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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ㅣ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4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가이도 다케루의 베스트셀러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의 후속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너럴 루즈의 개선과 함께 두 편 모두 영화화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지요. 그런 작품의 후속작이니만큼 기대가 안될 수 없는데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출간상으로는 네번째 작품이지만 순서상으로는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바로 다음 편에 해당된다고 하네요. 그럼 한번 책을 살펴볼까요?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도 삽화가 상당히 멋집니다. 입체파의 화풍에다 어두침침한 색조가 내용과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죠. 두께도 상당히 두툼해서 왠지 포만감을 주고요. 나전미궁이라는 특이한 제목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죠? 알고보니 이 나전은 나전칠기의 나전이더군요. 조개를 이용해서 알록달록하게 치장을 하는 기법이죠. 나전미궁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쿠라노미야병원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제목도 상당히 중의적이죠. 스포일러가 될 듯 하여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주요 등장인물인 세 자매의 비밀과 관련이 있지요.
주인공은 의대 낙제생인 덴마 다이키치 군입니다. 덴마의 한자표기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이키치는 大吉이더군요. 쉽게 말하면 럭키가이를 뜻하는 이름이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운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죠(라지만...). 뭘 해도 재수 옴붙는 타입이라 할까요? 그런 그가 '여자'친구인 기자 요코의 술수에 말려들어 사쿠라노미야 병원에 잠입취재를 들어가게 됩니다. 이 병원은 사쿠라노미야 일가에 의해 운영되는데요, 원장 이와오, 그의 쌍둥이 딸인 사유리와 스미레는 각자 개성이 강하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인물들이지요. 덴마는 이 병원에 깊은 어둠이 숨겨져 있음을 느끼고 그 어둠을 파헤쳐갑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의사 시라토리와 간호사 히메미야... 이들 역시 강렬한(?) 개성을 과시하는 인물들인데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전작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바티스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인물묘사입니다. 작가의 인물묘사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할 수 있을 텐데요, 코믹한 듯 하면서도 진지한 인물들이 설파하는 말빨은 무시무시할 정도입니다. 전작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가 괴짜 시라토리였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번 편에 새롭게 등장하는 히메미야도 보통 인물은 아니지요. 얼음공주 내지 터미네이터라는 그녀의 별명으로도 불길함(?)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덴마에게 있어서는 재앙이랄수밖에 없겠지만요. 더하여 시라토리와 대척점에 서는 카리스마 이와오 원장, 얼음의 사유리, 불의 스미레 역시 보통 인물들은 아니죠. 이런 캐릭터의 면면만으로도 회가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학 미스테리인만큼 당연히 일본 의학계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습니다. 의료가 자본주의와 만났을 때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이니만치 우리 현실에도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데요. 또 미스테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비밀을 파헤쳐나가고 반전에 뒤통수를 맞는 과정들도 빠지지 않죠. 다만 미스테리라는 면에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네요. 전작도 견고한 구조보다는 인물묘사에 치중한다는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후반부의 심문과정이 흥미진진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비밀이 흐지부지하게 밝혀진다는 점이 많이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티스타 시리즈도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출간 예정인 블랙 페앙은 2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하네요. 블랙 페앙은 도대체 뭘까요? 어떤 내용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아무쪼록 오래 가는 시리즈물로 남아주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