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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외로웠다. 덪은 내가 만들어 놓고 나는 괴로워 하고 있었다. 덪을 놓은 이도 갇힌이도 다 나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100도씨가 채 안된느 전기 포트 물 온도에 나는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컵에 톡 털어넣었다. 휘휘. 수저를 넣는 것도 귀찮아 인스턴트 커피 봉지로 저었다. 지처갔다. 그냥 그렇게 지처갔다. 한 십년 가까이 멀쩡하던 몸에 열병이 왔다. 열에 시달려 나는 춥고 온 삭신이 쑤셨다. 외로웠다. 아프고 쓰라렸다.
열이 내리고 나는 일이 아닌 노서아 가비에 손과 눈을 갖다대었다.
먼저 목차를 읽어내려갔다.
외로워 마라 외로워 마라, 속삭임이다
아~, 뭐란 말인가. 나는 쓴 커피를 쭉 들이켰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급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노서아 가비가 러시아 커피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한 때 내가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창 넓은 카페에서 향좋은 원두커피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이야기는 조선 말 고종 시대 역관의 딸의 사기 행각에 대한 이야기다. 읽으면서 나는 커피가 이야기와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억지로 커피를 끌어들이는 구나. 마치 기획소설처럼,
잠시 나는 작가 이름을 보았다. 난 김탁환을 처음 읽는다. 김탁환의 천년의 습작을 너무나 탐내 했지만 읽지 못했고,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약력을 보면서 이 사람은 기술자같은 이야기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기술적으로 짜여진 이야기에 교묘하게 커피를 끌어들여 커피향을 은은히 풍기는 소설. 노서아 가비. 사기꾼인데 독자로 하여금 그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게 되고 그가 주가 되길 바라고 용서 받기를 바라고 고종과 만나 바리스타로써 한 장면 한 장면 숨고르며 영화를 감상하듯 작품을 읽게 만드는 김탁환, 이 작가야 말로 정말 교묘한 사기꾼이다.
이야기에 빠져 들다가도 새로운 목차에 들어서서 커피 광고 문구같은 혹은 시 한줄같은 혹은 속마음 고백같은 목차를 읽다 보면 잠시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다시 외로움에 잠긴다.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인터넷으로 원두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내리는 기계도 없는데 그냥 내 나름 직접 받아 마시고 싶었다. 거름종이를 이용해서.
달고 쓰고 차고 뜨거운 기억의 소용돌이다.
얼마나 많은 얼마나 뜨거운 기억 속에서 나는 괴롭고 아프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이책을 읽으며 심드렁한 내 마음을 잠시 눅눅해질 만큼 기억에 푹신 담갔다가 꺼냈다.
비가 내리고 커피 향내가 풍기고
나는 나를 짱짱한 햇빛에 말리고 싶었다.
따로 놀던 이야기와 커피.
작가는 참 교묘한 사기군이다. 겉돌던 느낌이었는데 어느덧 하나로 만든 느낌,
영화화 된다는 미끼에 얼른 읽었는데 정말 영화화 될만하구나 싶다.
부러울 만큼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기꾼 작가를 이제야 만났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