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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오래 전 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 안에 감춰있는 다른 세계를 보는 그의 예리한 시각에 항상 공감하며 감탄을 해 왔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좋아해서 많이 읽어봤지만 그의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리포트와 오스트렐리아 여행기가 믹스된 하루키만의 감성을 잘 녹아져 있는 여행기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태엽갑는 새]에서 주인공 '오카다'는 아내가 사라진 이후부터 점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1Q84]의 '아오마메'는 막히는 고가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비상용 사다리로 내려오다가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1Q84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최근에 한국에서 발간된 [애프터다크]라는 소설에서는 '에리'는 텔레비젼 속 이상한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하루키에게 오스트렐리아와 시드니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이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시베리아 툰드라 풍경이라든가, 아바리바 사막 풍경에도 꽤 거칠고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주의 깊게 보다 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이곳은 이런 풍포여서 이렇게 됐구나' 하고.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풍경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기묘하다. 한눈에 봐도 기묘하다. 그런데도 기묘하다는 것의 개연성을 찾기가 힘들다.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내가 점점 다른(잘못된) 차원으로
이끌려가는 듯한 기묘하고 초라한 느낌이 든다. 팀 버튼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P38)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루키의 시각은 단순히 기묘한 호주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항상 거대하고 조직화된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조직화된 것이 점점 세계와 개인을 삼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시드니 올림픽을 보는 하루키의 시각도 마찬가지 이다.
그는 남들은 모두들 못봐서 안달인 10만엔 짜리 올림픽 개막식을 출판사의 후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지루한 것들은 꽤 많지만, 단언컨대 올림픽 개막식은 그 중 톱3에 들 것이다' 라는 것이 나의 명확한 견해다.
지루한 데다 무의미하다.(P95)"
그리고 10만엔이면 차라리 아이맥을 사겠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개막식 중간에 나와 버린다.
그가 이렇게 개막식을 싫어하는 것은 올림픽의 화려함과 상업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생각때문일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에 후원한 코카콜라는 올림픽 관람객들이 팹시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요청하는 헤프닝까지 벌인다.
하루키는 노트북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냐는 보안직원의 말에 '이건 페시야!'라고 대답하며 올림픽의 상업주의를 비웃는다.
그는 화려한 경기장이나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후원보다는 차라리 그가 항상 즐겨찾는 일본의 고시엔 야구장처럼 아테네에 모여 소박하게 경기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한다.
육상경기에서도 치열한 기록단축과 신식장비 보다는 소박하게 뛰면서 경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항상 잊혀진 예전 것을 그리워하는 하루키의 감성이 올림픽 관전에서 은연 중에 나타났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올림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키하면 떠오른 것이 야구, 맥주, 재즈, 그리고 달리기이다.
그의 [예스터데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도쿄 출신의 남자가 간사이의 한신타이거즈를 응원하기 위해 간사이 사투리를 치열하게 배우는 장면이 나올
정도이다.
하루키 역시 한신타이거즈의 펜이며, 일본 야구의 성지라는 고시엔 구장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의 달리기 사랑은 유별나서 전 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에는 꼭 조깅을 한다고 한다.
그런 그의 육상과 야구에 대한 사랑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시드니 올림픽의 육상경기, 특히 남녀 마라톤 경기에 관심이 많으며, 야구 경기를 꼭 찾아서 본다.
특히 마라톤 경기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이 책의 초반부터 아리모도 유코나 이노부시 다카유키에 대한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듯이 마라톤과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특별나다.
특히 그는 메달을 따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한다.
이노부시 선수의 경우 올림픽 메달 유망주로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지나친 부담감으로 인해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이 선수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지만 이 책에서 하루키는 따스한 시선으로 이노부시를 위로한다.
야구에 대한 감상은 더욱 흥미롭다.
특히 한국과의 두 번이나 대결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대성'선수도 언급하고 있다.
이 두 번 경기에서 일본은 모두 한국에게 패했고, 특히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너무 아쉽게 패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팀에 대한 조롱이나, 자신의 팀에 대한 비난이 없다.
그냥 야구팬으로서 야구를 즐길뿐이다.
그러 그의 여유롭고도 담담한 스포츠 사랑이 부럽다.
이 책에는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뿐만 아니라, 오스트렐리아의 문화나 환경, 동물들에 대한 묘사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하루키 나름대로 오스트렐리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한 부분을 할애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챕터 제목도 '정신병리학적으로 본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오스트렐리아 역사를 생각해 보고, 현재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게 해 주는 글이다.
하루키만의 시각과 감성으로 오스트렐리아를 여행하고, 시드니 올림픽을 다시 관전하고 싶다면 꼭 읽어 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