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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온 책

 


  고흥을 떠나 인천으로 사흘 마실을 다니고는, 인천에서 다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 인천에서 사는 형한테서 쪽글 하나 온다. 동생이 형 집에 책을 놓고 갔다고. 응? 책을 놓고 왔나? 아, 그래, 형 집에서 똥을 누며 뒷간에서 읽던 책을 그만 뒷간에 그대로 놓고 왔네. 뒷간에서 몇 쪽이라도 읽으려고 손에 쥐었는데, 뒷간 들어갈 적에는 알뜰히 챙기다가, 뒷간에서 나올 적에는 깜빡 잊었구나. 언제쯤 그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책을 찾으려면 다시 인천으로 마실하러 갈 일이 있어야겠지.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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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와 고무신과 책

 


  아이들과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는 ‘자연·생태 그림책’을 바지런히 장만했습니다. 시골로 옮겨 한동안 지낼 적에도 ‘자연·생태 그림책’을 이럭저럭 장만했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여러 해 지내며 ‘자연·생태 그림책’을 거의 장만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늘 마주하는 숲과 들과 메와 바다를 바라볼 때만큼 가슴을 울렁울렁 뛰도록 북돋우는 ‘자연·생태 그림책’은 좀처럼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이나 땅속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돕는 몇 가지 그림책은 여러모로 볼 만하지만, 이 또한 아이들과 온몸으로 흙과 물을 부대끼면 훨씬 깊고 넓게 흙이랑 물을 느끼면서 알 수 있어요.


  내가 도시에서만 살아갔으면, ‘자연·생태 그림책’ 이야기를 줄기차게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에는 자연도 생태도 없으니까요. 도시에는 숲도 들도 메도 내도 바다도 없으니까요. 부산은 코앞에 바다가 있다지만, 막상 부산사람 스스로 바닷물을 ‘너른 목숨 살아가는 터’로 받아들인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바다가 코앞에 있을 뿐이에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바다 앞에 아파트 높이 세울 뿐이에요. 자연이 있어도 자연을 느끼지 못하고, 숲이 있어도 숲을 돌보지 못해요.


  풀 한 포기를 아낄 때에 숲을 아낍니다. 꽃 한 송이를 사랑할 때에 이웃을 사랑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보살필 때에 내 살붙이를 보살핍니다.


  비록 우리한테 땅뙈기 하나 아직 없지만, 대문을 열고 마실을 다니면, 온 마을 어디에나 논이고 밭입니다. 이웃논 이웃밭을 들여다보며 벼포기를 쓰다듬고 마늘잎을 어루만집니다. 들풀을 간질이고 들나무를 마주합니다. 벼포기 하나가 책이 되고, 들꽃 한 송이가 사전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가 도감이 되며, 구름 한 자락이 다큐멘터리가 됩니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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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지는 손

 


  아버지랑 어머니가 책을 만진다. 큰아이가 책을 만진다. 이제 작은아이도 책을 만진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책을 만지는 손길을 큰아이가 이어받고, 작은아이는 어버이랑 누나 손길을 물려받는다. 예쁘게 예쁘게 돌보면서 책을 만지면, 아이들은 예쁘게 예쁘게 쓰다듬는 손길을 물려받는다. 착하게 착하게 보듬으며 책을 만지면, 아이들은 착하게 착하게 보듬는 손길을 이어받는다.


  책을 만지는 손길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 집에서 어버이가 살아가는 매무새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배운다. 나중에 아이들이 머리통 굵어지며 스스로 제 책을 더 깊고 넓게 파고들려 할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책읽기를 익힐 수 있겠지. 그러나, 어릴 적부터 곁에서 지켜보고 바라본 모습이 하나하나 손과 머리와 눈과 마음에 아로새겨지기 마련이다.


  어버이가 흙을 만지던 손길이 아이들이 흙을 만지는 손길로 이어진다. 어버이가 하늘을 껴안고 바람을 마시던 품이 아이들이 하늘과 바람을 품에 안는 매무새로 이어진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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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고르기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을 고르는 일은 즐거우면서 고단합니다. 온누리 아름다이 밝히는 그림책을 어버이로서 마주하는 일이란 몹시 즐겁습니다. 나는 어버이 자리에 있지 않던 예전부터 그림책이 참 좋다고 느꼈어요.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이 그림책이라기보다, 누구한테나 아름다운 삶을 일깨우는 어여쁜 책이 그림책이라고 느껴요. 그런데, 어여쁜 그림책이라 하지만, 섣불리 빚은 그림책을 만나야 하면 고단합니다.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여러모로 아귀가 안 맞는다든지 어설프다든지 ‘삶을 제대로 안 살피거나 안 겪은 채’ 겉으로 그리는 그림책은 달갑지 않아요. 참말, 그림 솜씨나 재주가 뛰어나도록 그려야 하는 그림책은 아니에요. 알맞고 바른 그림결을 건사하면서 홀가분하고 따사롭게 그릴 수 있는 그림책이면 돼요. 대학교나 나라밖에서 ‘그림(일러스트)’을 배운 이들이 그림책을 곧잘 그리는데, 이를테면 ‘사람몸 비율(인체 비율)’이 어긋난다든지, 여느 삶자락을 잘못 옮긴다든지, 사진으로 찍어서 그리느라 막상 어느 모습을 어떻게 살릴 때에 빛나는가 하는 대목을 놓친다든지, 자꾸자꾸 아쉽다고 느껴요. 한겨레 옛삶을 되살리려 애쓰는 그림책을 볼 때면 이런저런 대목이 눈에 걸립니다. 척 보아도 사진자료 많이 들추며 그린 그림이로구나 싶은 그림책이 많아요. 이럴 때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차라리 사진으로 찍어 사진책으로 보여줄 때가 낫겠다’ 싶어요. 그림책을 그리는 까닭은 따로 있거든요. 사진처럼 그리거나 사진만 보고 그린다면 그림책이 아니에요. 이런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기록자료를 그림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왜 아이들한테 사진책 보여주기를 꺼릴까요. 그림으로 그려야 더 낱낱이 또렷이 보여줄 수 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 사진보다 한결 낫지 않아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우리 어른들 마음과 넋과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져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따사로운 사랑과 꿈과 믿음을 실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책 하나로 태어나 아이들한테 선물로 건넬 수 있어요. 어떤 지식이나 정보나 자료나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이지 말아요. 무엇보다, 그림책 그리는 그림쟁이 스스로 ‘살지 않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그리기를 빌어요. 도시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시골 나무집이나 흙집’ 이야기를 그릴 적에는 그림에 나오는 모습이 번드레레하거나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숨결 깃드는 집’다운 모습이 샘솟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야지요. 스스로 살아가지 않고 ‘전통을 살려서 아이들한테 가르치자’는 뜻이 되어서는 그림책이 그림책답지 않아요. ‘학습교재’나 ‘학습도구’가 되고 말아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누구나 즐거이 누리는 이야기책이에요. 그림책을 ‘학습 보조 교재·도구’로 여기지 않기를 빌어요. 그림책을 사랑 어린 이야기책이며 꿈 담은 이야기꽃으로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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