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를 위한 롤모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유일한의 도전하는 삶과 아름다운 나눔
유일한 기업가 정신의 본보기
가진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기업가가 되겠다는 꿈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했다
우직하게 원칙을 지키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갔다
롤모델과 함께 내딛는 내 꿈을 향한 첫 걸음
도전과 열정으로 기업가 정신을 실헌찬 유일한 박사의 모든것!!!
유일한 그때 세계는?(20세기)
한국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세계에서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한국사와 세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인물
교육을 향한 아버지의 열정으로 미국에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말에
일찍이 개화에 눈뜬 유기연은 개화파 청년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 중 한명인 박장현에게서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유기연은 맏아들 일형,,,즉 유일한의 어릴적 이름
1904년 어느 봄날 평양 상수리 집으로 돌아오는 유기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족과의 아무런 상의 없이 내린 결정을 통보한다
아홉살짜리 철부지 아들을 그것도 맏아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이때 미국을 보내겠다고 하니 엄마로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으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리고
유기연은 친정에 찾아가 설특해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내는 자살 소동을 벌이거나 이혼까지 결심하며 아들을 미국 보내는 것 반대했으나
유기연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청일전쟁때 배속에 있던 일형이까지 평양 북쪽 대성산과 아미산으로 피난 갔었는데
그 전쟁때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일형이는 세상구경도 못했을 것이라
아버지 유기연은 일형이에게 힘없는 이 나라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오,,,"
유일형이 태어나기 일 년전에 1894년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 들어오자 이에 일본도 군대를 보내면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유일한이 쓴 자서전 [한국에서의 소년 시절]에도 당시를 그린 장면이 나온다
결국 유일한 어머니도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아내의 반대에도 아버지가 아들의 미국 유학을 밀고 나간 것은 일형을 좀 더 큰 인물로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당시 교회는 한반도에 서양 문물을 전해 주는 창구이자 개화파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유일형의 아버저 유기연은 교회를 다니며 발달한 서양을 알게 됐고 변해 가는 세상을 읽었다
개화파 지식인들은 전국을 돌며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강연을 했다
그들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뜻있는 청소년을 미국에 유학 보내야 한다며 호소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유기연은 맏아들 유일형을 유학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유기연은 맏아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아이들의 교육에도 열정적이었다
맏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뒤, 둘째 아들은 러시아,셋째 아들은 중국, 다섯째 아들은 일본에 유학을
보낼 정도였다
아홉살에 떠난 미국 유학길
1905년 8월 중순 유일형과 박장현은 새 양복을 맞춰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1905년 8월 24일 미국을 출발해 9월 27일 유일형을 실은 배는 한달이 넘는 길고 긴 여정동안 지구의 반을 돌아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했다
서재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일한
서재필은 귀국한 뒤 국민 계몽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직 교육,특히 민중을 개발함에 달려 있기에 신문을 만들어내야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마침내 1896년 4월 우리나라 최초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국민이 세금을 성실하게 내지 않으면 그 어떤 나라도 강해질 수 없다
사업할 때 절대 탈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세금을 내야 나라가 강해지고 나라가 강해야 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
유일한은 교육보다 국민건강을 지키는것이야말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질병으로 헤매는 국민을 위해 제약 회사를 세우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여긴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가 필요한 법이다
유한양행은 시설과 인력 투자에 신경을 ㅆ도았다
꼭 필요한 인력이라면 중국사람,일본사람,러시아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유일한회장이 장관직을 거절한 것은 정치보다 기업을 일으키고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
친손녀 유일리가 기억하는 유일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분이라는 생각만은 분명하게 들어요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일단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할아버니는 저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자라서 되고 싶은 모습이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때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립적으로
하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매사에 불평하거나 비관적인 성격의 사람을 싫어하셨어요
무엇보다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것을 강조하셨어요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 하셨죠"
무엇인가를 자기 힘으로 해내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진짜
주인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