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들의 과학 - 물질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여행
마크 미오도닉 지음, 변정현 옮김 / Mid(엠아이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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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 큰 비행기를 들어올리며 폭발하는 기름을 걱정하고 기내 서비스로 준비된 와인을 잔에 넣고 흔들어 걸쭉한 정도를 살피며 표면장력을 가늠합니다. 창밖 저 아래 보이는 바다를 보며 수영할 때 체험한 부력을 기억해내고 모니터를 보며 액정이 색을 내는 원리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연결지어봅니다. 옆자리 승객에게 머리를 기댔다가 침을 흘리곤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리 몸을 돌아다니는 온갖 체액의 종류를 세 보고, 비행기에선 커피와 차 중 무엇을 마시는 게 더 좋을지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비누가 어떻게 내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지 설명합니다. 입국절차를 밟기 위해 글씨를 쓰며 잉크로 글씨를 쓸 수 있는 원리를 이야기하고, 비행기가 머무르는 수천 미터 상공에서도 적당히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에어컨도 액체가 상태 변화를 겪으며 만드는 열에너지의 흡수와 방출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비행기에서 마주한 온갖 액체에 관해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이 액체는 모두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작 우리가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원리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굳이 알아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가끔은 궁금한 액체에 관한 정보들인 셈이죠. 그러면 우리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액체의 TMI’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마크 미오도닉의 ‘흐르는 것들의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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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당연히 ‘액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액체를 글쓴이의 눈길에 닿는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약간 주절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인데요. 하지만 내용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분자가 모여있는 형태로서 액체의 정의에서 시작하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액체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분자식과 구조를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계면활성제인 비누 분자는 한쪽은 물 분자의 모습에 가깝고 한쪽은 기름 분자와 친해서, 이 둘을 모두 끌어당기 때문에 세제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물은 지구상의 다른 물질에 비해서 온도를 올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찻잎을 조금이라도 오래 담그고 있으면 그 에너지 때문에 쓴 맛이 금방 올라오지만 동시에 바다 때문에 지구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걸쭉한 물감을 여러번 덧대 발라 오묘한 색감을 내는 유화의 채색방식은 전기를 흘려 특정한 빛을 통과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액정을 여러겹으로 쌓아올린 모니터와 그 원리가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액체에 대한 설명이 전부 이런 식입니다. 이런 발견이 이뤄진 간략한 역사는 덤으로 딸려오는 정보이기도 합니다.

액체에 관한 이런 TMI가 의미 있으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될 것입니다. 만약 액체가 없다면,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기체거나 고체 상태라면 어떨까요? 일단 물을 못 마시고 수영도 못 하고 씻기 위해선 때밀이 타올로 피부를 벅벅 긁어야해서 매우 아플 것 같네요. 고체연료를 태워야하니 자동차의 효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이고, 음 어쩌면 자동차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쇳덩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려면 일단 녹여야 하니까요. 모든 건물은 돌을 깎아서 만들어야 할 테고. 그만하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액체 없는 세계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어떤 액체가 됐든 그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한 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2제 아이랑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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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같은 저자의 사소한 것들의 과학입니다. 표지도 이 책과 거의 똑같고, 오늘 이 책이 TMI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들의 과학 또한 우리 주변의 여러 물건에 관한 TMI입니다. 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플라스틱, 유리, 흑연, 도자기 등이 목차에서 보이네요. 이렇게 놓고 보니 이 친구들은 대체로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있는 물건이니, 두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내 손에 짚히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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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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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로 사는 삶에 지쳐 도시로 이사간 할아버지 푸거는 농사 대신 옷감을 만들어 팔아 성공을 거둡니다. 아버지 푸거는 이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옷감 장사로 확보한 돈을 바탕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기로 합니다. 푸거 가문 사업의 금융 부문을 도맡게 된 사람은 아버지 푸거의 7형제 중 막내아들인 야코프 푸거입니다. 처음엔 가문의 여러 사업 중 가장 작고 하찮은 부문이어서 막내아들에게 그 몫이 돌아갔지만, 야코프 푸거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순식간에 유럽 최고의 금융인으로 거듭납니다.

왕들의 토지와 현물자산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해주며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회계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사업투명성을 확보했으며, 유럽 전체에 걸쳐 정보망을 구축해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자금을 투자하거나 회수해 재산을 불려나갔으며, 무엇보다도 종교와 구시대적 윤리에 얽매여 금지돼있던 이자라는 영역을 합법화해 현대적 의미의 금융을 만들어낸 사람. 반면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경유착, 독점, 카르텔 형성, 분식회계 등 온갖 비리와 부정과 꼼수를 동원해 오로지 돈 버는 것 자체만을 추구했던 사람. 일종의 유럽판 허생전이라고 할 만할, 격동의 시대를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으로 뚫고 나가고자 했던,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흡사한 근대적인 또는 현대적인 인간의 탄생과 생애를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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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경제사’입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들으시는 학부모 청취자분들께는 역사라는 단어의 의미는 거의 정치사와 일치할 것입니다. 고려니 조선이니 왕조 이름이나 왕 이름을 달달 외우고 집권세력의 교체와 관련된 사건을 시험에 나오는 중요한 사건으로 배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그 차원을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진행된 역사라는 개념에 대한 학계의 관점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 경제, 문화, 일상, 소수자 등 아주 다양한 영역이 역사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학생 청취자분들께는 공부할 거리가 늘어나서 조금 안타까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폭넓은 역사의 영역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중요한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경제사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와 생산 및 거래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것만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꿰뚫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특히 경제사 연구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국내총생산이나 통화유통량 같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지표로 과거를 재해석해내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기록을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당시 경제상황을 재구성하고, 짧게는 200년에서 길게는 500년에 이르는 경제지표 장기통계를 작성합니다. 몇 년 전 화제를 일으켰던 경제학 책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런 장기통계를 분석한 결과물이었죠. 경제사 연구는 지금까지 역사 과목에서 소홀했거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유용한 교훈을 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대학에서 깊게 공부해 볼 만한 분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푸거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는 이러한 현대적 의미의 경제체제가 잡히는 시기, 다시 말하면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사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법적으로 이자가 허용되며 금융업이 시작되고, 이익 자체가 최고의 목적이 되는 행위 양식 즉 투자라는 행위와 그 주체인 기업-기업가가 탄생하고, 종교에서 비롯된 도덕적 독단을 벗어난 세속적 인간이 등장하면서 경제적 행위가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는 순간이죠.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는 이 순간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렇게 ‘경제사’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여담을 하나 해보자면, 이런 ‘경제사의 시작’의 정점인 세계적인 무역 네트워크의 형성 즉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유럽인의 동아시아 진출이 아이러니하게도 야코프 사후 푸거 가문의 몰락을 재촉합니다. 푸거 가문의 부는 유럽 내에서 은 광산을 모두 독점한 데서 나왔는데, 남아메리카와 일본에서 은이 쏟아져 들어와 은값이 폭락했기 때문이죠. 당시 전세계의 은 생산량 가운데 2/3는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에서, 1/3은 일본에서 나왔다고 하죠. 이렇게 일본의 은 생산이 폭증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조선에서 대접받지 못한 제련업자들이 일본에 기술을 수출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조선의 기술이 유럽 최고 부자의 몰락의 원인이라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경제가 시작됐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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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제리 브로턴의 <르네상스>입니다. 푸거가 살았던 시기를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유럽 몇몇 지역의 미술사나 사상사쪽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는 다들 아시잖아요? 그러나 이 격변의 시기를 살펴보기 위해선 더 넓은 맥락과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두꺼운 벽돌같은 책이 부담스럽다면, 이 <르네상스>라는 책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내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는 우리 수요독서의 전 시즌에서도 두어 권 다룬 적이 있는데, 이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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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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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챙겨보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온통 뭐가 뭔지 모를 말로 가득해서 실제로는 알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알 수 있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거의 모든 중요한 기사엔 빠짐없이 숫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사회 섹션을 보면 노인인구가 몇 명이라 국민연금이 위험하다고 하고, 경제 섹션을 보면 올해 GDP는 얼마에 코스피가 얼마를 찍었으니 주식투자를 하라고 하고, 산업 섹션에서는 올해 현대기아차가 자동차를 몇 조 어치를 팔아 코로나 속에서도 성장했다고 칭찬하고, 심지어 문화 섹션에서도 BTS의 효과가 돈으로 따지면 몇 조에 이르러서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혹시 제가 말씀드린 사례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이런 뉴스의 공통점은 숫자를 제시한 뒤에 그걸 해석하고 평가하며 특정한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고급 한국어 사용자이면서 독자인 우리들은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이 숫자가 믿을 만한지, 그 숫자에 대한 뉴스의 해석과 평가는 합리적인지 따져봐야겠습니다. 추정치 도출에서 시작해 단위 보정하기, 큰 숫자는 10의 제곱으로 처리해 약분하기, 매번 같은 양의 사건이 발생한다고 임의로 가정하는 리틀의 법칙 이용하기,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 구별해내기, 통계에서 편향 찾아내기, 그래프 가로세로 꼼꼼히 보기 등 우리에겐 이미 합리적 사고의 도구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도구를 사용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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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숫자감각’입니다.

앞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이 책은 숫자와 관련해 여러 생각의 도구를 제공합니다. 특히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숫자들은 대부분 통계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 도구들은 통계를 제대로 해석하는 기초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특히 이 책이 집중하는 부분은, 터무니없는 숫자를 제시한 뒤 그 숫자를 잘못 해석하고 평가하는 경우 또는 뉴스에서 제시한 해석이나 평가를 뒷받침하기에 그 숫자가 적절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판별해내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적 검토를 위해서 흔히 정확한 정보, 요즘 말로는 팩트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첫장부터 이런 생각을 뒤집고 일단 상식적 수준의 어림짐작부터 시작해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짐작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지만, 건전한 생활인의 상식에 기반한 계산이라면 실제 수치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는 게 이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생각입니다. 진짜 팩트인 숫자가 필요할 때에는 그에 알맞은 자료를 찾아 필요한 만큼 정밀성을 높여가면 될 뿐, 모든 비판적 독해에 팩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이 강조하듯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숫자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숫자를 다루는 감각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어떤 분야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강도의 훈련이 동반돼야 합니다. 그 방식으로 많이 보거나, 많이 읽거나,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죠. 우리들 중 상당수가 숫자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른 감각에 비해서 숫자에 대한 감각은 이 훈련의 강도가 높다고 지레 겁부터 먹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갖추고 있는 인간인 한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이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그런 생각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삿거리는 포털사이트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니, 일단 소재는 널려있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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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해드리는 콘텐츠는 고의관의 <작은 수학자의 생각 실험> 시리즈입니다. 숫자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면 그 다음 단계는 수학 자체로 깊게 들어가는 것일텐데요. 그러다보면 대량의 기호가 들어가는, 약간은 어려운 책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리즈도 그런 다소 어려운 책 중 하나입니다. 총 세 권이고, 각각 물리법칙과 확률과 암호라는 분야에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딱딱한 단어로 분야를 이야기하면 실생활과 떨어져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리법칙을 모르면 자동차 계기판을 만들고 해석할 수 없고, 확률을 모르면 로또와 연금복권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고, 암호를 모르면 여러분의 개인정보는 휴지조각이 돼 인터넷에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숫자에 대한 감각을 얻는 것도 연습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수학에 익숙해지는 것도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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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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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우리 생활과 얼마만큼 연관이 있을까요? 가끔 내가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법대로 해 법대로!’라고 외치곤 합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양쪽에서 모두 그렇게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어요. 모두 법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결정적일 때 법에 기대고자 합니다. 하지만 법에서 쓰는 단어 문장 논리는 한글로 써있으면서도 한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죠.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의 생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법에 정통한 전문가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생활에 관심이 없으면 허황된 개념만 늘어놓기 쉽고 법을 잘 모르면 우리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테니까요. ‘김영란법’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이라면 어떨까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부분까지 관심을 두었으면서 동시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내며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겠죠? 단, 너무 전문적이면 버거울 테니 우리 주변 시사 이슈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김영란의 ‘판결과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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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해석’입니다.


법은 기본적으로는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 단어로 우리 생활 속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규정함으로써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러하니 이렇고 저런 것이 법에 요롷고 조롷게 쓰여 있으니까 이것과 저것은 요롷고 조롷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이런 식이죠. 이렇게 판단할 때 크게 두 가지 해석 과정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어떤 사건이 어떤 법이 규정한 것에 부합하는 사건인지, 즉 법적으로 다룰 만한 사건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점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법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건의 유형도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이전에 법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회현상도 법이 개입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점이 변해가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이런 걸 있어보이는 용어로 ‘인정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엔 가부장적 차별의 시정과 성인지적 감수성의 등장,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정리 같은 것들이 아마 이 해석의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사건일 것입니다.


둘째는 법 체계 안에서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법 또한 다양한 가치를 옹호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들은 서로 빈번하게 충돌하기에 무엇이 먼저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법이 이 우선 순위를 명시적으로 적어놓았다면 법관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추상적으로 우선 고려되는 가치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법관에게는 사회 변화나 법관의 양심을 고려해 판결할 의무과 권한이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 즉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부분에서 가치의 우선 순위를 강화하거나 때로는 뒤집기도 하는 해석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이런 해석과 관련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은, 안타깝게도 자기결정, 사적 지배, 계약 우선의 원칙 같은 것을 맥락을 배제한 채 우선시해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거쳐서 이 사회를 관장하는 규칙인 법은 진보하고, 같은 법을 놓고도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이 사회의 더 많은 영역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한 문제와 역사가 무엇인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판결과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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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권해드리는 책은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인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입니다. 이 책도 ‘판결과 정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여러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하는 내용인데요. ‘판결과 정의’가 시사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법적 논리 자체를 분석하는 쪽에 무게가 더 많이 실려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판결에 참여했던 사건을 실었다는 점에서 좀 더 자세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문서를 다루는지 경험하고 싶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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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 그림과 원리로 읽는 건축학 수업
로마 아그라왈 지음, 윤신영 외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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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하루를 한 번 생각해볼까요? 방이든 숙소든 우리는 집 안에서 아침을 시작합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리로 내려와 보도블럭과 아스팔트로 된 도로를 밟으며 등교하거나 출근을 하고요.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어진 건물로 들어가 공부하거나 일을 하죠. 점심을 먹고 잠깐 산책을 하러 주변 공원에 가면 작은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가 보입니다. 한 번 건너보기로 하죠. 음식물로 텁텁해진 입안을 깨끗하게 할 겸 양치하러 화장실에 가면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틀면 언제든 깨끗한 물이 나오고, 나를 씻겨준 물은 하수구로 흘러갑니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와 약속을 잡고 근처 쇼핑몰의 지하 아케이드 상가에 있는 맛집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꽤 오래돼 보이던 건물 주변에 펜스가 둘러져 있고 ‘철거 예정’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네요.

이처럼 잘 둘러보면 우리의 삶은 건축의 결과물과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지은 곳에서 활동하고 쉬면서 무언가 지어지거나 무너지는 장면을 항상 목격하죠.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역사적 경험와 함께 만들어진 첨단과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요?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주변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 로마 아그라왈의 ‘빌트 -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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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인공물’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건축물이라는 대상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지루한 파트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건축이라는 기술 자체를 결정짓는 요소인 힘 즉 역학에서 시작해서 콘크리트와 철강 등 소재의 역사,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인 상하수도와 엘리베이터의 원리, 건축물에서 발생한 여러 사고로부터 얻은 교훈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에 반영된 방식 등 그야말로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건축물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의 변화와 발달은 자연과의 투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건축에서 자연은 일종의 대전제인 셈인데요. 건축물의 기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떻게 중력을 이겨내고 높이 솟는 건물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겠죠. 또한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지름 1mm 철근이 3톤을 견디게 만들 수는 없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콘크리트나 벽돌을 만들 수도 없고, 더러운 물을 사용하고도 배탈이나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이런 게 가능하다면, 우리가 굳이 건물을 지어서 그 안에 들어가 살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래서 인류는 고민합니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만들려면 어떤 소재를 써야 할지, 자원을 조금이라도 덜 들이고 똑같은 기능을 하게 만들수는 없을지,  같은 돈을 써서 조금 더 많은 기능을 갖게 할 수는 없을지, 예전에 쓰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면 더 나은 결과가 있지는 않을지, 게다가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예쁘기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바로 이런 모든 역사적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 ‘인공물’ 그러니까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인공물도 함부로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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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와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빌트보다는 조금 더 무겁지만 역시나 충분히 좋을 책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입니다.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건축 기술이 한데 모인 아주 복잡한 구조물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과학/공학적 의미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인문학적 의미까지 지니는데요. 도시의 승리는 이렇게 넓은 범위에서 도시를 조망합니다. 그리고 그가 내리는 결론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인간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왠지 도시는 인간성 말살과 환경파괴라는 단어와 더 친숙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니 굉장히 이상한 주장이죠? 그가 왜 이렇게 주장하는지,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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