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생물학자들이 동물에게도 과연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실험으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짓말을 하는 행위다.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한 제인 구달 박사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침팬지 한 마리를 따로 불러 한번에 다 먹어 치울 수 없을 양의 바나나를 안겨 주었다. 그러자 그 침팬지는 바나나를 자기만 아는 곳에 몰래 숨겨 놓고 조금씩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친구들이 나타나 바나나가 어디에 있느냐고 아우성을 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정반대쪽을 가리켰다. 그리곤 그들이 모두 그쪽으로 사라지자 재빨리 숨겨 놓은 바나나를 또 꺼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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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는 언뜻 보면 늙고 병약한 개체들은 어쩔 수 없이 늘 포식자의 밥이 되고 마는 비정한 세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고래들의 사회는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 나르듯 하는 모습이 고래학자들의 눈에 여러 번 관찰되었다. 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와 고래잡이배 사이에 과감히 뛰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66쪽)


고래는 비록 물속에 살지만 엄연히 허파로 숨을 쉬는 젖먹이 동물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없게 되므로 쉽사리 목숨을 잃는다. 그런 친구를 혼자 등에 업고 그가 충분히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치고 있는 고래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무언가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기도 한다. (66~67쪽)


약육강식은 분명히 자연 법칙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자연계의 전체 모습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상호부조론에서 러시아의 저명한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그에 대해서 밝힌 바 있다. 아래는 내가 옛날에 읽은 그의 저작이다.



그런가 하면 폴란트 태생의 독일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도 아래와 같은 관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래 구절은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의 저서 『간디의 물레』에서 내가 읽은 구절이다. 여기에 옮겨 본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감옥에 있을 때 읽은 책 가운데 조류의 이동에 관한 관찰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유럽에서 철새가 이동할 계절이 되면, 새들은 스칸디나비아 북유럽으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나일강까지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이 여행은 너무나 멀고 힘든 길이어서 독수리나 매와 같은 몸집이 큰 맹금류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처음 며칠 동안은 거의 빈사상태로 되어 강변 모래밭에 엎드린 채 일어서질 못한다고 한다. 큰 새들이 이런 형편인데, 노래 부르는 작은 새들, 예를 들어 방울새나 미팅게일이니 하는 것들은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까?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평소에는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맹금과 작은 새들 사이에 이때가 되면 하늘에서 휴전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은 새들은 큰 새들의 등에 업혀서 멀고 먼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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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최재천 선생의 다른 책에서 읽어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요즘 읽고 있는 최재천 선생의 책에서 비슷한 구절을 발견해서 여기에 옮겨본다. 비인간 세계에도 동성애는 물론, 양성애, 무성애도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자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성애가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은 얼마나 무지한 자들인가.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서 동성애 행위가 관찰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일명 보노보BONOBO라 불리는 피그미침팬지의 사회는 전반적으로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암컷들은 맛있는 먹이를 얻기 위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성을 제공한다. 행위는 암컷들이 수컷들뿐만 아니라 다른 암컷들에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베푼다. 수컷들 간의 구음口音도 늘 있는 일이다. 버금 수컷들은 종종 으뜸 수컷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성기를 만져주며 아부한다. - P61

집에서 암고양이들만 따로 키워 본 사람들은 그들끼리 암수가 벌이는 성행위를 모두 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동물 세계에서의 동성애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 그 예들만 모아 놓은 책이 작은 백과사전 분량은 된다. 동성애를 단순히 병리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왜 이렇게 드물까 의심해야 할 것이다. - P61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숭앙하지 않는 이는 당시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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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에선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노래들이 한때는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였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지금 유행하는 케이팝 노래들도 노년층의 노래로 여겨지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이런 「목포의 눈물」이나 「눈물 젖은 두만강」같은 노래는 어느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일까요? 10대 청소년, 아니면 30~40대 중장년? 꽤나 헷갈리시죠?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은 뱃사공‘ 같은 가사를 아무래도 10대들이 좋아했을 리는 없고, 30-40대 이상의 어른들이 좋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러면서도 의구심이 들겠죠. 원래 답이 뻔해 보이는 문제에는 함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 P23

맞습니다. 정답은 상식을 뒤집는 답입니다. 1930년대에 이런 트로트 노래를 좋아하는 세대는 10대들이었습니다. - P23

당시 30대의 어른들은 트로트로 대표되는 유행가가 ‘아이들‘의 것이라고 치부했고, 자신들은 그런 노래를 아주 못마땅해 했다는 게 자명해졌습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같은 노래가 놀랍게도 당시 청소년이었던 10대가 즐긴 노래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노래를 열두어 살 청소년들이 가슴 설레며 불렀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게 참으로 힙듭니다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 P34

뿐만 아니라 중년은 물론이거니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만 되더라도 이런 노래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기에는 일제강점기의 트로트를 너무도 중노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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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사 연구자인 저자 이명미는 말한다. 세대 갈등은 격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대중가요의 역사도 그러했다고. 더 나아가 세대 갈등이 한국 대중가요를 발전시킨 주역이라고. 뭐든 일장일단은 있다더니 세대 갈등도 꼭 부정적으로 볼 만한 건 아니구나 싶다. 오늘날과 달리 1930년대 '트로트'의 애청자도, 지금은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옛날 노래의 애청자도 십대였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이 책 외에 분야가 다른 책 두 권을 더 빌려왔지만 페이퍼의 주제와 맞지 않으니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주목해야 할 지점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획기적으로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는 시대란 늘 ‘세대 간의 취향 갈등‘이 아주 격해지는 시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어른들이 ‘요즘 애들 노래, 그것도 노래냐?‘ 고 귀를 닫아 버리는 정도를 넘어서서 , ‘요즘 애들 노래를 보니 세상이 말세다‘, ‘저런 걸 노래라고 좋아하니 미친놈들 아냐?‘ 라고 격하게 반발하는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겁니다. - P14

정말 ‘저런 노래는 없애 버려야 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아져 여론을 형성할 정도로 격한 반발이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중가요사의 굵은 줄기가 변화하는 시대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 P16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시대로는 1990년대가 그랬습니다. ‘신세대‘, ‘신세대 문화‘란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구세대‘와의 갈등이 상당했음을 의미합니다. 1970년대 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에는 ‘청년문화‘가 화두였습니다. 이 역시 ‘기성세대 문화‘와의 갈등이 상당했음을 의미합니다. - P16

그런데 바로 이렇게, 세대 간의 취향 갈등이 아주 격해진 시대야말로 대중가요사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시대라는 겁니다.. 이런 시대에 어른들의 욕을 먹으며 형성해 놓았던 새로운 창의력의 힘으로 향후 20년 동안 한국의 가요계가 먹고사는 겁니다. 뒤집어 보자면, 어른들도 적당히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노래만 나오는 시대란, 새롭게 비약적인 발전이 이룩되는 시대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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