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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용기
휘리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중학교 1학년때였다. 6학년때부터 친해진 단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와도 사귀었지만 나는 그 친구하고만 사귀었다. 그건 한때 내가 친구 사귀는 방식이었다. 온마음을 다해 한 사람과 소통하는 것. 당시 나는 못하는 것도 많았지만 아이들이 부러워할만한 걸 잘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못하는 영어, 글쓰기, 그림그리기.
학교 끝나면 늘 그 친구집에서 지냈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왔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그랬다.
친구 동생들은 나를 좋아했고, 친구의 소소함을 다 공유했다.
어느 날 그 친구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 준다고 하자 갑자기 친구가 나보고 가라고 했다.
안간다고 하자, 내 가방을 마당에 던졌는데 당시 가방안에 있는 것들이 마당에 다 쏟아져 나왔다.
마당에 맨발로 내려가 물건을 다시 가방에 담는데 친구는 그러니까 그냥 가지 그러는 거다.
나는 주섬주섬 물건을 다 담고 뒤도 안돌아보고 집에 왔다.
그뒤 나는 그 친구와 친구 사이를 끊었다. 무수히 많은 사과를 하고 편지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대꾸도 안한 기억이 난다.
그 친구와 기억은 아픔이다. 이별의 아픔.
그 친구 집에 안가니 시간이 텅 비어서 내게 날아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갈곳이 없었고, 긴긴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나는 그애와만 친해서 다른 친구가 없었다. 2학년때까지 외롭게 지냈고 그 친구와 같이 친하던 친구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애의 사과를 받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애를 탓하던 시선의 화살들이 끝내 사과를 받지 않는 내게로 와 꼳혔다.
창비에서 나온 그림책 <잊었던 용기>를 보자마자 울컥했다.
그애가 연락오면 나는 웃으며 안녕할수 있을까?
나는 영영 용기없는 아이로 남을 것같아 속상하다.
친구와 서먹해졌어. 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림책에 장면은 텅빈 놀이터다. 긴 겨울방학이 한 번 지나갔을 뿐인데 늘 붙어다니던 친구와 멀어진 마음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놀이터 참 춥겠구나, 쓸쓸한 마음이 바람이 되어 불겠구나.
혼자서 친구를 생각하는 장면은 그 옛날 딱 나를 보는 듯하다. 그렇게 잠시 멀어진 인연을 떠 올리며 쓸쓸하던 시간 누구나 있겠지.
이 장면은 참 만이 떠오른다.
쓸쓸함의 절절은 이장면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신발주머니를 무릎으로 턱턱 치며 쓸쓸하게 집으로 가던 기억.
이건 이 기억을 가진 이만이 불어올수 있는 장면인데~
작가님 정말 이 장면을 담아냈네.
바지 끝단이 젖어오는 촉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마음에 외로움이 차 오르던 시간이 있었지.
집에 오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책을 보다가 편지를 쓰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했었는데.
아이는 편지를 쓰고 친구집 우체통에 넣는다.
답장이 올까?
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요즘 아이들이 알까?
기다리는 시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산책을 하고, 하늘을 보고, 새로운 걸 만나도 기다리는 마음.
혼자 발로 저으며 타는 그네. 혼자 타는 그네는 높이 올라가지 않지. 올라가 봤자 금세 내려온다.
옆자리 그네는 비어있고, 혼자 타는 그네는 마음이 오락가락. 편지를 괜히 했나 싶기도 하겠지.
그런데 드디어 왔다. 편지가. 답장이.
이 장면에서 왜 이리 울컥한지.
나도 함께 편지를 기다렸나 보다.
용감한 아이.
용감한 아이.
내 친구도 용감했다.
많이 사과했고 편지도 많이 했다.
용감은 커녕 옹졸로 뒤범벅이 된 내 마음은 어디에 띄워야 하나.
그 용감한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니.
서로를 향해 밝게 웃으며 달려가는 모습에 참 마음이 편해진다.
섬세한 마음을 보여주는 작가구나.
관찰을 많이 하고 따스한 마음이 가득하겠구나.
이제 그네는 혼자 타지 않고 누구보다 높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들뜨고 신난 아이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둠을 치우는 사람들에게 참 아름다운 장면을 그렸구나 하며 감탄했던 휘리 작가의 신작 그림책이다. 또 다른 섬세함이 있다. 색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장이 그장같이 보일 때도 있으나 마음은 그렇게 섬세하고 예민한 거여서 자세히 보면 커다란 마음 변화의 일렁임이 보인다.
휘리. 발음을 하면 휘파람 느낌이 난다. 그림책의 바람이 불길.
끝내 나는 시절인연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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