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Social Shift Series 1
존 엘킹턴.파멜라 하티건 지음, 강성구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세상에 명백한 사실, 눈에 불을 보듯 뻔한일에 왜 매달릴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해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리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는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 내는 힘~~

어쩌면 그들은 쓰레기를 나무로 바꾸고도 남을만한 힘을 충분히 가졌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그들은 현실로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두려움과 가보지 않았던 길을 과감히 뚫어내는 추진력을 가졌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는 혁신적 기업 건설, 두번째 미래시장 창조, 세번째 지속가능성과 확장성 있는

변화 이끌기 이다.

 
우리의 행동으로 주변을 변화시킬수 있다면,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면.

내가 무협지에 나오는 절세영웅이 아니더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둬두지 말고 한가지씩 우리의 능력을 풀어내보자.

그들이 가능하면 우리 역시 할수있다. 세상에 대한 나의 편견은<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않는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내 삶이 180도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땅은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은 고리타분한 우리들 마음이지 않을까? 말이 안되는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지만, 그것이 안될꺼라고 생각한적은 없었다. 내가 이루지 못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어 내리라고.

 

우선은 나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힘이 더 나아가서는 내가 바라는 것들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을때 난 내 자신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겠다.
내 자신을 변화시킬수 있는 힘을 가질때 다른것도 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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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 개정판, 하버드 초청 한류 강연 & 건국 60주년 기념 60일 연속 강연 CD 수록
박진영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날 떠나지마' 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박진영씨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정말 춤을 잘 추었다. 독특한 자신만의 매력이 강하게 발산되었던 모습.

강력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노력하고

국내에서 안주하지 않고 세계로 눈을 돌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박진영씨의 깨어있는 멋진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과 결혼한 사람이 늘 여자친구이길~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내곁에 묶어 두지 말고 더욱 높이 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고여있는 물이 썩듯이 사람 역시 정체되어 있을때면 자신의 정체성을 읽고 다른 생물체가

되어 버린다. 전통사회에서 여자란 존재는 희생의 두글자 였던 것같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자신을 귀하게 대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는 삶에서 어떤것이 최우선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멋지다.

사람이 유명해지면 본질을 지키기가 어렵다. 환경에 따라서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춤 솜씨를 태어나면서 타고난 재주라고 말한다. 그래서 춤을 잘 춘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그의 음악은 자유롭고 나올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신만의 성장을 위한 표출이기도 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일 것이다.

가수로써 프로듀서가 아닌 한 사람의 박진영씨로써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번에는 어떤 팔색조로 변실하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책의 내용이 에세이를 보다가 카툰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서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벼우면서도 그의 진지한 이야기들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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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더 데레사 지음, 이창희 옮김 / 마음터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책 제목에서 마더 테레사님의 신념과 사랑이 느껴진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다.

때론 힘든일이 있거나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을때면 기도를 하곤 한다.

나의 이기심이 가득찬 기도~ 지금까지 하느님을 부를때는 내가 아쉬울때 뿐이였던것 같다.

그 외에도 고마움의 기도를 드린적이 있다. 기도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고, 눈을 감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을 뿐이였다. 

 
고통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아직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진 못하겠다.

'고통은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시련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착한이는 단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하느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곁으로 부른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사는동안 힘들었으니 편히 쉬라고 그러는 것이 아닐지.

죽음은 두렵지만, 생각의 전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내 마음에 화가 가득차 있으면 화만 보일 것이고 기쁨이 가득차있으면 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감정이 얼굴로 표출되는것을 보면 마음을 이쁘게 가져야 겠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것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맞는 말인것 같다. 그렇지만, 쉽지 않은일이다.

이런저런 일들도 투덜거리는 난, 내가 억울한 것만 생각하니까.

그런 감정들을 오래 갖고 있으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그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이런 어리석음이 나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한평생을 힘든이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주신 마더 테레사님의 사랑은 위대하다.

그 분처럼 살 순 없겠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다른 사람을 베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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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고라 -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을 뜨겁게 달군 5가지 논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태조에서 태종까지 한성 천도 논쟁, 세종의 공법 실시 논쟁, 현종때의 1차 예송 논쟁,

2차 예송 논쟁, 마지막으로 정조때의 문체반정 논쟁으로 결말을 맺는다.

 

군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볼때 수직관계 였겠지만, 왕이 모든일을 자신의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였다. 나중에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가는 일도 많았지만, 신하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어쨋든 다수결이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거면서 신하들의 의견은 왜 물어보는거지?? 그런 생각도 들곤 하였다.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고 신하들의 뜻을 존중하기 위함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명분이 필요해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혼자 결정한 일 아니다 라는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함에도 이유가 어느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었던것은 서로의 의견대립도 있었지만, 이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군신과의 대화가 그때 상황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거기에 자세한 설명들이 진지한 격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이 삐진다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었는데, 역시 신하된 도리로써 왕을 화나게 하면 좋지 않은 일이므로, 달래준다거나 듣기좋은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행동들 역시 지금의 우리 사회조직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

 

세종의 공법 실시 논쟁을 통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세의 문제는 과장 큰 문제이고 국민들이 잘 살기 위한 기반이다. 지금도 조세의 문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말이다. 국사책에서 조세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뭐 이리저리 주체없이 끌려다니는 개혁안은 폐단의 폐단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세종의 공법 실시문제는 조선 최대의 마라톤 토론이 되었다. 답답한 부분들도 많았지만, 어쩔수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지금도 법 하나 개혁할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에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딴지걸고 통과를 시켜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도 딴지 거는 사람이 한 둘 이였겠는가?

 

예송논쟁의 본질은 단순히 상복의 문제가 아니라, 효종의 변칙 승계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조선의 현재 왕이 정통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시간과 상황가 위세에 밀려 대충 마무리 지어진 1차 예송 논쟁의 문제점들이 곪아 다시 터진 것이 2차 예송의 본질이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원칙을 바꾸려던 왕의 이기심과 하늘이 두쪽 나도 안 된다는 신하들의 융통성 없음이 충돌한 결과가 바로 2차 예송 논쟁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예의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였지만, 본질을 벗어나 서로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세력이나 권력이 무섭긴 한 것 같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으나 현실과 이상은 동일시 될 수 없다. 자신들의 이상을 찾기 위해선 그들이 옳다 생각되는 것을 따라야 하고 그럴려면 많은 부딪침이 있을 수 밖에 없을것이다. 서로의 옳은 뜻을 펼치기 위한 격돌이다.  그러다가 서로의 치졸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본질은 잊고 만다.

 

문체반정이란 '잘못된 글을 올바른 것으로 되돌린다' 라는 말이다. 정조는 죽는날까지 삶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을 것 같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도 그렇지만, 그가 살아있기를 바란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쫓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조는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었다. 참 의문스러운 점들이 많다.

정조는 자신에게도 다른사람에게도 엄격했다. 그리고 여러방면에 총명했던 정조가 그의 개혁을 성공하였다면 조선이 어떻게 변모했을까~

 문체 반정의 결말은 저자의 말대로 정조의 취향이 아닌것을 어찌하겠는가~~

 

안타까운점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점이다. 지금도 과거의 조선과 지금의 우리나라는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바가 없다는 것이다.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또한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 하다' 라는 링컨의 말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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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연출디자인의 원류 프레데릭 J.키슬러
야마구치 가쓰히로 지음, 김명환 옮김 / 미술문화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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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세기의 미술의 아웃사이더 키슬러를 ’건축가’라는 말로 단정지을수 있을까?

그는 극장설계, 무대장치, 실내디자인, 디스플레이, 회화, 조각, 제품디자인, 가구디자인등 순수미술에 걸쳐 폭넓게 전개되었다. 전문화와 분업화를 외치며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는 한가지만 해내기에도 벅찬것이다. 그렇지만, 키슬러는 이 모든것을 소화해내었다.

예전의 예술가라 불리우던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 뛰어난 역량을 보여 주던 사람들이 많았다. ’건축가’의 의미가 사람의 능력을 제한시키는 액자틀과 같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 일수도 제한적일 수도 있다.

설계를 할때 공간의 의미는 단지 네모박스는 아니다.

무엇을 설계할지에 따라 그 공간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키슬러가 근대기능주의를 부정한 이유는 기계생산 시스템 및 자본주의 구조를 지나치게 신봉한 나머지 인간이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략하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는 기계기술문명의 모순을 직시하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현실’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

즉 사회적 인본주의적 도덕관에 바탕을 둔 사상적 제안이었다.

 






<앤드리스 극장 모형과 단면도 평면도>
연극이 아닌 극장공간에 대한 변혁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전의 극장은 군주제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상류층의 좌석을 무대 전방에 배치하고 그밖의 좌석을 차지한 관객들은 연극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장내의 어떠한 장소에서도 완벽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앤드리스 극장>을 통해서 연속되는 곡면의 공간 속에서 역학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였다. 구형의 건축물 내부의 공간 및 그 안에서 자유롭게 전개되는 드라마가 바로 그가 구상한 이상적 형태의 연극이였던 것이다.  

 

나는 살아 숨쉬는 건축을 꿈꾸고 있다. ’공간도시’ . 그리고 기능적인 건축을!  건물은 ’생태기능’에 자유자재로 접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키슬러의 공간전시의 새로운 생각, 그는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그림을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닌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 주목하고 다양한 장치를 고안한다. 그림이 벽에 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지지물을 만들어 그림을 고정하거나 관람객을 위해 책장과 비슷한 그림장과 그림을 놓을 수 있도록 이동 가능하게 설계된 일종의 ’픽쳐 스탠드’를 고안한다. 얼마나 멋진 계획안인지.

 

 위의 사진처럼 앉아서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가면 좋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음에도 지루함을 느낀다. 액자의 틀에 갇혀서 벽에 고정되어 있는 그림이 일반인 눈에 멋지게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났다 생각된다. 전시 공간이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는다.

 

 



<프리-포름>의 컨셉 드로잉과 <푸리-포름>18가지 기능에 관한 스케치

 

키슬러는 건축이든, 디자인이든, 조각이든 제작자의 사고방식을 수용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사용자, 수용자, 보는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리포름>은 미술관이 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인 관객의 피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며, 동시에 인간의 신체적 조건에 적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프리포름>의 디자인이야말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객의 입장을 반영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앤드리스 하우스 1층, 2층 평면도>

 





<앤드리스 하우스 실내 디자인 제 1안의 드로잉과 제 1안의 모형>

 

키슬러의 작품에 등장하는 각체구조는 달걀이나 조개껍질 등에서 볼 수 있는 곡면의 연속적인 구조와 같은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초기작품인 <엔드리스 극장>의 계획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연속적인 구조체의 원리에 입각한 나선형 구조의 원리를 <앤드리스 하우스>에 적용한다.

<앤드리스 하우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도 말했듯이 태어나기 전이였던 어머니의 뱃속이 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라 말한다. 앤드리스 하우스는 연속되어 있으면서도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주택은 단절의 공간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써 각자 개인의 쉼터이기도 하다.

 

 앤드리스 하우스를 통해서 우리와 가까운 곳에 ’인공적 우주’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살기 쉽게 하기 위한 장치’ 따위는 필요하지않았다. 대신에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각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작용하고 있는 우주의 힘이 우리를 끊임없이 성장시켜 물질적으로, 감성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한하게 발전시켜 줄 것이다.

 

 키슬러는 1890년에 태어나 1965년 12월에 생을 마감한다.  그가 해온일들은 ’건축가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하였다. 기존의 건축가들은 거주자를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의 건축물들은 마천루를 보고 있는듯 하다. 거대하고 무서울정도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편리함과 고도의 전문화된 솜씨로 금방 지어지는 건축물을 볼때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환경에 동화되지 못하는 초건축물이 안타깝기도 하고 우리는 무엇때문에 높이 쌓기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다. 편리함에 젖어 네?? 아닌지. 그걸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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