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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별 ㅣ 창비아동문고 227
나가사끼 겐노스께 지음, 김병호 그림, 양미화 옮김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전쟁에 관한 영화도 전쟁이야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전쟁은 배경일 뿐이고 실제 소재는 인간과 인간,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아픔과 의지 집념을 다루었다.
책 속에는 <팔푼이>, <파리>, <비둘기 피리> 이렇게 세 편의 단편이 있는데 다른 이야기지만 마치 한 이야기같은 느낌이 있다, 그것은 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어딘가 조금은 모자라거나 어설프거나 사연을 갖고 있고, 그 모자란 인물을 옆에서 괴롭히는 사람 역시 사실은 못지 않는 아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가 끝나가는 즈음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 서두부터 여기 실린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다 어리석은 남자들 이야기입니다, 라는 단정으로 시작한다. 전쟁 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도 살아남기 어려운 전쟁 중에 이런 상상을 미리 해 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흔하게 짐작이 가면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은 <팔푼이>였다.
팔푼이로 불리는 나는 마치 책을 읽는 나의 분신같았다. 한 번도 바보나 얼간이, 미련퉁이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학교 성적도 중간보다 앞이었는데 어쩌다 얼간이가 된 걸까?
그건 마치 긴장을 했을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제대로 못해내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보는 듯했다.
군대에서 줄서서 번호를 말할때 팔푼이는 자기 번호 8을 제 때 대지 못한다. 학교다닐 때 체육 시간에 번호라고 하면 자기 번호가 될 때까지 긴장했던 기억이 났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데. 이런 팔푼이를 놀리고 닥달하고 채찍질하는 분대장은 내가 보기에도 이상하게 팔푼이에게 애착을 느낀 듯 했다.
늘 자기 동네 팔푼이 불지기 영감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불지기 영감과 분대장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예상을 따라주어 지루하기 보다 감동으로 다가왔다.
때론 밉기만 한 혹독한 교관이나 선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애정이 뒤따라야 가능하다는 걸 되새길 수 있는 이야기였다.
팔푼이를 읽는 내내 나는 전쟁 속 팔푼이가 되어 주인공 나와 함께 전쟁터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다시 팔푼이가 아닌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을 때는 아쉬움이 그득하다.
'파리'에서는, 파리가 극성을 부리자 내려진 날마다 파리 50마리를 잡으라는 어이없는 '명령' 때문에 죽어버린 병사의 이야기
라고 소개가 되어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며 순진하고 얼굴이 우스광스럽게 생겨 바보 취급을 당하는 마야마 이병과 오가와 이병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 죽음은 오가와 이병에게 찾아오고 그 원인은 파리가 맞지만 그 내면적으로 엘리트 오가와 이병과 글을 쓸 줄 모르고 단지 동생을 사랑하며 동생에게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마야마 이병의 교감이 전해져 온다.
파리는 단순한 파리가 아니라 오가와 이병이 마야마 이병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세지와도 같다. 전쟁 중 파리를 잡으라는 명령은 막중한 어떤 명령과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비둘기 피리'에서는 군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보짓을 하는 남자 우에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저렇게까지하면서 살아돌아가고 픈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비겁하고 얍삽하군'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쟁이다. 세상에 아깝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을까?
우에다의 노력은 엄청났고 우에다를 감시하는 상병이 죽었을 때도 우에다는 눈을 질끈 감고 참을 만큼 의지를 돋운다. 그건 갇힌 비둘기가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는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우에다의 노력은 전쟁 중 허망한 것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에서 나역시 맥없이 툭 하고 긴장이 놓아지는 경험을 했다.
1964년에 발표되었다는 이 책 <바보별>은 세월이 흘러 어느 덧 2006년 지금에도 전혀 생소하지 않고 전쟁이야기이면서도 진부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 주제가 인간의 문제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서로 친절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을 보다 이럴때 전쟁이 터지면 양보하고 위해 주는 마음도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삶을 위해 본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그것이 사람인 것이다.
이젠 이념을 가르치는 전쟁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전쟁을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