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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평점 :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제목이 너무 뻔해서 그저 그런 기행문인가 했는데, 역사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는 저자의 약력답게 기대 이상의 분석력이 돋보였다.
본격적인 학술교양서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을 좀 더 멋지게 지었으면 훨씬 매력적인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편했던 점은,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아프리카인 당사자의 책임 또한 도외시 하지 않은 점이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딛으면서 시작된 불행한 역사는, 수백 년에 걸친 노예 무역으로 대변될 만큼 그 뿌리가 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제프리 삭스의 책을 읽으면서 잘 사는 나라에서 더 많은 원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했는데, 반대 의견의 책을 보고 반드시 원조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원조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과 독일이고 한국 역시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였으니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한국은 근대화가 늦었을 뿐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므로 오랫동안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아프리카와는 또다른 상황인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한국이 원조를 통해 오늘날의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것은 평가받아야 마땅한 것이고, 그런 의미로 보자면 박정희의 근대화는 독재라는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기본적으로 민족국가의 역사가 짧고 부족 중심 사회가 오래 됐고 식민지 경험을 통해 그 분열이 더욱 강화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원을 무기로 바꾸고 독재를 지속하면서 국민들의 기본 생활은 원조에 의지하는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비판받아 마땅한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의 세습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조건 퍼주기식 원조는 결코 그 사회의 자립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프리카는 큰 대륙인데 과연 이들은 아프리카인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유럽이 EU 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룩했지만, 반면 한국인은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다.
아프리카는 그들을 하나의 문화적 범주로 여기는지 궁금하다.
단지 외부의 눈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탄자니아에서 백반증에 걸린 불쌍한 알비노 아이들이 만병 통치약으로 거래된다는 해외 토픽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사례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 할례도 근절되지 못하고 많은 여성들에게 마치 중국의 전족처럼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미신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인데 그러려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다.
소말리아에 해적이 기승하는 이유가, 국가가 해군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 원양어선들이 마음대로 경계수역에 침범하여 어민들이 굶주리게 됐고 먹고 살기 어려워 해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사연은 참으로 안타깝다.
저자는 북아프리카에서만 재스민 혁명이 가능하 이유가, 그래도 이 나라들은 중산층이 형성되어 교육을 받아 시민의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수 십년 독재로부터 해방되려면 중산층 형성이 필수인데 어떻게 이 단계까지 도달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아프리카의 발전을 주시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