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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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연료 고갈의 문제가 논의된 지 적어도 수십년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한정된 지구라는 공간 내에서 화석 자원이 유한하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니까.. 더하여 20년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대 사회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현실적인 고통'으로 말이다.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써는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은 이 문제를 이 책은 직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유가가 갤런당 4달러인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6달러, 8달러, 10달러... 20달러에까지 이르는 동안 변화하는 우리의 생활상을 예측해보고 있다. 그렇다고 시대마다의 변화상을 모두 제시하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유가가 상승함에 따라 가격경쟁력에서 한계에 부딪혀 붕괴해버리는 산업을 중심으로 하여 대체산업을 예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예컨대 유가가 갤런당 10달러를 넘어가면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채산상 운용이 불가능해지므로, 대신 가격경쟁력이 있는 전기자동차나 기차가 대체운송수단이 될 것이라는 식이다. 무작정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예측가능한 부분만을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런 유의 책은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독자를 유혹하기 마련이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런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선동적인 내용은 흥미는 유발할 수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해악을 끼치기 십상이니 말이다. 기자로써의 균형감각이 돋보인 부분이라 생각된다.
 

요컨대 저자는 석유기반산업이 붕괴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이 크게 바뀔 것임은 인정하지만, 삶의 양상이 비참해질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분명 물질적 풍요로움은 감소할 것이지만 대신 물질에 밀려 사라져갔던 전통적인 삶의 가치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니 당연히 환경은 회복되어 가고, 원거리 이동이 불편해지므로 다시한번 집단적 가치들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모해간다. 세계분업화로 죽어가던 국내산업들이 회복됨으로써 비록 양적으로는 적지만 질적으로는 뛰어난 제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석유기반산업의 붕괴가 파산을 가져오는 대신 대체산업이 발달하여 인구부양력을 유지할 정도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작가는 애매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작가의 이런 시각은 다른 의미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풍요를 행복과 등치시키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이자 말그대로 현재 '운명'이 되어버린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에 목숨걸던 사회는 석유종말시계가 똑딱거리며 흘러감에 따라 점차 더 큰 고통을 겪어야 된다는 아이러니.. 유쾌하다고 얘기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이 책이 얼마나 정확히 시대의 흐름을 짚어내고 있는지 나의 지식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이런 내 눈에도 이곳저곳에 생략과 축소가 엿보인 점을 감안할 때 의심해볼 구석은 많을 것이다. 차라리 현대문명에 대해 비판하는, 혹은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곳곳에 특유의 입담과 유머가 읽는 맛을 더해주어 수월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나, 철저히 미국 사회에 기반하여 분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느낌이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예컨대 교외생활과 자동차를 이용한 생활에 익숙한 미국인에게 석유인상이 가져올 생활상의 변화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주석이 많이 붙어야되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다못해 단위라도 마일/파운드 대신 킬로미터/그램으로 변환시켜주었더라면 읽기도 편하고 현실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애써 외면하던 대상에 예측하지 못했던 면이 있었음을 보게 해주고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이로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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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역사다 - 전선기자 정문태가 기록한 아시아 현대사
정문태 지음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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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책장을 덮고 그의 이력을 찾아보고서야 '아, 우리나라에도 전선기자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무지함을 탓해야 할까, 사회의 무심함을 탓해야 할까.. 최전선을 뛰어다니는 기자답게 글 전체를 팽팽하게 당겨놓았다. 가끔씩 사전을 찾아보게 하는 독특한 어휘도 글 읽는 재미를 더해줄 뿐이다. 글 전체에 기자의 감정이 끓어넘쳐 '이 기자, 지금까지 고생 좀 했겠구나. 앞으로도 고생문이 훤할테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정문태 기자의 3번째 책이다. 표지에는 아시아 현대사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정확하게는 동남아시아 현대사 1990년대부터 2010년대를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 아쩨, 동티모르,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타이의 8개국. 현장의 그날, 그곳에서 쓰여진 기사들을 모아서 다듬은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날의 신문을 하나 하나 찾아 읽어 내려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겅중겅중 시간을 뛰어넘는데도 어색함은 없고 오히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중간중간 배겨진 사진들도 신문에서 오려 붙힌 듯 생생함을 더한다. 중간중간 현장 한가운데 서있는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가 더해진다. 한장 내지 두장의 이 인터뷰가 이 책의 백미다! 앞서 깔아둔 사실들이 배경이 되어 생생하게 살아쉼쉬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 인물이 현실의 인물상과 얼마나 일치할지는 작가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의 중간중간 비져나오는 욕망과 거짓, 그리고 진심을 잡아채는 손맛이 짜릿하다. 

글맛을 이야기했지만 그것만으로 달아내기에는 이 책에 담긴 역사의 핏값이 너무 값싸게 느껴진다. 아시아의 구식민국가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이렇게나 비슷한 형세의 가시밭길을 헤쳐와야 했는지... 피가 흐르지 않는 역사가 어디 있느냐 한다. 하지만 소위 근대화 이전의 무력했던 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그 무력함을 이용해 배를 채운 제국주의 국가들이 얽혀진 역사의 그림자가 이 책이 그려내는 현대사 속에 너무나도 진하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 그림자 밑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외치는 것은 비겁함에 다름 아니다. 눈이 있는 자라면 이렇게나 닮은 꼴의 역사를 밟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길을 찾아감이 당연할 터.. 제발로 걷을 수 있게 되고서도 야심과 이권 앞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으니...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은 그 비판에 터잡아 제 배를 불리고, 그리 배불리는 이들을 비판하는 자들은 야욕의 덫에 빠져 서로의 다리를 잡고 늘어질 뿐이다. 다만 누구를 탓할 것인가.. 책을 읽는 중간중간 '기자답지 못하게' 뿜어져나오는 파토스를 지적하려다가도, 무지함 뒤에서 변명했던 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할 뿐이니.. 차라리 이러한 흐름 끝에 진정한 '역사의 완성'이 당위로 다가온다면 위안이라도 되련만.. 작가가 언뜻 내비치는 희망의 끈들이 반가워 기대해볼 따름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역사는 그대로 우리의 거울이다. 아직도 과거의 얼룩을 지워내지 못한 우리의 얼굴이 그대로 비치고 있다. 얼룩이 보이면 얼른 닦아내야할 일이다. 우리가 그들의 거울이 되어주고 그들이 우리의 거울이 되어준다면 말끔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날도 빨리 다가오지나 않을까... 물건너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들도 이 거울을 보면서 덕지덕지 붙은 욕심을 덜어낸다면 더 좋겠고..  

이처럼 뒷맛이 쓴 책을 펴낼 수 있었던 작가의 20년 기자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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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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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결국 혼자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알게 된다

죽음은 대신할 수 없고 죽음의 의미는 알 수 없다.

의식은 고립되고 닿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렇기에 단절과 환원에 지나지 않는 죽음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죽음은 평등하다.

 

인간이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알게 된다.

타인의 죽음이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나의 가족, 나의 연인, 나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나의 영혼에 빈 공간을 남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후의 세계를 믿고 죽은 자와의 재회를 약속한다.

죽음은 불평등하다.

 

인간에게 죽음은 너무나 무겁다.

갑작스런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도 말할 수 없이 큰데

사랑하는 이가 한걸음씩 죽음에 다가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무력감과 슬픔은 얼마나 큰가..

죽음을 본 이는 그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왜 우리가 세계에 던져져서 누군가를 사랑하다 그가 스러져가는 것을 보아야 하는가..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해야 하는가...

 

죽음 앞에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눈물 흘리고 위로할 수 있을 뿐인 것..

서연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 함께 가슴 아파하며 그 아픔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안식을 찾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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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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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 이번에는 제대로 주관적인 글을 써버린 듯 하군요. 다소간 가감을 해서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 있다면 자기 개발서와 수기가 아닌가 합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들이 보여주는 인생에 있어 모범답안이 있다는 듯한, 혹은 자신의 인생이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듯한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수기의 경우 어떤 책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부분 자기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수기라는 이름의 소설은 제법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기대치는 그냥 '한번 읽어나 보자'는 심정 정도였던게 사실이에요. 게다가 표지를 보아하니 제가 정말 소름끼쳐하는 '안빈낙도'라는 고전적 주제를 다룬 책인 게 확실해 보였거든요. 도시 생활에 질린 한 사람이 느긋하게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이 어떻네, 인간 냄새가 어떻네 얘기하는 건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의 삶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얘기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참 시골스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죠?) 아무튼 명상적 성격이 강한 월든조차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나의 소감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잘 쓰여진 수기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일단 저자는 삶에 대해 무리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아요. 저는 박완서 선생님을 상당히 존경하는데요, 왜냐하면 이분이 쓴 글은 삶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떠들고 싶은 강박을 굉장히 잘 자제해내시거든요. 아시다시피 이게 옳네 저게 그르네 설교하고 싶은 욕망도 인간 유전자에 박혀있는지라 그것을 자제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다못해 지인과의 술자리만 회상해봐도 그렇지 않던가요.. 그것이 연륜에서 나오는 것인지, 타고난 포용력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 인생내공을 가진 분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 글을 쓰신 박정석 님은 제겐 낯선 이름의 작가였지만 이분도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가진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더군요. 어달동에의 삶을 택한 것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일 뿐, 그러한 삶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최소한도로 자제합니다. 철저히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상을 말할 따름이지요. 어달동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잣대를 들이미는 짓은 하지 않아요. 일단 이부분에서 합격한 이상(?)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자잘한 소감을 덧붙히면서 글을 줄일까 해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안보신 분은 안보시는 게 좋을 듯 하네요.

 

1. 이 책은 전체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있어요. 그래서 마치 어달동에서의 삶을 함께 한 듯 유쾌한 기분이 든답니다.

2. 한 꼭지를 끝낼 때 작가는 한 줄을 띄우고 짧은 문장으로 방점을 찍어주는데요, 이게 아주 멋져요. 강한 여운을 남겨주거든요. 이런 식의 표현력은 제겐 참 신기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3.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들이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니 당연한 일일까요? 사진의 질이 훌륭해서 처음에는 사진작가를 초빙해서 찍은 사진인 줄 알았을 정도였어요.

4. 둘리틀은 어떤 분일까요?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말인 것으로 아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어지는 분이네요.

5. 이달고, 전 언제 돌아오려나 기다렸는데 음, 역시 현실은 현실인것이겠지요? 마스코트적인 존재라 멋대로 생각했던지라 저까지 약간 짠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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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스윙 인생 홈런을 치다
마쓰오 다케시 지음, 전새롬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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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노랑의 표지 위에 연필로 슥슥 그린 듯한 사슴 한마리.. 이 책의 표지입니다. 마치 어릴 적에 본 동화책의 표지 같지 않나요? 이 표지가 책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네요.

 이 책은 아마도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간략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코헤이는 IT 회사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취직의 압박에 쫓겨 앞뒤가리지 않고 구한 직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그런 직장에 이물질처럼 둥둥 뜬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는 혐오감만 늘어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날아온 편지 한 통.. 어린아이의 글씨체로 쓰여진 짧은 글에는 일요일에 밤비공원에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죠. 도대체 누가 보낸 편지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그는 결국 공원에 가보기로 마음먹고 거기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야구모자를 쓰고 있는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모습의 소년, 과연 그 소년은 누구였을까요?


이 이상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되겠네요. 다만 이 소년과의 만남이 코헤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정도는 이야기해도 되겠지요?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거울삼아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어른의 이야기는 다소간 상투적인 이야기기는 해요. 작가도 그것을 모를리 없겠지만 통속성이야말로 일반적인 진리를 가진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한 듯 합니다. 사실 변화의 계기가 되기에는 무게감이 부족한 글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산들바람을 쐰듯 독자의 마음을 청량하게 해준다는 점이 이 글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간결성과 여운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지요. 

 
(사족을 달고 싶은 것이 있군요. 이 책의 결말은 결국 내가 바뀌어야 주변을 바꿀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요. 이것은 사실상 대부분의 자기개발서가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는 결론이지요. 명쾌하고 타당한 결론이지만 '내가 변한다'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가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군요. 어디를 가든 내가 변화하지 않는 한 바뀔 것이 없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현재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최선의 결론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죠. 만약 자신이 비틀어진 구조 안에 들어와있다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은 가져다줄 수 있겠지만 동시에 더 많은 구조적 왜곡을 낳게 되는 것일테니까요. 뭐, 어쩌면 제가 세상이 근본적으로 아름답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믿음, 선은 선을 가져온다는 믿음을 다소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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