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냉장고의 탄생> 시작합니다.


지금 갖고 있는 전자제품 중에 단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걸 선택하실건가요? TV? 스마트폰? 컴퓨터? 지금은 여름이니까 에어컨을 선택하실 분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방 한 켠을 묵묵히 지키고 서있는 냉장고를 선택하실 생각은 없나요? 냉장고 없는 삶을 상상해보세요. TV가 없으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되고,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으면 책을 보면 되지만, 냉장고가 없으면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인류가 냉장고를 사용한지는 고작 20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가움"이라는 성질을 잘못 이해했던 과학적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차갑게 만드는 데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지 못했던 기술적 한계 때문에 냉장고는 역사의 끄트머리에 와서야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냉장고가 없었다고 인류가 시원함을 만끽하지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귀족들은 집에 창고를 만들어 샤베트를 즐겨 먹었고, 1800년대 중반엔 이미 아메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국제적인 "얼음 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다고 하네요. 신기하지 않나요?


이렇게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차가움을 가둬두려 노력한 공학의 역사와, 자연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는 열역학의 발전, 뉴욕의 얼음을 떼다 자메이카에 팔아야겠다는 꿈만으로 시작한 벤처 스타트업 기업가의 모험담과 인류의 미래 기술에 대한 전망이 한데 모여있는 다채롭고 풍성한 책, <냉장고의 탄생>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선택한 키워드는 환경오염입니다.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청취자 여러분께도 익숙한 이름일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강신주 선생의 신문 칼럼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냉장고에 가득 쌓여있는 음식이 사람들을 소비지향적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양산하며 결국엔 인간성과 환경을 파괴해버리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니 냉장고를 버려야 한다는 게 글의 요지였는데요. 이 칼럼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생태/환경주의자들은 대체로 공감하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어느 정도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음식을 장기간 보관해서 싱싱하고 맛있게 먹으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건 인류의 역사적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냉장고는 그 과제를 상당부분 해소해주기도 했고요. 그러니 냉장고에 쌓여있는 음식을 보며 자신을 탓하기보단 허기졌을 때 충동구매했다가 유통기한을 넘겨 버리는 일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쪽이 훨씬 더 건설적이겠죠.


저는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것처럼 초기의 냉장고, 그러니까 냉각시설은 증기기관을 이용했습니다. 증기로 열을 식힌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냉장고는 이 증기기관을 전기모터로 바꾼 물건이고, 전기모터로 바뀐 덕분에 우리집 부엌에 들어올 만큼 크기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기와 열과 운동이 서로 다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이 서로 다르게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하는 열역학 분야의 패러다임 변화가 18세기를 전후해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밥솥도 전기로 돌리고 냉장고도 전기로 돌리고 심지어 자동차도 전기로 돌리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전기 사용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하지만 전기도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물을 댐에 가뒀다가 흘려보내는 건 얌전한 축에 속합니다. 석탄, 석유, 가스를 태우고 원자를 쪼갭니다.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원자를 쪼개면 방사능이 발생해 언제 잠잠해질지 알 길이 없는 부산물이 만들어집니다. 신재생 에너지가 대안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태양열을 이용해서 최신 원전 한 기만큼의 전기를 만들려면, 집광판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나무를 베어버려야 할 지도 모릅니다. 발전효율이 무척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친환경인가요? 냉장고가 환경오염의 주범이 맞다면, 그건 음식 때문이 아니라 전기 때문일 겁니다.


정리하면, 지금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반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전기 사용량은 줄어들기는커녕 폭증할 게 뻔하고, 편의성 때문에 앞으로도 점점 많은 제품이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이른바 "언택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향은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린 어떡해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우리가 어떤 길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그 역사에서 지혜를 구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선정한 건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입니다. 제가 예전에 이 분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두번째로 추천드리네요.


<냉장고의 탄생> 중반부가 조금 어려운데, 열역학과 온도 개념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아주 짤막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책에서 한 7~80페이지로 다루는 부분을 500페이지로 확장하면 <온도계의 철학>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마치 "착하다"나 "나쁘다"처럼 질적 특성으로 간주되던 "뜨겁다" "차갑다"가 양적 특성으로 바뀌어 측정되고 지금 우리가 거의 매일 하는 "정상체온 섭씨 36.5도"라고 표시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연구한 책입니다. 두께도 있고 상세한 내용이라 중학생인 친구들에겐 다소 어려울 것 같고, 과학에 관심이 있는 중3이나 이과 계열로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읽으면 아주 많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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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
은동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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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레터
김경덕.주현철 지음, 곽수진 그림 / 소원나무 / 2017년 4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41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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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몽골초원을 달리는 아이들
박경희 지음, 김세진 그림 / 키다리 / 2018년 1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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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아이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이야기
앙헬 부르가스 지음, 이그나시 블란치 그림, 배상희 옮김 / 담푸스 / 2012년 11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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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가는 길 쏜살 문고
강신재 지음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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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해방촌 가는 길> 시작합니다.


짧고 흥미진진하다는 점에서 소설로서의 미덕을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욕은 할 수 없고, 상상해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데 샤방샤방한 느낌을 주는, 어딘가 아주 묘한 작품들이 모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단편인 <황량한 날의 동화>가 여러모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욕망’입니다. <해방촌 가는 길>을 비롯해서 이 책에 실린 네 권의 단편은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 시기를 표현할 가장 적당한 말을 찾다보니 처음엔 “폐허”라는 단어에 이르렀는데요. 이런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측면 중에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무엇에 주목했는가 생각해보니 “욕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1950년대 한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내부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한국전쟁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게 사라져 버렸고, 그만큼 사람들의 신념체계 또한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도 믿을 것도 하나 없는데, 몸은 살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지탱해야 했던 때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존 자체가 사람들에게 절대적 명령으로 간주되던 정신적 상황이 2020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든 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신념이 없으니 생존에 필요한 것은 욕망 뿐인 듯 합니다. 누군가는 이전 시대엔 결코 용납되지 않을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고, 그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동력이 그 잘못된 방법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욕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 누군가는 더욱 대담하게 원하는 것을 갈망하고 요구하는데, 그게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쪽도 “진짜로” 원하는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최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세계는 사라졌다는 걸 모르진 않는 공통감각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이전에는 억압과 은폐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행동과 욕망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자신을 주장할 정당한 ‘몫’이 생긴 것이니까요. 물론 이 시대 전에 여성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을 정당하게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의 압력이 훨씬 더 셌던 것이죠.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고요. 어쨌든 사람들에겐 과거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그에 비춰봤을 때 이전엔 용인받지 못하던 행동을 더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하기 때문에 눈에 더 띄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기에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 노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방촌 가는 길>의 기애나,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소원을 지닌 <황량한 날의 동화>의 명순 같은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부유층의 이복 남매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젊은 느티나무>의 설정 또한 이런 이른바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꼽은 콘텐츠는 손창섭의 단편 <비 오는 날>입니다. 우리가 읽은 강신재의 단편이 1950년대 여성의 욕망을 보여준다면, 손창섭의 단편은 1950년대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 오는 날>이나 <잉여인간>이 대표작일텐데, 강신재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 이를테면 고백했는데 까였다고 자살하는 <해방촌 가는 길>의 남성이나 아편 중독으로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량한 날의 동화>의 남성 같은 이들의 자기고백이라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던 제도와 사회적 권력은 사라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다쳐서 돌아왔으니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모두 무너져내려 “위기”에 봉착한 남자의 모습을 굉장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정말 처절하게 찌질하고 비참하고 굴욕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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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족제비와 말을 알아듣는 로봇 - 튜링 테스트, 인공 신경망에서 논리 학습까지 - 대화형 AI 만들기
카와조에 아이 지음, 하나마츠 아유미 그림, 윤재 옮김, 차익종 감수 / 니케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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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게으른 족제비와 말을 알아듣는 로봇> 시작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죠? 여러 기능을 각각 담당하는 여러 로봇이 있는 것도 좋지만, 내 생각을 말로 전달하면 척척 알아듣고 단박에 해결해주는 한 대의 로봇이 있다면 더욱 편하겠죠? 이 책에 등장하는 게으른 족제비들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게으른 족제비는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로봇을 직접 연구해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동물 마을에서 개발해놓은 기술을 베껴서 이리저리 붙이면 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었죠. 족제비들은 그렇게 “언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인간이 말을 이해하고 사용한다는 것조차 어떤 현상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로봇이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사용하게끔 만들 수 있을까요? 답은 “진짜 이해하는 로봇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로봇을 만들면 된다”입니다. 물고기들, 개미들, 올빼미들, 두더지들, 카멜레온들, 담비들은 언어 사용의 핵심이라고 꼽을 수 있을만한 것들, 즉 언어로 된 자료 축적, 단어와 외부 세계 짝짓기, 구문 분석, 논리적 추론 같은 기능을 구현한 각각의 기계를 만들어서 이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족제비들에겐 이 모든 기능을 하나로 합쳐놓아 진짜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를 만드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게으른 족제비들은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카와조에 아이의 <게으른 족제비와 말을 알아듣는 로봇>에서 그 결말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자연언어와 인공언어’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게 만드는 작업은 일종의 번역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아주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체계가,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0 아니면 전기가 통하는 1이라는 아주 분명한 상태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연언어란 특정한 공동체가 오랜 시간 동안 특정한 지역에서 살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만들어낸,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언어를 뜻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전달하고 특정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발명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필요한 만큼의 정밀성만 갖고 있는 게 자연언어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언어의 “용도”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언어의 불투명성은 곳곳에서 드러나죠. 한 가지 단어가 서로 다른 수많은 뜻을 지닌다거나, 완전히 반대로 서로 다른 수많은 표현이 실제로는 거의 같은 뜻을 지니는 경우도 숱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맥락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같은 기호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아주 다릅니다. “잘한다”와 “잘~한다”의 의미 차이,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불명확함은 인간의 언어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불명확한 의사소통의 구조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철학자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특정 단어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사람들이 답변하기를 요구함으로써, 이를 이어받은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을 만들어 의미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와 떨어뜨려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특정한 유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간의 언어를 “형식화”, “기호화”해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철학자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의사소통을 위한 의미의 정확한 표현을 언어의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나아가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기호 자체를 거부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사회계약론 정치철학으로 잘 알려진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든 정치적 논쟁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공통의 기호를 사용하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라이프니츠는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호를 만들면 모든 철학적 문제는 기호의 계산에 의해 그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진법이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언어체계를 고안해냅니다. 20세기 초 철학자 프레게는 <개념표기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모든 자연언어의 구조를 표현할 수 있는 표기법을 개발했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자연언어의 애매성에 대항하는 철학자들의 노력은 “인공언어”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멀게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할아버지들쯤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학문적 여정은, 마치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언어에 관한 철학의 역사 전체를 압축해놓은 것같아 보입니다. 프레게의 영향을 받아서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는 언어의 애매함을 갖고 치는 장난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던 젊은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은, 나이가 들어서는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철학적 통찰을 반영해 “애매함 그 자체가 언어의 핵심이며, 어떻게 활용하는지 확인하는 것 이외에 의미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전환합니다. 그 어느 쪽이 됐든 언어에 관해선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언어를 인공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뤄졌습니다. 수집 가능한 자료와 정보처리 속도의 폭발적인 증가, 처리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인간과 “꽤”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는 기계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죠. 이런 기술의 발달은, 이제 우리의 고민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인공 언어의” 여러 방향과 기술이 바로 인간의 언어 이해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그다지 신기한 현상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혹은, 어쩌면 애매한 언어를 통해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 때문에, 언어를 이해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영향평가원(KISTEP)의 보고서 <소셜 로봇의 미래>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선 매년 ‘기술영향평가’를 시행합니다.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선보이는 여러 연구의 원리와 응용방식을 알아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는 것인데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참여해서 매년 보고서를 냅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제도로서, 지금까지 평가의 대상이 된 기술은 ‘뇌-기계 상호작용’, ‘빅데이터’, ‘3D 프린팅’, ‘무인이동체(자율주행차)’, ‘유전자가위’, ‘가상현실, 증강현실’, ‘생물학적 인공장기’, ‘블록체인’ 등입니다.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로봇, ‘소셜로봇’은 2019년 과제였습니다. 소셜로봇의 핵심기술 중 하나가 바로 ‘언어 사용’일텐데요, 우리가 읽은 책을 통해 그 원리를 알아보았으니까, <소셜 로봇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서는 이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면 아주 훌륭한 컬래버레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인터넷 서점과 기술영향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PDF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 올해 기술영향평가 주제는 ‘맞춤형 헬스케어’인데, 청취자 여러분도 온라인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각종 검색엔진에서 기술영향평가 검색하시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실 수 있고요. 실제로 이 보고서가 정부 역점사업 등을 선정하고 기술을 검토, 평가하는 데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하니, 시민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 의견을 보태는 일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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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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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케어> 시작합니다.


우선 최선생님의 책 선정이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쟁자, 의사들이 하는 팟캐스트 중에 가장 오래된 팟캐스트인 <나는 의사다>에서도 저번주에 이 책을 선정해서 2주에 걸쳐서 다루더라고요. 치매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을 모셔놓고 말이죠. 우리가 살짝 전문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의 안목이 의사 선생님들 정도는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책 전반부와 후반부가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전반부는 간병기를 실은 생활 에세이라면 후반부는 저자 아서 클라인먼의 ‘학술적’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전반부는 나이대에 관계없이,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이 함께 생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이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반부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돌봄의 윤리’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의학사회학, 의료인류학의 관점에서 돌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철학 특히 윤리학의 관점에서 ‘돌봄’ 개념에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의 윤리’는 아마 수능에서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윤리를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현대윤리사상 파트에서 접하게 되는 단어일 것입니다. ‘배려윤리’라고 부르던가요? 넬 나딩스나 <다른 목소리로>의 캐롤 길리건 같은 이름과 함께 배우실 겁니다.


돌봄의 윤리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의 행동에 접근합니다. 첫째, 이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형이상학적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필요한 것을 완전히 다 갖춘 사람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명민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삶에서 언제나 행운만이 가득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근본적 조건입니다. 이 불완전함들이 우리의 삶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면에서 부족한 게 아니라 모두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기에 서로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며 협력을 통해 모두의 삶을 모두와 함께 지지해 나갑니다. 이런 관계망이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돌봄’의 철학적 의미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내가 잘 그린 그림과 네가 잘 만든 음식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행복을 지지하는 관계망의 핵심인 것이죠.


이것은 이른바 ‘데카르트적’이라고 불리는, 자기완결적인 또는 내적으로 완전한 주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반대입니다. <성찰>이나 <방법서설>을 통해서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개인은 기본적으로 외부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내면에 드러나는 것은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모두 참입니다. 내가 외부세계에 관심을 쏟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존재하기 위해 그 어떤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그러니 나도 남을 또는 남도 나를 돌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지닌 함축입니다. 돌봄 윤리가 가정하는 불완전성의 형이상학은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내면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삶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접근방법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은 없다는 윤리학적 신념입니다. 각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항상 다르고,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지워지는 의무 또한 그 필요에 따라 달라집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에 대해 상대적이라고나 할까요. 또 그렇기 때문에 돌보는 사람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헤아리는 능력이 윤리적 능력에 대한 평가의 중심에 들어섭니다. 이는 도덕적 행위에 관해서 예외없는 보편적 규칙을 찾으려고 했던 시도와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윤리학적 입장, 특히 칸트주의 의무론과 공리주의에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입니다.


돌봄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과 의무가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제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성의 실천’, 또는 ‘여성적 실천’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 칸트주의 의무론, 공리주의와 같은 ‘남성적 실천’을 정당화하는 윤리학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돌봄의 윤리는 페미니즘 정치이론/정치운동과 접점을 이루게 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을 읽고, <케어>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아이리스>라는 영국 영화입니다. 리처드 이어 감독, 주디 덴치 주연의 2001년 영화입니다. 영문학자이자 비평가인 존 베일리라는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삼는 영화고, 이 에세이도 번역돼있습니다.


<아이리스>는 <케어>처럼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아내를 남편이 돌보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와 에세이 제목인 아이리스는 베일리의 아내의 이름인 ‘아이리스 머독’에서 따온 것입니다. 1919년에 태어난 머독은 20세기 후반 영어권을 대표하는 철학자이고 특히 앞에서 말씀드린 ‘돌봄의 윤리’를 비롯한 윤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저술을 여럿 썼으며, 1978년 ‘바다여 바다여’로 맨부커상을 받고,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1994년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1999년에 사망합니다. 지적 매력에 빠져 서로를 사랑하던 부부인데, 그중 한 사람이 더 이상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의 상황과 심정을 사랑에 한창 빠져있던 젊은 시절과 계속 교차해 담담히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윈슬렛이 젊은 아이리스를, 주디 덴치가 노년의 아이리스를 맡아 열연했고요. 200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후보작, 남우조연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경로가 없다는 점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존 베일리의 에세이 또한 너무 오래 전에 번역돼 절판 상태이고, 근처 도서관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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