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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한 생명이 떠나간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의 여정이 끝나고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파스카의 시간.
고통과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는 시간.
그 시간을 함께하는 수도자들이 있다.
마리아의작은자매회,
세상은 그들을 블루베일이라고 부른다. (본문 中)
2013년 12월 방송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갈바리의원의 100일간의 기록을 담은 <KBS다큐멘터리 블루베일의 시간>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방송부문)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 곁을 홀로 떠나며 남긴 깨달음의 메시지와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하늘색 베일의 수녀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마리아의작은자매회는 1877년 영국에서 메리포터 수녀가 설립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여러 가지 질병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몇 차례 겪었던 그녀가 임종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돌봐 줄 수도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수도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이 수도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3년이었는데, 외국에서 약과 장비를 지원받아 1980년대까지 외래 진료를 받았으나 지금은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곳이 되었다.
프로듀서인 이호경님은 2년 전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경험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죽음의 현장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어 자문을 구하던 중 한국 최초, 동양 최초 호스피스 시설인 강릉의 갈바리의원을 알게 되면서 이 곳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이호경 피디는 주방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환자들의 발마시지를 통해 환자들과 수녀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촬영을 하면서 100일 동안 스무 명의 임종 순간을 함께 했다고 한다. 화장지를 통째로 편집기 앞에 가져다 놓아야 했던 피디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구원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 역시도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혼자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 등으로 몇 개월간 슬픔과 절망 속에서 헤매였었다. 무엇보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할 기회조차 갖치 못한 채 갑작스럽게 보낸 엄마에 대한 죄스러움, 원망,후회 탓인지 이 책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피디처럼 화장지를 준비한 채 책을 읽기 시작하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에 대한 감각조차 없이 몰입해서 읽었으며, 때론 화장지로 눈물을 훔치기도 해야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은 서로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탓인지 갈바리의원에서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이별의 파티는 힘겨웠을지라도 나는 그들의 그 시간이 너무도 부럽기만 했다. 더불어 지금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을 수 있어 그들에게 감사했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또 한 번 후회하며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산 자의 것이다. 죽은 자는 죽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산자만이 다른 이의 죽음을 받아들어야 하는 숙제에 골몰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애통한 죽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도 죽은 자가 된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말을 막달레 수녀는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름답게 죽었습니까?"라고 물어볼 사람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임종의 자리가 평화로웠습니까? 만일 그 자리에 평화가 있었다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29p)
학교를 휴학하고 아빠 곁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린 작은딸과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병실로 짐을 옮겨 온 큰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까지 잘 살기 위해 온 덕수씨네 가족 이야기, 죽어 가는 어미의 몸에 엎드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죄인처럼 잘못을 비는 자식들의 모습, 아들의 아픔이 모두 자기 탓인 양 자꾸만 하고 싶을 말을 하고 싶을 때까지 반복하는 귀 어두운 어머니, 사는 건 생선을 팔 수 있다는 것이고 죽는 건 이제 생선을 못 팔게 되었다는 뜻이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며 살고 죽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던 생선 장사를 해서 세 딸을 키운 정선 씨 등 죽음에 대해 불안하고 두려웠던 이들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자도, 떠나보내는 자도 남은 시간을 서로 보듬으며,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더 없이 사랑해가는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다. 특히 이별 파티가 열리면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고, 선물을 만들며 사랑한다,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평소에는 내색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편지 속에 자신의 마음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 읽자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왜 나는 훌쩍 떠나버릴 엄마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는지 아쉬움만 가득하다. 갈바리의원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엄마를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보내드릴 수 있었으련만.
사랑하는 엄마!
할말은 많지만 마음속에 담아 두고, 두고두고 혼자라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많은 편지를 쓸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우리를 위해 고된 삶을 살아오신 엄마가 자랑스럽고 고마워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엄마.
큰 아들 올림. (본문 116,117p)
항상 나를 위해 살아 주신 남편에게
따뜻하게 '여보', '당신' 소리 한 번 못 해주고 짜증만 부렸던 내 모습, 정말 미안합닏가. 아파하는 당신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더 잘해 줄걸…… 후회합니다. 고마운 남편, 여보, 사랑해요. (본문 120p)
난 오늘도 아빠 딸로 태어난 것에 너무 감사해. 아빠, 평생을 내 아빠로 살아 줘서 너무 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 평생 사랑할께.
아빠 장난감 올림. (본문 123p)
갈바리의원에서 마지막으로 환자 곁에 서는 사람 박희원 진료원장,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게 해달라고, 미움이나 괴로움은 내려놓고 아무런 기대 없이 생을 놓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녀님들의 인터뷰는 죽음에 대해, 삶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한 생명이 떠나가는 것을, 혼자 남겨지는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죽음 앞에 섰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해보기도 하는 기회가 가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들, 죽음과 대면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매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남은 이들에게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등에 늘 인색했던 나는 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 말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슬프지만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갈바리의원 100일간의 기록 <<블루베일의 시간>>을 만난 건 참 행운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충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누구나 언젠가는 이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사별의 아픔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고 인생을 새롭게 알아 간다. 의식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세상을 하직하고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한다. 어느 날엔가 죽음을 맞이할 존재로서, 슬픔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견뎌 내야 한다. 남은 인생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살므이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수녀들도 인생의 비밀을 깨닫곤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모두, 그 고통의 깊이만큼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수녀는 혼자 남아 기도했다. (본문 298,299p)
(이미지출처: '블루베일의 시간'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