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눈물

 


  좋아하는 책 하나 읽고 좋아하는 느낌글 하나 적바림하면서 살짝 눈물 핑 돕니다. 이 느낌글 읽는 사람들도 내 좋은 이야기 살며시 깃들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 한 방울. 느낌글 쓰면서 눈물 두 방울. 느낌글 내 글방에 띄우면서 눈물 세 방울.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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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언제부터 900원? (교보문고 중고장터)

 


  참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라보고 움직인다. 돈을 바라본대서 잘못이 아니요, 돈을 바라보기에 나쁘지 않다. 다만, 돈만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을 안 바라본다거나, 돈바라기에 바빠 사랑바라기하고 등돌릴 때에는 하나도 안 반갑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아름다운헌책방’을 만든다 할 적에 안 반가웠고, 영풍문고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같은 데에서 ‘중고책방·중고장터·중고샵’이라는 이름으로 헌책 장사를 할 적에 안 반가웠다. 왜냐하면, 아름다운재단도 큰 인터넷책방(이랑 매장책방 모두)도 돈을 바라보면서 ‘헌책방 작은 일꾼 삶자리’를 파먹으려고 했으니까.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 헌책방에서 값싸게 사서 읽는 여느 책 한 권 값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바뀌었다. 이즈음 적잖은 책손이 500원 오르는 헌책 값을 참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1990년대 한복판을 지나며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1500원 즈음 했고,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000원 즈음 했다. 2000년대 한복판을 지날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500원 즈음 했고, 201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3000원 즈음 했다. 이제 2010년대 한복판에 가까운 요즈음 여느 헌책 한 권 값은 3500원 즈음이다. 곧 4000원 즈음 하리라.


  헌책방에서 다루는 헌책이라서 ‘터무니없이 쌀’ 수 없다. 책을 사들이는 값, 가게를 꾸리는 값, 책방을 지키는 일꾼 품삯, 책시렁에 쌓인 채 자리를 잡아먹는 값, 오래도록 안 팔려 버려야 하는 값, 여러 가지를 헤아리며 헌책 한 권 값을 붙인다. 1980년대 첫머리까지 웬만한 헌책 한 권 500원이면 살 수 있다 했는데, 그무렵에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 10권 가운데 5권이 팔렸다 했다. 이만한 흐름이라면 헌책 한 권 값이 퍽 눅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만큼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 적에도 눅은 값으로 팔아야 한다.


  이레쯤 앞서 나한테 누리편지 하나 온다. 교보문고에서 교보 회원 모두한테 보내는 글월이다. 이 글월을 여니 “베스트 중고책은 900원에 사고, 쌓여 있는 책은 팔아도 보고!” 하는 이름이 굵직하게 나온다. 책 한 권에 900원이라니. 게다가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헌책이라니.


  교보문고를 비롯해 알라딘이나 여러 새책방들은 헌책을 다루면서 ‘헌책’이라는 낱말을 안 쓴다. 굳이 한자말 ‘중고(中古)’를 붙인다. 새책을 다루면서도 ‘새책’이라는 낱말보다 ‘신간(新刊)’이라는 한자말을 좋아하고, ‘뉴(new)’라는 영어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 책마을에서 헌책방이 헌책을 다루며 이어온 책삶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헌책방이 이 나라 마을마다 한두 군데씩 뿌리를 내리며 마을 책삶을 일군 흐름을 뒤흔들어 송두리째 돈잔치를 꾀하기까지 하니, 이들 큰 새책방들이 벌이는 ‘헌책 장사’는 장사라기보다는 차떼기에 가깝고, 큰 할인매장이 작은 가게를 잡아먹는 모습하고 닮는다. 큰회사 빵집이 동네빵집 500미터 언저리에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나왔다 하는데, 큰 새책방이 헌책 다루지 못하게 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 새책방이 헌책 값을 마구 후려쳐서 책마을 어지럽히는 짓을 다그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책 값으로 3000원인 만화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1000원이 알맞다. 새책 값으로 10000원인 문학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3000원이 알맞다. 그런데 교보문고에서 말하는 “베스트 중고책 900원”이란 무엇일까. 책을 이렇게 깎아내려도 될까. 책을 이처럼 깎아내리면서 사람들한테 글월을 띄워도 될까. 책을 즐겁게 읽을 사람들이 ‘책’ 아닌 ‘떨이 물건’을 ‘엉터리 헐값’으로 사들여도 책읽기를 할 수 있을까.


  더 싸게 판대서 훌륭한 책방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책을 다뤄야 아름다운 책방이 된다. 아름다운 책을 알맞고 올바른 값으로 다룰 때에 훌륭한 책방이 된다. 전국에 여러 새끼가게 거느리는 교보문고가 제넋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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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적에 좋은 마음이 샘솟는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으며, 스스로 좋은 삶을 누리고, 천천히 좋은 마음이 됩니다. 좋아할 만하지 않은 책을 굳이 읽으면, 썩 좋다 하기 어려운 생각이 찾아들고, 그닥 즐겁지 않거나 좋지 않은 하루를 누리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누릴 만한 자리를 찾아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좋아하는 하루를 빛낼 만한 터전에서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디디고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먹고 풀을 쓰다듬고 나무를 안고 숲을 바라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마음이 가장 따스한 때를 떠올립니다. 사랑이 싹트는 곳을 되새깁니다. 꿈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책 하나 마주합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며, 스스로 좋은 이야기가 됩니다. 스스로 좋은 눈빛을 밝히고, 스스로 좋은 말을 건네며, 스스로 좋은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도라에몽》 만화책을 무릎에 얹어 읽는 큰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래, 예쁘게 읽으렴. 네 아버지가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떠서 네 입에 넣어 주마.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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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책쓰기

 


  곰곰이 따지면, 책읽기란 ‘남이 차려 놓은 이야기 읽기’입니다. 스스로 찾아서 챙겨 살피는 이야기 아닌, ‘남이 힘껏 찾아서 챙겨 살핀 이야기를 읽는’ 일이 책읽기입니다.


  예부터 고이 이어온 말을 돌아봅니다. 무엇이든 배우려면 스스로 배우지, 남한테서 배울 수 없다 했습니다. 스승이 있대서 배우지 않습니다. 책이 있대서 배우지 않아요. 언제나 내 맨주먹과 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워요. 모든 삶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닫고 배우지,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치지 못해요. 곧,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하나도 못 배워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권수로 치면 많이 읽지’만,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리지 않으면, 아무런 줄거리나 고갱이를 못 받아들여요. 다시 말하자면,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린 채로 있다면,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책 백만 권 읽는 사람보다 깊고 넓으며 환하게 깨우칩니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넓히거나 트거나 열면, 종이책 한 권조차 안 읽더라도 삶을 깨닫고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책읽기를 하자면 책쓰기를 함께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남이 차린 밥상을 받아서 먹듯, 나도 밥상을 차려 남한테 베풀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책쓰기를 하다 보면, 남이 차린 밥상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낄 뿐 아니라, 밥상을 차려서 베풀기까지 어떤 삶을 치르거나 겪거나 복닥였는가를 살갗으로 헤아릴 수 있어요. 이러는 동안, 서로서로 이야기꽃 피울 수 있지요. 나는 내가 겪은 삶을 이웃한테 들려주고, 이웃은 이웃이 겪은 삶을 나한테 들려줍니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됩니다. 함께 나누는 삶이 됩니다.


  책은 누구나 씁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깜냥껏 삶을 누리거나 즐기거나 빚기 때문입니다. 책은 누구나 읽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슬기를 빛내어 하루하루 누리고 즐기며 빚으니까요. 삶을 다루는 책인 만큼, 내 삶을 들여 읽고 내 삶을 바쳐 씁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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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손발

 


  남녘 고흥에서 한밤에 글을 쓰며 손이 시리다고 느끼지 못한다. 음성서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글을 쓰며 손이나 발이 춥다고 느끼지 못한다. 경기 일산 끝자락 밭뙈기 한켠 비닐을 쳐서 지내는 옆지기네 어머니 아버지 댁에서 글을 쓰며 새삼스레 손이랑 발이 차갑구나 하고 느낀다.


  고흥에서는 구경하지 못하는 눈밭을 음성이랑 일산에서 흐드러지게 본다. 아이들은 눈을 쥐고 뭉치며 던진다. 까르르 웃으며 논다. 따스한 남녘에서는 따스한 손길 되어 따스한 눈망울 밝히며 놀고, 추운 곳에서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가도 개구지게 뛰놀고 뒹굴면서 작은 옷을 작은 땀으로 촉촉히 적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날 시린 손발 호호 녹이며 지낼까. 얼마나 많은 북녘 이웃들이 추운 겨울날 추위에 꽁꽁 얼어붙으며 봄을 기다릴까. 왜 남녘땅에 새 찻길 더 내고 새 공사와 개발을 끝없이 해야 할까.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길에 돈을 나누기는 어려울까. 석유와 전기를 때야 하는 흐름 아닌, 지구별 살리고 지구이웃 사랑하는 맑은 빛과 볕으로 겨울을 따사로이 누리는 흐름을 빚을 수는 없는가. 자동차를 굴리더라도 배기가스 안 나오는 자동차를 짓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람하게 커다란 발전소 아닌, 무시무시하게 세워 끝없이 잇는 송전탑 아닌, 농약 듬뿍 뿌리고 땅밑물 함부로 퍼올리는 골프장 아닌,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살가운 보금자리를 일구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왜 늘어나지 못할까.


  사람들 누구나 텃밭을 일굴 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이녁 먹을거리 얻을 무논 몇 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집숲을 즐길 만한 멧자락 한 뙈기 있기를 빈다. 땅문서도 은행계좌도 무덤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이든, 꼭 한 권 책이든, 무덤으로 가져갈 수 없다. 무덤으로 가져갈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이다.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요, 사랑을 안고 하늘나라에서 훨훨 날갯짓하며 춤추고 노래할 사람이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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