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The Secret Life
J. 랜디 타라보렐리 지음, 성수아 옮김 / 체온365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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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거리는 금발, 경쾌하게 굽은 눈썹, 살짝 감긴 듯 눈을 덮고 있는 눈꺼풀, 곧은 콧날, 도톰한 붉은 입술과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이, 그리고 왼쪽 뺨의 점 하나.. 표지에 담긴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아이콘화된 그녀의 표상이다. 이미 세상을 뜬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며 서양의 여배우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아직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한편 보지 못한 내게도 지하철 환풍구에 치마를 날리며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런 상징화의 힘이리라. 이렇게 '마릴린 먼로'라는 섹스 심볼로 남기까지 그 상징을 만들어낸 '노마 진'이라는 여인의 삶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화사하게 피어났다 스러진 마릴린 먼로보다 그 이름 뒤에 감추어진 노마 진의 삶을 그려내는데 주목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본명이 노마 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이 여인의 할머니, 어머니가 모두 정신병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노마 진이 엄격한 양어머니의 손에 자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마릴린 먼로가 평생 동안 자신 역시 광기에 젖어 삶을 마칠 것을 두려워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 책은 마릴린 먼로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어린시절을 재구성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싸구려 모델을 거쳐 영화로 주목받기까지, 초라한 배경을 딛고 여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가면을 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가면 뒤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한걸음씩 쫒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음을, 그리고 케네디와의 짧은 만남 이후 그녀가 어떻게 생의 마지막까지 달려가는지 객관적으로, 그러나 최대한 밀착하여 그려간다. 그녀를 만났던 사람과의 인터뷰를 가장 중요시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으로 그녀를 관찰하는 듯 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과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균형있게 사용하여 객관성을 잃지 않고자 하는 점이 돋보인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 사람이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돈과 권력이 있든 없는, 결국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후에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궁금해진다. 그녀가 약물중독으로 죽어가는 순간,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약물에 취해 혼미한 와중에도 자신의 삶을 돌이켜 그려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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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 -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이희수 옮김 / 알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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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목만은 마음에 안드는 책이다. 어떻게 봐도 부제는 책에 줄 점수를 깎아먹으리라 생각한다. 안그래도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 굳이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지...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내용을 연상시키는데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 아주 심각한,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만 보면 지구종말론 느낌의 책으로 오해받을 것 같다.

그 외 내용 면에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번역도 매끈하게 잘 된 듯하여 읽기도 즐겁다. 적잖이 두툼한 이 책은 그 두께에 걸맞게 반드시 짚어볼 문제를 심도깊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조류독감, 구제역, 탄저균, 콜레라 등의 질병 재난이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어느정도의 피해를 낳고 있는지, 또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처를 해야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인류가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재난이 그렇듯이 이러한 질병 역시 인간이 자초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양계장에서는 싼값에 닭고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브로일러 양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고기가 부드럽고 쉽게 살이 오르는 품종의 닭만을 육종하여 좁은 공간에 밀폐시킨다. 운동을 최소화하여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가 칼로리로 낭비되는 일 없이 살로만 가도록 6개월을 키워내면 우리가 즐겨먹는 치킨이나 삼계탕용으로 팔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닭들은 면역력이 낮으므로 새로운 질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좁은 공간에서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병에 걸려도 순식간에 다른 닭들에게도 병이 전염되어 버린다. 더하여 정부에서는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발병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하기 마련이고, 발병 지역의 동물들을 폐사시키는 미봉책만을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로 인한 교역의 활성화, 특히 그 이면의 이기적 이익 추구가 질병의 전파를 더욱 촉진시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의학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전염병이 등장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작년의 신종 플루 사태가 잘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근대화의 한 지표로 위생상태가 꼽힐 만큼 현대의 도시는 위생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일단 그런 위생관리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질병이 등장하게 되면 도시만큼 질병이 잘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도 없을 것이다. 만약 현대에 페스트와 같은 질병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낳게 될지, 문명이 얼마나 쇠퇴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처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한 것이다. 이기심, 혹은 욕심을 조금만 버리라는 것. 지금의 생물학적 혼란을 야기한 것은 자본주의가 긍정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가 용납되는 한 지금의 생물학적 혼란은 점점 심각해질 수밖에 없으니, 거기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언제나 쉽게 나오는 결론이면서 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해결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희생이 없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한 것이 역사의 흐름이지만 이번에는 어떨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기 전에 끊임없이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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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문 이모탈 시리즈 2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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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에버모어에 이은 이모탈 시리즈 2번째 작품인 블루 문이 나왔다. 아름다운 꽃이 그려진 1권의 표지도 인상적이었지만, 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보름달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2권의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용 면에서는, 시리즈물이 대부분 그렇지만 첫권부터 강력한 임팩트를 발휘하는 책은 드문데, 이 시리즈 역시 1권에 비해서는 2권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전편에서 적수 드리나를 죽인 후로 남자친구 데이먼에 이어 초능력 불사자가 된 에버. 두 사람의 만남을 끊임없이 방해해왔던 드리나가 없는 이상 둘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새로운 전학생 로만이 등장한다. 그리고 갑작스런 데이몬과 친구들의 변모. 로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번 편에서는 전편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소재들이 좀 더 깊이있게 사용된다. 환상의 세계 써머랜드는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점성술사 에바 아줌마는 기댈 곳 없어진 에버에게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 결과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아류작임이 너무나 눈에 띄던 전작에 비해서 한결 독자적인 색깔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적과의 갈등 보다는 에버와 데이먼의 이어질 듯 말 듯 꼬인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성질 급한 남성 독자라면 짜증을 내며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남자주인공과의 밀고 당기기를 간접체험하고 싶은 여성 독자라면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블루 문에서 치명적인 장애물에 부딪치게 된 두 사람은 과연 어떻게 이 역경을 극복할지 차기작 섀도우랜드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다만 1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번역은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차기작에서는 조금 더 매끈한 번역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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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 휠체어 위의 우주여행자
크리스틴 라센 지음, 윤혜영 옮김, 박기훈 감수 / 이상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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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과학자들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과학자라면 역시 스티븐 호킹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한다. 루게릭병에 일그러진 몸을 휠체어에 싣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으로 사용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적 존재는 의구심을 낳기 마련이다. 그의 성취는 정말로 그토록 대단한 것인가, 과학자로써의 그가 훌륭하다고 인정할지라도 과연 인간으로써의 그도 그러한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인가, 혹시 그의 모습은 상당부분 언론과 대중의 헛된 기대가 낳은 허상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들.. 아직 생존인물인 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구심들이 스티븐 호킹의 개인사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천체 물리학 교수이다. 스티븐 호킹과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그는 학창 시절 스티븐 호킹과의 만남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내어 이 책을 썼다. 그러다보니 상당히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호킹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이 알게 모르게 묻어나기도 한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의 탄생부터 2006년까지의 개인사와 과학적 업적을 아울러 담아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반려자인 제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많은 위인들이 그랬듯, 그의 업적 역시 제인과 다른 가족들에 빚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 특히 위대한 과학자가 아닌, 한 명의 장애인으로써의 어려움과 피해갈 수 없는 가족들의 갈등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주요 업적을 위주로 설명하면서 간략하게 물리학적 해설을 덧붙여 주고 있지만, 사실상 간략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이 대부분인지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위인이 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어떤 의미로든 균형잡힌 적당량의 야심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욕망이라 하든, 소명의식이라 하든 말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호킹의 과학자로써의 탁월함은 물론이고 이러한 야심을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육체적 장애가 스스로를 위축시키도록 놓아두지 않은 그의 이러한 야심이 현재의 스티븐 호킹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1963년, 20대의 나이에 2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으나 50년이 다 되어가는 아직까지도 과학자로써의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는 호킹... 아직까지 그의 여정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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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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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근대화, 서양화를 택하면서, 결정적으로 메이지 유신을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월등한 국력을 성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아시아적 정체성을 획득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일면에 있어서는 그러한 정체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시아 국가이지만 아시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모습... 물론 이후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근대화의 길을 걸어가지만,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가장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채택한 일본의 선택은 참으로 신기해보일 따름입니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징에서 오는 개방성, 사무라이 문화의 순발력으로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죠. 아마도 이런 일본의 모습은 서양인에게 더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이 책에서 소개된 프랑스인 풍자화가 조르주 비고의 풍속화를 통해서 서양인이 느꼈을 그러한 생경함을 다소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조르주 비고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18년간이나 일본에 체류하면서 당대의 일본을 속속들이 그려낸 일본통입니다. 당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화풍, 특히 우키요에에 경도된 많은 다른 화가들처럼 그 역시 보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그림 기법을 배워보고자 하는 욕심에 일본행을 택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만화들이 일본 내에서 적잖은 호응을 얻으면서 1882년부터 1899년까지 무려 18년을 일본에 체류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 결과 그의 풍속화들은 근대화를 겪는 일본의 명암을 일본적이면서도 일본적이지 않게 담아내는 데 성공해냈습니다. 그의 귀국 이후 그의 풍속화들은 오랜 시간 묻혀져있었는데, 시미즈 이사오라는 이가 관심을 가지고 다시 선별 편집하여 주석을 붙여 펴낸 것이 이 책입니다.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권은 주로 민중의 생활상을 다룬 풍속화를, 2권에서는 좀 더 정치적 풍자가 강하게 드러나는 캐리커쳐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서구적, 프랑스적 시각과 동양인에 대한 비웃음이 엿보여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당대 일본인의 생활상을 순간적으로 캡쳐하듯 담아내는 비고의 능력 쪽이 놀랍게 다가옵니다. 병사나 하녀, 창부의 모습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담아내는 그의 그림이 서구화에 목을 맸던 당대 일본의 입장에서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특히 2권에서 다룬 캐리커쳐들은 독일화를 택한 일본에 대한 (프랑스인 화가로써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검열을 받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의 그림이기에 현재에 와서 더 큰 역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특히 편집인인 시미즈 이사오는 최대한 편견 없이 유쾌한 주석을 붙여내어 생경한 당대 일본 생활상을 즐겁게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써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부분에서조차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주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네요^^ 


우습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한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한편의 그림이 기억에 남네요. 한손에는 양산, 다른 한손에는 부채를 든, 그리고 양복 정장을 입었으나 더위를 참지 못해 바지를 벗고 훈도시를 드러낸 한 청년의 그림입니다. 서양식 복장과 훈도시의 복장이 강렬하게 대조되는데다, 우스꽝스러운 청년의 표정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나봅니다. 이 청년의 모습이 비고가 본 일본의 모습일 것입니다. 서구화 열풍 속에서 전통과 서구문명이 혼재되어 있는, 서구인보다 더 서구적이기를 원하지만 결국 일순간에 일본인으로써의 전통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지요. 현실적인 이유로 피할 수 없기에 선택한 서구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일본인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서구화가 제국주의로 이어졌기에 마냥 동정만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모든 동양권 국가가 서구화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자비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자리잡고 앉은 약육강식의 원리 안에서 공존공영을 찾는 것은 단지 위선 혹은 오만인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역사적 당위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인 것일까요? 신자유주의라는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의 유령이 횡행하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아직 역사는 믿을만한 것이라고, 알만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책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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