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
박태식 지음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내가 영화를 보는 스타일은 참 단순하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블록버스터 영화 위주로 본다. 그러다보니 정치나 인권, 복잡한 사상이나 미학 등이 담긴 영화는 잘 보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이런 영화편식으로 인해 좋은 영화들을 놓친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언급된다. 대부분 내가 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이 책은 27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한 챕터에 두편씩의 영화를 소개한다. 마치 토요일 오전에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에서 같은 주제의 영화 두 편을 연괂서 소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저자가 첫 번째로 소개하는 영화는 [한공주]와 [도희야]라는 영화이다. 두 편 모두 폭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약자들이다. 우리사회에는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오히려 죄인처럼 자신이 당한 피해를 숨겨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신상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오히려 그런 여성들이 세상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야 하는 상황들이 지금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여건이 변하면서 한공주 자신의 목소리도 슬금슬금 사리지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학교로 전학가야 했고, 후배 부탁으로 잠시 받아주기는 햇지만 재단의 눈치도 봐야 한다며서 공주를 학교에서 내보내는 교장의 입장까지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 심지어 '네가 꼬리를 쳐서 이런 일이 터진 게 아니냐'며 공주를 궁지로 모는 가해 남학생들의 부모와, 갈 곳 없이 도망치듯 거리로 내몰린 공주에게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경찰서장에 의해 공주의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P 21-2)
이 책의 제목은 [트래쉬]라는 영화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브라질의 쓰레기 마을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그 정치인의 부패를 덤는 청부업자가 나오고, 이에 대항하는 순수한 소년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정치인가 대항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수녕게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온갖 부패한 권력 가운데서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을 믿는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내가 본 영화들도 몇 편 소개하고 있다. 차이나타운, 국제시장, 변호인, 고지전이다. 저자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준다. 공감을 가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국제시장]이란 영화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이다. 원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싫어해서 이 영화를 끝내 보지않으려했다. 결국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펑평 운 영화이다. 그 뒤 이 영화가 기성세대에 대한 변명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펑펑 운 내 자신이 머쓱해지는 비평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이나 정치적 시각이 아닌 그냥 영화로 보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생 맏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햇던 무거운 짐을 가진 남자의 내면을 그냥 공감하면 안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한다.
"국제시장을 보면 눈물을 자아내는 요소가 한두 가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은 어떻게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동적인 장면을 곳곳에 배치하여 잠시도 눈물 샘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훌륭한 연출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시장이 불러 일으킨 효과가 단순히 '눈물 짜내기'에 그친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극구 부인하지만 세대간 분열을 부추기는 영화로 해석될 소지가 들어 있다.
기성세대는 국제시장을 보며 '요즘 젊은 것들은 돼먹지를 못했어!'라는 넋두리를 늘어놓을 법하다. 특히 덕수와 여자의 아들과 며느리들이 부모에게 하는 짓을 보면 분명해진다. 어떻게 부모를 저렇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들이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배금주의, 과도한 교육열, 집단 이기주의, 기성세대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 .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게 기성세대의 잘못이지 어디 젊은 세대의 잘못인가? 과거는 그렇게 우리를 즐겁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든다." (P 140)
영화는 단순히 흥미를 위한 오락 수단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화에 담긴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그 영화의 시선들을 예리하게 파해친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특히 저자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매우 담맥하면서도 진솔하다. 어려운 영화기법이나, 멋져 보이는 전문용어들을 쓰지 않는다. 간단한 영화 줄거리와 감상,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러기에 읽는 이가 쉽게 공감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접하지 못한 좋은 영화들을 알 수 되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씩은 꼭 보고 싶은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