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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ㅣ The Great Couples 1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고 제목이 재밌을 것 같아 읽은 책이다.
두껍긴 하지만 서술이 평이해 쉽게 금방 읽힌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일독해 볼만한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마네다.
특히 베리트 모리조를 그린 <발코니>라는 작품이 마음에 든다.
마네의 그 강렬한 평면성이 마음을 끈다.
반면 모네는 별 관심이 없는 화가였다.
말년에 유명해진 수련 그림에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인상파를 말을 만들어낸 <인상, 해돋이> 같은 그림도 왠지 학생들 스케치처럼 서툴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그가 그린 풍경화를 보고 완전히 반해 버렸다.
색체의 변화를 대기의 기온차에 따라 기묘하게 잡아낸 그 솜씨에 확 빠졌다.
그의 아내 카미유가 일본옷을 입고 있는 초상화도 그렇고, 양귀비 꽃밭에서 양산을 들고 서 있는 그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굉장히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화가 같다.
터너의 그림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세련됐다는 느낌을 준다.
마네도 그렇고 모네도 그렇고 두 사람의 화법은 다르지만 꼼꼼하게 드로잉을 하고 섬세하게 색칠을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한 번에 쓱 보고 문지른 듯한 그럼에도 대상의 느낌과 특징을 정교하게 포착해내는 솜씨가 놀랍다.
벨라스케스가 왜 인상파의 선구자인지, 알 것 같다.
그의 유명한 대작 <시녀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정교한 데생 없이 붓질 몇 번으로 쓱쓱 문지른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또렷한 형태로 각인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들은 현대 화가들이다.
마네는 특별히 흥미있는 화가라 그런지 그의 일생을 다룬 앞부분은 무척 재밌었다.
할아버지가 시장이었고 마을의 존경을 받아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고위 공무원이었고 나중에 판사가 됐다고 한다.
마네에게 엄청난 땅을 물려줘,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마네는 특별히 그림을 생계 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런 부유함이 특별히 더 내 관심을 끈다.
먹고 사는데 애를 써야 하는 르느와르 같은 화가 보다는 마네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예술가가 더 부럽다.
그런데도 고흐의 그 끔찍한 가난과 소외된 삶 역시 강렬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나는 마네의 유복한 환경이 내심 부러워 하는 것 같다.
하여튼 이 화가는 처음에는 해군이 되려고 했다.
성적이 나빠서 법대에 못 들어가고 대신 해군이 되려고 했는데 몇 번 낙방해 결국 하고 싶은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집안 환경 때문이었는지 마네는 국전에 입선하려고 애썼고 드가로부터 출세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점도 왠지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마네는 최고의 인상파 화가로 역사에 길이 남았으니, 그 자신은 죽기 전에 이런 영광을 누렸는지 모르겠다.
수잔과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사진을 보면 그냥 평범한, 오히려 펑퍼짐한 아줌마 스타일인데 두 살 연상의 이 가난한 피아노 교사의 어떤 점에 반했는지 모르겠다.
모네의 아내 카미유를 그린 그림을 보면 무척 매력적이던데, 수잔을 그린 초상화는 영 느낌이 안 살고 그래서인지 그녀가 모델로 나오는 그림은 유명한 게 없다고 한다.
하여튼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된 마네는, 집안에 얘기하지 못해 아들은 사생아로 무려 스무 살 때까지 엄마와 둘이 살게 된다.
보통 이런 사연이면 마네가 유복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은 버려져야 맞는데, 뜻밖에도 마네는 아버지가 죽은 후 유산을 물려 받은 후 수잔과 정식 결혼한다.
진정한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동생 외젠은 화가 베리트 모리조와 결혼해 종종 마네의 모델이 되어준다.
저자의 지적대로 베리트는 마네가 원하는 표정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등장하는 그림은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마네는 기존의 명화들을 열심히 모사하고 대가들로부터 좋은 점을 취해 자신의 것으로 혼합시키려고 애쓴다.
전통을 존중하는 이런 태도가 참 마음에 든다.
드로잉을 무시하는 그림, 이를테면 발로 그려도 이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그런 그림은 아무리 예술이라 우겨도 도저히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정확한 대셍, 드로잉은 화가의 생명이지 않겠는가?
비록 똑같이 모사할 필요는 없지만, 즉 화가는 기술자가 아니지만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상당히 전통주의자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들라쿠르아의 과도한 색체의 향연인 낭만주의 그림보다는, 앵그르의 정밀한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든다.
그 초상화를 보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
뽀얀 피부와 특히 파란색 스커트의 질감과 색감은 손으로 만져지는 기분이 든다.
마네의 사진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실망스럽게도 썩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서 그런가?
배가 불룩 나온 모네보다는 낫지만, 하여튼 반할 만한 인상은 아닌 것 같다.
바지유가 퍽 잘 생겼다.
아직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저자가 무리없이 글을 풀어 나가고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비교한 부분은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보고 있다.
북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김원일이 쓴 <피카소>도 퍽 재밌게 읽었는데, 미술 부분도 번역서 말고 한국 사람이 쓴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역시 번역서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고 할까?
뒷부분은 51세로 일찍 사망한 마네 얘기 대신, 86세까지 장수한 모네의 얘기로 가득찼다.
대략 40대가 넘어가면서 모네의 그림은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네는 상당히 낭비벽이 심했던 것 같은데, 좋게 말하면 우아하고 여유있는 삶을 즐긴 스타일 같다.
그는 언제나 생활비가 부족해 허덕이면서도 월세가 비싼 좋은 집에 살고, 하녀, 정원사 등을 고용했다.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은 다섯 명의 정원사가 가꾸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마네에게 자주 돈을 빌렸고 1차 대전 때 전사한 바지유에게서도 돈을 자주 빌렸다.
언제나 외로웠던 고흐와는 달리 인간관계가 무척 좋았던 것 같다.
고흐와 고갱처럼 개성 강한 예술가가 만나면 불화하기 마련인데, 모네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바지유 등과 같은 동료 화가들과 화실도 같이 쓰면서 그림 작업을 한다.
역시 오래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매독에 걸려 50대 초반에 사망한 마네나, 권총자살한 고흐, 전사한 바지유 등과는 다르게 마네는 무려 86세까지 살면서 온 세계의 인정을 받아 말년에는 전 세계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확실히 모네는 풍경화의 대가다.
마네가 인물화에 강했던 것에 비해, 모네의 강점은 여러 겹 덧칠한 풍경화에서 정말 이것이 자연에서 받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한 그림이구나,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마네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인물의 표정을 잘 캐치하면서 강렬하게 명암 대비를 주기 때문인데 모네의 풍경화도 너무나 아름답다.
모네의 삶 중에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아내 카미유와 알리사다.
카미유는 겨우 서른 두 살에 아들 둘을 낳고 사망하고, 모네는 가난 때문에 후원자인 오슈드 부부와 한 집에 산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오슈드 부인인 알리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 카미유가 살아 있을 때 알리사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알리사는 남편이 죽은 후 모네의 정식 아내가 된다.
모네는 알리사의 세 딸들을 정성으로 돌보는데, 둘째딸 블랑슈가 카미유의 아들 장과 결혼한다.
또 막내딸 수잔이 미국인 화가 버틀러와 결혼하는데, 그녀가 일찍 죽자 다시 큰 딸 마르트와 재혼한다.
우리 눈으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결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피는 안 섞였다 하더라도 의붓남매의 결혼이나, 처제와의 재혼 등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확실히 18세기 말의 프랑스는 21세기 한국보다 더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동거도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다.
도판이 훌륭하고 책에 언급된 그림들을 가능하면 전부 싣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책값이 높게 책정된 것 같다.
마네와 모네의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알게 되서 기쁘다.
역시 이런 훌륭한 그림을 언제쯤 한가롭게 실제로 관람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