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라는 책이 좋다고
사람들에게 추천을 남발해 놓고.
어찌하여
그의 책이 이리도 많이 나와 버젓이 도서관에 꽂혀있는데도 몰랐단 말인가.
애초 이런일이 내게 없었는데~~~.
한권 골라 익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한숨은 너의 것이었고, 훈계는 나의 것이었다.ㅡ005p
네 문장과 서화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네 문장은 간곡하고 절실했으나 네 서화는 굼뜨고 엉성했다. 둘의 간극은 극락과 지옥의 그것처럼 크고도 넓었으나 시치미를 떼고, 마치 날 때부터 쌍둥이였던 사이처럼 찰싹 달라붙어 함께 움직였다. 기가 막혔다. 서로를 향한 절실함과 엉성함이 기묘하게 맞아떨어져 사방으로 서로 휘감은 칡넝쿨이 되었다. 칡넝쿨의 비유는 강렬했다.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 칡넝쿨은 손에 묻은 묵은 감초 냄새처럼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간 머릿속이 온통 칡의 모습과 냄새로 가득하게 되어 아무 일도 집중하지 못할 터였다. 귤중옥의 향내와 더불어 살며 흔들림을 혐오하는 나는, 그러므로 그 어지러운 칡이 싫었다.
ㅡ007p
그 가시울타리를 머리에 쓰고 가슴에 두른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시울타리를 닮은 눈초리로 다시 한 번 너의 서화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훈계를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방 안엔 너도 없었고 너의 한숨도 없었다. 너라는 존재의 고뇌의 흔적인 서화를 고전적인 훈계로 윽박지르는 전략은 이미 무용한 일로 판명되었다. 하여 나는 새로 얻은 가시울타리로 잘 벼린 붓을 만들어 쓰기로 했다.
ㅡ008p
동기창의 ˝만 권의 책을 읽고, 천 리 길을 간다˝는 문장을 너의 처지에 맞게 바꿔 쓴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어 보고는 곧바로 너에게 배운 한숨을 쉬었다 보기에는 그럴 듯 했으나 결국은 너를 쫓아버린 또 다른 훈계에 지나지 않았다. 문자향, 서권기, 법식, 마수의 길....... 여린 너는 한숨을 못버렸고, 강한 나는 훈계를 못 버렸다. 이제 그 한숨은 내게로 와서 나늘 몇 배로 허탈하게 만들었다.
ㅡ009p
베껴쓰고 싶어서 도무지 진도가 안나가네.
나도 닮고 싶다.
너.
당신.
설흔.
님.
작가를 만나보고 싶은 맘이 드는 거.
첨이다.
사랑에 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