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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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가 스님이 쓴 글을 읽는 것은 법정 스님 말고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아 읽게 된 책인데 제목이 참 시적이다는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은 혜민 스님이라는 개인사가 참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하버드 재학 시절에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셨다니 그 사연이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은 고국에 있는 사람들과 모국어로 트윗을 하고 싶어 트윗을 하던 중에 자신이 툭툭 던지는 그 말 한 마디에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해 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스님의 인상을 보니 참 맑았습니다. 예전에 저희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사람은 40세를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습니다. 즉 그 나이 쯤 되면 그 사람의 삶이 얼굴에 묻어 나오니 하나님의 말씀 대로 잘 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나고 못 나가고를 떠나서 선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는 게 40이 넘은 지금 저의 희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은 참 인상이 선합니다. 성직자 중에서도 안 좋은 인상을 풍기는 분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원래 저 이런 종류의 책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책 제목과 스님의 인상이 하도 선해 보여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서 저 또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 구절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위로를 주었던 구절입니다.

한두 사람의 비평에 상처받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쉽게 한 말에

너무 무게를 두어 아파하지도 말아요.

안티가 생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용기 내어 지금 가고 있는 길, 묵묵히 계속 가면 돼요.

(본문 20쪽) 

 

지금 한창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동료 평가, 학부모 만족도, 학생 만족도 등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교원평가에 대한 큰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원평가가 처음 도입되어 실시되던 2년 전, 그 해는 제가 아침독서를 처음 하게 되었던 해이고,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 주면서 독서 교육을 열심히 하던 해였습니다. 그 해 교원평가는 시범 학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알려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일선학교에 전면적으로 실시되었고, 지금과는 달리 1학기에 평가가 실시되었습니다.

 

전 1학년 담임이었기에 학생 평가는 받지 않았고, 학부모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독서 교육에 열과 성의를 다한 저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몇 명의 학부모는 아주 낮은 점수를 주었더군요. 그래서 평균 점수는 낮아졌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비교해 보니 거의 하위권이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어줬건만 어떻게 하루도 책을 읽어 주지도 아침독서를 하지도 않은 다른 반 선생님들보다 제 점수가 더 낮은지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정말 미쳐 버릴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익명성의 잇점을 악용하여 그렇게 평가를 한 학부모를 끝까지 찾고 싶었습니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이 누가 그렇게 나쁜 점수를 줬는지 훤히 알겠더라고요. 당연히 평소에 나쁜 생활 태도로 저에게 야단을 많이 맞은 어린이의 학부모죠.

 

저는 정말 제가 왜 그 동안 목이 쉬어라 책을 읽어줬을까 후회도 되고, 한글 못 뗀 아이 한글 가르친다고 그 고생을 했을까 ,내가 이런 대접 받을려고 나머지 공부에, 아침 독서에 이런 저런 일들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중간이라고 갈 걸 하는 후회를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멘붕 상태였고, 자괴감이 들었고, 분노, 복수심 등이 일었습니다. 아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를 받아든 다음 날부터 책도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이 아니기에 그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표를 보면서 학부모들은 담임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못 하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어떤 교육 목표를 향해 교육 활동을 하는지보다 우리 애가 당장 야단 맞은 그 사실 하나만 기억하고 평가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99번 잘해 줘도 1번 야단 맞아 온 기억만으로 평가를 하는 셈이었습니다.왜 자녀가 야단 맞았는지 그 원인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들도 다 적으로만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때 청소를 도와주시러 오던 몇 분의 학부모들과 허심탄회 말할 기회가 생겼고 다 털어놓자 그 분들이 절 진심으로 위로를 해 주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다른 학부모들이 저를 좋다고 해도 한 명이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그게 교사에게는 평생 가더라고요. 그 때가 그랬어요. 저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응원해주는 많은 학부모들이 계셨지만 몇 분이 저에게 준 상처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지요. 제가 페스탈로찌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과 성의를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말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았죠.

 

아이들은 잘 못해도 칭찬으로 자신감을 키워 주라면서 교사들은 왜 그렇게 칭찬해 주지 못할까요?  교사도 신이 아니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허물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뿐만 아니라 교원평가 때 학부모나 아이들이 쓴 비수 같은 말에 상처 받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교사도 어린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사-학생 간은 풀 기회가 있지만 교사-학부모는 풀 기회가 없습니다. 그대로 상처로 남습니다. 학부모, 아이들은 신원이 철저히 보장되니까 그 잇점을 가지고 마음껏 쓰실 수 있겠지만 그걸로 인하여 1년 동안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려고 노력한 선생님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2년 전 제가 매우 힘들어 할 때 어떤 학부모님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살짝 주시더군요.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옆에 신랑이 없었다면, 저의 가치를 알아주는 동료 교사들이 없었다면, 저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참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 때 혜민 스님의 이 글을 만났더라면 더 일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 같아요. 학부모들이 얼마나 저에 대해서 잘 알겠어요? 저도 학부모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 저도 우리 아이 담임들에 대해서 잘 몰라요. 아이들이 들려 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 아이들이 거짓말은 안 하지만 앞뒤 맥락 잘라먹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말하잖아요- 만으로 어떻게 담임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교사-학생은 그나마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 때 그 느낌들이 되살아나서 또 다시 억울해지려고도 하였지만 이제는 당당해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들을 이제는 날려 보내려고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물론 이 글로 인하여 100만 안티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혜민 스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제가 하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으니 저의 길을 묵묵히 가렵니다. 제가 지금도 아주 좋은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 더 좋은 아내, 엄마,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저를 존중할 것입니다.

 

이 책 그러고 보니 사인본이네요. 혜민 스님이 이런 말을 적어주셨네요.

남 눈치 너무 보지 말고

나만의 빛깔을 찾으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 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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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8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를 꿈꾸다 시공 청소년 문학 51
이상권 지음 / 시공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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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고나서  마음이 환해지는가 하면, 어떤 책은 반대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잔뜩 흐린 하늘 같은 기분이랄까. 다 읽고나서도 한동안 먹먹하고,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이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까 싶어 또 다시 다른 일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아 마녀가 되기를 꿈 꾸는 사람들이 있다. 한수문, 수문이의 이모, 이모와 함께 사는 아저씨, 그 아저씨의 아들 주혁이. 각각 상처를 받은 경로는 다 다르지만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놓을 정도로, 요즘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그들은 심한 마음의 상처들을 갖고 있다.

 

수문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 넷이 과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들 넷이 살면서 무슨 일들이 생겼는지,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해 가고 꿈을 꾸는지 작가는 현재와 과거, 꿈을 오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집중하기가 어렵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꿈을 오가는 이야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왜 그런 고달픈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가 호기심이 생기고, 그들의 깊은 슬픔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그들을 차차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이 측은해졌다. 주혁이가 왜 그렇게 잔인하게 동물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이모가 왜 그리 모질게 수문이에게 " 엄마 " 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수문이, 이모, 주혁이가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수문이와 주혁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동물들과의 대화가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수문이가 왜 그토록 호랑지빠귀에게 주혁이 이야기를 미뤄왔는지 알게 된 순간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얼마나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었으면 그런 일까지 벌였을까 하는 생각에 주혁이가 가여웠다. 결국 주혁이가 그렇게 된 것은 엄마의 온정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 벌은 주혁이가 받고 있는 셈이니.....

 

수문이는 또 어떤가! 핏덩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이모 손에 키워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이모에게 보내져서 이방인처럼 지낸다. 그런데 바람처럼 또 다시 찾아온 이모와 함께 간 시골에서 숯가루를 밥 먹듯이 먹는 아저씨와 그의 아들 주혁이와 살게 된다. 유달리 큰 키 때문에 마음까지도 어른처럼 대우받은 수문이는 한 번도 친구들과 놀아 본 경험이 없는 정말 외로운 아이다.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 때문에 수문이는 한순간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다. 모범생과 문제아는 종이 한 장 차이란 걸 수문이의 상황은 대변해 준다. 어디 마음 붙일 곳 없어 공부에만 전념하던 수문이는 어렸을 때 봤던 마술로 인해 마법사가 되겠다는 막역한 꿈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혼자 살고 있는 지금도 마술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17세인 수문이는 넷이 살던 그 곳을 향하여 가고 있다. 주혁이와의 그 일을 끝으로 독립하여 온 후 3년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던 버섯을 닮은 모양을 한 그 곳. 수문이가 그곳에 도착하면 조금은 자신의 짐을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27세, 37세가 아닌 17세 한수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무기에게 쫓겨서 수문이를 찾아왔다는 이모도 만나길 바란다. 오랜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온 그들이 다시 그 곳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예전보다는 조금은 평안한 마음으로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평소에 전면 유리창이 있는 카페나 그런 전원주택을 좋아했는데 책에서 보니 그런 유리창 때문에 새들이 유리창인 줄 모르고 부딪혀서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인간에게는 낭만적인 일이 새들에게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하기도 하는구나 생각에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생각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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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랄라랜드로 간다 -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54
김영리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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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병이라는 내게는 다소 생소한 병을 앓고 있는 용하의 성장 이야기가 흥미롭다. "기면병"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기면병에 대해 검색을 해 봤다. "일상 생활 중 발작적으로 졸음에 빠져드는 신경계 질환이자 수면장애' 라고 나와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잠을 자는 병, 용하는 좀 심각한 편이다. 내가 이런 병에 걸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었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조건 잠을 자게 되는 병.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잠을 자게 되니 모든 일에 맥이 끊기겠지. 그리고 안전을 보장하기가 힘들 것 같다. 용하는 심하면 얼굴이 무너져 내리기까지 한다는데 그게 어떤 상태인지 호기심이 생겨서 사진 검색을 해 봤지만 찾질 못했다. 다만 책에서 나온 것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와 비슷하다고 하니 그냥 짐작을 할 뿐이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호기심이 생기니 용하를 괴롭히던 재수탱이 녀석들은 오죽 하였을까 싶다.

 

 

용하는 아무 때고 잠에 빠지는 그 고통스런 순간을 랄라랜드로 미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랄라랜드> 하면 그 어감에서 뭔가 흥미롭고 즐거운 일들이 넘쳐날 것 같지 않는가! 끔찍한 고통의 순간이지만 이름만이라도 멋지게 붙여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용하의 바람이 느껴진다. 기면병에 걸린 것도 짐작컨대 고시원에서 살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부모와 떨어져 고시원에서 조그마한 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 고통 속에 살다 보니 그게 그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조금만 큰 소리가 나거나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지는 기면병에 걸린 게 아닐까! 그래서 용하가 짠하다. 사춘기로 한창 예민할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저 혼자서 고시원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살았을 용하를 생각하면 엄마의 한 사람으로서 먹먹해진다. 부모가 걱정할까 봐 3년 동안 저 혼자서 끙끙 앓고....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것을 용하가 모를 리 없었겠지만 애어른 같은 용하는 이제 갓 게스트하우스를 물려받아 부푼 꿈을 안고 있는 부모님께 차마 말을 하지 못 한다. 그런 용하의 깊은 슬픔 또한 독자에게 전이가 된다.

 

 

그런 용하의 병을 첫눈에 알아본 망할 고 할아버지가 내린 처방은 다름 아닌 일기를 쓰라는 거였다. 웬 생뚱맞은 처방이야 할 지 모르지만 처음엔 전혀 내키지 않아 한 두 줄 끄적대던 용하도 결국 비-트(비밀노트)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일기에 제 마음을 다 털어 놓는다. 안네에게 일기가 전부였듯이 용하에게도 비트가 그런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망할 고 할아버지의 처방이 적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트 마저 없었다면 재수탱이 녀석들의 괴롭힘과 매일 몇 번씩 반복되는 랄라랜드의 경험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싶다. 망할 고 할아버지는 이미 용하가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라는 것까지 간파하고, 일기에라도 너의 마음을 다 털어 놓으라는 뜻에서 그런 처방을 내리지 않았을까! 혹시 용하와 같이 말 못할 고민이나 말 못할 병에 걸린 친구들이 있다면 비-트를 써 보렴. 용하처럼 자꾸자꾸 쓰고 싶어질 거야. 그러면서 네 안에 쌓여 있던 분노, 절망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경험하게 될 거야.

 

 

비-트는 또 다른 의미의 비트와 통해 있다. 작가는 그걸 미리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겠지만서도. 독자 입장에서 용하가 자신에게도 뭔가 하고 싶다는 열정을 일깨워 준 드럼이라는 것이 바로 비트를 만들어 내는 악기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작가님의 내공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 비-트와 드럼의 비트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니 말이다. 생활고에 지쳐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지내던 용하가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에 나도 기뻤다. 물론 용하의 기면병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지난 3년 간 혼자서 기면병과 힘들게 싸우던 용하가 더 이상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용하는 혼자가 아니다. 든든한 친구 은새, 삼촌, 망할 고 할아버지, 부모님까지 용하를 지켜 봐주고, 믿어 주고, 기다려 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과 친구가 생겼으니 말이다. 거기다 비-트도 있고, 뭔가 하고 싶다는 열정도 생겼으니 이게 진정 용하가 가고 싶던 랄라랜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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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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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집에 가장 많은 것은 책일 것이다. 거실 양쪽 가득히 책이 즐비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아직도 책에 배고프다. 나보다 남편이 더 심하다. 나야 독서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근래 들어서 책욕심을 부리지만  평생 독서가라고 칭할 수 있는 남편은 책에 대한 욕심을 지닌지 아주 오래되었다. 책 욕심 뿐만 아니라 책을 엄청 귀하게 다루어서 수퍼남매가 조금이라도 책을 함부로 다루거나 택배 온 책이 찍히거나 하는 날에는 큰일이 난다. 이런 아빠의 성격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 책을 무지 조심히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신주 단지 모시듯이 하는 남편의 태도 때문에 가끔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 장정일 씨는 책을 보기 전에 꼭 몸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책장을 넘겼다" 면서 자신이 결코 별스러운게 아님을 강조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 당신은 책이 소중해? 아님 우리 가족이 소중해?" 란 질문을 던지곤 하였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서야 남편의 그런 태도가 결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 조상들 중에도 남편과 같은 분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을 아주 사랑하는 분들은 남편보다도 더 책을 귀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였다.

 

세계적인 기행문으로 일컬어지는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의 말을 인용해 본다.

책 앞에서는 하품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도 안 된다. 책에 침이 튀어도 안 된다.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는 고개를 돌려 책에 묻지 않도록 해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손톱으로 표시를 남겨도 안 된다. 책을 베고 누워도 안 되고, 책으로 그릇을 덮어도 안 된다. 책을 쌓아 둔 것이 어지러워도 안 된다. 먼지를 털어 주고 좀벌레를 없애야 한다. 볕이 좋으면 즉시 말려야 한다. 남의 책을 빌렸을 때는 잘못 쓴 글자나 내용을 고쳐서 표시해 두어라. 종이가 찢어졌거든 때워 주고, 묶은 실이 끊어졌으면 다시 묶은 뒤에 돌려 주어야 한다.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중에서-  본문 40쪽 -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남편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물론 나도 학급문고를 오픈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한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앞으로는 이 글귀를 인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 및 태도를 알려줘야겠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로 정민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을 보고나서 첫 느낌은 이 분 참 박식하다라는 거였다. 그리고 어려운 한시를 참 쉽게 풀어주셨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분이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자녀에게 옛날이야기 들려 주듯이 옛날 사람들의 독서법에 대해서 조분조분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시다. 독자는 바로 옆에서 아빠나 삼촌이 " 얘야, 옛날 사람들은 말이야. 책을 정말 귀하게 생각하였단다. " 며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에 대한 이모저모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다. 가령 서양과 동양의 책장 넘기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가? 난 그런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부분까지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날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오른쪽 아랫부분을 잡고 넘기는데 서양인들은 오른쪽 윗부분을 잡고 넘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항상 아랫부분을 넘긴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알고 서양화 그림을 보니 그림 속에서 독서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 윗부분을 잡고 넘기는 게 금방 눈에 들어온다. 이 리뷰를 읽고 계시는 분은 책을 넘길 때 어떻게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뿐만 아니라 옛말에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섯 수레라 하면 어느 정도의 양일까? 그 당시는 대나무로 만든 책 즉 죽간이었기에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책보다 부피가 아주 컸다고 한다. 그래서 대략 계산해 보면 한 1000권 정도. 생각보다 적다고? 그런데 옛날 책이 지금의 책과 다르다는 점을 비교해 볼 때 결코 적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조상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처럼 한두 번 정도 보는 게 아니라 줄줄 외울 정도로 본 것을 말하므로 단순히 1000권이라고 하여 얕잡아 볼 것은 아닌 듯하다. 

 

조선 시대 문인 중의 한 명인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열전>을 무려 1억 1만 3천 번 읽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김득신 이야기는 나도 어린이들에게 자주 인용하는 부분인데 참 대단하신 분이다. 그야말로 "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할까?  김득신은 다독하신 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독은 많은 책을 읽는 것도 다독이지만 김득신처럼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다독이란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다독과 정독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 주신 점도 마음에 든다. 다독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무조건 많이 읽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 다독할 책과 정독할 책이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독할 책이다. 꼭꼭 씹어 읽어 제맛을 느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엄청 좋아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완소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중에서 책에 미친 사람들 즉 독서광에 대한 이야기책인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나온 사람들이 이 책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등이다. 그 책을 참 감동 깊게 읽고, 한 번 읽기에는 너무 부족하여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곤 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 또한 나의 완소책이 될 성 싶다.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물론 김득신처럼 1억 1만 3천번은 아니겠지만서도 말이다.

 

정민 선생님이 자신의 자녀에게 조상들의 독서법에 대해 들려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듯이 나도 이 책을 정독하고, 또 다독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조상들의 독서법에 대해 재미나게 들려주고 싶다. " 얘들아, 우리 조상들은 말이지, 책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었단다. 그래서 옆집 도령의 책 읽는 소리에 반해 담을 넘어 와서 사랑을 고백한 처자도 있었다지 뭐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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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10-2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에 밑줄 긋고, 포스트 잇 붙이고 접기도 합니다.
옆지기님 놀라시겠어요. ㅋ
요즘은 저도 책만 보는 바보가 되고 싶다는...
책이 고파요!

수퍼남매맘 2012-10-28 17:4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옛분들 중에도 메모하는 분들도 있으셨다고....저도 제 책은 밑줄 팍팍 그어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 가지나 방법은 여러 가지인 듯해요.
 
아이의 사회성 - 세상과 잘 어울리고 어디서나 환영받는 아이로 키우는 양육법
이영애 지음 / 지식채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묻지마 범죄 사건들이 연일 뉴스 시간을 장악하였다. 불특정다수를 향한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들이 왜 그런 끔찍한 일들을 벌였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보니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상태에서 결국 이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다. 교실 현장에서도 그들과 비슷하게 적개심을 가지고,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급우들과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소위 말하는 문제아들이 학교를 통틀어 2-3명 정도였다면 이제는 고학년인 경우 한 학급당 2-3명 정도이니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사회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진단 하에, 이를 예방하고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가 아이들이 사회성이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성이란 결국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사회성이란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필요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갈수록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독불장군처럼, 또는 외톨이로 생활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그대로 어른이 된다면 타인을 이해하지도, 배려하지도, 남들과 소통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아님 타인을 무시하거나 배척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이 희망적인 이유는 바로 이 사회성이란 것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제대로 사회성을 교육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앞선 예와 같이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맞춤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맞춤식 교육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은 바로 내 아이에 맞는 사회성을 길러주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들을 알려 주고 있다. 작가가 상담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봤었던 사회부적응아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그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이런 아이들을 교실 현장에서 보게 된다면 전과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 성 싶다. 나 또한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같은 부모한테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도 두 아이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큰 아이에게 적용했던 방법이 작은 아이에게는 안 통할 때가 자주 있었다. 초보 엄마일 때는 그럴 때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비교하며 아이들에게 상처도 주고, 나 스스로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야 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양육의 원칙은 같지만 두 아이에 맞춤식으로 적용해야 교육의 최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아무리 좋은 교육지침서를 보더라도 그 걸 내 아이에 적용하려고 하면 왠지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부모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그걸 한 번 걸러서 내 아이에게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책은 사회성을 키워주는 여섯 가지 열쇠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기질, 애착, 정서지능, 자기조절, 자존감, 도덕성이다. 수퍼남매는 물론이거니와 교실 아이들을 보더라도 이 여섯 가지가 조화로운 아이들이 친구 관계도 원만하고, 교사에게도 인정 받고, 학습력도 우수하고, 따라서 학교 생활을 즐겁게 잘하는 것 같다. 아마 부모라면 내 아이가 이 여섯 가지가 조화롭게 발달한 사회성이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이 책은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만한 좋은 지침서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번 걸러서 내 아이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수퍼남매를 절대 비교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긴 한데 부모로서 가장 갖춰야 할 덕목은 바로 " 기다림"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둘째는 누나에 비해 많이 느리다.  누나에 비해 못할 때마다 저 밑바닥에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양육서 덕분에 많이 참을 수 있었다. 책과 가까와지고나서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책을 가까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은 나도 가끔 폭발하곤 하는데 앞으로 더 참고, 기다려줘야겠단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부모를 성장시켜 주는 그런 귀한 존재인 듯하다. 부모이기 전과 부모가 된 후의 나를 보면 진일보하였다는 것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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