못할 거야.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잊어버리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아프고 괴롭기만 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니까추억은 옅어지다가 결국 너그러워지지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 140p

 

 

미움받는 남자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어제랑 똑같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지그 어제까지가 문제인 거야해답은 전부 어제까지의 행동에 담겨 있었어. ‘어제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라면그걸로 끝인 거야. / 198p

 

 

 



 

 

 

 

  기묘한 힐링 판타지 로터스 택시에는 특별한 손님이 탑니다는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바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전하는 따뜻한 소설이다전작 여기는 커스터드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를 읽어보진 못했지만작가 가토 겐은 어긋나있던 마음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보드라운 언어와 다정한 정서로 전달하는 힘이 남다른 듯하다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소설을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당신이 무사히 돌아와 웃어주는 것.

제게는 그게 가장 큰 선물이에요.

 

오늘도 저희 로터스 교통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2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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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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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찾기 위한 이유의 세계가 의 존재를 이해하는 세계로 변화해갈 때,

나는 마침내 새로운 우주를 얻게 되었다!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내가 열일곱 살이고네가 열여섯 살이었던 그 여름너는 나에게 8m 남짓의 견고한 어느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냇버들이 늘어진 아름다운 모래톱이 있고외뿔 달린 과묵한 짐승들이 곳곳에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오래된 공동주택에 살면서 간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하나뿐인 출입구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있고벽은 견고해서특별한 자격이 있지 않다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으며 따라서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도 없는 그곳에서 너는 오래된 꿈을 보관하고 지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진짜인 네가.

 

 

 

를 찾기 위한 이유의 세계가 의 존재를 이해하는 세계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어느 특별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가 사라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아니그 도시에 가면 진짜 너를 만날 수 있을까물론 그곳은 둘이 함께 만들어간상상 속의 특별한 비밀 세계에 불과하겠지만그동안 가 들려주었던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묵묵히 기록하며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는 날만을 상상해왔던 는 어찌된 일인지 정말로마침내 그 도시에 입성하게 된다대체 이 도시의 정체는 무엇일까. ‘는 를 만날 수 있을까.

 

 

 

난 머리맡에 공책과 연필을 챙겨두고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지난밤 꿈을 기록해시간에 쫓겨 바쁠 때도 마찬가지야특히 생생한 꿈을 꾸다가 한밤중에 깼을 땐 아무리 졸려도 그 자리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줘그것들이 중요한 꿈일 때가 많고소중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거든.” / 42p

 

 

가끔 내가 무언가의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 111p

 

 

 




 

 

 

 

  김연수 작가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이 우주는 조금이라고 바뀔 수 있다고 했다마찬가지로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과 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벽을 둘러싼 가상의 도시아니 실제할 지도 모를 세계 속으로 이행된 이제껏 정면으로 마주해본 적이 없는 자신의 그림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를 찾기 위한 이유의 세계가 의 존재를 이해하는 세계로 변화해갈 때나는 마침내 새로운 우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나를 쪼개고 부단히 이행함으로써 다른 나와 만나는 것은 라는 존재의 가장자리를 끊임없이 늘리는 일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는 동안 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이라는 것을 감각하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어쩌면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든 그 자체로 라는 것그 어디에 있든 나를 받아주고온전히무조건적으로 받아줄 사람이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믿는 데 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하루키의 메시지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곳은 다름 아닌잃어버린 마음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장소여야 합니다.”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은 잃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걱정하실 것 없습니다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당신 자신이니까요.” / 452p

 

 

 




 

 

 

 

  “당신의 생년월일을 알려주시겠어요?”

  이 책을 읽고 소년의 질문을 따라 내가 태어난 날은 무슨 요일일까를 검색해보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아쉽게도(?) 나는 금요일이었다수요일이신 분들은…… ……그냥 여기서 생략하겠다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그럼에도 첫째로는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란 글귀를 쓸 수 있는 이 작가의 글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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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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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라서 착취당했고힘을 가지면 마녀라 낙인찍히거나 그 배후를 의심받았던 여성들!

자신들의 역사가 축소되고폄하되어 왜곡되는 동안에도 낙관하려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

 

 

 

  ‘세 명의 부인 용의자한 명의 미남자 학구파 교수를 죽이다!!!’

  때는 1948년 5조선이 해방한 후 첫 선거가 있던 해다종로경찰서의 검안의이자, ‘세 개의 달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여성 탐정으로 활동하던 연가성은 경찰서로 들어가기 직전에 받은 호외지를 심란한 마음으로 훑는다때마침 미군정 조사관 이든이 종로경찰서를 방문하고그는 호외지 속의 죽은 교수를 죽인 진범이 미군임을 미리 밝힌다다만 살해범이 미군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미군정과 남조선의 관계와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세간에 떠도는 세 명의 용의자즉 사건 당일 윤박 교수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세 명의 여성을 대신 용의선상에 올려 사건을 조작하려 한다이대로라면 무고한 여인이 희생될지도 모른다연가성는 친구인 문화부 기자인 권운서와 함께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불온한 여성 서사로부터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여성들

 

 

 

  소설 마고는 극 초반부터 눈길을 끄는 포인트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다이동기의 표지화 모던 보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소설의 배경이 되는 1948년은 기존의 조선과 일제의 잔재그리고 새롭게 들여온 미국의 문화와 정치가 이질적으로 한 데 뒤섞인 미군정기(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기까지 미군이 3년간 실시한 군사통치시기시절이었다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저마다 상이한 의지와 인식이 충돌하여 벌어진 괴리들로 인해 극도의 혼란이 야기되던 때였다이 무렵 미군정은 여성들의 권리를 적극 지지한다며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지만여성의 인권이 적극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없어보였다여전히 여성들은 약자라서 착취당했고힘을 가지면 마녀라 낙인찍히거나 그 배후를 의심받았다.

 

 

 




 

 

 

 

  작가 한정현은 이러한 시대적 특수성 안에서 흥미로운 배경을 지닌 여성들을 대거 등장시킨다여성 검안의이자 탐정인 연가성조직 범죄에 이용하기 위해 비구니로 키워졌다 기생집에 팔려간 카페 주인 송화남자의 몸을 지녔으나 여자로 살며 가성을 사랑한 권운서여자인지 남자인지 모호해서 일명 마녀라 불리는 호텔 포엠 사장 에리카와 같은 이색적인 인물들을 포진한다친미 인사였던 어느 교수의 죽음으로 인해 억울하게 용의자로 내몰린 세 명의 여성을 추적하는 장르적 속성의 저 너머로혼란의 시대-불온한 여성 서사로부터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힘이 과연 압권인 작품이다다만미군정기 속 조선 여성들의 삶을 재건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와 의욕을 짧은 호흡 속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개개인의 서사를 압축하기에는 하나하나의 캐릭터성이 강해서 조금은 느린 호흡의 글로 충분히 녹여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미군이 들어오고 경무국장이 치안 계획 포고문을 발표한 후 기관들은 모두 국가 재건과 좌익 사범 처리에 집중하고 있었다게다가 1945조선 주둔 사령관 하지는 조선의 출판 자유를 보장한다고 했으나막상 조금이라도 미군정과 생각이 다른 신문은 좌익으로 몰려 폐간되기 일쑤였다. / 19p

 

 

에리카라면이곳 서울 여인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어요사내들은 마녀라고 부르지만 마고라고 한다네요그러고 보니 어쩌다 마고할멈이 마귀할멈이 되었나 몰라요.’ / 68p

 

 

아니에요저는 연가성 씨의 그런 점이 멋집니다여성들이 저에게 잘 보이려 화장하고 그러는 것이 별로여서요특히 일본 여성이나 조선 여성들은 과하게 순응적이죠.”

이든은 미소를 지었지만 운서와 가성의 표정은 동시에 어두워졌다순응하지 않으면 죽이잖아요. / 85p

 

 

하지만 공창제에 걸려들 만하게 몸을 파는 사람들은 뒤를 봐줄 정치인이 없는 하루벌이라는 뜻이었다그들은 사실 돈 벌 방안이 없어 그 일을 했던 거다아마 윤선자도 식모 일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막막했을 것이다제국 시기 내내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다 임금도 두세 배 낮았다오죽했으면 강주룡이 기와 위에 올라가 여성 노동자의 권리 시위를 했을까. / 93p

 

 

 




 

 

 

 

  마고(麻姑). 창세신이자 대지모신으로 대한민국 토속신앙에서 유일한 여성 신인 마고는다른 남성 신들이 산을 넘어뜨리고 육지를 파괴해서 세상을 창조할 때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계를 만들었다 한다그러나 조선과 일제를 거치면서 마고는 마귀가 되었다자신이 만든 바다에 빠져 죽고 자신이 정성 들인 세계의 사람들을 해치는 마귀할멈으로 전락한 것이다소설 속에서 운서는 가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니까.” 자신들의 역사가 축소되고폄하되어 왜곡되는 동안에도 낙관하려 했던 여성들그들의 이야기는 늘 나를 먹먹하게 한다기억하는 한 낙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작가 한정현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이게 바로 낙관이야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 183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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