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분업 노동의 정착과 가부장제의 발달, 고대 국가의 형성 과정을 통해 여성 종속은 견고해졌다. 여성의 목소리는 음소거 되었고, 여성의 역사는 지워졌다. 마저 읽어야지 하면서 어젯밤에 이 문단을 읽는데, 에이드리언 리치가 생각났다.

 


사고하는 남자들 중 누구도 생각하는 대가로 자신의 자아 정의와 사랑에서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사고체계를 창조하는 과정에 여성이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게 막는 힘인 성별 통제(gender control)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394)

 


여성은 단일 집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산 수단으로서의 여성은 이미 고대 사회에서부터 사물이었고, 그래서 교환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암소의 운명과 고대 귀부인의 운명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의 결합으로 탄생된 여성의 노예화(374)는 지참금을 넉넉히 소유한 고대 귀부인이라 할지라도 가구의 우두머리인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의 지배 아래 평생 종속되도록 강제하는 힘이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여성이 겪는 곤란함. 이 무거운 굴레를 어렴풋이 인지한 여성의 방황과 고민. ‘사고하는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이 이상하고 별스럽다고 생각하며, 시를 쓰려는 자신을, 창조하려는 자신을 억누르려 애쓰는 천재 여성의 암울함이 에이드리언 리치의 글에서는 보인다.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몸담고 있는 50대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우려"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도우려" 하는 것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내에서 진짜 일은 남편의 일이자 남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우리는 수년간 이 문제를 문제 삼지조차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되려는 나의 몸부림을 사치이자 별난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내 일은 대개 돈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나갔다. 19583, 나는 이렇게 썼다. "남편은 내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한다. 하지만 운을 떼는 건 언제나 나다." 나의 우울과 폭발적 분노, 덫에 걸린 느낌은 남편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는 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안겼는데도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143-4)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여성성의 신화』로 초대박을 치고 미국 여성 운동의 양지를 걸었던 베티 프리단마저도, 그 유명하고 놀라운 책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하지 않았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남성과 여성의 성에 기초한 계급-카스트의 존재를 고발(『성의 변증법』, 31)하고 성구별을 철폐하고 여성과 남성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예견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알아챈 여성들, 그 견고한 성벽과 그 무게와 파괴력을 간파한 여성이라면. 미치지 않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미치지 않은 채로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의문과 분노, 연구와 또 연구. 공부와 공부를 거듭해 이 책을 완성한 거다 러너의 마지막 충고를 옮겨본다.

 


가부장적 사고의 바깥으로 나가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고(thought)의 모든 알려진 체계를 향해 회의적이 되는 것이며, 모든 가정들과 서열짓는 가치와 정의들에 대해 비판적인 되는 것이다. … 우리 머릿속에 있는 위대한 남성들을 없애고, 그 남성들을 우리 자신으로, 우리의 자매들로, 익명의 선대 여성들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훈련된 사고인 우리 자신의 사고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결국, 그것은 지적 용기, 즉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용기, 우리에게 닿는 것보다 더 멀리 뻗으려는 용기,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발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고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도전은 안전과 승인을 추구하는 욕망으로부터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비여성적인' 자질 -세계를 다시 질서짓는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최상의 자기과신인 지적 오만 ㅡ 로 옮겨가려는 도전이다. 신을 만드는 자의 자기과신, 남성 체계건설자들의 과신으로. (396-7)

 


알려진 사고 체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내 머릿속 위대한 남성들을 지우고, 위대한 여성들의 시와 소설로 그 남은 자리를 채우기. 나 자신의 사고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기. 혼자 서는 용기를 기억하기. 실패하더라도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계속하기. 세계를 다시 질서 짓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재정의의 주체가 되기. 비여성적인 자질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자기 과신, 지적 오만의 화신으로 거듭나기. 새로, 다시 시작하기.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2-06-23 1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적 오만의 화신으로 거듭나기,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대!

단발머리 2022-06-23 13:53   좋아요 3 | URL
지적 오만의 화신으로 거듭나서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하려는데 넘 맘이 쫄리네요. 난 아직도 쫄보라서요.
응원 감사합니다, 비타님!!!

거리의화가 2022-06-23 1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정 관념을 비틀어 보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 다시 시작하기, 화이팅!

단발머리 2022-06-23 13:55   좋아요 2 | URL
맞아요.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고정 관념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사고 체계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가 중심이야, 라는 주장에 그건 누가 정했니?라고 묻는 페미니즘의 물음이 시작점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앗싸! 벌써 두 개에요!!!

2022-06-23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3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3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6-23 1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엇 단발머리 님 다 읽으신건가요? 대단합니다. 멋져요!
마침 저는 오늘 출근길에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이란 책에서 ‘목소리‘ 부분을 읽었거든요. 오늘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가부장제의 창조 마지막에는 이 목소리를 가져와서 나 역시도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어지네요.

가부장제의 창조를 비롯하여 분노와 애정, 성의변증법, 여성성의 신화 모두 단발머리 님 책장에 꽂혀 있는것이지요? 단발머리 님이 가끔 무언가 찾아보고 싶어질 때 책장 앞에서 이 책들을 꺼내 휘리릭 넘겨보실 걸 상상하면, 그게 참 그렇게나 좋습니다, 단발머리 님. 그 과정은 단발머리님이 쓰신 이 페이퍼의 마지막 여러가지의 다짐들을 지켜나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2-06-23 18:16   좋아요 3 | URL
요 며칠 시간이 나서 이어서 읽었어요. 이번에 또 같이 읽으니 참 좋네요.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은 전 처음 들어보는 책이라 책소개 읽고 왔어요. ㅎㅎㅎ 저자가 의사이고, 한국 사람에, 여성 같네요. 내용은 대강 짐작이 되지만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되네요.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에서 같이 읽는 책들은 가능하면 구매하려고 해서 책들이 거의 다 집에 있네요. 안 그래도, 어제 책을 꺼내면서 집에 <분노와 애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생각을 했고요. 얼른 에이드리언 리치 다른 책도 사야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더 많은 책과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더 더 더 많이 필요할 거 같아요. 제 다짐을 이뤄가려면 말이에요^^
다락방님의 달콤한 상상이 저의 일상과 현실과 미래가 되기를!!!

독서괭 2022-06-23 16: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역시 재독하는 분의 정리는 남다르네요. 오늘치를 아직 못 읽었는데 꼭 읽어내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데.. 과연.. ㅠㅠ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그래요. 저는 가끔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는데, 아무래도 안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싶은 부분이 바로, 그때는 모르고 웃어 넘겼던 것들을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거예요. 프로불편러가 되겠죠? ㅠㅠ

단발머리 2022-06-23 18:36   좋아요 4 | URL
아가들이랑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읽고 쓰시는 독서괭님 항상 응원합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뭔가 예상치 못한 일(예상치 못했던 빨래감)이 등장할 것 같기도 하고요 ㅠㅠ

저도 그래요. 과거를 생각하면 지우고 싶은 장면/지우고 싶은 말/지우고 싶은 행동들이 기억나서요. 저도 못 돌아갈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알았다고 삶이 막 바뀌었나, 그건 또 아닌 거 같아요.

어제 사촌 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5살, 8살 꼬맹이들과 토닥토닥 어려운 이야기 나누면서요. 그래도 언니라고 제가 조언을 하다보니... 결국엔 그 아이, 넘넘 이쁜 아이들, 나무라지 말고 잘 받아주고... 막 이렇게 되는 거예요. 결론은 동생에게 모성과 모성에 적합한 말과 행동을 은근히 강요한 건 아닌가, 맘이 좀 그렇더라구요 ㅠㅠㅠ
담에 만나면 맛난거 사줘야지, 그렇게 결론을 짓고요. 흐미.

건수하 2022-06-23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단발머리님 두번째로 다 읽으셨군요.!
저는 오늘 아침 시작했는데, (몇 장 못 읽었지만) 어렵지만 흥미로워보이더라고요.

내 생각에 대한 자신감, 용기. 오늘도 못 냈던건데..
여성들에 대한 충고가 훈훈해서 기대감 +1 되었어요 :)

페미니스트들과 좀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지만
감사의 글, 서문부터 애정이 느껴지더라니..

단발머리 2022-06-23 18:40   좋아요 2 | URL
제가 장담하건대 ㅋㅋㅋㅋㅋㅋㅋ 최근에 읽으신 책(여성주의 책들) 중에서 제일 잘 읽히는 책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혹시 역사를, 세계사를, 고대사를, 메소포타미아를 좋아하신다면 훨씬 더 편히 읽으실 수 있고요.

여성들에 대한 충고가 넘 좋지요. 그 마지막 단원 11장 <가부장제의 창조> 전체가 다 좋더라구요.
이 책의 자매품으로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꼭 자매품이라기 보다는 같이 읽을 책으로는) 거다 러너의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라는 책도 참 좋아요. 마지막 단원과 이어진 느낌도 납니다요^^

건수하 2022-06-23 19:08   좋아요 2 | URL
앗, 안그래도 책을 2권으로 분권하여 기독교 이후의 역사는 그 뒤에 있다고 쓰여 있어서 찾아보았습니다. 절판되었더군요 ;ㅁ; 단발머리님이 그 책에 대해서 쓰신 글도 훑어보았어요. 조금 읽어보고 잘 읽히면? 구해봐야겠습니다 ^^

역사 세계사는 좋아하는데 고대사와 메소포타미아쪽은 잘 몰라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

바람돌이 2022-06-23 17: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서문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그런데 결론 부분도 와 명문이네요. 얼마 안남았는데 저도 피치를 올려야겠어요.
항상 단발머리님 글 읽으면서 여러 사람의 논의를 하나로 연결해내는 능력에 탄복합니다. 정말 책을 깊이 읽어야만 가능한 능력!!!!

단발머리 2022-06-23 18:46   좋아요 4 | URL
네, 맞아요. 전 이번에 읽을 때, 결론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구요. 11장 전체가 좋아서, 거의 민트색 형광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문맥에 맞춰 연결해서 읽는데까지는 아직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꾸준히, 성실히 읽고 또 읽어서 지적 오만의 화신이 되어,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충성!!

2022-06-24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4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4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06-24 1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여기 수준 너무 높다... 단발님.. 우리 수준 너무 높지 않아요? ㅋㅋㅋㅋ 저는 막 일본 최대 문학 거장 오만하게 까버리고, 단발님은 그런 나를 용기 있다고 써준 것 처럼 느껴버리는 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푸하하하하하하!!! 저 근데 좀 미친 거 같죠? ㅜㅜ 하지만 미치지 않았다고 해죠요~ㅋㅋㅋㅋㅋ

라파엘 2022-06-25 00:20   좋아요 2 | URL
원래 천재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때로 미쳐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실제로는 오히려 미쳐있는 세상을 미치지 않은 정신으로 보고 있는 것일지라도요 ㅎㅎ

단발머리 2022-06-25 21:50   좋아요 2 | URL
쟝쟝님 / 일본 최대 문학 거장 오만하게 까는 거는 괜찮은데 그 강은 도대체, 왜, 언제 건너간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약간 미쳐 있다니까요. 다들 조금씩 다 미쳐있어요. 그니까 괜찮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파엘님 / 네, 맞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천재들은 미쳐있는 것처럼 보이죠. 세상이 미쳐있는 것일수도 있고요. 전, 다만 똑같은 천재,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라 할지라도, 여성 천재의 길이, 그녀들의 삶이 훨씬 더 고단했다는 걸 써놓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여성 천재님들, 힘내서 전진합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7-07 11:11   좋아요 1 | URL
얽 나 이거 인제봤네 ㅋㅋㅋ 맞아 나는 걍 너무 똑똑한거예요 ㅋㅋㅋ 미치다녀 ㅋㅋㅋㅋ 너무 제정신!!!!
무튼 종교믿는 제 친구 두분 덕분에 요즘 신이 없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 고심합니다 ㅋㅋㅋㅋ 아놔… 진짜… 안미쳐야 이런 사유도 하죠? 그쵸?
 
가부장제의 창조 - 세번째



 












나는 여기서 결정론을 주장하거나 의식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건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그것은 남성들도 여성들도 의도하지 않았던 특정한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사회라는 대담한 신세계를 출범시킨 현대남성들이 오염이나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관련된 결과들을 알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과정을 멈추기에 너무 늦었다.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90)

 


저자의 위 문단은 1장과 2장 전체에서 주목했던 단어 편리한과 연결된다.

 


여성들이 선택했던 가장 초기의 성별분업노동은 편리하였으며(functional), 그래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같이 받아들일 만했다는 것이다. (78)

 


영어로는 functional이라고 표현되는데, 문맥상 ‘functional’편리한보다는 실용적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난 남성들을 옹호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거다 러너의 분석을 따라 읽을 때, 당시의 여성들이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성별분업노동에 동의했으며, 이런 실천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특권이 주는 편안함을 알게 된 이상, 설사 그것이 파트너의 고통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해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제2의 성』, <운명>편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지적처럼 암컷은 종의 먹이로서 생존하며, 곤충을 비롯해 모든 동물에게서 기관을 가지고 찌르는 것은 수컷이다. 여성 종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남성이 자신이 가진 찌르는 것을 통해 강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수잔 브라운 밀러의 주장(83)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또 한편으로는 남녀 간 성별 분업을 효과적으로 가동시켰던 부족이 강한 부족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의 전 세계적 우세가 가능해졌다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 바람돌이님의 글/댓글의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



 


 


다른 모든 역사가 그렇듯 여성 억압의 역사가 일률적이지 않으며, 북방 유목의 영향을 받았던 발해와 평지 농경 문화가 우세했던 백제를 비교하면서, 자연환경이나 인문적 환경 등으로 가부장제의 적용이 달라졌던 현상을 지적해 주셨는데, 혼자 읽으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바람돌이님의 통찰은 55쪽의 다음 내용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모계 혈통적 원예사회는 어떤 특정한 생태학적 조건 - 가축화된 동물무리가 없는 곳인 숲의 경계 근처 - 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런 주거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모계혈통적 사회는 거의 멸종된 상태다. (55)

 


즉 채집을 통한 식량 조달이 중요했던 초기 사회에서 동물의 가축화와 농경 정착 생활이 시작될 즈음, 성별 분업에 적극적인 부계 혈통적 사회의 우세가 확실시되면서 가부장제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각기 다른 사회가 채택한 상상의 질서는 서로 다르다. 인종은 현대 미국인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세 무슬림에게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았다. 중세 인도에서 카스트는 생과 사의 문제였지만 현대 유럽에서 계급제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은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사피엔스』, 212)

 



요즘은 아이를 하나 혹은 둘 (혹은 셋) 정도 낳으니까, 게다가 저출산 시대다 보니 모든 아이가 참 귀하고 또 귀하다. 아들딸 구별한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출산 현장에서는 들리지 않은 지 오래다. 아이들 학원에 보내면 아들은 50만 원, 딸은 30만 원, 이런 학원은 없다. 딸이든 아들이든 똑같이 정성과 에너지, 그리고 돈이 든다. 여성성에 대한 강요가 만연한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여자아이에게 소소하게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내 경우는 그렇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내 딸이 취업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 돌봄에 대한 요구로 힘들어할 때, 아빠라면, 제대로 된 남성이라면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 아내의 헌신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는 남성도 그럴 것이다.

 


오만 년 전쯤, 직장 생활을 할 때 일이다. 옆자리의 00씨는 나랑 결혼 동기, 임신 동기였는데, 다른 부서의 ** 언니가 결혼 동기의 학교 선배였다. 언니가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우리 두 사람 밥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언니랑 밥을 먹는데, 언니가 그러시는 거다. 우리 아빠(사업체 운영)가 출산 휴가 두 달 쓰는 직원한테 뭐라 하고 그러셨거든. 애 낳았는데 무슨 두 달이나 쉬냐고. 근데 내가 출산 휴가 석 달 쓰고 이제 출근한다고 하니까, 네가 애를 낳았는데 3개월 만에 출근한다니 이게 웬일이냐. 내가 몰랐다. 예전에는 몰랐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사고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아끼는 사람의 고통이, 보이고 느껴진다. 설사 그게 구조적인 관계 속에서 무엇 때문이라고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게 보이고 만져진다. 가부장제는 그러한 감정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그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인간을 역할기능에 묶어 둔다. 또한 그런 구조에서 얻는 작은 이득과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부장제 역시 역사적 산물이라면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것이고, 이는 정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인데.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어 권력 나눔에 혈안이 된 자들은 관심이 없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저번주 도서관 풍경이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어갔는데 오후라서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고, 내가 주로 앉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믿고,

내가 믿는 일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명언이 아주 잘 보이는 자리. 다른 건 뭐, 크게 바라는 건 없고, 그냥 이 책만 제 것이 되게 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앞자리 사람이 화장실 간 틈에 얼른 찍었다. 오늘은 6 21.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고 한다. 이런 순.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06-21 13: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대화 참으로 멋집니다! 저 functional 번역이 저도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편리한은 분명히 아닌데~ 저도 실용적인 or 기능적인이 더 맞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석글을 읽으니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도서관 풍경에 책까지 완벽 구도입니다~ㅎㅎ

단발머리 2022-06-21 13:45   좋아요 3 | URL
같은 책을 읽으니 이렇게 풍성하게 역동적이게 읽을 수 있네요. 무슨 책이든지 같이 읽으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져서 좋은데 여성주의 책은 더욱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어려운 책일 때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읽기> 넘 좋습니다.
신축 도서관이라서 아직은 반짝반짝이네요^^

얄라알라 2022-06-21 13: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페이퍼 예술~~아 그.선배언니분 친절하시네요 수잔브라운밀러에 유발하라리에 바람돌이님까지.멋지게... 글고 맞아요.딸이라고 학원비30 아들이라고 50아니다 그렇게 . 설명 하시니 확들어오네요

단발머리 2022-06-21 13:48   좋아요 2 | URL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얄라알라님!! 그 선배언니는 저보다 먼저 퇴사하셔서 소식은 모르지만요.
언니~~~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하고 여기 댓글창에서 인사를 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잔브러운밀러, 유발하라리에 바람돌이님까지 출연해 주셔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미미 2022-06-21 1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 주고받다가 또 공부가되고 영감을 얻는 이 놀라운 곳!!

그러므로 개개인의 목소리, 다름에 주목하고자하는 페미니즘의 방향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 여러모로 감탄합니다.
이해하게되면 결국 사랑하게된다던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도 떠오르는 글이네요 단발머리님*^^*

저도 도서관에 제 자리 있어요ㅎㅎ🖐

단발머리 2022-06-21 14:06   좋아요 4 | URL
여기, 우리 알라딘 세상에서는 댓글도 모두 주옥같은 말씀인지라 <댓글 모음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얼마 전에 쟝쟝님과 미미님 댓글 열전도 너무 좋았어요. 대화 속에, 댓글 속에 생각이 더 명확해지는 걸 느낄 수 있고요.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질문이, 답이 아닌 ‘질문‘이 페미니즘에 있다고 전 생각해요. 우리의 감탄이 멈춰지지 않고 우리의 공부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댓글 항상 감사해요, 미미님*^^*

그 도서관 자리.... 저 좀 알려주세요. 살짝쿵 가서 보고 오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2-06-21 14:28   좋아요 4 | URL
부끄럽습니다ㅋㅋㅋㅋㅋ
그것보다는 계속 여기 눌러앉다 친해져서 도서관에서 단발머리님과 마주앉아 공부했음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2-06-21 17:38   좋아요 3 | URL
마주 앉아요, 우리. 옆에 앉아도 되구요.
근데 저는 공부 안 하고 대출불가 만화 볼 거에요. 괜찮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21 14: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78쪽의 구절은 저도 기억나는데요, 읽으면서 고개 끄덕였었어요. 저는 저 ‘편리한‘을 ‘쉬운‘으로 바꿔도 될거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다른 걸 더 생각하지 말고 이대로 하면 다 괜찮지 않겠는가, 쉽게 가자, 라는 뉘앙스로요. 거기에는 여성의 신체와 남성의 신체가 다르다는 차이가 존재했고 그 차이를 두 성별 모두 받아들이고 오케이, 라고 했던거죠. 그러다가 일이 꼬여버렸지만 말예요.

저는 가부장제의 창조 1장~3장까지가 너무 힘들었어요. 읽어내기가요. 무슨 말인지 잘 들어오지를 않더라고요. 제가 일전에도 단발머리 님께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저는 전체를 잘 못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숲을 잘 못본달까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 이렇게 시작되는군, 하는 걸 못하는 것 같아요. 뒤의 내용들을 읽어가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부분의 이해가 필수일텐데 저는 앞부분 이 뭔 소린지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집중도 안되니 역시 천재는 안되겠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은 다 이유가 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님은 참 정리를 잘하셔서 제가 너무나 너무나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단발머리 2022-06-21 17:36   좋아요 4 | URL
78쪽이 여러 분들에게 깊은 임팩트를 남긴 것 같아요. 저는 이 페이퍼에서, 이렇게 되어버린 우리의 상황, 가부장제의 전 세계적 지배가 남성들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다는 걸 적어놓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지만 적어도 초창기에는 여성도 남성도 그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저는 다락방님이 숲을 잘 못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반적인 이야기와 각론을 이해하는 건 사람마다 주제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앞부분이 어렵다는 말씀에도 완전 동의해요. 그래서, 저 아직 3장.....

다락방님이 칭찬해 주시니 페이퍼 올린 보람이 있네요 ㅎㅎㅎㅎ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잘하고 있다고, 계속 읽자고, 계속 쓰자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새롭고 창조적인 격려 & 칭찬 대회> 있다면 다락방님이 10년 챔피언 하실 거에요!!!

다락방 2022-06-21 17:56   좋아요 4 | URL
굳이 덧붙이자면, 가부장제의 ‘지배’가 ‘원래 의도’는 아니었다고 저도 저 구절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그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칭찬의 신은 이만..

단발머리 2022-06-21 18:18   좋아요 3 | URL
굳이 덧붙여주신 이유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도 같은 문장 가지고 글을 두 번 썼네요.
다정하고 찰지며 정성가득한 칭찬의 달인 다코타 부장님, 어디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6-21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으면서 옛날생각 났어요. 귀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저희집은 늘상 아빠나 오빠몫이었거든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안그런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자가 좀 더 중요한 사람이란 생각? 고대시대부터 주욱 그래왔겠지요? 그러면서 잘 먹지도 못하는 여성에게 생산성을 위한 풍만한 몸매를 요구하다가, 잉여생산물이 늘어나 여성들도 잘 먹게 된 시기에 참 묘하게도 풍만함은 사라지고 마른 몸이 숭배되는 것도 그냥 기호가 바뀐것만은 아니란 생각들었어요. 지금은 맛난 거 양보안해요. 한이 맺혀서 ㅎㅎ

단발머리 2022-06-21 18:16   좋아요 3 | URL
귀하고 좋은 것을 늘상 아빠와 오빠에게 바쳐야 했던, 혹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길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참 안타깝기는 합니다. 여성들은 자기의 몸을 내주어서 낳고 기르고 먹였던 것 같아요. 불과 얼마전까지, 우리 할머니들, 우리 엄마들의 삶이 그러했구요.
맛난 거 양보 안 하시는 삶 응원합니다. 맛난 거를 다, 골고루 먹기에 인생은 짧으니까요.
미니님 먹방도 제가 겁나 응원합니다!!!

바람돌이 2022-06-22 22: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의 댓글이 여기 이렇게 떡하니~~~ 이런 멋진 글에 출연하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
적어도 지금 10대 아이들 세계에서는 가정에서 남녀 차별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항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 가정과 학교가 모두 그렇지요. 요즘 학교에서는 여자애가 어쩌고 했다가는 바로 고발당합니다. ㅎㅎ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10대 남자 아이들에게서 일베나 여성혐오적인 시각이 굉장히 만연한다는건데요. 그들은 나는 앞으로 군대도 가야 하고, 태어나서 여태까지 남자라고 이익본건 하나도 없고, 그런데 왜 자꾸 여성이 차별당한다고 하는거냐? 오히려 우리 남자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 이런 마인드라고 할까요? 그래서 요즘 저는 남자 아이들의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가 좀 많이 고민이에요.

단발머리 2022-06-23 13:52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의 댓글을 가져올 수 있어서 저에게 더 큰 영광입니다. 바람돌이님 댓글 읽으면서 읽고 있는 책의 여러 부분과 겹쳐져서 그것도 좋았구요.
이 댓글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에 또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남자아이들의 그 발상을 저도 알고는 있고요. 그 시작점이 사실 혹은 현상과 가깝다고 것도 알겠고요. 문제는 그런 느낌이나 생각이 여성혐오적인 ‘행동‘으로 발산된다는것이 많이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할 문제, 정말 지혜를 모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로맨스 소설을 생각한다
웹소의 미덕


 

이 글은 웹소설보다는 로맨스물에 대한 것이다. 나는 네이버 연재로 웹소설을 딱 하나 읽어봤는데(이름도 기억 안 남), 무료로 공개되는 것이었다. 수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새 글이 올라왔는데, 아이들 수영장에 집어넣어 놓고 수영장 앞쪽 의자에 앉아, 쉬지 않고 새로고침을 누르다가 ‘New’가 뜨면 반갑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야한 장면도, 충격적인 장면도 별로 없어서 좀 싱거운 느낌이기는 했는데, 기다리고 읽는 시간은 마냥 즐거웠다. 그 후로는 웹소설을 읽지 않았던 듯하다.









 









로맨스물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주 독자층인 여성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지 않나 싶다. 이를테면, 2000년 작품이고 최근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브리저튼 시리즈같은 경우 팽팽한 긴장감이 돌던 남녀 주인공의 상황이 단번에 정리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첫날 밤이다. 성 경험이 다분한 남자 주인공이 성 경험이 전혀 없는 여자 주인공을 정복하는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남주는 섹스를 주도하고, 곤혹스럽고 당황해하던 여자 주인공은 섹스의 즐거움을 깨달아가는순간이 이어진다. ‘가르쳐주는남주와 배우는여주의 대조가 극명하다.

 




반면 내가 느끼기에 최근의 로맨스물은 남주의 신화화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까지 완벽한 남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주는 여성들이 기대하는완벽한 남성의 모습이다. 일찍이 하지원, 현빈 주연의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내가 현빈이 아니라 작가 김은숙에게 빠졌던 이유와 같다. 말하는 사람은 현빈이지만 그의 말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김은숙이고, 김은숙이야말로 내가 듣기 원하는 말을 '해주는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맨스물에 등장하는 남주들의 특징을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The Love Hypothesis』Adam, 『The Hating Game』Joshua, 『People we meet on vacation』Alex, 『Beach Read』Gus, 『Book Lovers』Charlie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 그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인간이라면 모두 냄새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씻지 않으면 (나쁜) 냄새가 나고 씻으면 좋은 냄새가 난다. 하지만, 로맨스물 속의 남주에게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난다.

 

2. 그는 운동광이다

 

아침에는 달리고(아담), 저녁에는 헬스장(조슈아)에 간다. 근육이 발달해 있고, 힘이 어마어마하다. 맨손으로 트럭 민다(아담). 세상에 이럴 수가.

 

3. 그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유기농 재료를 냉장고에 상시 준비해두는 건 기본이요, 야채 썰기에도 능하다.(조슈아) 뚝딱! 오물렛을 만들어내는데, 게다가 맛도 좋다. 이런 남자를 누가 마다하리오.

 

4. 그는 예전부터 당신을 좋아했다.

 

사랑에 빠진 후, 그걸 알게 된 이후에 그가 고백한다. 사실 난 너를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좋아했어. (조슈아) 나는 3년 전부터 너를 좋아했어. (아담) 나는 10년 전부터, 아니 10년 동안 계속 너를 사랑해 왔어(알렉스). 이 정도면 거의 계 탔다고 보면 되겠다. 최근 표현으로 하자면, 로또 1. (참고로 저번 주 로또 1등 당첨자가 50명이어서, 1등 실수령액이 3 2천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5. 그는 committed long-term relationship을 원한다.

 

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원나잇 스탠드의 만족도가 여성보다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진화 심리학은 수천 년 동안의 진화과정에서 양육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맡게 되는 여성이 파트너 선정에 까다로운 성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남녀 간의 이중적 성 관념이 여성 억압에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읽어보았던 1인으로서, ‘바람둥이의 실재를 옹호하는 과학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통념은 그렇다. 남성은 성적 매력에 근거한 일회적 관계에 더 큰 관심이 있고, 여성은 자신과 태어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충실한 관계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말이다.

 


로맨스물에서 여주는 하룻밤을 외친다. 이번 한 번만, 하룻밤만. 딱 오늘밤만. 남주는 여주의 제안을 외면하고, 섹스 기회를 거절하며(조슈아), 크게 화를 낸다(알렉스, 거스). 남주가 외친다. 내가 원하는 건 너와의 즐거운 하룻밤이 아니야. 나는 너와의 committed long-term relationship을 원해. 과학적 설명과 사회적 통념의 반대 방향에 서 있는 남주.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그는 독자이며 작가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여성 독자와, 독자를 겨냥해 그 말을 해 주는작가(대부분 여성). 여성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여성이 해주고 있는 모습. 여성이 원하는 모습의 남성을, 여성이 만들어가는 장르. 그게 어쩌면 로맨스일지도 모르겠다.

 


향이 그윽한 따뜻한 커피에 쿠키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해서 그러지 못했다. 어젯밤에 끓여 둔 보리차에 구운 감자 Slim을 먹으며 썼다. 독서괭님과 수하님에게 바친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2-06-18 10: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잘 읽었습니다 ^^ 먼댓글이란거 참 좋네요.

로맨스 소설도 로판 못지 않게 비현실적이군요… 유기농 야채에.. 예전부터 사랑해 왔다니. (그동안 다른 여자도 만났을 거면서) 로맨스가 나온다고 해서 다 로맨스 소설은 아닌 것 같네요.

여성은 로맨스 소설, 남성은 포르노를 보고 있으니.. 이런게 동상이몽이란 걸까요?

단발머리 2022-06-18 10:24   좋아요 3 | URL
유기농 야채를 싹싹 썰어서 오물렛을 금방 만들어오는 남자가 있더라구요, 책에는요 ㅋㅋㅋㅋㅋㅋ 그동안 다른 여자 만났으면서 (만났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너를 계속 좋아했다, 그러대요.

여성이 원하는 바는 로맨스 소설에서, 남성들은 포르노에서 그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아.... 그 간극이 너무 크다고 할까요.
먼댓글은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이게 참 좋습니다^^

건수하 2022-06-18 17:14   좋아요 2 | URL
남성만 그런 건 아닌것 같은데,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이랑 만나고 섹스도 하고 (아마도?) 그런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하겠어요 :)

어쨌든 유기농 야채 썰어서 오믈렛 만들어오는 남자 멋집니다… (이래서 로맨스를 읽는 거군요)

공쟝쟝 2022-06-19 09:28   좋아요 2 | URL
수하님 천재인가요 ㅋㅋㅋ 이거네 ㅋㅋㅋ 여자는 로맨스 남자는 포르노 ㅋㅋㅋㅋㅋ 아 진짜 슬프다 ㅋㅋㅋㅋ 당분간 한국 남성성에 대한 연구에 천착을 해야겠어요. 어쩌다…. 저들이 저렇게 되었나….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드는가…. 그 코어 중 하나에 분명히 포르노가 있을 거 같다는 예감 ㅋㅋㅋ 제게 권력이 생긴다면 페미니스트 보다 휴머니스트 적인 입장으로ㅋㅋㅋ 한녀들에겐 로맨스 금지를 한남들에겐 포르노 금지를 동시에 해야겠군요 ㅋㅋㅋ

독서괭 2022-06-18 10: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단발머리님 글 재밌어요!^^ 매우 동의합니다!
이건 거의 계 탄 거라는 말씀에 빵 터졌네요ㅋㅋㅋㅋ 로맨스물 여주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죠 암요.
여성이 바라는 이상의 남주를 그리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별로 개연성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개연성이 인정되면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브리저튼은 다락방님도 여러번 말씀하셨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2-06-18 11:28   좋아요 4 | URL
마음에 차는 사람, 내 맘에 맞는 사람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친구든 연인이든 말이에요. 이 정도 남주면 ㅋㅋㅋㅋㅋㅋ 로또인데 두 주 동안 1등 없어서 한 30억 넘게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계 탔다는게 실질적으로는 더 크게 느껴지네요.

저도 독서괭님 말씀에 동의해요. 개연성을 얼마나 촘촘하게 만들어가는가가 젤 중요한듯 싶습니다. 일단 왕자님 만나기는 너무 어려우니까요. (왕자님들 적기도 하지만 유명한 사람들 대충 다 결혼) 요즘에는 친구, 직장 동료, 동종 업계 종사하는 사람 등으로 남주가 여주의 삶 가까이로 다가 오는 거 같아요.

브리저튼은 저도 2권까지 읽었는데 아주 재미납니다.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선사하는 즐거움이 한 가득. 넷플릭스 드라마화된 이후 책이 다시 베셀이 되었다고 하대요. 저는 2편의 주인공 안소니역의 조나단 베일리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합니다. 참고 부탁드려요^^

유부만두 2022-06-18 1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테니스를 즐기는 그에게선 언제나 비누 냄새가 ….. 하지만 우린 이루어질 수 없죠. 왜냐고요? 그 새끼가 뺨을 때렸거등요. 그 넘은 그게 질투와 사랑의 표현인줄 알만큼 멍청했어요!

단발머리 2022-06-18 12: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새끼 혹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리우스 아니던가요? 캔디가 옛날 남자 이야기 하면서 우니까 잊으라고 빰 싸대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놈 맞지요?

유부만두 2022-06-18 12:40   좋아요 1 | URL
아뇨, 젊은 느티나무 근처 사는 므슈 리 아들이에요

단발머리 2022-06-18 12: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그 놈도 테리우스 못지 않네요 ㅋㅋㅋㅋ 허참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6-18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깨스틱 졸업하시고 감자 슬림으로 넘어가신 건가요? (우리집에 둘다 있어서 이 글을 느긋하게 읽었죠)

단발머리 2022-06-18 12:07   좋아요 0 | URL
저 이거 세일해서 한 통 샀는데 예감보다는 인기가 없어서 ㅋㅋㅋㅋㅋㅋ 제가 다 먹을 각입니다. 저도 느긋하게 먹으면서 썼지요.

유부만두 2022-06-18 12:39   좋아요 0 | URL
한번에 많이 먹기엔 참깨스틱 못따라가죠. 감자슬림은 목이 메이게 밀가루 맛이 나요. 많이 못먹으니까 슬림 인정합니다.

단발머리 2022-06-18 12:58   좋아요 0 | URL
그래서 두 개 밖에 못 먹었어요. 저의 최애는 꼬깔콘 군옥수수맛인데 지금 막 떨어져서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6-18 14:17   좋아요 1 | URL
그거도 우리집에 있다요!!!!! ㅋㅋㅋ

다락방 2023-02-0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사랑의 가설>에 대해 단발머리 님이 쓰신 글 차레대로 다시 읽고 있는데 이 글에 제가 좋아요를 안눌렀더라고요? 방금 누르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3-02-09 11:15   좋아요 0 | URL
제가 7개를 썼더라구요 ㅋㅋㅋ 샅샅이 찾아서 꼭꼭 💕 눌러주세요^^
 


















최근에 괜찮은 칼럼을 읽었다. <대통령 부인도 피하지 못한 테이블 성차별’>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다 읽고 나서야 그 칼럼을 쓴 사람이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의 저자 이라영이라는 걸 알았다. 성차별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상품으로 대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인용된 책이레이디 크레딧이어서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칼럼의 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사실상 이 사회는 잠재적으로 모든 접객원이 여성이라고 여긴다. 식품위생법에서 유흥종사자를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라고 정의했듯이, 유흥업소의 접객원은 곧 여성이다. 달리 말하면 여자는 유흥의 한 요소다. 공식 만찬장에서 보이는 우아한 차 대접과 어두침침한 뒷골목 업소에서의 유흥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시중을 필요로 한다. (한겨레신문, 2022 6 4, <대통령 부인도 피하지 못한 테이블 성차별’>)

 


긴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훨씬 더 직접적인 설명이 가능하기는 한데, 사진은 이렇다.



 

 


남편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다면 내가 왜,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하겠는가.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남편이 커피 내려 주는 일을 왜 마다하겠는가. 그건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일본 총리의 친구가 아니다. 바이든은 일본에 놀러 간 게 아니다. 바이든은 미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것이고, 일본 총리는 일본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서 바이든을 응대한 것이다. 정확히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는 일본 총리의 권유를 아내가 받아들여 바이든을 접대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것이야말로 오모테나시(일본식 정중한 환대)”라며 일제히 보도했다.

 


이 사진을 볼 때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일본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끝을 맺는다. , 너희는 아직도 이러고 사는구나.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런 사진이 당연한 문화, 이런 접대가 격려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럽 혹은 미국의 여성들이 이 사진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 너희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 나라는 아직도 여성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구나. 라고 말할 때, ‘너희들의 범주에 검은 머리, 노란 피부의 내가 포함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일본은 유럽이에요. 일본이 그래요. 자기들은 유럽이라고, 동양의 유럽.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이렇지 않아. 이건 일본의 얼굴이야. 이게 바로 일본의 국격이야. 라고 말하려다가.

 



한미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지금 (한국의) 내각에는 여자보다는 남자만 있다면서 한국 같은 곳에서 여성 대표성 증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금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어서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의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 오질 못했다고 답했다. (경향신문, 2022 5 22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이 답변이 우리의 수준을 보여준다. 일본의 사진이 현재 일본의 얼굴인 것처럼, 이 대답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게 우리의 국격이고, 우리의 얼굴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2-06-15 1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국격이 참 ㅉㅉ 하다가 앙? 내가 어제도 오늘도 스치듯 영부인 입은 옷 완판기사를 겁나 본 거 같은데 ㅋㅋㅋㅋ 아오, 사람들아 그만 사 ㅋㅋㅋㅋㅋ 사지마 사지마!!!

단발머리 2022-06-16 15:57   좋아요 0 | URL
팬클럽 동원해 사진 뿌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사진 싣는 신문도 이상하고, 검색해서(나도 그 기사 클릭해서 본 적 있음요 ㅠㅠ) 보는 사람들도 이상하고, 그리고 완판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작의 냄새가 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그 옷, 그 가방, 그 신발, 사지 마세요!

독서괭 2022-06-15 12: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불편하네요. 왜 일본의 아름다움은 기모노 차려입은 여성의 접대에 있는 건가요? 고작 그런 건가요? 우리나라도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대통령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그에게 걸었던 일말의 희망이 짓밟히긴 했지만- 있을 때도 그렇게 무슨 옷 입었는지 열심히 찍고.. 에횽..

단발머리 2022-06-16 15:59   좋아요 0 | URL
일본의 아름다움은 기모노 차려입은 여성의 차 대접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나봐요. 개네들은 그러는 건 그냥 그러련 하는데.
대통령 부인의 행보보다 패션에 관심 갖는 언론과 이를 조장하는 어떤 배후(본인)가 참 안타깝네요.
제일 안타까운 건, 역시 완판의 신화.... 연예인인가요. 흐미....

레삭매냐 2022-06-15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그냥 정제되
지 않은 말을 내뱉곤 하지요.

사회적 진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
도 하지 않고, 그저 피상적 현상만
말하는 지도자, 우리의 국격이라
는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합니다.

단발머리 2022-06-16 16:01   좋아요 0 | URL
저도 레삭매냐님의 의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정치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 많을 테구요.
우리의 슬픔은 그런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라는 건데.... 인식의 혼돈 상태를 우리가 시시각각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국격이 이 정도죠. 흐미....

Meta4 2022-06-1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은 말인데.. 진짜 세계화를 윤짜장이 이룰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해요. 다 제 정신이 아닌데 목표라도 있는 놈 따라가자. 그러고 있는 것 아닌가?

단발머리 2022-06-16 16:04   좋아요 0 | URL
총체적 난국이라 하겠지요. 기자들과 출근길에 소통한다더니, 뭘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답하더라구요.
대통령이 모르면 누가 아나요.
 
[성의 변증법] 성 역할 전통 sex role traditions의 변신
[제2의 성] 여성의 연대가 어려운 이유
















이 책에서 내가 꼽는 문장 2개 중, 첫번째는 78쪽에 있다.



재생산능력의 차이특히 여성이 아기를  먹여 키우는 능력의 차이로 인해 최초의 성별노동분업이 생겨났으며(77), 이러한 생물학적 성차에 근거한 초기의 성별노동분업은 편리하였으며(functional), 그래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같이 받아들일 만했다는 것이다. (78) 




아기를  먹여 키울  있는 여성의 능력 때문에 생겨난 최초의 성별 분업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것이었다. 그 방법은 효과적이고 편리했고, 척박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당시의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성차에 근거한 그러한 분업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성별 분업이 출산과 양육을 넘어서 가사 노동과 사적 영역 전반에 확장되었고, 여성 개인에 대한 평가를 벗어나 여성 전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굳어지고, 남녀가 우열의 카테고리로 고정화되며, 결국 남성이 여성을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지배하는 가부장제의 확립으로 이어졌을 때, 여성들은 당황했다. 일부 저항하는 용감한 여성들이 존재했지만, 늦었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두번째 문장 138쪽에 있다.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138)  




자기 집단 내의 여성을 노예화한 경험,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타 집단의 여성과 남성을 노예화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현재 지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백인 남성은, 왜 같이 사는 백인 여성보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했던 흑인 남성과의 연대를 선호했던가. 이 질문은 다른 방향에서도 유효하다. 남성은 남성끼리 연대하는데 왜 여성은 여성이 아닌 남성과 연대하는가. 연대하려 하는가.




자유민을 노예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신체적 공포와 강압은 여성에게는 강간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강간에 의해 신체적으로 제압되었고, 일단 임신이 되면 아마도 심리적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노예제에서부터 축첩의 제도화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포로 여성들을 포획자의 가구에 통합시켜서 포획자가 그 여성들의 충성스런 서비스와 자손들을 확보하는 사회적 도구가 되었다. (154)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속 북아메리카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러한 설명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백인 농장주, 백인 농장주의 아들, 백인 농장주의 손자, 백인 관리인들의 강간으로 임신하게 된 노예 농장 속 흑인 여성의 선택지는 무엇인가. 자신이 의도하거나 원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흑인 공동체에서 창녀’, ‘쌍년이라고 불리게 될 흑인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인가. 흑인 첩이 되는 것 말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예속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가. 고된 농장 일에서 구출되어 신체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더 나은 음식을 먹고, 그리고 내 아이가 살아갈 방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남자를 계속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강간과 임신을 통한 여성의 노예화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더욱 공고히 했다.  



또 하나의 이유를 정희진 선생님의 강의에서 찾는다.
















톰과 제리의 이야기를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로 바꾸면 어떨까요. 남성은 여성의 노동 없이 존재할 수 없죠.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일까요? 아무리 여성 상위 시대의 피해의식에 시달리시는 남성도, 남성이 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고양이는 남성이고 여성이 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강자와 약자.


그런데 문제는 이거죠. 톰과 제리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재벌하고 알바는 섹스를 안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이제 바로 이성애제도죠. 그 때문에 섹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20)



톰과 제리. 적대적 모순 관계. 남성과 여성. 적이지만 섹스하는 사이. 적대적 모순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섹스하는 사이. (아닌 경우도 많겠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


역시, 답은 섹스에 있는가 싶다. 사랑의 궁극으로서의 섹스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존 양식 중 하나로서의 섹스가 여성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는데, 여성의 비극과 슬픔이 있다. 여자가 남자와 혹은 남자와만 섹스하게 하고, 남자가 여자와 혹은 여자와만 섹스하게 하는, 굳건하고 강건한 이성애 중심주의. 피지배계급임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계급으로 자신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여성 집단의 암울한 현실의 근간. 섹스, 성애 그리고 이성애 중심주의.  



흑인, 여성, 레즈비언인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오드리 로드, 『인종 토크』의 이제오마 울루오 그리고 『헝거』의 록산 게이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조금 더 읽어보겠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2-06-14 1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억압이 노예제를 가능하게 했다...!

단발머리 2022-06-16 15:43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여성억압이 노예제를 가능하게 했네요.

다락방 2022-06-14 13: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138쪽) ‘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입니다. 지금 이 책의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 문장만큼은 기억이 나네요.

저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단발머리 님이 정리해주신 글을 읽으니 함께 읽기란게 얼마나 좋은지 또 깨닫게 되네요. 그나저나 이성애 로맨스를, 우리는 어쩌면 좋은가요. 후...

단발머리 2022-06-16 15:44   좋아요 1 | URL
함께 읽기 정말 좋아요. 다른 책들도 그랬지만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책이라 더욱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애 로맨스는... 후우.... 어쩔까요 진짜?

독서괭 2022-06-14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멋진 글입니다!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으려고 시작했는데 자꾸 다른 게 눈에 들어오는 상황인데(ㅋㅋ) 이 글 읽으니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토지>에서 조준구가 최씨네집 종인 삼월이를 겁탈하는데, 그 후에는 오히려 삼월이가 매달리는 꼴이 되거든요.. 그 부분이 생각납니다ㅠㅠ

단발머리 2022-06-16 15:46   좋아요 2 | URL
독서괭님의 잘 정리된 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서괭님! 저도 <토지>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요. 삼월이가 강간 이후에 조준구에게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요?
이미 겁탈을 당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런 맘일까요? 아니면 경제적 이유 때문인가요? 도통 기억이 안 납니다 ㅠㅠ

독서괭 2022-06-17 19:01   좋아요 0 | URL
아 단발님, 삼월이의 심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안 나오고 지나가더라구요. 삼월이가 첨엔 수작거는 조준구를 엄청 피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욕하고 그랬는데,, 양반이라는 권위에 이미 버린몸이라는 생각,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등이 섞여서 마음까지 넘어간 거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넘 불쌍해요 ㅜㅜ 조준구 진짜 xxxx

책읽는나무 2022-06-14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이제 조금 단발머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는 건지? 공감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읽히는 거!!
완전 체험 중입니다ㅋㅋㅋ
단발머리님과 다락방님 그동안 이 책의 인용문을 올려주신 글들을 무수히 읽었어도, 아...그런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면, 읽었던 구절이었고, 나도 밑줄 친 부분들이었던지라...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듯 합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놀랍더군요.
분명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 흐름 놓치고 딴 생각도 많이 하며 읽어서 제대로 파악하고 읽고 있는 것인가? 아리쏭하기도 했지만요...여성노예제도, 강간으로 인해 여성을 노예화 하고, 사유재산으로 교환하면서 가부장의 근간을 이룬 엄격한 율법들,
과거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한탄 절로 나왔어요.
과거 여성이란 그저 성적 서비스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생각에 빠져 있던 차, 단발머리님이 짚어 주신 ‘답은 섹스에 있는가 싶다‘ 라는 문구가 왠지 옳은 답이겠구나! 싶네요. 에휴...여성!!!!

단발머리 2022-06-16 15:51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이 진도 쭉쭉 나가고 계셔서 저도 부지런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번 쓰기도 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페미니즘 책 중에서도 이 책은 제가 애정하는 책이라서요. 여기저기 기억날때마다 링크하고는 했는데 다시 읽게 되니 더 좋네요.
후반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지루할 때도 있는데, 제가 또 역사를 ㅋㅋㅋㅋ 좋아하는 관계로, 그 부분도 잘 지나갈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섹스에 대한 부분은,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 기본적으로 인간이 사랑 하는 존재, 사랑받기 원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의 한 일면인 섹스가 그렇게 ‘사용‘, ‘오용‘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우리의 조건, 상황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듭니다. 우리 계속 같이 읽어요, 책나무님^^

바람돌이 2022-06-14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성억압의 경험이 노예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대목에서 찌르르 했어요.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사실상 노예제에 대한 설명은 항상 생산력의 성장으로 시작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이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봐야겟구나 싶었어요.
같이 읽으니 이렇게 여러분의 좋은 생각들을 자꾸 접할 수 있어 좋네요.
역시 같이 읽기는 힘이 세다. 맞는 말입니다. ^^

단발머리 2022-06-16 15:5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바람돌이님!
엥겔스의 사유재산 확립에 대한 이론과 레비-스트로스의 ‘여성 교환‘ 이론이 ‘여성 억압‘과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저는 참 좋았습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지만 가능한 방법을 통해 초기 역사에서 ‘여성 억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보겠다,는 저자의 서문도 전 좋았구요.
같이 읽기는 힘이 세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님의 좋은 생각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공쟝쟝 2022-06-15 1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고 있어요 (정말이예요 믿어줘 엉엉..🥹) ㅋㅋㅋㅋ 오늘부터 다시 태어났으니까 오늘부턴 열심히 읽을꼬야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16 15:55   좋아요 1 | URL
많이 읽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루, 열심히 많이 읽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