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나누는 사랑

 


  중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동무한테 책을 선물합니다. 노래테이프를 선물한다든지 극장표를 선물한다든지 하기도 했지만, 내가 즐겁게 읽은 어떤 책 하나를 정갈한 종이에 곱게 싸서 엽서 한 장 끼운 선물이 나로서는 참 좋았습니다. 때로는 내가 미처 못 읽은 책을 책방에 서서 바지런히 읽은 다음 예쁜 그림엽서 하나 함께 사서는 이런 인사 저런 이야기 담아 책 사이에 꽂고는 정갈한 종이에 곱게 싸서 선물하곤 합니다.


  책을 선물하면서 ‘내가 읽은 그 책’을 새롭게 다시 들춥니다. 나는 그 책 읽으며 들뜨며 즐거웠는데, 내 동무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고 설렙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할 수 없기에, 아직 읽지 못했지만 꽤 아름다우리라 여긴 책을 고른 뒤 한 시간 즈음 서서 손자국 안 묻히도록 애쓰며 후다닥 읽기도 합니다. 책을 선물하는 김에 책을 하나 더 읽을 수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한테 무엇을 건넬 적에는 더 천천히 더 반듯하게 글을 씁니다. 한 글자 두 글자 사랑 듬뿍 담아 적바림합니다. 책 한 권 선물이란, 나무 한 그루 선물과 같다고 느낍니다. 나무는 몸한테 푸른 숨결을 베풀고, 책은 마음한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나무로 빚은 책은 사람들한테 푸른 넋과 푸른 얼 싱그럽고 산뜻하게 일구는 슬기를 베풉니다.


  내가 읽는 내 책은,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책입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하는 책은, 내 이웃이나 동무가 마음밭 아름다이 일굴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이요 사랑입니다. 434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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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창고

 


  요즈음에는 ‘창고’라는 낱말을 쓰지만, 지난날에는 모두 ‘헛간’이라는 낱말을 썼다. 아마 요즈음은 헛간이라 할 수 없는지 모르나, 짐이나 허드렛것을 놓아 헛간이었다.


  지난날 집은 모두 흙집이요 나무기둥이요 돌을 주춧돌 삼았다. 흙과 나무와 돌, 여기에 짚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헛간도 집하고 똑같이 지었다. 헛간이래서 다른 것을 끌어들여 짓지 않았다.


  오늘날 집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몽땅 시멘트와 쇠붙이로 올린다. 오늘날 창고 또한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으레 시멘트와 쇠붙이로 올린다. 지난날 집과 헛간은 숲이랑 멧골이랑 들하고 살가이 어울렸다면, 오늘날 집과 헛간은 숲하고도 멧골하고도 들하고도 하나도 안 어울린다. 생뚱맞은 것이 멀뚱하니 놓인다. 뜬금없는 것이 뜨내기처럼 선다.


  옛날 사람들은 집을 짓건 헛간을 짓건 무엇을 짓건, 서로 어우러지는 흐름과 결과 무늬와 빛을 살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살필까.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문득 책이 떠오른다. 오늘날 책을 짓는 사람들은 책에 깃드는 이야기가 이 지구별에 얼마나 어울린다고 생각할까. 오늘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녁 넋뿐 아니라 이웃 넋에 얼마나 곱게 스며들려고 책을 펼칠까. 생뚱맞은 책이 멀뚱하게 태어나지 않는가. 뜬금없는 책을 뜨내기처럼 쥐어들고는 내 밥그릇 테두리에서 맴도는 책읽기에 갇히지 않는가.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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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그림

 


  2001년 어느 날, 국어사전 만드는 출판사 일터. 내 일동무이자 오랜 고향동무가 그림책 하나를 보더니 “야, 여기 좀 봐. 자전거 이상하지 않니?” 하고 묻는다. “응? 뭐가?” “야, 자전거가 이렇게 생기면 안 굴러가잖아.” 그무렵 내 고향동무는 자전거 타기에 흠뻑 빠져 지냈다. “음, 그래? 그런가?” “잘 보라구. 체인이 이렇게 달리면 굴러갈 수 없어. 또 페달만 이렇게 붕 뜬 채 있으면, 어떻게 서겠니? 야, (그림책에 나오는) 얘가 삐삐냐?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게?”


  나는 신문배달을 자전거를 타고 했는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똑똑히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그저 그림이 예쁘장하네 하고만 생각했다. 나도 고향동무 못지않게 자전거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자주 타는데, 어떻게 나는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이 엉터리인 줄 못 깨달았을까. 자전거 그림 엉터리로 나온 그림책은 내가 그무렵 일하던 한솥밥 출판사이다. 출판사 이름과 자리는 다르지만, 한 출판사이다. 그래서 그림책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그 그림책 편집한 이한테 ‘자전거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십 분쯤 이야기하는데, 그 그림이 뭐가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나중에는 그 출판사 일터로 찾아가서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를 하고, 마당에 선 자전거를 보라 하면서 알려주지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그림이 잘못되었어도 고칠 생각이 없다는 소리이다. 이리하여, 그 그림책은 열 해가 넘는 동안 ‘엉터리 자전거 그림’이 실린 채 아이들이 들여다본다.


  그림책 작가는 왜 자전거를 엉터리로 그릴까? 너무 쉽고 마땅한 이야기인데, 그림책 작가 스스로 자전거를 안 타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더러 타더라도, 자전거를 그리면서 ‘자전거를 곰곰이 들여다보고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속에 또렷이 아로새기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그림책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가 자전거를 안 탄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에 담으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을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 자전거를 잘 안 타니까, 자전거 그림이 잘못 나오거나 잘 나오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나무 그림이나 꽃 그림이 얼마나 나무답거나 꽃다운가를 깨닫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며 살피지도 못한다. 새 한 마리 벌레 한 마리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고운 삶벗이요 이웃인 줄 깨닫지 못한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 그림 그리는 솜씨는 무척 발돋움했다. 한국 그림책 편집자들 편집 솜씨는 매우 나아졌다. 그러나, 그림 하나에 담고 그림책 한 권에 싣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매무새는 한참 멀구나 싶다. 예쁘장하게 그려서 그림책이 되지 않는걸. 그럴듯하게 그린대서 그림책이 그럴듯해지지는 않는걸.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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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서재 '알라디너의 선택'이 요즈음 들어 아주 '알라딘 선택'으로 바뀐 듯하다. 이렇게 한들 알라딘책방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보일 턱이 없다. 부디,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옳게 깨닫기를 바란다 ..

 

..

 

‘책방 단골’ 되기


  내가 자주 드나드는 어느 헌책방에서 어느 단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이 헌책방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두 가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첫째, 스무 해 넘게 드나들 것. 둘째, 삼천 권 넘게 책을 사서 읽을 것.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무렵, 나는 이 헌책방에 열다섯 해쯤 드나들었고 그무렵까지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은 사천 권쯤 되었다. 2013년을 지나며 이 헌책방을 드나든 햇수는 스물두 해가 되었고, 이곳에서 장만한 책은 어느덧 오천 권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나도 어느 단골 할아버지처럼 ‘아무개 헌책방 단골’이라는 이름을 씩씩하고 즐겁게 쓴다.


  ‘단골’이라는 이름을 다른 책방에서도 똑같이 느낀다. 헌책방에서만 “스무 해 삼천 권”은 아니라고 느낀다. 새책방에서도 “스무 해 삼천 권” 잣대를 채울 수 있으면, 비로소 ‘책방 단골’이라 할 만하다고 느낀다. 그저 책만 많이 사들여 준대서 단골이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마실을 하면서 삶을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단골이 된다. 한편, 오래도록 들락거리는 하되, 책을 사서 읽지 않는다든지, 또는 책방에 찾아와서 선 채로 책을 죽 읽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들락거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골’은 못 된다. 그저 ‘책손’이나 ‘책나그네’ 또는 ‘책방 손님’이나 ‘책방 나그네’가 될 뿐이다.


  나한테는 ‘단골 헌책방’이 여럿 있다. 스무 해 넘게 다니면서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헌책방을 꼽자면, 인천 아벨서점·서울 뿌리서점·서울 신고서점·서울 골목책방·서울 정은서점·서울 진호서점, 이렇게 여섯 군데 있다. 스무 해 넘게 들락거렸지만 아직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하지 못한 곳이 있고, 아직 스무 해 드나들지 못했으나 삼천 권 넘게 책을 장만한 곳이 있다. 새책방은 어떨까. 인천 대한서림은 국민학교 적부터 드나들었으나 고향을 떠나며 발길을 끊었고, 서울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은 우리 식구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찾아가기 어렵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며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꽤 장만한다. 엊그제까지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책을 몇 권쯤 장만했는가 하고 살펴보니 천오백 권이 조금 넘는다. 앞으로 몇 해쯤 지나면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장만하는 책 권수가 삼천 권을 넘으리라. 그런데,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앞으로 열 몇 해를 더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서 이 자리를 지킬 만할까.


  헌책방이나 새책방에서 ‘단골’로 지내는 ‘책 할아버지’들 말씀을 때때로 듣곤 하는데, 당신들이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도 날마다 책방마실 즐기면서 책을 사서 읽는 까닭은 ‘지식쌓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삶이 즐겁기에 늘 새로 책을 사서 읽는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당신들이 단골로 삼는 책방들은 ‘돈벌기’에만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책 할아버지’들은 인터넷을 할 줄 아실까? 글쎄, 할 줄 아는 분이 더러 있을 테지만, 애써 인터넷까지 할 틈을 내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책 할아버지’들은 책을 읽을 때뿐 아니라 책을 고를 때에도 당신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를 더 즐기고, 책방 바람 쐬기를 더 좋아하며, 책방으로 오가는 길을 천천히 걷는 하루를 더 누리시니까.


  그나저나, 인터넷책방 알라딘은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 아름다운 책방으로 나아갈 생각인가, 아니면 ‘돈벌이’에 사로잡힌 채 제 무덤을 팔 생각인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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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책방, 책사랑, 도서정가제

 


  한국에 책방이 처음 생긴 때는 언제였을까요. 나는 잘 모릅니다. 따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아볼 수 있으나, 첫 책방이 언제쯤 태어났는 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통교육을 베푸는 작은 학교가 하나둘 늘면서 학교 둘레에 책방이 생깁니다. 학교 둘레 책방에서는 책도 다루지만 문방구도 다룹니다.


  학교 둘레에 문방구와 책을 함께 다루는 책방이 자리잡으면서, 책만 따로 다루는 책방이 마을과 동네마다 하나둘 태어납니다. 시골 읍내뿐 아니라 면소재지에까지 책방이 섭니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골골샅샅 돌면서 ‘시골 책방’이나 ‘중소도시 책방’에서 한 달 동안 판 책을 살피고 책값을 거둡니다. 시골 책방에는 도시 책방처럼 수많은 책이 골고루 있기 어렵던 지난날이지만, 여러 날 기다리면 시골 책방에도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이 들어옵니다. 큰도시로 마실을 다녀오는 어른한테 말씀을 여쭈어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을 장만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늘고 기찻길이 늡니다. 고속버스가 생기고 고속국도가 생깁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중소도시나 큰도시로 옮겨 돈을 더 벌거나 이름값을 더 얻는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더 큰 도시를 바라고, 맨 나중에는 ‘서울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지난 어느 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뿐 아니라 시골 읍내와 면내에조차 조그마한 책방이 여럿 있어, 면소재지보다 훨씬 작은 두멧시골 사람들도 십 리 길이나 이십 리 길을 걸어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보따리에 책 한 권 담아 들뜬 마음으로 다시 먼길을 걸어서 돌아가지만, 두멧시골부터 면소재지 또는 읍내까지 오가면서 바라보는 숲과 논밭과 하늘과 멧골과 시내와 바다가 넓으며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구름하고 노래합니다. 풀벌레와 춤을 춥니다. 멧새랑 노닙니다. 들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뿌리내리려는 사람보다 도시로 가서 일자리 얻으려는 사람이 부쩍 늘기 때문입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차츰 문을 닫으면서, 면소재지 작은 책방도 나란히 문을 닫습니다. 중소도시 또한 큰도시로 빠져나가려는 사람 많아, 중소도시 작은 책방 또한 문을 닫습니다. 큰도시에서도 물결은 똑같습니다. 큰도시에 몰린 사람들은 돈과 이름값 거머쥐기에 바빠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가까이할 겨를이 없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스스로 겨를을 안 내기도 합니다.


  큰도시는 더욱 커집니다. 중소도시도 큰도시 못지않게 커집니다. 시골은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진 시골 한쪽 귀퉁이는 도시한테 잡아먹힙니다. 커지는 도시는 새로 아파트와 공장 지을 땅을 찾아 시골 논밭을 잡아먹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은 오랜 나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논밭을 도시사람한테 내다 팔면서 ‘도시 노동자’가 됩니다.


  도시 노동자가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도시 노동자는 주 6일이나 주 7일 일하면서, 또 하루에 12∼16시간 일하면서, 시골을 떠날 무렵 스스로 내려놓은 ‘책읽기’는 아예 잊습니다. 바야흐로 노동환경이 나아지며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다지만 오래도록 길든 ‘책하고 멀어진 삶’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시골숲으로 마실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다니더라도,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 책방으로 ‘삶읽기’ 하러 가는 발걸음은 뚝 끊어집니다.


  이윽고,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아주 커다랗고 역사 깊은 책방까지 문을 닫습니다. 서울 아닌 커다란 도시나 중소도시에 있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책방 또한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이자 책방 구실을 하던 곳도 이제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색칠그림책 몇 가지 아니고는 책을 들이지 않습니다. 학교 둘레, 또 마을 언저리 작은 책방은 벌써 씨가 말라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동안 ‘책을 좋아하면서 누리고 싶은 사람’들은 마을이나 동네 가까이에서 찾아갈 책방이 없는 탓에 ‘인터넷에서 목록 찾아보는 책방’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마을이나 동네 작은 책방으로 찾아가서 주문을 넣고는 며칠 기다려 책을 받아서 읽다가, 나중에는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서 주문을 넣고는 적립금 쌓으면서 가만히 앉아 책을 받아보는 ‘아늑함’에 젖어듭니다. 동네 작은 책방 일꾼은 나날이 줄어드는 책손을 기다리다가 소리도 소문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춥니다. 동네 작은 책방이 있던 자리에는, 손전화 파는 가게·옷 파는 가게·고기 굽는 가게 들이 나란히 들어섭니다.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방은 책을 파는 곳입니다. 오늘날에도 씩씩하게 제자리 지키는 작은 책방이 여럿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고 ‘여럿’ 있습니다. 지난날처럼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책 판 돈 거두러’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날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골 읍내 작은 책방이나 중소도시 작은 책방에는 아예 책을 안 넣곤 합니다. 물류비나 인건비 여러모로 따지면 ‘밑지는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책방에는 ‘서울에 있는 책방 책시렁’처럼 여러 갈래 책이 눈부시게 꽂히기 어렵습니다. 애써 여러 갈래 책을 알뜰히 갖추었어도, ‘시골에서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나 ‘중소도시에서 책 좀 사랑할 만한 사람’은 웬만큼 큰도시로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시골을 떠납니다. 중소도시 고등학교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자마자 중소도시를 떠납니다. 물이 좋은 서울에서 놀려 하고, 물이 넓은 큰도시에서 노닥거리려 합니다.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책방은 책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물건을 다루는 곳인 책방은 없습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값을 매겨 사고팔기는 하되, 책은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입니다.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을 빚기까지, 작가들은 나무한테서 얻은 연필로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에 글을 씁니다. 책 하나에 깃드는 이야기는 ‘숲을 이루는 나무 목숨’으로 태어납니다. 곧, 책이란 숲입니다. 책이란 푸른 숨결입니다. 그래서, 값을 매겨 돈으로 사고판다 하더라도 책을 물건으로 치거나 다루는 일꾼이나 책손은 없었어요.


  마을 책방이나 동네 책방에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은 ‘읽고픈 책을 장만할 값’을 그러모으려고 땀을 흘려 일했습니다. 마을 책방과 동네 책방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오늘날 물질문명 도시 사회에서는 인터넷책방 적립금과 에누리에 사람들 눈길과 손길이 끄달립니다.


  누가 잘못인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이 이처럼 흐를 뿐입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와 함께 깊디깊은 두멧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책방마실이 퍽 힘듭니다. 아니, 책방마실보다 숲마실을 늘 생각하고 바라며 누립니다. 숲에서 얻은 숨결로 빚은 종이책을 읽어도 즐겁지만, 숲에 아이들과 깃들며 숲내음 맡는 나무삶도 즐겁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알고 싶으면, 나무 곁에서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속삭이면 됩니다. 나무 한살이를 다룬 그림책이나 인문책을 읽는대서 나무 한 그루를 알 수 없어요.


  책도 책방도 책손도 책일꾼도 푸른 숨결 들이마시며 살아갑니다. 맑은 바람이 목숨을 살리고, 싱그러운 먹을거리가 몸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얻을 때에 즐거울까요. 도서정가제라 하는 법이나 규범은 왜 태어나야 할까요. 도서정가제라는 이름 없던 지난날, 이 땅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떤 마음으로 나누면서 살았을까요.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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